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7)
마족답게 사는 법-17화(17/385)
마족답게 사는 법 17화
017 몽마의 꿈 (2)
“이번 신입생들 솜씨가 장난이 아니라더라. 특히 네 번째 반.”
“들었어. 그분 수업에서 최고평가라며?”
앱실론의 네 번째 반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교 시간이 되자 아카데미의 거의 모든 학생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기척을 죽이고 학생들을 그저 지나쳐가려던 나는 저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 반에 있는 드라이어드가 실력이 꽤 좋다는 얘길 들었는데.”
“에이, 실력이 좋긴. 겨우 1인분을 하는 거겠지.”
그 대화를 들으며 루시어스의 모습을 다시 상기했다.
신전의 사제처럼 경건하게 느껴지는 외모. 차분하지만 이유 모를 위화감이 휘도는 분위기.
말로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그는 절대 약하다고 치부할 만한 마족이 아니었다.
‘애초에 다른 분도 아니고 아르놀트 선생님이시지. 이유 없이 최고평가를 줄 리가 없어.’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나니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수업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켄드릭이 남아 있긴 했구나. 봤다는 마족을 본 적이 없어서 이미 멸족이라도 당한 줄 알았지.”
“또 멍청한 소리 하네. 멸족이 누구 집 마수 이름이냐?”
마족은 마신의 가호 아래에서 태어나는 종족이다.
마신이 가호를 거두지 않는 한 멸족하는 일은 없었다.
전쟁이 일어나도 마찬가지였다. 종족 전체가 죽더라도 아기집에서 새로운 마족들이 태어나니 걱정이 없다.
‘드라이어드가 눈에 띄게 개체 수가 적긴 해.’
생각해 보니 정말 너무할 만큼 눈에 띄는 조합이었다.
파트너로 루시어스를 고른 건 역시 실책 아니었을까?
관심을 끊으려고 해도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걸 보면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힘을 조금 써 볼까.
요즘 꿈을 꾸지 않아 기력이 조금 회복되었으니 이 정도는 할 만했다.
후우, 숨을 내쉬어 힘을 뺀 후 정신을 집중했다.
꿈과 꿈 사이를 거닐 수 있는 몽마의 힘을 이용한 은신과 잠입.
잘 사용하면 아무도 모르게 군중 사이로 파고들 수 있지만, 제어가 어려워 쉽게 사용하진 못하는 활용법이었다.
학생들의 무의식에 파고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이 상태로 그에 대한 소문을 몰래 듣고 다닐 생각이었다.
“그 얘기 들었냐? 아르놀트 선생이 수업에서 기어이 드래곤을 꺼냈단다.”
“미친……. 네임드였다더니 진짜 다르긴 다르구나.”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아르놀트 선생이 구현해냈다는 드래곤이었고.
“거기 입학시험 수석이 있다며. 그것도 실기랑 이론 나란히.”
그다음은 드래곤을 처치하는 데 혁혁히 공을 세운 키안이라는 학생이었다.
생각보다 루시어스에 대한 이야기는 적었는데, 그림자 마룡을 쓰러트린 무용담을 전하느라 바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반 학생들을 상대로 혼자 50장의 카드를 모았더라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 다들 드라이어드 혼자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나는 점차 심란해졌다.
‘아무리 학생들 수준이라고 해도……. 19명을 상대하는 건 내게도 힘들어. 그것도 카드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으면 더더욱.’
저게 사실이라면. 그만한 실력을 갖고 있다면.
……대체 왜 루시어스는 내게 그렇게 호의적인 걸까.
왜 다가오는 걸까.
“앱실론이면 임시 파트너를 배정받았으려나? 파트너가 누구일지 궁금하네. 곧 합동 수업도 있을 거고.”
“이번엔 뭐려나. 작년엔 토너먼트였지?”
레녹스가 이야기를 들으며 이마를 짚었다.
파트너 제도를 운용하는 만큼 사이러스에는 파트너와 함께 하는 수업이나 활동이 많았다.
본격적으로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 파트너가 누구인지 숨길 수 없어지는데, 루시어스가 자신의 파트너임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지.
수업을 듣다가 전처럼 사고라도 일어나는 게 아닌지.
“오필리아…….”
아버지가 선물해주었던 검.
부모 된 자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기대의 증거.
차마 버리지 못해 방 한구석에 보관해둔 검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럴 때면 가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처음부터 오필리아가 없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까.
‘루시어스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지?’
온종일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날의 일을 되짚는 것도, 그걸 말하는 것도, 그리고 말한 후 경멸받는 것도 익숙한 일이건만.
파트너라며 배려해 주는 그를 배신하는 것만 같아서.
괜한 기대를 걸었다가 남들과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 어쩌나, 배신당하면 어쩌나 두렵다.
‘무섭다.’
가슴이 뛴다. 미치도록 불안하게.
* * *
루시어스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레녹스가 없는 틈을 타 구석에 세워져 있는 오필리아를 유심히 살폈다.
그러던 와중 문 너머에서 레녹스의 기척이 느껴졌다. 루시어스가 오필리아를 내려 두고 그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안 들어오고 문 앞에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레녹스는 기숙사 방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미동도 없이 우두커니 못 박혀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제부터 나눌 대화가 상당히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고민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덜컥.
아니나 다를까 레녹스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곤 노크라도 하려고 했는지 엉거주춤하게 올라가 있는 손을 내렸다.
레녹스를 바라보던 그가 옅게 웃음 지으며 물었다.
“언제까지 계속 서 있기만 할 셈이지?”
“……생각을 좀 하느라.”
“시간이 더 필요한가?”
“아니, 들어가겠다.”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그를 들였다.
