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83)
마족답게 사는 법-183화(183/385)
마족답게 사는 법 183화
183 형제 (4)
이켈이 레녹스에게 머핀을 선물해준 이후 형제의 사이는 정말 급속도로 좋아졌다.
얼마나 형들을 좋아하는지 메르체가 요즘 레녹스가 제게 소홀하다며 오히려 로진과 이켈에게 투정을 부릴 정도였다.
열심히 피해 다니며 말도 못 붙이던 때와는 달리, 매일같이 이켈과 로진의 옆에 붙어 있으며 형들이 하는 일들을 유심히 관찰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레녹스가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것이 바로 형들의 검술 훈련이었다.
매일 한 번씩은 꼭 검무를 보여달라고 떼쓰며 자신은 언제쯤 그렇게 될 수 있냐고 묻곤 했다.
“작은 형아, 저도 목검을 들어 보고 싶어요.”
“응?”
레녹스는 이켈이 잠시 성을 비운 틈을 타 로진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켈은 안 된다고 할 것이 분명하니 자리를 비운 지금이 기회였다.
로진이 잠시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내가 어릴 때 쓰던 건 갖다 버려서 네가 들어볼 만한 검이 없단다. 이건 너무 무거울 테고…….”
“정말…… 안 돼요?”
“으음.”
“저도 형아처럼 멋있어지고 싶은데.”
고개며 어깨를 축 늘어트린 레녹스가 로진의 눈치를 흘금 보았다. 비 맞은 고양이처럼 늘어진 모습에 없던 양심이 생겨 찔리는 것 같았다.
묵직한 분위기로 레녹스를 내려다보는 로진의 시선이 마구 흔들렸다.
레녹스가 울망이는 눈으로 로진을 올려다보았다.
“한 번만요. 네?”
“……크윽.”
“형아아.”
커다란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난다.
가슴 부근에서 느껴지는 뻐근한 감각에 로진이 가슴을 움켜쥐며 몸을 굽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귀여워.”
젠장, 누굴 닮아서 이렇게 귀엽지?
처음에 만났을 때부터 레녹스가 귀여운 줄은 알았다. 하지만 설마 이만큼이나 귀여울 줄은 몰랐지.
로진이 레녹스의 시선에 무너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혹시 나갔던 이켈이 돌아왔을까, 훈련장 주변을 흘긋흘긋 돌아보기까지 한 그가 들고 있던 목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쪽으로 가 그나마 제일 가벼운 목검을 가지고 왔다.
“지금 있는 건 이게 제일 가벼운데, 쉽게 들 수는 없을 거야.”
“어떻게 드는데요?”
“음……, 내가 도와줄 테니 우선 들어볼래?”
“네!”
씩씩한 대답에 로진이 부드럽게 웃었다. 조심하면 괜찮겠지, 생각하며 로진이 레녹스의 손에 목검을 쥐여주었다.
그리고.
쿵!
레녹스가 잡자마자 목검 끝이 땅으로 푹 고꾸라졌다. 레녹스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몸이 절로 뒤로 넘어가려 했다. 로진은 레녹스가 다치지 않도록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으으응……. 끄응.”
“다시 힘을 줘봐. 하나, 둘.”
“세엣!!”
번쩍!
로진이 도와주었기 때문인지 레녹스가 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 레녹스는 제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며 맑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냈다.
“생각보다 무겁지?”
“네. 그래도 이렇게 들었어요!”
“그래그래, 정말 대단하다. 우리 레녹스는 천재구나.”
“후흐흐.”
입 모양이 개구쟁이처럼 방긋 휘었다.
로진은 레녹스가 검을 들고 있을 수 있도록 마기를 운용해 주었다.
레녹스와 함께 들고 있는 이 목검은 이켈이 손수 로진에게 만들어준 훈련용 목검으로, 마기를 운용하지 않으면 들지도 못할 정도로 무거웠다.
“정말 이게 제일 가벼워요?”
“완력으로만 드는 건 아니지. 조금 기교가 필요하단다.”
“그렇구나…….”
“그리고 이 목검은 큰형님이 만들어주신 거야. 내가 어렸을 때부터 목검을 하나씩 만들어주시곤 했지.”
“정말요?? 우와아아.”
