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80)
마족답게 사는 법-180화(180/385)
마족답게 사는 법 180화
180 형제 (1)
“정말 저도 함께 가면 안 됩니까?”
레녹스의 집으로 가려는 루시어스에게 하멜이 몇 번이고 되물었다. 루시어스가 한숨을 푹 내쉬며 그를 지긋하게 노려보았다.
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드냐는 듯이.
하멜은 곧 입을 다물었지만, 역시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을 뿐이었다. 그야 루시어스가 가려는 곳이 다른 곳도 아닌 ‘뤼디거 자카르’의 성이었으니 말이다.
다른 곳이라면 루시어스가 저를 떼어 놓고 가든 말든 퍽 상관이 없었을 터다. 하지만 그곳이 뤼디거의 성이라면 말이 달랐다.
그놈이 어떤 놈이던가.
능글맞게 웃으며 사사건건 주인을 귀찮게 하는 것도 모자라 주인이 어렸을 적부터 피와 정기를 노리던 악독한 놈이 아니던가.
“……하아.”
타리크 놈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주인에게 한주먹거리도 안 되지만, 서열이 더 높은 뤼디거는 아니었다.
뤼디거가 다른 마음만 먹으면 주인에게서 피를 취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단 소리다.
‘쉽게 당하시진 않겠지만.’
가만히 있지 않을 마족들이 한둘이 아니기도 하고.
하멜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얌전히 집이나 지키고 있어라. 나비는 데려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삐이!”
나비가 주인의 안위는 제가 지키겠다는 듯 앞발을 머리 위로 치켜들며 가볍게 울었다.
하멜은 루시어스를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토끼를 보는 것처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부르십시오.”
예를 들면 그 버르장머리 없는 마족이 헛소리를 한다든가 하는 일 말입니다.
하멜의 덧붙임에 루시어스가 그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듯 노려보았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레녹스의 아버지인 그를 욕보여서 쓰겠냐는 시선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레녹스는 하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맞는 말이다. 아버지께서 헛소리가 좀 심하시긴 하지. 그럴 땐 꼭 하멜 선생님을 불러라.”
“……레녹스.”
“왜?”
레녹스는 정말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레녹스는 루시어스의 이름이 적힌 라벨지를 창고에 꽁꽁 보관해 두던 아버지가 정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이니 병을 없애는 것으로 넘어가 준 거지, 남이었으면 어떻게든 손을 썼을 것이다.
“하아. 둘 다 걱정도 팔자군. 날 세 살배기 어린아이로 알고 있는 것 같아.”
“…….”
“……….”
둘은 아니라고는 하지 않고 슬금슬금 시선을 피했다. 루시어스는 그런 둘을 바라보며 눈썹을 한 번 찡그리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그들의 걱정이 자신을 위한 것임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아무튼, 다녀오마.”
“삐이.”
나비가 하멜을 향해 앞발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루시어스는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품에 꼭 안고 레녹스의 성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고정 이동 마법진이 준비된 방이었다.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는지 빛이 물러가자마자 레녹스와 똑 닮은 두 명의 남자가 보였다.
“둘 다 어서 와라.”
“큰형님, 작은형님. 두 분 다 여기서 기다리고 계셨습니까?”
“우리도 방금 막 도착해서 오래 기다리진 않았지. 로진은 정말 목 빠지게 기다렸지만 말이다.”
“흠흠, 형님.”
루시어스가 두 명의 마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왼쪽에 서 있는, 유한 인상의 마족이 바로 이켈 자카르. 뤼디거의 첫째 아들이자 레녹스의 큰형이었다.
‘요리가 취미라고 했지.’
레녹스에게서 이켈의 이야기는 꽤 많이 들었다.
요리를 잘한다고도 했고, 키아라 졸업생이라 키아라에 향하기 전에도 많은 조언을 들어왔다고 했다.
이켈은 예상한 그대로의 인상이었다. 그는 잘생겼다기보다는 예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마족이었다.
한쪽으로 가지런하게 묶어 둔 긴 머리카락도, 유난히 긴 속눈썹이나 부드러운 웃음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아버지인 뤼디거보다 어머니인 메르체를 닮은 것 같았다.
