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76)
마족답게 사는 법-176화(176/385)
마족답게 사는 법 176화
176 학기말고사 (4)
“금색 상자…….”
시험이 시작되고 라타트리아가 상자를 찾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찾은 상자는 무척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금상자였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상자에는 조예가 없는 이들이 봐도 아름답다고 할 만한 보석이 박혀 있었다.
휘둥그레하게 눈을 뜨던 라타트리아가 주변을 휙휙 둘러보고는 상자에 바짝 다가갔다. 발로 톡톡 쳐서 나무 뒤까지 슬그머니 상자를 숨긴 후에야 몸을 웅크렸다.
“이게 그…… 상자, 인가찌?”
수상할 정도로 화려한 상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평범한 나무상자겠거니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수상한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상자를 발견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 보니 함부로 상자에 손을 대지도 못하고 상자와 의미 없는 눈싸움만 하고 있었다.
상자를 열면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했으니 열기는 열어 봐야겠는데 왠지 너무 함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열어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다. 상자가 함정인지, 아니면 정말 점수를 주는지조차도.
한참 고민하던 라타트리아가 상자 위에 두 손을 텁 올렸을 때.
-자, 상자를 발견한 학생들이 많으니 이쯤에서 룰에 대해 한 가지 더 설명해 주도록 하지.
아르놀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타트리아는 아르놀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며 상자를 살펴보았다.
상자 중앙에 박힌 크고 아름다운 보석 주변에 작은 보석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얼마나 입체감이 좋은지 얼핏 보면 진짜 보석으로 오해할 만했다.
보석, 보석…….
이게 힌트가 된다는 걸까?
눈을 꿈뻑이던 라타트리아가 문득 어렸을 적 곧잘 듣던 어머니의 목소리와 말을 기억해 냈다.
어머니는 잠들기 전 제게 꼭 그렇게 말해 주었다.
“오늘도 사랑해, 내 보석 같은 딸.”
하고.
어머니께서 읽어 주었던 랫맨의 전래동화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
랫맨은 어디든 갈 수 있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어디든 제 영역으로 만들며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다.
그 능력 덕분에 가장 유약함에도 수많은 마계의 격동기를 이겨 냈다.
그렇기에 랫맨의 능력은 탐욕.
모든 것을 원하고 취하는 능력.
라타트리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한번 깊게 호흡하고는 흐랏쨔! 하고 소리 내며 상자를 들었다.
파아아앗……!
눈부신 빛무리가 쏟아졌다.
찍찍, 찌이이익!
그리고 그 안에서 우르르 검은 그림자가 후두둑 쏟아졌다. 라타트리아의 몸이 뒤로 꽈당 넘어졌다.
“무, 무슨 일이냐찌…….”
뭔가 엄청난 덩어리가 날 밀어낸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라타트리아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찍?”
커다란 마물처럼 보이던 덩어리가 꿀렁꿀렁 움직이더니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그녀의 옆으로 흥미로운 듯이 맴돌았다.
레스토라는 종족의 마수였다.
외형이나 본능이 쥐와 비슷해 정신적으로 교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랫맨과 합이 좋은 마수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위협적인 등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맑은 눈으로 라타트리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희들이었구나찌…….”
라타트리아가 손을 내밀어 레스토의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었다. 레스토는 다른 종족에게 난폭하게 굴어도 랫맨에게는 유독 순종적이었다.
“휴우. 깜짝 놀랐잖아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라타트리아가 피식 웃었다. 레스토를 둘러보는데, 그사이에 유독 움직임이 없는 레스토가 하나 있었다.
라타트리아는 본능적으로 저 레스토가 다른 마수들과 다름을 느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그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그냥 뒀다가 다른 레스토들이 다치면 안 되니까.
쉬스스스.
“뭐, 뭐찌?”
그런데 손이 닿자마자 마수가 그림자처럼 흩어지더니 라타트리아의 몸 주변을 한 바퀴 휘익 돌았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춤거리며 안개 같은 그림자를 따라 시선을 이동했다.