큰형인 이켈이 목검까지 만들 수 있을 줄은 몰랐는지 레녹스가 와아, 하고 감탄하며 목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주저하다가 로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한테도 목검을 만들어주실까요……?”
“물론이지, 아마 때가 되면 어련히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은데.”
“……!”
목검뿐이겠냐.
아마 아버지 등골을 있는 대로 뽑아서라도 마계 최고의 명장에게 최고의 재료들로 검을 만들어달라고 하겠지.
“이거 한 번 휘둘러 봐도 돼요?”
“응? 그래, 도와줄게. 자, 우선 이렇게 검을 꼭 잡고.”
로진이 어떻게 검을 잡는지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레녹스는 로진이 하라는 대로 목검을 잡고 앞을 잘 바라보았다.
그리고 함께 목검을 위로 올린 후 그대로 깔끔하게 직선으로 그어 내렸다.
정확히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
“로진, 레녹스. 큰형님 왔다.”
벌컥!
갑자기 훈련실 문을 열면서 등장한 이켈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으와악!”
“딸꾹!”
화들짝!
로진이 못 할 짓을 몰래 하다가 걸린 어린아이처럼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같이 조심조심 움직이던 레녹스도 갑작스러운 소리에 덩달아 놀랐다.
그와 동시에 정갈하게 갈무리되어있던 마기가 크게 일렁거렸다. 로진과 레녹스의 손에서 목검이 떠나갔다.
쐐애액!
콰직. 푸우욱!
그리고 날아간 목검이 박혔다.
문 바로 옆에 있는 벽에.
“…….”
“헉, 흐억…….”
“우, 우, 우으으.”
이켈은 순식간에 날아와 제 옆을 지나가며 벽에 꽂힌 목검을 흘긋 곁눈질했다. 로진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뭐지, 이건? 신개념 결투장인가?
여전히 웃는 낯이 무척이나 서늘해졌다. 로진이 털푸덕 주저앉아서는 입을 뻐끔거렸다.
“혀, 형님! 놀랐지 않습니까!!”
“너, 지금 더 놀란 게 누군데…….”
“흐아아앙! 우아앙!”
로진의 말에 제대로 반박하기도 전에 레녹스의 울음이 먼저 터졌다. 짜증스럽게 가라앉았던 이켈이 화들짝 놀라 레녹스에게 한달음에 다가갔다.
레녹스가 이켈의 품에 푹 안겼다.
“흑, 흐윽. 제가, 제, 제가, 흑!”
“많이 놀랐니? 응? 미안하다. 형이 우리 동생 생각을 못 했어. 네게 화내는 게 아니란다.”
“검, 놓쳐서, 흑, 흐우우!”
“으응?”
“형아, 다쳤으면, 훌쩍!”
히끅히끅,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레녹스가 울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이켈을 올려다보았다.
레녹스가 눈물 콧물이 가득한 얼굴을 닦지도 않고 앙증맞은 손으로 형의 두 뺨을 잡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친 곳……, 훌쩍. 없죠?”
“……그럼, 물론이지.”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랐을까.
제 기운에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린 줄 알았더니, 저 때문에 형이 다쳤을까 놀란 모양이었다.
입꼬리가 샐쭉하니 올라갔다.
‘이 악마 같은 녀석.’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동생이었다.
* * *
“하아. 그렇게 귀여웠던 동생이 다 크더니 이제는 형이 다칠까 봐 걱정해서 훌쩍훌쩍 울어 주지도 않고.”
“제가 그랬다고요?”
“그럼. 얼마나 애교가 많았는데. 오랜만에 어디 형아라고 불러보련?”
“……형님.”
형아라니.
그 많은 호칭 중, 하필 형아라니!
자신이 정말 그랬던가? 레녹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턱을 매만졌다. 안 그래도 붉은 얼굴이 더욱 새빨갛게 변했다.
루시어스는 이야기들을 꽤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어린아이를 싫어하지 않기도 했고, 그 말들을 하는 이켈의 입담도 대단했던 탓이다.
동생의 이야기를 하는 이켈과 로진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다.
그들은 레녹스의 형인 동시에 레녹스의 보호자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더미트도 이랬을까.’
더미트는 제가 어렸을 적에 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 문득 루시어스는 자신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더미트에게 육아일기를 받았었지. 나중에 그걸 천천히 읽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레녹스에게 친구를 소개해 줄까 생각하기도 했었던 것 같네요. 마침 대장군께도 나잇대가 비슷한 아이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친구 말씀입니까?”
