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81)
마족답게 사는 법-181화(181/385)
마족답게 사는 법 181화
181 형제 (2)
“형님, 이켈 형님.”
이켈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과 들리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아직 성년식도 맞이하지 못한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 로진 자카르였다.
몇 년 전부터 키아라 아카데미에 입학해 학업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학기 중이 아니었나?
왜 로진이 여기 있는지 잠시 고민하던 이켈은 들고 있던 검을 넣어두고 손수건을 꺼내 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았다.
아버지의 양조 작업을 돕느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적어도 동생 앞에 내보이기엔 험한 몰골이다.
“아카데미에 있을 시간인 것 같은데, 왜 여기 있지?”
“아, 그게…….”
생각보다도 차갑게 내리 앉은 목소리에 이켈이 제 몸을 움찔 떨었다.
다만 로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어머니께서 동생이 무사히 태어났다고 연락을 해 주셔서요.”
“동생……? 아, 그랬지.”
어머니께서 북부로 떠나신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얼마 전에 도착한 편지에 의하면, 12월이 된 지 닷새가 지난 밤에 동생이 태어났다더라.
로진이 화색이 도는 얼굴로 말했다.
“편지를 받아보니 막내가 참 어여쁘다고 칭찬이 일색이더라고요. 이름이 레녹스라고 합니다. 참 예쁘죠?”
“나도 알고 있지. 좋은 이름이야.”
“네, 그래서 너무 보고 싶은 나머지 사유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나왔습니다. ……형님께서 괜찮으시면 함께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으시겠습니까?”
막냇동생이 무척 귀여울 텐데.
로진은 정말 앳된 얼굴로 웃었다. 이켈은 입술을 잠시 뗐다가 붙였다가를 반복하며 말을 골랐다.
알고 있었다.
로진에게 자신은 꽤 좋은 형제였다. 그렇기에 로진은 저에게도 동생이 생기기를 바랐다. 좋은 형이나 오빠가 되고 싶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로진, 너는 알고 있니?
네게 두 명의 누님과 한 명의 형님이 더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명을 달리했지만.’
특별히 숨겨야 할 만한 이유는 아니었다. 로진이 들어도 충분히 이해해 줄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였다.
단지 그들의 아버지인 뤼디거가 너무 강해 그 힘을 견딜 수 있는 아이가 드물며, 무사히 태어났음에도 1차 성장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아이가 꽤 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 보니 뤼디거는 자식이 1차 성장을 마치기 전까지는 자식의 탄생조차 밖으로 알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어쩌면…….
기대와는 달리 성장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말해야 하는데.’
이켈이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을 받으니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니 나중에 레녹스가 오지 않으면 실망할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로진에게 다가가 두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는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방문객이 많으면 어머니도, 레녹스도 피곤할 수 있으니 나중을 기약하는 게 좋겠다.”
“하지만 형님.”
“네 생각보다 1차 성장을 하기 전의 아이들은 무척 여리고 약하단다. 그러니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게 좋아. 우선은 돌아가서 학업에 집중하거라.”
아카데미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형제 남매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켈의 말에 크게 상심한 듯 로진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닌지라 로진 또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그렇게 20년이 지났을 때쯤 어머니가 돌아오신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오늘 어머니가 오신다고?”
“네. 그렇다고 합니다, 형님.”
“그렇군.”
“드디어 레녹스의 얼굴을 볼 수 있겠어요. 너무 떨립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돌아오시면 기분이 좋지 않으실 게 분명하니 술이라도 한잔 대접하며 위로해드려야겠다.
사실 이켈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로진이 뤼디거의 둘째 자식으로 인정받기까지 2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 세 명의 아이가 제대로 생을 살아가지도 못한 채 죽었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한, 정확히는 뤼디거 자카르의 힘이 약해지지 않는 한 로진이 동생을 보기까지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유쾌하게도.
로진이 그 사실을 아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이켈! 로진!”
