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85)
마족답게 사는 법-185화(185/385)
마족답게 사는 법 185화
185 너를 위해서 (1)
“이렇게 빨리 갈 줄은 몰랐네요. 좀 더 잘 챙겨 줄걸…….”
“충분히 많이 챙겨 주셨는데요.”
“조금 더 머물러도 되는데.”
이번 방학에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라는 연락을 보내자마자 마리엘라는 루시어스만 괜찮다면 언제든지 저택으로 찾아와도 괜찮다는 연락을 되돌려 주었다.
슬슬 떠나겠다는 말을 전하자 이켈과 로진이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특히 이켈이 제대로 대접을 못 해준 것 같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하루만 더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밤새 루시어스가 좋아할 만한 빵과 쿠키를 구워주었다.
“그거 가지고 괜찮을까요? 누님댁으로 가신다고 했으니
역시 좀 더 챙기는 편이.”
“아닙니다, 괜찮아요.”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려는 이켈의 손목을 루시어스가 냉큼 잡아챘다.
로진도 이켈의 어깨를 잡으며 진정시키는 데 손을 보태 주었다.
지금도 넘칠 정도로 선물이 양손 가득했다. 여기서 더 있으면 분명 선물더미에 파묻혀 버릴 것이다.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옆에서 이켈이 레녹스에게 이러쿵저러쿵 잔소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고, 가서 폐 끼치면 안 된다?”
“네, 알겠어요.”
“루시어스의 누님이라는 분께 꼭 안부 인사 전해 드리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네.”
“어디 다치지 말고 아카데미 돌아가기 전에 와서 얼굴 한 번 보여 주고 가. 그냥 쏙 들어가지 말고.”
형님 섭섭하다, 동생아.
줄줄줄 늘어놓던 이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옆에서 형님은 막내만 챙긴다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켈은 로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푹 찌르는 것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이켈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화사하게 웃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뭘요, 조심히 가세요.”
“삐이이.”
이켈이 웃으며 루시어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비는 이켈과 로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무척 아쉬운 듯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정수리였지만.
루시어스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마리엘라의 저택으로 가는 이동진을 발동했다.
* * *
“루시이!”
빛무리가 물러가자마자 밝게 올라간 목소리와 함께 포근한 온기가 몸을 와락 덮쳤다.
눈앞에 길고 가느다란 금발이 휘날렸다. 루시어스가 반갑게 저를 맞아주는 마리엘라의 몸을 마주 끌어안아 토닥였다.
“누님, 저 왔어요.”
“응,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몇백 년 만에 만난 가족처럼 한참을 끌어안고 있던 마리엘라가 슬금슬금 루시어스에게서 떨어졌다.
뭔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좋은 냄새가 나는데.’
나무뿌리 특유의 은은하면서도 묵직한 듯한 숲의 체취에 섞여 바람을 닮은 상쾌한 향이 감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평소와는 달리 은색 머리카락이 밑으로 느슨하면서도 단정하게 내려와 있다.
사르륵.
저를 내려다보는 금색 눈동자가 오늘따라 참 어른스럽게 보인다. 시선을 따라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앞으로 넘어왔다.
오늘따라 안 그래도 하얀 피부가 더욱 빛난다. 잡티 하나 없이 매끈하니 질투가 날 정도였다.
“누님?”
가만히 얼굴을 감상하는데 루시어스가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에 맞춰 귀밑으로 길게 장식이 늘어진 은색 귀걸이가 옆으로 같이 흔들렸다. 귀걸이의 은침 중앙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루비가 아주 작게 세공되어 있었다.
마리엘라가 루시어스의 부름에도 입을 꾹 닫고 시선을 내렸다. 적당히 넉넉한 상의가 브이 자로 얕게, 하지만 확실히 파여 있다.
목덜미와 어깨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곧은 쇄골이 흘긋 보였다.
그리고 허리를 꽉 잡은 하이웨스트 바지와 그와 어울리는 검은 부츠까지.
마른침이 꿀꺽 넘어갔다.
