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72)
마족답게 사는 법-172화(172/385)
마족답게 사는 법 172화
172 교생 선생님 (6)
“선생님. 수업이 끝나서 찾아왔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아서요.”
루시어스가 마왕을 직접 찾아오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왕은 바로 그날 방과 후에 교무실까지 저를 찾아온 루시어스를 바라보다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최대한 좋은 인상을 주도록, 아주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래. 기다리고 있었단다.”
“우선 상담실로 자리를 옮겼으면 하는데요.”
“가야지. 이리 오렴.”
옆에서 지켜보던 아르놀트가 마왕의 손에 상담실 열쇠를 쥐여 주었다. 마왕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루시어스를 데리고 상담실로 향했다.
드르륵.
마왕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느릿하게 따라 들어간 루시어스는 뭐라도 대접해 주려고 찬장을 살피는 마왕을 바라보다가.
달칵.
혹 방해꾼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갔다.
숨길 생각도 없이 노골적으로 울리는 소리에 조금 긴장했는지 마왕이 루시어스의 눈치를 흘금 보았다. 그러고는 흠흠, 몇 번인가 헛기침하고 권유했다.
“루시어스. 드디어 생각이 좀 정리된 것 같구나.”
“네. 생각보다 빨랐죠.”
“이리 앉으렴.”
루시어스는 마왕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말을 골랐다. 여기까지 오면서 생각해 둔 게 있었다.
“대부님.”
“……!”
첫째는 여기 있는 마족이 마왕이 아니라 르완 선생님이라는 점.
둘째는 마왕이며 선생님이기 이전에 그가 자신의 대부님이라는 점.
그러니 ‘루겔’이라는 마족의 앞에서 자신은 5장로나 아카데미의 학생이 아닌, 그저 ‘루시어스’라는 대자로 있을 수 있다.
마왕과 장로라는 절대적인 상하 관계가 아니라 대부와 대자라는 내리사랑과 윗사랑의 관계에 있다.
장로로서는 할 수 없는 말을 할 수 있다.
가령, 이런 말 말이다.
“저는 이번에 대부님께 크게 실망했습니다.”
“루, 루시어스…….”
“분명 하멜을 통해 말씀을 전한 줄 압니다. 당분간 얼굴을 비추지 않겠다고요. 그런데 왜 여기까지 찾아오셨습니까?”
대부님이라는 호칭에 확 밝아졌던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할 말을 찾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마왕, 아니 루겔이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널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야. 네가…….”
“제가?”
“……네가 화가 난 것 같아서.”
정말 곤란한 듯한 기색을 바라보던 루시어스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무례하다며 화를 내지 않는 걸 보니 제 눈앞에 있는 그가 정말 대부님이라고 느껴져서.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가 줄 순 없다.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둬야만 했다.
“한낱 학생을 찾으려 하지 말라 하기에 마왕이라는 자리를 잠시 내려 두고 선생으로 왔다.”
방학이 되어 루시어스가 돌아오기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방학이 되어도 보지 못한다니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얼굴을 보여 줄 생각이 없으면 보러 와야지. 우물도 목마른 자가 파는 법이 아니던가.
루겔이 우물쭈물 자신의 손을 매만지며 루시어스의 시선을 피했다. 대부님이라 불렸기 때문인지 루시어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수가 없었다.
아들한테 혼나는 아버지의 기분이 이런 거였나.
루시어스가 한숨을 옅게 내쉬곤 물었다.
“왜 제게 연락하지 않으셨습니까?”
“으응?”
“이전에도 그랬지요. 그런 대규모 계획을 시행하는데 ‘장로’인 제게는 단 한마디 말씀도 없었습니다. ‘마왕 전하’도, ‘대장군’도. 하다못해 ‘대부님’과 ‘아버지’도.”
아들인 제게 연락조차 없었습니다.
루시어스의 표정이 절로 뾰로통해졌다. 일방적이었더라도 연락을 주었으면 이만큼 화가 나지는 않았겠지.
그저 ‘전하께서 또 독단적으로 행동하시는군.’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화를 내더라도 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말을 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장갑 한 번 던지고 말았겠지.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제가 화난 것 같아 절 보러 오셨다는데 제게는 한마디 연락도 없었습니다. 오자마자 대부님께서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과 놀아주시기만 했지요.”