“어머니!”
로진이 근 30년 만에 성에 돌아온 어머니를 반갑게 맞이했다.
메르체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무사히 성년이 된 아들을 가볍게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성을 잘 관리해준 이켈도 꼭 안아 주길 잊지 않았다.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표정에 이켈은 자신과 로진에게 정말 새로운 동생이 생겼음을 알았다.
시선을 돌려보자 메르체의 치마폭 뒤에서 작은 아이가 꼬물꼬물 얼굴을 밖으로 내밀었다.
“어머니, 저 아이가…….”
“그래, 우리 막내 레녹스란다.”
이켈과 로진의 시선이 레녹스에게로 향했다. 레녹스는 처음 보는 형제들이 무섭기라도 한지 어머니 뒤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레녹스. 숨어 있지 말고 형들에게 인사해야지?”
“…….”
맑은 푸른색 눈동자가 주변을 흘긋흘긋 살폈다. 아이는 정말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꼭 잡고 있었다.
레녹스는 참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동생이라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귀여웠다.
젖살이 그대로 남아있는 볼이며 손가락이 무척이나 통통하고 아기자기했고 두 눈은 애교스럽게 큼직하고 동그랬다.
게다가 어머니의 취향인지 뒤로 묶은 머리끈에 무척 커다란 리본이 달려있어 더욱 귀여웠다.
‘동생…….’
내 두 번째 동생.
동생이 더 생기기를 원한 적은 없지만 새로운 동생이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작은 몸으로 1차 성장을 하고 겨우 살아남았을 걸 생각하니 오히려 무척이나 안쓰럽고 사랑스럽다.
“안녕, 레녹스.”
“훌쩍.”
코끝이 딸기처럼 발갛다.
코 먹은 소리를 한 번 낸 레녹스가 주춤거리더니 어머니의 치마에 아예 얼굴을 묻었다.
언제쯤 제게 인사를 해 줄까.
참을성 있게 레녹스를 기다려주던 이켈은 여기가 밖임을 깨닫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날씨가 추우니 우선 들어가시죠. 식사도 준비해 놨으니까요.”
“그러니? 간만에 우리 이켈이 만들어준 요리를 먹겠구나. 기대해도 되지?”
“물론이지요.”
이켈이 어머니를 에스코트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메르체가 당연하다는 듯 우아하게 손을 올려놓자 그가 어머니의 손등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메르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골라 준비해 놨으니 그녀가 실망할 걱정은 없지만, 동생이 올 줄은 몰라 어린아이가 먹을 만한 음식을 해 놓지 않은 게 문제겠다.
우리 막내는 뭘 좋아할까.
‘간단하게 할 만한 요리가…….’
레녹스를 위해 빠르게 준비할 요리들을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며 그들이 걸음을 옮겼다.
* * *
“레녹스와 함께 계셨군요.”
“이 아이가 내 옆에서 떨어질 줄을 몰라서 말이다. 성안에 마족들이 워낙 많으니 조금 겁을 먹은 모양이야.”
“시종을 좀 줄일까요?”
로진이 냉큼 이야기하며 레녹스의 눈치를 보았다. 어떻게든 막내에게 점수를 따놓고 싶은 모양이었다.
시선을 받은 레녹스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어머니의 품에 좀 더 얼굴을 묻었다. 메르체가 레녹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괜찮단다. 천천히 익숙해지겠지.”
이곳의 있는 마족들이 저를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겁먹지 않을 거야.
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흐뭇하게 웃다가 갑작스럽게 저를 찾아온 아들 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오늘 웬일로 둘이 함께 찾아왔니? 설마 레녹스를 보려고?”
“흠흠. 그야 물론 어머니를…….”
“정마알?”