반대로 둘째인 로진 자카르는 이켈과는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그는 아버지인 뤼디거를 쏙 빼닮아 무척 건장하고 무척 잘생긴 미남이었다.
체구도 몽마 치고는 무척 컸고 어깨도 딱 벌어져 있었다. 선이 무척 굵어서인지 투박해 보이기도 했다.
“…….”
루시어스가 마지막으로 그들 사이에 있는 레녹스를 바라보았다.
막내라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는 듯 그들을 반반씩 섞어 놓은 분위기였다.
어떻게 보나, 형제라는 느낌이다.
‘신기하네.’
혈연관계는 모두 저런 느낌일까?
아니면 같은 종족이라 그럴까.
그러고 보니 자신 외의 드라이어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루시어스는 제게 형제가 있다면 저런 느낌일지 잠시 상상해 보았다.
“어서 와요, 루시어스. 제가 첫째인 이켈, 그리고 이쪽이 둘째인 로진입니다.”
“그…… 큼. 어서 와라.”
이켈이 다가와 반갑게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로진도 쭈뼛거리며 다가와서는 유심히 저를 훑어보았다.
루시어스가 예의를 차려 공손하게 인사했다.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녹스 선배의 파트너인 루시어스 켄드릭입니다. 일전 말씀드렸던 대로 잠시 머물다가 가게 되었습니다.”
“삐, 뿌잇!”
“이쪽은 나비입니다.”
“귀여운 친구가 같이 왔네. 나비도 안녕?”
이켈이 나비의 손을 잡고 가볍게 악수하듯 흔들어 주었다. 로진은 나비를 빤히 바라보더니 슬쩍 손을 내밀었다.
붙임성 좋은 나비가 손끝에 얼굴을 부비자 그의 눈이 홉떠졌다.
“뺘!”
껑충!
요즘 따라 높은 곳의 경치를 좋아하는 나비가 루시어스의 어깨를 가볍게 박차고 뛰어오르더니 로진의 몸을 타고 올라가 머리 위로 당당히 섰다.
그러고는 가슴을 쭉 폈다.
잠시 당황하던 로진이 나비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루시어스가 조금 난감해하던 찰나 이켈이 괜찮다며 말을 덧붙였다.
“로진이 저래 봬도 동물을 좋아하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점심은 아직 안 먹었죠?”
“네. 아직입니다.”
“……흐음.”
이켈이 잠시간 루시어스를 보며 가볍게 눈을 굴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선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에는 성대한 만찬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켈이 저를 한 번 만나 점심을 대접해 주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런 성찬을 준비해놓을 줄은 몰랐다. 루시어스의 발걸음이 잠시 주춤거렸다.
정말 그가 이 음식을 다 만들었을까?
다른 이도 아니고 2장로, 뤼디거 자카르의 첫째 아들인 그가?
뤼디거의 평소 행실을 생각해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마족한테서 이런 아들이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쯤 되니 뤼디거의 그녀가 대체 어떤 마족인지 궁금해진다.
“형님. 너무 과한 것 같은데요.”
“이 정도는 해야 부끄럽지 않지.”
이켈이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루시어스가 앉을 자리의 의자를 빼주었다.
그러고는 시종을 시켜 나비를 위한 턱받이와 그릇을 가져왔다.
루시어스가 의자에 앉아 휘황찬란하게까지 보이는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음식에 압도되는 건 이런 것인가 싶었다.
레녹스는 루시어스를 챙겨 주는 형님들의 배려가 기꺼워 옅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보이지 않네요. 이런 난리에 빠질 분들이 아니신데 말입니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께서도 나오지 않을 줄은 몰랐다. 다른 학생도 아니고 루시어스를 데려왔으니 분명 모습을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음? 아아, 그야 당연히…….”
“……보내 버리셨습니까?”
“누가 들으면 오해할 말을 하는구나. 요즘 북쪽에 있는 간헐천이 그렇게 유행이라니 두 분 몸조리하시라고 보내드렸을 뿐이야.”
물론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고는 비밀로 했지. 이켈이 태연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시종들이 옆으로 다가와 와인잔에 와인을 조금씩 따라 주었다. 라벨은 가려져 있었지만 풍기는 향과 감도는 기운으로 그게 누구의 와인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바로 뤼디거 자카르의 것이었다.