저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낮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마왕이 슬쩍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지금 연락하기만 하면 되었다는 건가? 당장 연락해서 쳐들어가겠다고 말하는 것과 그냥 들어가는 건 결과적으로 차이가 있나?
게다가 이번엔 루시어스가 먼저 제게 연락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었나.
게다가 겸사겸사 아카데미의 선생님으로서 잘 보이기 위해 학생들과 놀아준 건 무슨 문제인 걸까?
모두 루시어스를 위한 일이었다.
어렵다. 너무 어렵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그 방법뿐이다. 그가 눈을 살며시 감았다가 뜨고 가만히 앉아 있는 루시어스에게 다가갔다.
한쪽 무릎을 꿇자 눈높이가 딱 적당해졌다. 루시어스는 조금 당황스러워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그를 쳐다보았다. 루겔이 작게 웃었다.
조심스럽게 루시어스를 향해 팔을 벌렸고, 그대로 아이를 껴안았다.
그래. 아르놀트의 말대로.
우선은 사랑한다고 이야기하자!
“사랑한단다. 루시어스.”
“그, 그게 갑자기 무슨.”
“부끄러움이 앞서 그동안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 네가 대부라고 칭하게 해 달라 간곡히 청할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저, 전하. 잠시만요.”
“아르놀트 선생이 그러더구나.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맞는 말이지. 아무리 내가 널 아끼고 사랑해도 말하지 않으면 네가 어떻게 알겠니.”
“…….”
“미안하다. 아들아. 사랑한다.”
말로써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얼마나 덧없이 사라지는지. 마왕이 루시어스를 품에 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잘못했다. 정말 미안해.”
루시어스는 갑작스러운 온기에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울리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체온만큼 따뜻한 감정이 뒤섞였다.
‘정말 뭐람, 갑자기…….’
이러면 더 화를 낼 수도 없잖아.
제 짜증을 다 들어 주고 사랑하며 미안하다고 하는 대부에게 어떻게 모진 말을 계속할 수 있을까.
루시어스는 괜히 지는 것 같은 기분에 입술을 빼죽이면서도 루겔의 품을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어쩔 수 없다는 한숨과 함께 등을 마주 끌어안았다. 더미트보다는 조금 더 높은 체온. 하지만 왜인지 낯설지는 않은 체온이었다.
분명 기억하지 못하는 언젠가 마왕이 이렇게 자신을 안아 주었을 터다.
“대부님은 정말…… 치사하네요.”
“아직도 내가 미우냐?”
“……그럴 리 없잖아요. 애초에 미워한 적도 없어요.”
미웠으면 대부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겠지. 루시어스가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떴다. 그러고는 살짝 몸을 떨어트리고 루겔을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동자가 곱게 휘어졌다. ‘가족’이 아닌 다른 마족들에게는 절대 보여 주지 않는, 루겔 르완의 웃음이었다.
루겔이 루시어스를 여전히 토닥토닥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많이 서운할 수도 있었다는 걸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구나.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하마.”
“……알아주시니 기쁩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는 어떠냐. 지낼 만한가? 친구들도 많이 사귄 것 같던데.”
혹 남아 있는 화가 있을까 루시어스를 어르달래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사실 매번 오는 정기 보고서가 아니라 루시어스에게 직접 듣고 싶었던 물음이기도 했다.
아카데미에서 무슨 수업을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친구들을 사귀었는지, 아카데미 생활이 즐거운지.
더미트가 아니라 루시어스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다.
자신도 루시어스의 아버지니까.
“생각보다는 즐겁습니다.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요. 얼마 전에 일어났던 사건 때문에 모두 서로를 전우처럼 여기고 있어요.”
루시어스는 화가 풀렸는지 차분하고 평온한 표정이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되뇌며 루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루시어스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루시어스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 주었다.
더미트에게 이야기해 줄 때와는 또 다르게 루겔은 적당한 때에 감탄해 주고 본인의 이야기를 해 주며 대화를 나누었다.
다시는 얼굴 보지 않을 각오를 하라고 협박하려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대부님과의 대화는 무척 즐거웠다.