메르체가 길게 말을 늘이며 물었다. 로진과 이켈의 시선이 옆으로 삐질삐질 새어나갔다.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찾아와서 나란히 앉아있으니 내 눈이 즐겁구나. 내가 아들들을 참 잘 낳아놓기는 했지. 어디서 이런 아들이 나왔는지 몰라. 그이를 안 닮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 그런데 우리 레녹스는 누굴 닮은 것 같니? 응? 시종들은 모두 그이를 닮았다 하더라고. 어떻게 생각해?”
평소 같았으면 줄줄줄 늘어놓는 어머니의 말을 슬쩍 자르며 이야기를 꺼냈겠지만 이켈은 오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레녹스를 보려고 왔던 참이니 별 상관없을까 싶었다.
메르체가 레녹스를 고쳐 안아 그들에게 얼굴을 보여 주었다.
이켈과 로진이 레녹스를 흘긋 곁눈질했다.
혹시 부담스러워할까 봐 시선을 맞추지도 못하고 엿보듯이 조금씩.
“……귀여워.”
“흠흠…….”
로진은 새로 생긴 동생이 정말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몇 번이나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이켈도 그 말에는 십분 동감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레녹스가 날 닮았으면 하거든. 아, 물론 뤼디거의 얼굴만은 참 내 취향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지만, 눈이 특히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눈썹도 그렇고.”
진하고 단정하잖아요. 속눈썹도 참 길고 쌍꺼풀도 진하고요.
이켈이 하나하나 뜯으며 말해 주자 메르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역시 그렇지? 그래도 오똑한 콧대나 얼굴형은 네 아버지를 참 닮았어. 여기 보이니? 여기. 가마도 두 개야.”
“가마요?”
“응, 너희 아버지가 쌍가마거든.”
“……그건 몰랐네요.”
언제까지나 몰라도 괜찮았을 것 같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가마 수가 몇 개인지는 몰라도 막내가 몇 개인지는 알 필요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어머니. 사실 물어볼 게 있었는데요.”
“물어볼 게 있었다고?”
로진이 잠시 레녹스의 눈치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더니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귓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녹스가 저희와 이야기를 통 안 해 줍니다.”
“어머, 그래?”
“네.”
로진은 정말 슬픈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슬퍼하는 것도 어쩔 수는 없었다.
단순히 레녹스가 조금 낯을 가렸으면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 둘이 지금껏 단 한 번도! 레녹스의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데에 있었다.
아무리 낯을 가려도 그렇지, 어떻게 인사해도 대꾸도 안 해 줄 수가 있냔 말이다. 이러다 평생 목소리 한 번 못 듣는 건 아닌지!
덕분에 좋은 형이 되어 주겠다며 벼르고 있던 로진이 우울해하며 매일 밤을 술로 지새우고 있었다.
이켈은 매일 밤 로진을 상대해 주느라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고.
“말이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인사도 안 받아줄 정도는 아닌데. 뭔가 물어보면 똘똘하게 대답하기도 하고.”
그렇지, 레녹스.
메르체가 레녹스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기울였다. 레녹스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켈이 옆에서 거들었다.
“저희가 레녹스와 무척 친해지고 싶어서요. 이번 기회에 뭔가 만들어줄까 해서요. 레녹스가 좋아하는 디저트가 뭐가 있을까요?”
“들었지, 레녹스? 뭐가 좋겠니?”
“…….”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로진이 이켈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리고 멋지고 귀여운 형님들을 기대했는데 이런 무서운 머슴들이 나와서 당황한 걸까요?”
“……로진, 그게 무슨.”
“하지만 형님,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도 허우대만 멀쩡하지 사실 속은 미친, 윽!”
막내 앞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로진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이켈이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부러트릴 듯이 꽉 잡았다.
“로진.”
알리고 싶지는 않은 일이었으니까.
로진이 알겠다고 항복을 표하고 나서야 이켈이 그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메르체가 두 눈을 꿈뻑이더니 방긋 웃으며 손을 모았다.
“잠시 안 본 사이에 더욱 돈독한 형제 사이가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