이상한 기운은 바로 위로 솟구쳤고 떠올라 있는 점수판에 스며들었다.
「사이러스 : 1점」
“……!! 해, 해냈다찌!!”
라타트리아가 펄쩍 뛰었다.
첫 점수를 자신이 얻었다는 게 무척 기뻤다. 자신을 보석이라고 불러준 어머니에게 감사했고, 상자가 무사히 열렸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찌찌, 찌이이!”
“찍! 찌찌찍!”
그녀는 레스토들의 손을 잡고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다 같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춤이라도 추는 모양새였다.
한참을 기뻐하던 라타트리아가 숨을 헙 들이마셨다.
“이, 이럴 때가 아니찌.”
겨우 1점일 뿐이다.
100점을 먼저 채워야 이길 수 있으니, 상자를 어서 찾아 아이들에게 알려 주어야만 했다.
바로 출발하려던 라타트리아가 레스토들을 바라보았다.
혹시 쥐 친구들에게 상자를 찾는 걸 부탁할 수는 없을까?
자신이 활동하기 쉽도록 다른 학생들의 주의를 끌 수 있지 않을까?
“레스토찌, 부탁이 있다찌.”
대화라도 하듯 레스토들이 서로 시선을 나누다가 라타트리아를 바라보았다. 라타트리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상자를 찾아줬으면 좋겠다찌. 금색으로 반짝반짝한 걸 최대한 많이!”
“찌이.”
“그리고 다른 색은 나랑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친구에게 말해 달라찌. 주변에 가까이 있는 친구면 될 거라찌.”
그리고 다치지는 않게 조심하고.
라타트리아가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나자 그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다만 레스토 중에서도 대장격인 마수는 제 옆에 남아 있었다.
라타트리아는 그 레스토를 보며 씨익 웃고는 세검을 빼 들었다.
“라티랑 같이 보물찾기 하자찌!!”
전부, 내가 찾아버릴 거다찌!
* * *
“생각대로 무척 좋아해 주는군.”
시험을 지켜보던 마왕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브레를 포함한 제7군단을 불러 도우라고 한 보람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루시어스가 보물을 찾으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퍽 볼만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또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새삼스럽게 아카데미에 보낸 보람이 느껴졌다.
마리엘라가 보면 좋아했을 텐데.
어째선지 좋은 구경은 항상 자신만 하는 것 같다.
옆에 서서 마찬가지로 학생들을 보고 있던 아르놀트의 시선이 잠시 마왕에게로 닿았다 떨어졌다.
마왕이 시선을 느끼고 웃었다.
“그나저나 학생들보다 선생들이 더 난리군. 이게 그리도 좋을까.”
“……다들 그래서 선생을 하고 있으니까요. 학생들이 즐거워 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기쁜 게 저희죠.”
마왕의 말대로 선생님들 또한 학생들 못지않게 즐거운지 저들끼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보물을 어디 좀 더 숨겨 놓을까?
다른 깜짝 이벤트를 준비해 볼까?
상자에 좀 더 특별한 뭔가를 넣어 놓는 건 어떨까? 예를 들면 주린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라던가.
이야기를 듣는 아르놀트의 눈초리가 즐겁게 휘었다. 아르놀트는 이번 시험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마왕에게 더욱 감사했다.
“정말 뿌듯합니다.”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겁이 그렇게 많았던 라타트리아가 솔선수범해서 아카데미를 누비며 상자를 찾아다니고, 항상 진중하던 루시어스가 저렇게 즐겁게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며 상자를 찾아다닐 줄은.
레이얼이나 키안, 에스프를 비롯한 많은 사이러스의 학생이 전부 그랬다.
“음, 그대는 정말 좋은 선생이야. 루시어스가 그대를 잘 따르는 것도 이해가 가. 질투가 날 정도야.”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상벌은 확실해야지. 잘한 건 잘한다고 말해 주는 게 다스리는 자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마왕이 가슴을 쭉 펴고 으스대듯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본 아르놀트가 말없이 웃음 지었다.
