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64)
마족답게 사는 법-164화(164/385)
마족답게 사는 법 164화
164 마왕과 용사 (4)
“왔냐. 생각보다 늦었구나.”
“제가 올 걸 알고 계셨나 보네요?”
“밖에서 난리란 난리는 다 쳤으면서 무슨. 꽤 재미있는 비명이 들리던데.”
아르놀트가 펜을 내려놓으며 루시어스를 향해 의자를 빙글 돌렸다.
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루시어스와 레녹스의 얼굴이 보였다.
아이들이 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둘의 마음에는 꽤 든 모양이니 다행이었다.
“그래. 근데 내가 뭔가를 가지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애들이 수수께끼를 내줬거든요. 이거 보세요. 아무리 봐도 선생님 성함이잖아요.”
루시어스가 말하며 아르놀트에게 아인에 감아두었던 종이를 보여 주었다.
아르놀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마를 탁, 치며 고개를 숙였다.
이것들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장로님의 무기에 저런 걸 붙일 생각을 하냐.
아인은 케렌스타의 레어 속에 있는 온갖 보물을 보며 자란 아르놀트가 보아도 참 아름다운 명창이었다.
루시어스의 창은 그저 은으로 만들었다기엔 백색에 가까운 색을 띠었고, 백색을 내기 위해 석고를 섞었다기엔 참으로 부드럽고 고아했다.
완벽한 무게 중심을 고려한 디자인은 과하지도 적지도 않은 화려함을 가지고 있다.
누구의 작품인지는 몰라도 이 창을 만든 이는 분명 장인의 반열에 든 대단한 대장장이일 것이다.
루시어스가 허락한다면 창을 한 번 직접 휘둘러보고 싶은 욕망도 있다.
그러니 더욱 이 상황에 한숨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계의 보물이라고 해도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고고한 은색의 창 위에 고작 이런 종이가 감겨 있다니.
“…….”
그리고 하필! 종이 위에 제 이름이 쓰여 있다니.
삐딱하게 기울어진 문자들이 모여 제 이름을 나타내고 있었다. 의도한 게 아닌데도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확 받았던 걸 줘 버릴까.
고민하던 아르놀트가 가볍게 헛기침하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루시어스, 나는 아는 게 없고.”
“흐음.”
“지금 무척 바쁘지.”
“그렇겠네요. 회의 결과는 어땠죠?”
“음? 아아, 난리도 아니다. 우선 이번 일을 벌인 것이라 추정되는 리크 선생님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기도 하고, 일이 터지자마자 내빼려고 한 수리 업체도 잡아들여 배상금 청구를 하고 있고…….”
“최대한 빨리 본관 수리를 진행해야 할 텐데 맡길 만한 업체는 있나요?”
“사이러스를 수리하느라 업체가 많이 빠져서 그마저도 확보하기 힘들더구나. 사이러스와 조율을 좀 해야 할 것 같아 내가 나서게 될 것 같다.”
“흐음.”
“…….”
그런데 내가 왜 이 녀석한테 이렇게 줄줄 다 말하고 있지?
시선을 돌려보자 루시어스가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시선이 마주치자 피식 웃어 주는 걸 보니.
‘당했군.’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아르놀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지탱했다. 대책 회의는 진행되고 있고 학생들에게 공지할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교무 회의에서 나온 모든 이야기는 확실시될 때까지 기밀에 붙여져야만 했다.
그런데 루시어스가 물으니 자연스럽게 아는 걸 전부 말해 버렸다. 다른 학생들이었으면 신경 쓰지 말고 쉬기나 하라고 이마를 톡 쳐줬을 텐데.
교무실에 다른 선생님들이 없어서 다행인가.
‘그나저나 공석이 문제군.’
선생님 하니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타리크가 자리를 비우게 되며 생긴 공석에 관한 것이다.
사고가 나면서 뒤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진 터라 다시 업무를 재분배하기는 무척 번거로웠다.
그걸 맡을 만한 선생님도 없고.
어쩌면 좋나.
끄응. 아르놀트가 작게 신음했다.
그런 아르놀트를 바라보던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카데미 측 사정이야 뻔하니까.
