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63)
마족답게 사는 법-163화(163/385)
마족답게 사는 법 163화
163 마왕과 용사 (3)
“하멜. 뭔가 냄새는 안 나나?”
“루시어스 님, 저는 군견이 아닙니다.”
루시어스가 하멜의 앞에서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며 물었다. 하멜은 기분 나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순순히 종이를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는데.
“평범한 종이입니다. 그냥 그걸 가져온 웨어울프 냄새가 지독하게 날 뿐이네요.”
“흐음…… 뭔가 다른 장치가 있나.”
마력이 담겨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특별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다. 종이의 재질도 평범하고.
그렇다면 이 문자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소리인데…… 고민하는 루시어스 옆에서 레녹스가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수수께끼를 푸는 건 둘째치고, 고난을 해치라는 건 무슨 의미지?”
“뭔가 따로 준비해놓은 게 있는 거 아닐까 싶은데. 나름 공주님을 잡아간 마왕 역할을 하는 것 같으니까.”
소설처럼 관문의 사천왕이라도 만들어 둔 것 아니겠어? 루시어스가 피식 웃으며 종이를 매만졌다.
무슨 꿍꿍이인지, 정말이지 기대가 안 될 수 없다.
‘레이얼이 납치당하는 역할을 맡게 된 이유도 알 것 같고.’
아마 저와 친하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아닐까. 뒤쪽으로 계획을 발설할까 봐 그랬겠지.
“흐음…….”
“뭔가 알 것도 같은데.”
그 녀석들 생각이니 영 어려운 수수께끼는 아닐 것이다. 풀지 못할 수수께끼를 내는 건 의미가 없을 테니.
레녹스가 턱을 매만지다가 말했다.
“루시어스. 그 암호 말인데.”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나?”
“암호학을 공부한 적이 있거든. 작은 형님께서 그쪽으로 일하고 계시기도 하고 아버지의 문서도 암호화되어 있는 게 많으니까.”
“호오.”
그러고 보니 루시어스는 암호학에 관심을 둔 적은 없었다. 암호화를 해야 할 만한 상황에 직면해 본 적도 없으니까.
마왕군에서 쓰는 간단한 암구호 정도만 외우고 있는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가장 기본적인 암호 같다. 맞는 두께의 원통에 종이를 돌돌 말기만 하면 되는.”
“맞는 두께의 원통……?”
“이런 식으로.”
레녹스가 펜 하나를 꺼내 종이를 둘둘 말았다. 종이에 쓰인 글자가 몇 개의 단어가 되었다.
“음…….”
하지만 만들어진 단어에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두께가 맞지 않으면 의미를 알 수 없지. 그러니 적당한 걸 찾으면 될 것 같은데.”
“접근 자체는 맞는 것 같군. 그런데 그게 뭔지는 어떻게 알지?”
“그건…….”
원래는 상호 간 같은 두께의 원통을 가지고 밀서를 주고받지만.
“분명 단서가 있을 거야.”
“단서라.”
곰곰이 생각을 거듭해 보았다.
완전히 새로운 물품을 찾아야 한다면 뭔가 힌트를 더 주고 갔을 것이다.
종이 하나만 전달했다는 건, 굳이 해독을 위한 원통을 제공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루시어스 님, 뭔가 없으십니까?”
루시어스가 가진 물건들.
하멜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루시어스를 향해 물었다.
굳이 방에 와서 ‘루시어스’를 찾았던 걸 보면, 루시어스에게 적당한 굵기의 원통이 있는지도 몰랐다.
“평소에 쓰던 펜은 레녹스의 펜과 두께가 같을 거고…… 그렇다고 내 팔뚝에 감길 것 같지도 않고.”
“손가락이라던가요?”
“설마.”
혹시 모르니 손가락에 둘둘 종이를 말아 보았다. 하지만 이리저리 어긋날 뿐이었다.
“그게 제대로 단어가 되려면 원통의 굵기가 일정해야 할 거야. 신체를 이용할 리가 없지.”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것 중에는 뭐 없나요?”
“글쎄. 딱히 짚이는 건…….”
흐음, 음.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데 하멜이 아, 하고 뭔가 생각났다는 듯 감탄했다.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
“있습니다. 적당한 굵기의 가늘고 길며, 루시어스 님께서 매일 가지고 다니는 것이요.”
