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73)
마족답게 사는 법-173화(173/385)
마족답게 사는 법 173화
173 학기말고사 (1)
“음하하하, 하하하하하!!”
글렌 학장은 두 손을 허리에 짚고 가슴을 쭉 편 채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옆에서 일을 보던 비서가 못 말린다며 고개를 저었다.
곧 학장들끼리의 회의 시간인바.
그것도 키아라의 학장인 키론이 급히 학장들을 불러 모은 긴급회의였다.
이유야 뻔했다. 키아라가 그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났기 때문이다.
수업 때 사고가 터지며 마물들이 습격했다지. 그 때문에 아카데미의 체육관은 물론이고 본관까지 싹 날아갔더란다.
어찌어찌 수업 공간을 확보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문제가 많겠지.
“자칫하면 큰 사건으로 이어질 만한 일이었지만…… 학생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니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가.”
그리고 본관도 폭삭 무너졌고.
본관도 폭삭!
아주 폭삭 무너졌고!
만약 학생들이 피해를 보았다면 글렌도 본관이 무너졌든 별관이 무너졌든 학생들을 추모하고 걱정하는 데에 정신이 없었겠지만.
어쨌든, 학생들에게는 한 점 피해가 없었다는 걸 알았으니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다.
키아라에서 곤란해진 건 선생님들. 특히 저 잘난 줄 알고 날뛰던 키론 학장뿐이었다.
“음후후후후.”
“학장님, 곧 회의 시간입니다.”
“으흠흠, 그렇군.”
음흉하게 웃는 글렌 학장에게 비서가 말해 주었다. 학장은 피식피식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내리다가 헛기침을 몇 번 하고 회의에 들어섰다.
회의장에 학장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키아라를 제외한 세 명의 학장이 모였다.
글렌이 천천히 다른 학장들을 둘러보며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우선 아론의 학장인 하윈드레즈.
바다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머메이드 일족이었다. 3장로가 직접 마왕에게 추천해 학장이 된 마족이었다.
그리고 토르벤의 학장인 페르산.
학장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은 마족.
연륜과 학식이 동시에 풍부해 토르벤의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문을 깊이 공부하는 마족이라면 누구나 존경한다고 하지.
“흠흠. 키론 학장이 늦는군.”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곧 오겠지요.”
“음허허. 맞습니다.”
모인 세 명의 학장이 서로 아직 오지 않은 키론 학장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잖게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모두 이 상황을 무척 즐기고 있었다.
다그닥…… 다그닥…….
이내 말발굽 소리와 함께 키론 학장이 등장했다.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에 다들 눈치를 보며 헛기침하고는 자리에 얌전히 앉았다.
키론 학장이 주변을 슬쩍 훑었다.
제가 들어오자마자 조용해졌음은 물론, 모두의 눈썹이 꿈질꿈질 움직이는 걸 보니.
‘젠장, 저 녀석들. 이번에 내가 제대로 당한 게 즐겁나 보군.’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을지 뻔히 짐작이 갔다.
“흠흠.”
키론 학장이 헛기침하고는 입을 열었다. 겉치레는 생략하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여유로운 상황이 아닌 건 맞으니까.
“그럼 모두 모였으니 이야기를 시작해 봅시다. 다들 알다시피, 근래 키아라에 일이 좀 많았습니다.”
“대충 들어 알고는 있소.”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맞장구를 치는 학장들을 보며 키론 학장이 일어났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다른 아카데미에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앞으로 말할 것에 대한 밑밥일 뿐이었다.
“다들 짐작하다시피 키아라는 현재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 큰 어려움을 빚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좀 받고자 합니다.”
“설마 사이러스처럼 학생들을 파견 보낼 생각은 아니시죠?”
아론의 학장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키론 학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면 두 아카데미의 학생들을 모두 보내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 하기엔 다른 아카데미의 부담이 너무 커집니다.”
“맞는 말이오…….”