“그러고 보니 하멜 선생님께 편지가 왔었어요.”
“……응? 그러냐?”
“네. 그쪽 생활도 잘 하고 있냐고 말이에요. 그리고 급한 일이 끝나서 슬슬 복귀하려고 하신대요. 개인적으로는 키아라 아카데미가 궁금해서 이쪽으로 오지 않을까 싶다던데.”
그 말에 아르놀트가 반색했다.
“급한 일이 끝나셨다니 참 다행이구나. 아이들도 좋아할 거야.”
“네. 좋은 선생님이니까요.”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이걸로 일 하나는 해결했다.
하멜이 이렇게나 반갑게 느껴질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아르놀트가 찡하니 울리는 눈물샘을 느끼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선생님?”
“응? 왜?”
“굳이 아이들이 선생님까지 끌어들이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놀이에 선생님께서 참여해 주길 원하는 것 같아요.”
“흐음…….”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물음에 아르놀트가 고민했다.
루시어스에게 했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아르놀트는 정말 해야 할 일이 많아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아이들의 기대를 저버리면서까지 해야 할 일들은 아니다.
아르놀트에게 있어 가장 첫 번째 순위는 바로 학생들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한 번 어울려 줘야겠어.
아르놀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급한 일은 대충 끝냈으니 어울려 주마. 수수께끼를 풀면 되나?”
“음, 용사의 동료가 되면 돼요.”
“……?”
용사의 동료?
아이들이 제게 맡겨놨던 힌트를 주기 위해 품 안을 뒤적거리는데 들리는 소리에 그의 움직임이 덜컥 멈추었다.
루시어스가 장난스레 눈웃음 지었다.
“제 동료가 되어 수수께끼를 풀며 난관을 넘고 마왕을 무찌르러 가셔야 해요.”
“……?? 마왕을?”
“그리고 납치된 공주님을 구해야죠. 왕자님이라고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아르놀트는 절대 루시어스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뇌에 과부하가 온 것처럼 삐그덕거렸다.
이건 또 다 무슨 소리야?
그런 어이없음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루시어스가 곧 옅게 웃으며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아르놀트는 그제야 학생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 대충 눈치챘다.
그런데…….
‘……그걸 나도 하라고?’
나이를 이만큼 먹고?
그걸 하라고?
아르놀트의 눈동자가 옅게 떨렸다. 루시어스가 단호하게 물었다.
“하실 거죠?”
“……끄응.”
하긴 루시어스가 기꺼이 아이들의 장난에 동참하고 있는데 제가 못 해줄 것이 뭐가 있겠나.
아르놀트가 심호흡했다.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좋다. 동료가 되도록 하지. 그럼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알려 줘야겠구나.”
뒤적뒤적, 아르놀트가 품 안에서 종이를 꺼내 루시어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 종이에는.
“……아무것도 안 쓰여 있군.”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루시어스가 종이를 눈으로 살피다, 얼굴을 박고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익숙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새큼한 향이 나네요.”
“불인가.”
“네. 불을 한 번 써 보는 게 좋겠어요.”
불을 다루는 재주는 없는데.
식당이라도 가봐야 하나 고민하는데 아르놀트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품 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불의 기운을 가진 마석이 박혀 있어서 마력을 주입하면 불이 나는 마도구였다.
“사정이 좀 있어서…….”
루시어스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선생이 될 때 끊었다. 이건 그냥 유사시에 필요할까 싶어서 가지고 다니는 거야.”
“흐음.”
“큼큼. 내 말을 못 믿는 거냐?”
“아뇨, 믿어요. 동료잖아요.”
수상쩍다는 듯 아르놀트를 응시하던 루시어스가 옅게 웃어 버렸다. 라이터를 들고는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퍽 귀엽게 보였다.
아르놀트는 잠시 머쓱해 하며 뺨을 긁적이더니 종이 밑을 불로 그을렸다. 열과 함께 글자가 후욱 퍼지듯 나타났다.
「별관」
“별…… 관?”
“별관으로 가라는 의미일까요?”
“학생들은 출입하지 못하게 막아놨을 텐데.”