자리에 앉고 허브티를 한 잔 우릴 때까지 레녹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화제를 꺼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레녹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2년 전, 내가 아직 알파 클래스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의 손가락이 찻잔을 쓸었다. 그의 시선이 멀지 않은 과거를 되짚고 있었다.
“당시의 파트너 수업은 평범했지. 일대일 대련이었다.”
이미 보고서를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트너는 에디온 타라였다.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지. 녀석이 아니었다면 알파까지 그렇게 빨리 승급할 수 없었을 거다.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
“도움이라면?”
“여러 가지로 전부. 그와는 임시 파트너로 만났지만 합이 잘 맞았다. 그게 불행이었는진 모르겠지만.”
과묵한 성격인 레녹스가 학교생활에 무난히 적응할 수 있던 건 에디온의 덕이 컸다.
“그리고 대련이 시작되자마자 오필리아가 날뛰었다.”
그의 말을 들은 루시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필리아는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긴 해도 이유 없이 날뛸 만큼 광기에 휩싸인 검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다시금 물었다.
“폭주했나?”
레녹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오필리아에게로 한 번 시선을 주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더군. 갑자기 검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오더니, 경기장을 돔처럼 감쌌다. 그 안에는 에디온과 나만이 있었지.”
“담당 선생님은.”
“아르놀트 선생님이었지. 그분이 밖에서 오필리아의 결계를 깨부쉈다. 하지만 그 전에…….”
그가 한 번 크게 심호흡했다.
“에디온이 죽었다. 내가…… 죽였지.”
루시어스가 사전에 조사한 자료는 사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이 쓰여 있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유를 알 법했다.
‘눈 깜짝할 새에 학생이 이미 죽어 버렸군. 그것도 결계로 분리된 장소에서…… 아르놀트도 상황을 확인하지 못했고.’
루시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성년이 되지 않은 마족의 살해는 중죄다. 그것이 어른이건, 아이이건.
레녹스를 지키려면 사건을 사고로 처리해야 했다.
수업에서 어쩌다 벌어진 일. 어린아이들의 미숙함과 담당관의 관리 소홀이 초래한 사고.
‘아르놀트는 레녹스를 믿은 모양이지만, 다른 학생들이 보기엔 그게 아니겠지.’
파트너를 죽이고 자카르의 이름으로 덮어 버린 배신자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할 수 없는 이상, 그들에게는 결과만이 중요했을 테니까.
루시어스가 레녹스를 응시했다.
“어째서 파트너를 죽일 수밖에 없었지?”
“…….”
“나는 네가 이유 없이 파트너를 죽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루시어스의 말에 레녹스의 목이 잠시 잠겼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던 그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얼마 후 레녹스가 고개를 들며 쥐어 짜내듯 얘기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었을 테니까. 그리고 변명하자면……, 에디온이 그걸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음…….”
“단순 폭주는 아니었어. 그렇다기엔 너무 흉악한 기운이었거든.”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았다.
레녹스가 왜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는 이해했지만.
루시어스가 오필리아로 시선을 두었다.
우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오필리아는 아마 폭주한 게 아닐 거다. 널 지키기 위해 움직인 것뿐이지. 피를 이용해서 외부와 단절된 결계를 만드는 건 뱀파이어들의 전매특허다. 피를 마시는 검이니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을 거고.”
루시어스도 곧잘 마왕에게 당하곤 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일종의 영역 마법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에디온의 상태를 짐작하긴 힘들군. 통상적인 폭주라면 아르놀트 선생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대련하기 전에 이미 전조 증상이 나타났을 테니까.”
“지금 와서 따져 봤자 의미 없는 일이지.”
레녹스가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지었다. 얼마간 감상에 빠져 있던 그가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다.
“말려들게 해서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겠다. 너도 알다시피 사이러스는 파트너가 없으면 안 되는 구조니까.”
그가 루시어스의 덤덤한 시선에 입술을 깨물었다.
레녹스는 이 대화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었다.
지난 2년간 이미 많은 학생에게서 동정도, 연민도, 힐난도 받아 보았다. 루시어스가 그중 어떤 생각을 하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게 끝이다. 너도 이걸 원했겠지?”
그의 입매가 삐뚤어졌다.
하지만 레녹스의 생각과는 달리, 루시어스는 그를 동정하지도 연민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비난하거나 힐난할 생각도 없었다.
단지.
“넌 이대로도 상관없는 건가?”
루시어스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
과거에 안주하는 건 쉽지. 누군가를 매도하고 후회하는 것만큼 편한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뒤를 보고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대로면 3차 성장을 넘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악몽이 널 너무 괴롭혀 왔어. 아직은 늦지 않았지만, 당장 수습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거다.”
“…….”
“그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아.”
레녹스는 그 말에 울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절규했다.
“알아! 나도 알고 있어!”
“후, 레녹스.”
“내 몸 상태에 대해선 내가 더 잘 알아. 하지만 그건 이미 끝난 일이다. 에디온은 이미 죽었으니까. 그가 다시 돌아올 일은 없지 않나.”
“레녹스.”
“루시어스, 네 말대로다. 이 상태로 3차 성장을 맞이하면 난 죽게 될 거야.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몸이 약해지는 게 느껴지거든.”
“…….”
“떨쳐내면 되겠지. 그런 놈 따위 없던 것처럼 살아가면 되겠지.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그 날의 일이 떠올라 미치겠어.”
어떻게 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직도 에디온과 함께 지냈던 나날들이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그의 몸을 꿰뚫던 그 감촉이 아직도 손끝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는데.
끝나지 않았음을 알고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끝내야만 하는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그만하자. 이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그를 한 번 바라본 레녹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침대로 가 누웠다.
이거 영 뒷맛이 씁쓸한데.
루시어스는 언덕처럼 움푹 올라온 이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프난을 소환했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그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기를 바라면서.
‘조금 더 조사해 봐야겠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