화가 났던 것도 까맣게 잊었다.
해가 가라앉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루시어스가 창밖을 보며 아쉬움을 표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아쉬우냐?”
“이럴 기회가 많지는 않으니까요. 그간 있었던 일을 말해 드리려면 시간이 며칠이 있어도 부족하겠습니다.”
“언제든 시간을 내줄 수 있으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무렴 아들에게 쓸 시간조차 없을까.”
남아도는 게 시간 아니겠니.
루겔이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루시어스의 머리를 꾹 눌러 쓰다듬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이만 들어가서 쉬어라.”
“네, 그렇게 할게요.”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을 흔들어 주는 대부의 모습이 참 가슴을 간질였다.
* * *
다음 날.
루시어스는 교무실로 향하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원래 반장인 레이얼이 수업 준비를 위해 가려고 했던 것을 자신이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화해한 겸 기분 좋게 대부님께 아침 인사라도 하고 싶었으니까.
옆에서 함께 걷던 레녹스가 말했다.
“일이 잘 해결돼서 다행이야.”
“대부님께서 날 이해해 주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렇지도 않더라고.”
화를 제대로 내기도 전에 미안하다고 하니 도리가 있어야지.
어깨를 으쓱이는 루시어스가 무척 홀가분해 보였다. 레녹스는 그런 루시어스를 바라보면서도 속으로 의아함을 지우지 못했다.
그분께서 미안하다고 했다고?
‘루시어스가 어느 부분에서 왜 화났는지 모르실 것 같았는데…….’
루시어스를 위한 완벽한 계획.
그리고 완벽한 결과.
마왕에게는 그저 그것만이 중요했으니 이런 사달이 난 게 아니었던가.
잠시 턱을 매만지던 레녹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루시어스가 기분이 좋아 보이니 다행이었다.
루시어스가 걸음을 재촉했다.
교무실로 한달음에 달려가 가볍게 숨을 고르며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반가운 뒷모습이 보였다. 루겔은 무척 신난 표정으로, 하지만 무척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반가움에 걸음을 크게 옮겼다.
이야기를 나누던 하멜과 아르놀트가 루겔의 뒤에서 다가오는 루시어스를 발견했다.
고개를 까딱이는데.
왠지 기색이 이상하다.
루겔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그대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니까. 어쨌든, 미안하다고 하니까 일이 잘 풀렸어. 아직도 그 아이가 왜 화났는지 잘 모르겠지만.”
“……?”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허! 루시어스가 숨을 삼키며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그러니까 지금.
왜 화났는지는 모르겠다고?
그럼 미안하다고 했던 건?
하멜이 작게 한숨을 푸욱 내쉬더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아르놀트도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루겔은 상황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루시어스가 씹어 먹듯 물었다.
“……그 아이가 화가 난 이유는 아직도 모르시겠고요?”
“음. 어제도 말했지만 정말 완벽한 계획과 결과이지 않았나. 루시어스를 위해서 내 얼마나 힘을 썼는데…….”
레녹스가 뒤에서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루시어스가 손을 꽉 그러쥐었다.
“아직 그 아이가 어려서 그래. 마음이 여리니 내 뜻을 전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아하, 그렇군요.”
“그럼, 그럼.
무심코 답하던 루겔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구나.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
“제가 위대하신 대부님의 뜻을 몰라뵙고 어리광을 부렸다 이거군요.”
뒤를 돌아본 루겔…… 마왕이 숨을 흡 멈췄다. 루시어스의 얼굴이 더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루시어스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목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구나. 나는 또 우리 마왕님께서 못난 5장로의 마음을 다 헤아려 준 줄 알았지.”
설마 제 잘못도 모르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뭔가?
루시어스가 책상 위에 턱! 손을 올렸다. 손가락이 책상을 긁으며 파슥 파스스 형체를 일그러트렸다.
“전하.”
“루시어스……?”
“이대로 절연하고 싶은 게 아니면 당분간 아는 척도 하지 마세요.”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루시어스가 매정하게 등을 돌리고 쯧, 혀를 걷어찬 후 교무실을 나섰다.
굳은 채로 아무 말도 못 하던 마왕이 털썩, 의자에 주저앉아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루, 루시어스으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