“우선 가보죠.”
넷이 모여 웅성웅성 한 마디씩 보탰다.
그들이 다 같이 모여 별관으로 향했다.
* * *
별관의 모습은 꽤 엉망진창이었다.
무너진 후 바로 수리에 들어가 당장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시켜놨었지만 마물이 습격하면서 다시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게다가 수리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별관도 방어 마법진이 발동되지 않을 만큼 마정석 비율이 엉망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마 멀쩡했어도 무너뜨리고 다시 지어야 했을 것이다.
“여기로 오라고 했으니 뭔가 단서가 더 있을 텐데.”
어딘가에 숨겨놨을까?
의아함에 서로 의견을 나누는데 멀리서부터 스륵스륵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르놀트와 루시어스가 시선을 주고받았다.
하나, 둘…… 열다섯 이상.
기척을 느껴 보니 다른 건 아니고.
그냥 학생들이다.
‘티가 엄청 나는데.’
‘은신 훈련을 더 시킬까.’
이 정도 실력으로는 어디 가서 잠입하기도 전에 들켜서 잡힐 게 분명하지. 몸을 숨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 되어야 하는 능력이다.
루시어스와 아르놀트가 곰곰이 학생들의 훈련 코스를 고민했다.
이번 방학을 이용하면 녀석들의 수준을 한 단계 정도는 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레녹스는 그런 둘의 생각을 읽곤 어깨를 으쓱였다. 가끔 생각하지만, 저 둘은 참 닮은 부분이 많았다.
그렇지 않은 척 학생들을 무척 아껴 준다는 것도, 가르침 받은 누군가가 성장해 가는 걸 지켜보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루시어스가 장로가 아니었다면 아카데미의 선생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일이 터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훈련시킬 생각만 가득하다니 여러 의미로 대단했다.
다른 학생들이 알면 얼마나 우는 소리를 낼지.
“그나저나 이렇게 숨어 있기만 하니 영문을 모르겠군. 이제 뭘 하면 되지?”
“조금만 기다려 보면 되겠지.”
루시어스가 기분 좋게 웃었다.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는 걸 보면 뭔가 준비를 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쏴아아아……!
기다리고 있는데 거대한 돌풍이 불어왔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눈을 질끈 감고, 눈을 찌르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바라본 루시어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슈우욱.
수많은 새떼가.
정확히는 색색의 종이학이 하늘을 물들였다.
종이학이 바람을 타고 날갯짓했다. 잘게 찢은 종이 파편이 그 곁을 반짝반짝 날아다녔다. 그것들이 햇빛을 받으며 저마다의 색을 뽐냈다.
보잘것없는 종이었지만 마치 철새가 노을을 향해 줄지어 날아가는 것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했다.
어떤 학은 무척이나 반듯하게 접혀 있었고 어떤 학은 무척이나 구깃구깃 조잡한 실력으로 접혀 있었다.
다만 어떤 학이든 무척이나 정성스러웠다.
“…….”
살짝 벌어져 있던 입이 다물렸다.
왠지 이 광경 자체가 아이들이 제게 보내 주는 선물인 것만 같아 마음이 울렁…….
“끼아아앗!”
“…….”
이기는 무슨.
종이학들이 갑자기 몸을 부풀리며 거대해졌다.
하염없이 가냘프게 보이던 종이 날개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냈다. 날개가 팔락팔락 움직일 때마다 바람이 몰아치며 옷깃에 흠이 났다.
찌그러질 것 같던 부리도 무쇠처럼 단단해졌는지.
쿠웅!
바닥에 깊게 파고들었다.
잘못 맞으면 그대로 팔 한쪽이 날아가게 생겼다.
투두둑. 투둑. 둑.
삐그덕삐그덕 움직이는 종이학들이 주변을 빼곡히 에워쌌다. 짙은 그늘이 루시어스에게 드리웠다.
삐뚤빼뚤 검은 펜으로 그려놓은 종이학의 눈이 번뜩 빛났다.
“하아…….”
루시어스가 작게 한탄하며 이마를 짚었다.
괜스레 기대한 제가 잘못이었다.
‘내 감동 돌려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