토르벤의 학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키론이 말을 이었다.
“우선은 학기말고사를 준비해 마칠 생각입니다. 하지만 예년보다 방학이 이르게 찾아왔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업을 그만큼 손해 보게 되겠지요.”
“음…….”
“하여, 희망자에 한해 하루나 이틀 정도 아카데미 견학을 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학장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키론 학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까지 다른 아카데미 내부를 둘러볼 만한 일이 없었지 않습니까. 한 번에 견학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을 정해 두고 인솔 교사를 저희 측에서 붙이면 되겠지요.”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학생 전체도 아니고 원하는 이들만 찾아오겠다면 아카데미 견학에 큰 품이 드는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거절할 빌미도 없었다.
멀쩡하지도 않은 키아라가 어떻게든 학기말고사까지 치른 후 학생들의 학업을 위한 안배를 하겠다는데 어떻게 거절하랴.
곰곰이 고민하던 토르벤의 학장이 손을 들고 다시 발언했다.
“그렇다면 이번 방학에는 모든 학생에게 각 아카데미를 견학할 기회를 주는 게 어떻겠소?”
“모든 아카데미를 개방하자는 말씀이신가요?”
“토르벤이나 아론 아카데미의 학생들에게도 평등하게 기회를 주는 편이 좋으니 말일세. 그때쯤이면 사이러스도 개방할 수 있는 정도까진 수리가 마무리될 테고.”
끄덕끄덕.
학장들이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쓸데없는 장난을 치기도 하고 견제하기도 하지만 학생들을 위해서는 귀찮거나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마족들이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 * *
“하아, 정말 힘드네요.”
“아이고, 아이고야.”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났다. 하멜은 거의 죽어 가는 마법반 선생들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흘금 돌렸다.
콕…… 콕…… 콬…….
…… 툭 …… 툭 …… 툭.
쪼그려 앉은 채 얼빠진 표정으로 삽 하나를 들고 흙바닥을 쑤시고 있는 마족이 보였다.
누가 예상이나 하랴.
저기서 저렇게 땅이나 쑤시며 넋을 놓고 있는 마족이,
이 마계를 대표하는 마족.
마왕임을.
‘정말 처량해 보이는군.’
다행인 건 그가 눈물 콧물을 뚝뚝 흘리지 않고 있다는 점 정도였다.
하멜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넋이 나간 꼴이 비 맞는 강아지보다도 더했다.
누가 암습해 오기라도 하면 그대로 당할 것 같았다.
“삐이…….”
나비가 마왕을 보며 가느다랗게 울었다. 하멜이 제 머리 위에 올라가 있는 나비를 품에 안으며 시야를 살짝 가리고 고개를 돌리게 했다.
“저런 거 보는 거 아닙니다.”
냉정하기까지 한 말을 덧붙이면서.
옆에서 일하고 있던 아르놀트도 마왕을 한 번 흘긋 곁눈질했다.
안쓰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위로의 말을 건넬 순 없었다.
어쩌랴. 본인이 판 우물인 것을.
‘하필 또 그걸 들켜선.’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텐데. 입에 발린 사과였다는 걸 들켰으니 루시어스가 분노하는 건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화를 푼다…… 화를 낸다…… 화를 푼다…… 화를 낸다…….”
마왕은 어느새 어디서 났는지 모를 꽃을 들고 꽃 점까지 보고 있었다.
저만큼이나 마왕의 심기를 어지럽힐 수 있다니. 무서운 놈이구나, 루시어스 켄드릭……!
“화를, 낸…… 화를 낸, 다.”
마지막 꽃잎이 똑 떨어졌다.
마왕이 울음을 머금다가 아예 꽃봉오리를 쥐어뜯으며 화를 푼다, 하고 꽃 점을 끝냈다.
하지만 그래 봤자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마왕은 더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옆에 있는 나무에 몸을 기댄 채 울음을 삼켰다.
“훌쩍…….”