듣고 있던 하멜이 콧방귀를 뀌더니 혀를 쯧쯧 걷어찼다. 지금 그렇게 평화로운 담소를 나눌 때가 아닐 텐데?
“상벌이 확실하신 분께서 잘도 그런 짓을 하셨습니다.”
“……그, 그거야.”
“뭐, 이해합니다. 남의 상벌은 확실히 아셔도 자신의 상벌은 잘 모를 수도 있는 거겠죠.”
그것 또한 다스리는 자의 덕목 아니겠습니까.
하멜이 대놓고 비아냥거렸지만, 마왕은 차마 할 말이 없어 입을 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슬쩍 루시어스에게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째릿!
“……헙.”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걸까. 루시어스가 갑자기 날카로운 시선으로 저를 쏘아보았다.
마왕이 반사적으로 휙 고개를 돌리며 아예 아르놀트의 등 뒤로 숨었다.
“……괜찮으십니까?”
“방금 눈이 마주친 것 같은데.”
“루시어스 님의 표정이 험해진 걸 보니 맞는 것 같네요.”
하멜이 사실확인을 하며 마왕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마왕이 아르놀트의 어깨너머로 흘금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애들이랑 놀 때는 그렇게 즐거워 보이더니 저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저렇게 불쾌해할 건 또 뭐란 말인가.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왜 아직도 화가 나 있는 거야.
슬슬 기분이 풀릴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닌가 보다. 속으로 끙끙거리더니 숨고 싶은 듯 아르놀트의 등에 고개를 박았다. 그는 체통도 내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작게 웅얼거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러다 정말 데면데면한 사이가 될까 걱정이야.”
시선이 여전히 제게 콕콕 박히고 있는 것 같다. 아르놀트가 루시어스를 슬쩍 바라보곤 말했다.
“루시어스도 계속 이러고 싶진 않을 겁니다. 다만…….”
“다만?”
“전하께서는 루시어스가 왜 화가 났는지 아시겠습니까?”
아르놀트의 물음에 고민하던 마왕이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으면 이렇게 발을 동동 구르고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내가…… 미안하다고 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시죠.”
“아니면 제 이야기를 자네들에게 한 것이 불쾌했을 수도 있지. 그 아이는 그래 봬도 낯을 많이 가리니까.”
“…….”
아르놀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정말 루시어스와 마왕의 가치관 차이에서 벌어진 문제가 아닐까.
‘서로 대화를 잘 하지 않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고.’
속을 탁 터놓고 이야기하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텐데. 특히 루시어스라면 담이며 쓸개를 다 빼줄 것 같은 마왕이 아닌가.
하긴 지금까지 마왕의 행동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루시어스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급한 대로 미안하다 사죄할 수도 있겠다.
“전하.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뭔데…….”
이렇게 애만 닳게 할 거면, 차라리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마왕이라도, 알려 주지 않으면 모를 때도 있단 말이다. 특히 그게 루시어스나 마리엘라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애들을 키우는 건 역시 어려워.’
애를 둘이나 키웠으면 뭘 하나.
고개를 숙인 마왕의 뒤통수로 나비가 폴짝 내려가 매달리더니.
“삐이이이.”
나무라듯이 울었다.
“삐, 삐, 삐.”
그러고는 마왕을 혼내듯 뒤통수를 팍팍 때렸다. 아르놀트가 속으로 나비를 열심히 응원했다.
“루시어스는 전하께서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아 화가 난 겁니다. 이번 일을 벌이기 전에 루시어스에게 언질은 주셨습니까?”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아군도 골라서 속이셔야죠.”
아르놀트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여전히 풀이 죽은 마왕에게 아르놀트가 엄하게 말했다.
“잘 모르겠으면 루시어스와 천천히 대화라도 해 보십시오. 루시어스가 대화를 피할 놈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야기를 들은 마왕이 울 듯이 중얼거렸다.
“알겠네. 조언 고마워.”
하지만 이를 어쩐다.
당장은 눈도 안 마주치려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