이건, 이건!
‘남친룩이다.’
아무리 봐도 데이트에 나갈 때나 입을 것 같은, 가벼우면서도 적당히 멋을 낸 옷차림이었다.
너무 멋있고 귀엽지 않나.
마리엘라는 당장 아무 곳이나 한 대 쳐서 뭔가를 부숴 놓고 싶었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루시어스가 저렇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정말 지금까지 살아 있길 잘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 녀석이 자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동생인 마족이라며, 이렇게나 잘 컸다고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니고 싶었다.
‘정복을 입은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가. 인상이 무척이나 딱딱한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느슨한 평상복을 입으니 분위기도 참 많이 누그러졌다. 훈풍이 설산에 닿기라도 한 듯 차가운 눈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차려입은 모습이 평소와는 무척이나 다르기 때문일까.
새삼스레 가슴이 설렌다.
마리엘라가 기쁘게 웃었다.
“오늘 나 보러 온다고 이렇게 힘줬어?”
“그게……, 누님댁에 간다니 레녹스의 형님이 이렇게.”
역시 조금 이상하죠?
루시어스가 괜히 어색한 듯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마리엘라가 냉큼 고개를 붕붕 저었다.
“무슨 소릴. 엄청 잘 어울리는데!”
“그래요……?”
“그럼, 그런데 그 녀석들한테 이런 면도 있었단 말이야?”
“아는 사이셨어요?”
“친하진 않아.”
건너건너 아는 거지.
마리엘라가 흐뭇하게 웃었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키득거리던 그녀가 루시어스가 들고 있는 빵 바구니를 발견하고 받아들었다. 뭘 이렇게 챙겨 들고 왔는지. 갓 구워진 빵 냄새를 맡아 보고는 웃었다.
부스럭, 부스럭.
나비가 그 와중에 마리엘라가 들고 있는 바구니를 뒤적거리며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물고 루시어스의 어깨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한입에 냠, 하고 먹어치웠다.
“이건 무슨 빵들이야?”
“형님께서 루시어스가 떠나는 걸 무척 아쉬워하며 밤새 만드셨습니다.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형님이라면 큰형인 이켈 자카르? 아니면 둘째인 로진인가?”
“이켈 형님이십니다.”
“호오, 그 녀석이 이런 취미도 있었어? 엄청 의외네. 정말 안 어울려.”
그래도 솜씨는 좋아 보이는구나.
마리엘라가 신기하다는 듯 바구니 안쪽을 살펴보았다. 차 한 잔과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은 디저트가 가득 쌓여있었다.
“오늘 디저트는 이걸로 하면 되겠구나. 그러고 보니 루시, 나 오늘 어때? 우리 루시가 온다고 해서 열심히 꾸몄는데.”
대답을 기다리는 마리엘라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루시어스가 아, 하고 가볍게 탄식하고는 얼른 답했다.
“누님께서도 아름다우세요.”
“후후후.”
마리엘라는 그런 건 묻기 전에 말해줘야 한다고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면서도 칭찬 고맙다는 말을 꼭 덧붙였다.
그리곤 흐뭇하게 웃더니 손을 꼭 잡고 루시어스와 레녹스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은 제일 좋은 곳으로 준비해 놨으니 편하게 지내다 가면 된단다. 혹시 몰라서 시종들은 입이 무거운 이들로 최소한만 남겨 놨어. 나머지는 휴가를 주고 쉬라고 했고.”
“감사합니다, 누님.”
“보좌관이랑 기사들을 저택에 상주하게 했으니 뭔가 불편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하렴.”
“네.”
“심심하면 배움을 청해도 돼.”
말해 놨으니까.
마리엘라가 레녹스를 바라보며 찡긋 눈웃음지었다. 레녹스가 감사하다고 고개를 가볍게 기울였다.
그녀는 레녹스와 루시어스를 우선 응접실로 데려갔다. 마리엘라가 루시어스를 바라보며 턱을 괴고 생글생글 웃었다.