“우, 웁니까?”
“울고 싶구나.”
화들짝 놀라는 아르놀트의 물음에 마왕이 시무룩하게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을 한 번 돌아보았다.
지금 선생들은 학기말고사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 주겠다고 한 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마왕은 눈물 한 점 흐르지 않은 뺨을 처량하도록 훔치며 가련한 듯 말했다.
“하아. 아들의 마음은 어렵구나.”
“…….”
당신이 바보인 게 아닐까요?
하멜은 그가 드넓은 마계의 군주임을 상기하며 겨우 말을 삼켰다. 아무리 마족이 싫어도 왕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를 보일 수 있었으니까.
그러곤 대신 그가 내려 둔 삽을 다시 손에 쥐게 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 마정석이나 열심히 묻으세요.”
“무례하기는.”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마왕은 딱히 기분이 상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마왕이 다시 자리를 찾아 마정석을 묻고 마기를 불어넣었다.
그러고는 삽을 땅에 꽂고 몸을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나저나 키론 학장도 퍽 과감하단 말이지. 설마 학기말고사를 이런 식으로 치르려 할 줄은 몰랐다.”
“키아라의 학풍 덕분이지요.”
아르놀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키론 학장은 당장 아카데미 건물을 수리하는 대신 학생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자 했다.
이미 무너진 건물인데 여기서 더 무너지면 뭐 어떠냐는 게 그의 말이었다.
그렇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대규모 마법진을 구축하려 했다.
놀라운 것은 그에 관련한 모든 비용을 키아라의 예산 일부와 학장의 사비로 지출했다는 점이었다.
대단한 책임감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덕에 밤을 새워서 술식을 구축한 마법반 선생들이 과로사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으어어, 크어어어…….”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여러분.”
물론 마왕도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이 있으므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지원을 해 주었다.
바로 키아라의 계획을 위해 필요한 마족.
저기서 열심히 돌아다니며 선생들을 독려하고 있는 마족인 리브레 군단장을 포함한 제 7군을 파견했다.
“감사합니다, 군단장님…….”
“이 정도로 뭘요.”
리브레가 부드럽게 웃으며 선생들에게 가벼운 회복 마법을 걸어 주었다. 따뜻하게 감싸 오는 기운에 선생들이 흐물흐물하게 녹았다.
그러기도 잠시, 마법이 전개되자 그들이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리브레가 시전하는 마법은 다름 아닌 지형 변형술이었다.
마법의 영향이 미치는 곳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는, 군단장급의 힘으로도 발동시키지 못하는 대규모 마법.
키아라의 부지를 완전히 감싼 마기가 서서히 지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선생들은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뿌듯함에 콧잔등을 매만졌다.
“학생들이 이걸 보면 놀라겠죠?”
“아무렴요. 뒤로 나자빠질 겁니다!”
어떤 곳은 숲으로.
어떤 곳은 늪으로.
어떤 곳은 깊은 호수로.
그리고 어떤 곳은 바위로.
없던 오르막이 생기거나 있던 오르막이 사라지기도 했다. 평지가 깎이며 산과 절벽이 되었다.
두두두두두!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선생들이 땅을 붙들며 진동을 겨우 버티고 있었다. 하멜도 나비를 품에 안은 채 자세를 낮추었다.
마왕이 완전히 변한 풍경을 둘러보며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역시 리브레군. 대규모 마법에는 그를 따라올 마족이 없지.”
완벽하고 아름답게 바뀐 지형.
무너진 건물은 마치 구시대의 유적마냥 식물과 호수, 그리고 바위에 덮여 있었다.
지진이 진정되고 난 다음, 선생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감탄을 토할 때쯤이 되어서야 마왕이 아르놀트에게 다시금 확인받았다.
“이번 학기말고사가 뭐라고 했지?”
“이번 학기말고사는…….”
아르놀트가 주변을 둘러보며 답했다.
“보물찾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