“……그런 게 있었나?”
“아인 말입니다.”
루시어스의 은색 창.
“얼마 전에 꺼내서 전투를 벌이지 않으셨습니까. 학생들도 아인을 봤을 겁니다. 눈썰미 좋은 학생이 그걸 유심히 보고 암호를 만든 게 아닐까요?”
“아…….”
확실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들은 셋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어스가 아인을 꺼내 창대에 종이를 말았다.
글자가 모여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이건…….”
* * *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
“절대!”
“루시어스에게 넘기면 안 돼요!”
아이들이 서로 눈을 빛내며 아르놀트를 바라보았다.
아르놀트는 갑자기 교무실까지 쳐들어온 아이들이 제게 쥐여 준 종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건물을 부술 만한 싸움은 피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어차피 다 무너졌으니 상관없나?’
당장 수리를 시작한 것도 아니니 여기서 더 무너져도 달라질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르놀트가 뺨을 긁적였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꼭 장소로 와주세요. 알았죠? 약속이에요.”
“이 녀석들아, 난 바쁘단 말이다.”
“에이, 그래도요!”
학생들이 아르놀트에게 반짝반짝 기대감이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아르놀트는 부담스러운 눈빛들을 받으면서도 왠지 가슴이 간질간질해 쑥스럽게 뺨을 긁적였다.
학생들이 제게 보이는 호의는 정말이지 언제 받아도 참 달가웠다.
“어쨌든! 약속이에요.”
“알겠다, 알겠어.”
아르놀트가 저를 바라보는 학생들의 이마에 하나하나 전부 딱콩, 하는 꿀밤을 먹였다.
한 대씩 얻어맞은 학생들이 해사하게 웃으며 우르르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교무실을 둘러보던 아르놀트가 다리에 앉아 다리를 꼬고 턱을 괴었다.
‘드디어 좀 조용해졌나.’
콰앙!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그럼 그렇지. 조용할 리가.
아르놀트는 오히려 멀리서 들리는 폭발 소리 나 학생들이 목청껏 내지르는 기합 소리가 반가웠다.
원래 아이들이 조용하면 더 불안한 법이다. 이 정도 소음이 딱 마음 놓기 좋았다.
‘그럼 하던 일이나 하자.’
루시어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일이나 좀 해둬야겠다.
* * *
“여긴 못 지나간다!”
포르비가 자신만만하게 주고 간 수수께끼를 푸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멜의 생각대로 아인에 종이를 묶어 보니 정답이 나타난 탓이다.
「아르놀트」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이 답이 ‘아르놀트 선생님을 찾아가라.’라는 다음 행동에 대한 지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시간이면 아르놀트는 항상 교무실에서 일하고 있었으므로 루시어스와 레녹스는 바로 교무실로 향했고.
그 길목에서 만난 것이 바로.
“다들 모여!!”
“이봐, 다들 모여!”
이 선술집의 인상 안 좋은 손님들처럼 모인 학생들이었다.
쿠궁!
학생들은 저마다 목제무기를 쥐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로 루시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도통 모르겠지만, 저를 막겠다는 의지만큼은 또렷이 느껴졌다.
괜히 새어 나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이렇게까지 해 주는데 한 번 어울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보자. 그들이 마왕이라면 자신은 분명 용사일 것이다. 마왕에게 겁 없이 덤비는 바보 같은 용사.
‘제일 재미없는 역할을 주고 말이야.’
일부러 이런 역할을 주다니.
도발도 참 귀엽게 한다.
‘이런 놀이가 있다고 듣긴 했지.’
1차 성장을 겨우 한 어린아이들은 저들끼리 마왕과 용사 역할을 나눠서 놀고는 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루시어스는 주변에 또래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여느 아이들이라면 한 번씩은 하는 놀이라고 했다.
그 놀이에서 제일 인기가 없는 역할이 바로 마왕에게 덤비는 바보 같은 용사였다.
보통 놀이에서 용사는 마왕에게 지고는 했다. 애초에 마신의 축복을 받은 마왕이 한낱 인간에게 진다는 건 무척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니까.
실제로 그런 역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마족으로서의 자존심은 용사가 마왕을 이기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니 보통 ‘용사’ 역할을 맡은 아이들은 마지막이 되면 마왕에게 일부러라도 져 주고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져 줄 수도 없고.’