차려입고 온 게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마리엘라가 루시어스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아카데미는 어땠어? 잘 지냈는지 궁금한데, 말해 줄 수 있니?”
“네, 그럼요.”
상냥한 손길에 작게 웃은 그가 그녀에게 그간 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별관을 안내받았더니 갑자기 ‘환영식’이 시작되었었지. 사이러스 학생들은 흩어진 채 적군인 키아라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잘 헤쳐 나갔다.
그들은 정말 시시각각 발전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힘껏, 모두 함께 달렸다. 그러고 난 뒤엔 타리크가 왔었다. 루시어스는 타리크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숨을 몇 번이나 쉬며 불평을 쏟아 냈다.
정말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명령이 없는 독단행동이었으면 이번에야말로 목숨을 거두었을 거예요.”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그놈 빨리 치워 놓으라고.”
마리엘라가 어깨를 으쓱이며 제 엄지로 목을 스윽 그어 보였다. 전부터 타리크를 왜 안 죽이냐며 매번 투덜거렸으니까.
“난 우리 오빠도 충분히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거든? 근데 그놈은 정말 차원이 다르다니까.”
“누님, 불경죄로 혼나요.”
“아무튼, 정말 이건 산전수전 다 겪은 이 누님의 경고인데.”
“…….”
“그 녀석 너무 가까이 두지 마.”
네가 자기보다 강하니 손대지 않는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곁에 뒀을 놈이야.
살벌한 경고에 루시어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물론 타리크가 위험한 마족인 건 맞지만…….
“제가 약했으면 관심도 두지 않았겠죠. 그럼 평범한 어린 마족일 뿐이니까요.”
“……글쎄, 그건 모르지.”
“레녹스의 말이 맞아.”
레녹스의 부정에 마리엘라가 눈을 가늘게 치켜뜨며 냉큼 답했다.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마족이란 결핍을 갈구함으로써 살아가는 종족이다. 그 사실은 그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알 수 있다. 타리크 라하위스의 결핍은 강함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다. 애초에 강함을 동경했다면 루시어스가 아니라 마왕을 따랐겠지.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 골몰하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어쨌든 그 녀석은 위험하다.
그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가까이 둘 생각은 없으니까.”
“……알고 있으면 됐고.”
달래는 듯한 어투에 마리엘라가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미소를 지은 루시어스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이전보다 좀 더 차분하고, 부드럽고, 고요했다.
조금 더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한 것이 잠시 안 본 사이에 부쩍 성장한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일찍 커 버리는구나.
아쉬움의 여운을 느끼던 마리엘라가 별안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미안해, 루시어스. 내가 좀 더 교육을 잘 해야 했는데.”
“네? 교육이요?”
“육아 교육.”
루시어스는 마리엘라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금방 눈치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옛날부터 전하와 더미트가 누님께 많이 혼났다 했죠.”
“맞아. 그리고 이번에도 혼났지.”
이 못 말리는 아빠들 같으니.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는 알 만했다.
더미트는 애정표현이 무척 서툴고, 마왕은 정말이지 자신이 사랑하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마족이었으니까.
마리엘라 르완은 분명 루겔 르완의 그런 점 때문에 구원받았다.
숨 쉴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그가 자신을 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하지만 루시어스 켄드릭은 다르다.
루시어스는 자신이 그대를 존중하는 만큼 그대 또한 자신의 영역을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마족이었다.
그게 마음을 연 상대라면 더더욱.
그러니 루시어스는 이번 일로 타리크보다 마왕에게 더욱 크게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깨졌으니.
‘얼마나 화가 났을까.’
게다가 며칠간 조용히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더니 제 마음대로 아카데미에 찾아가 교생 일이나 하고 있고.
루시어스는 조금 의외라는 듯 마리엘라를 바라보았다.
“저는 누님께서 저와 전하를 당장 화해시키려고 할 줄 알았어요.”
“화해를 강요할 생각은 없어.”
이번엔 오빠가 잘못했으니까.
마리엘라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어쨌든, 마음이 풀릴 때까지 얼마든 쉬었다가 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