“네, 적응을 못 하는 것 같아서요.”
친구가 있으면 좋아하려나 싶어 가능하면 소개해 주려 했는데 자신도 당시에 바빴던 터라 물거품이 됐다.
게다가 소개해 주려고 하기 전에 레녹스와 사이가 좋아져서 깜빡 잊기도 했고.
“나이가 비슷하다고 했으니 그 아이도 슬슬 아카데미에 들어갈 때가 되었겠네요. 지나가다 만났을지도 모르겠어요.”
듣고 있던 루시어스의 눈이 살짝 크게 뜨였다. 대장군의 아이가 누구를 뜻하는지는 명백했다.
그때 소개를 받았으면 레이얼이나 키안처럼 어렸을 때부터 함께한 죽마고우가 되어있었을까?
그렇게 만났어도 무척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 같다.
“어쨌든, 레녹스가 정말 좋은 친구를 사귄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이렇게 멋진 친구를 데려오다니 제가 다 부럽네요.”
레녹스가 잠시 눈을 굴리다가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루시어스는 좋은 친구입니다.”
“…….”
“정말, 정말로요.”
이켈이 옅게 웃었다.
괜스레 쑥스러워진 루시어스가 가볍게 뺨을 긁적였다.
나비는 여전히 레녹스의 머리 위를 점령하고 있었다.
* * *
즐거운 시간이 흐르고 밤이 되었다.
이켈은 정원과 달이 무척 잘 보이는, 성안에서도 가장 좋은 귀빈실을 루시어스에게 내어주었다.
레녹스가 루시어스에게 방을 안내해 주었다. 루시어스가 방을 둘러보며 침대에 살짝 걸터앉았다.
“방이 마음에 들지 모르겠군. 나는 바로 옆방을 쓸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라.”
“무슨 일은. 뤼디거 자카르의 성만큼 안전한 곳이 어디 있다고.”
“…….”
레녹스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침입은 없겠지만, 문제는 여기가 루시어스의 말처럼 뤼디거 자카르의 성이라는 데에 있었다.
루시어스의 와인병까지 만들어 놨던 아버지가 아니던가.
이켈 형님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온천에 보내놓기는 했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다.
워낙 예측하기 힘든 분이니까.
루시어스가 얼핏 웃었다.
“하멜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참 걱정이 많아.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는데 말이야.”
“너, 너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알지. 날 걱정하고 있다는 거.”
손을 뻗어 살짝 까딱이자 레녹스가 한숨을 작게 내쉬면서도 루시어스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옳지, 잘했다.
그렇게 말하듯 루시어스의 손길이 부드럽게 레녹스의 머리를 헝클었다.
“뤼디거가 그래도 경우가 없지는 않아. 내가 장로인 이상, 그 녀석은 적어도 날 장로로서 존중해 줄 거야.”
“…….”
“걱정할 만한 일은 없을 거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여전히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루시어스가 괜찮다는데 옆에서 더 유난을 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이는 레녹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낮에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꽤 귀여워 보인다.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눈물도 애교도 많았단 말이지?
거기에 형아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는 네가 더 걱정이다.”
“내가?”
“요즘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불면증이 좀 남아 있잖아. 여전히 프난이 없으면 잠을 이루기 힘들지?”
“으음, 쉽게 고쳐지지는 않더라고.”
“그래, 아직 회복된 것도 아닌데 갑자기 떨어져서 지내려니 이 형님이 걱정이 안 될 수가 있나.”
그가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 자다가 형아가 보고 싶어지면 와라.”
“루, 루, 루, 루시어스, 너……!”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레녹스가 입까지 뻐끔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떨어트리고 이마를 짚었다. 얼굴이며 귀가 발그랬다.
설마 형님들에 이어 루시어스까지 저를 놀릴 줄이야. 믿던 도끼에 발등을 찍혀도 이만큼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연상인 건 자신이 아닌가! 왜 저를 동생처럼 여기는 거야?
“……이건 언젠가 꼭 복수할 거야.”
“기대할게.”
투덜거리듯 내뱉은 말에 루시어스가 즐거워하며 답했다.
왠지 억울해 뭐라도 말하려던 레녹스가 결국 한숨을 내쉬고는 졌다는 듯 머리를 쓸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