“어린 친구들이 온다고 해서 알코올은 미리 제거해뒀으니 편하게 마셔도 괜찮아요.”
“……이걸 말씀입니까?”
“그렇게 귀한 건 아니니까요.”
뤼디거의 피로 만든 와인이?
루시어스가 의심스럽게 흔들리는 자줏빛 액체를 바라보았다.
알코올의 유무를 떠나, 뭐랄까…….
‘하면 안 될 짓을 하는 기분이.’
몰랐으면 감사하게 마셨겠지만, 알고 있으니 마실 수가 없다.
이렇게 껄끄러울 수가.
이켈은 루시어스가 탐탁지 않아 하는 것 같자 조금 아쉽게 고개를 기울였다. 향도 맛도 좋으니 좋아할 줄 알았는데.
“고기와 어울릴 것 같아 준비했는데, 루시어스의 입맛을 고려하진 못했네요. 좋아하는 게 있으면 그걸로 주스나 차라도 만들어오라 할게요.”
“아.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트러플로.”
루시어스의 요구에 이켈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시종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마실 것을 새로 준비할 겸 우르르 몰려나갔다.
넷만 남은 후.
이켈이 턱을 괴고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한참 루시어스를 응시하던 그가 장난스레 물었다.
“그래서, 어느 쪽이 먼저예요?”
“콜록!!”
갑작스러운 이켈의 물음에 레녹스가 놀랐는지 갑자기 기침하기 시작했다.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한참이나 콜록거리는 레녹스를 이켈이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렇게 좋아?”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루시어스, 미안하다. 무시해도 괜찮아.”
레녹스가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하며 사태를 수습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켈은 꿈쩍도 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안 알려 줄 건가요?”
“누가 먼저냐고 하심은……?”
루시어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레녹스가 다시금 그를 말렸지만 이켈은 레녹스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누가 먼저 파트너가 되자고 했는지가 궁금하거든요.”
“아, 그건.”
“루시어스도 알겠지만, 우리 레녹스가 낯가림이 심해요. 그래서 파트너랑도 오래가지 못했는데.”
꽤 우아하게 고기를 잘라 입에 넣던 그가 보란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걱정이 많았는지 몰라요. 이러다 친구 하나 없이 졸업하기라도 할까 봐……. 우리 막내의 사회 생활능력이 이렇게 부족하구나 싶고.”
“형님, 제발…….”
레녹스가 거의 애원하듯이 말했다.
이켈은 레녹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반짝이는 눈으로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믿음직한 파트너를 데려왔으니 궁금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요?”
“그렇겠네요.”
루시어스는 냅킨으로 입을 닦아 내려놓고, 잠시 들어온 시종이 내려놓은 차를 마셔 입을 헹궜다.
과연 뤼디거의 성이라 그런지.
트러플 향이 일품이다.
“……제가.”
가만히 있는 로진도 이켈과 다른 반응은 아니었다. 둘의 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빛나고 있었다.
“먼저 제안했습니다.”
루시어스가 시선을 여유롭게 버티며 등을 의자에 기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가 친구를 데려왔으니 궁금한 것이 당연할 테니까.
그것도 동생이 학교생활을 무척 힘들어했다면 더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귀여운 형제네.’
서로를 참 아끼는 형제였다.
“제가 먼저 파트너를 하자고 했습니다. 첫날 레녹스 선배…… 레녹스가 길을 좀 안내해 줬거든요. 좋은 파트너가 될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긴. 레녹스가 먼저 파트너를 하자고 했을 리는 없겠죠. 막내가 워낙 낯을 많이 가리니까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이켈이 한숨을 푸욱 내쉬며 제 뺨을 쓰다듬었다. 무척이나 걱정스러운 시선이 레녹스에게로 닿았다.
레녹스가 적잖게 당황하며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막내를 놀리는 이켈의 눈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아니라고 할 생각이야?”
이켈이 턱을 괴고는 루시어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장난스러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들어 볼래요? 이 녀석이 얼마나 낯을 많이 가리는 꼬맹이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