불쌍한 공주님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긴 해야겠는데.
루시어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울상이던 레이얼을 떠올렸다. 음, 다시 생각해 보니 딱히 힘을 내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큭.”
움찔!
루시어스의 웃음소리에 도열해 있던 학생들의 몸이 흠칫 떨렸다. 루시어스가 그 반응을 보고는 실수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미안하다. 생각을 좀 하느라.”
“저, 적을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다니 배짱이 두둑하구나!”
“오지 않으면 우리가 간다!”
“물론 와도 갈 거지만!”
드릉드릉 시동만 걸던 학생들이 와아아아, 하고 밀려들듯 공격해 왔다. 루시어스는 그런 학생들을 보며 웃음을 다시 머금었다.
장난기가 많기는 참 많은 녀석들이다. 키아라가 왜 매번 건물이 날아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학생들은 난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호흡을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나잇대치고는 참 잘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정할 부분은 많다.
아예 이 틈에 자세를 좀 봐줄까.
생각하며 작은 나뭇가지 하나를 소환해 깊게 파고 들어오려는 학생의 공격을 옆으로 피하며 옆구리를 콕 찔렀다.
“으어억!”
“……??”
“이, 이 자식들! 우리 동료를!”
살짝 찔렀을 뿐인데 학생 하나가 데굴데굴 나가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루시어스가 조금 당황했다.
아니,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는데.
“가만두지 않겠다!”
학생들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날뛰었다. 슬쩍 옆을 보니 레녹스는 별일 아니라는 듯 검도 뽑지 않고 가볍게 학생들을 상대하고 있었고.
데굴데굴.
크헉, 커억, 데굴데굴.
학생들은 족족 나자빠지고 있었다.
뭐지. 무슨 일이지. 한참 고민하던 루시어스가 겨우 깨달았다.
그렇다. 이건 놀이었다!
조금 전의 일격은 진검이었다면 분명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을 게 분명하니 아이들이 알아서 자빠져 준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차례가 돌지 않으니까!
“아하. 그런 거로군.”
이렇게까지 진심이라니 정말 대견하다. 그렇다면 자신도 마왕과 용사라는 역할에 조금 더 충실하게 행동해 줄 자신이 있었다.
몇 번인가 나뭇가지를 휘두르자 학생들이 억울한 얼굴로 적당히 나가떨어졌다.
이쯤이면 슬슬 대사를 한 번 쳐 줘야 하지 않을까.
포르비가 그랬던 것처럼, 적당한 대사를 치기 위해 움직임을 잠시 멈췄다. 학생들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루시어스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
하지만 루시어스는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기대를 부응해 줄 마음은 있었지만.
‘……보통 용사들은 뭐라고 해?’
루시어스는 한 번도 이 놀이를 해 본 적이 없었고, 한 번도 그런 류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동공이 잘게 떨렸다. 루시어스가 괜히 그들의 눈치를 흘긋 보았다.
기대하고 기다리던 학생들이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서로 시선을 나누었다. 그러다 얼마 후 한쪽에서 어흠! 하는 헛기침 소리와 함께 누군가 외쳤다.
“노, 놈! 제법 쓸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구나! 지금이라도 우리의 주군께 충성을 맹세한다면 이번 한 번은 봐주겠다!”
“마, 맞다! 순순히 주제를 알고 항복한다면 당장 술과 음식을 대접해 주도록 하지!”
“…….”
보통 이런 대화를 나누나?
여기에 대답하면 되나?
정말 술과 음식을 대접해? 용사한테? 보통 데려가서 고문하고 죽이지 않아?
의아하게 바라보던 루시어스가 마찬가지로 목을 가다듬고 이야기했다. 확실히, 포르비가 왜 그런 대사를 읊었는지 알 것 같았다.
조금 부끄럽기는 하지만.
“이기지 못할 것 같으니 갖은 수를 다 쓰는구나. 헛소리 말고 덤벼라!”
재미있기는 하다.
학생들의 얼굴이 잠시 환해졌다. 그러고는 흐흐흐, 하고 음침하게 웃더니 가만두지 않겠다는 꽤 상투적인 대사를 치며 다시 덤벼들었다.
“푸하핫.”
천진난만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루시어스가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