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88)
마족답게 사는 법-188화(188/385)
마족답게 사는 법 188화
188 너를 위해서 (4)
“루시! 왔어?”
식당으로 들어가자 마리엘라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루시어스를 맞이했다.
세헤른은 루시어스가 앉을 자리의 의자를 정중하게 빼 주었다. 루시어스는 자리에 앉으며 이미 테이블 가득 차려진 요리들을 보았다.
잘 차려져 있는 걸 보니 평소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루시를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야.”
“저를 위해서요?”
“응, 한 번 먹어 볼래?”
식기를 들자 마리엘라가 어서 먹어 보라며 재촉했다. 루시어스가 그녀의 눈치를 한 번 보다가 하얀 죽을 한 번 떠먹어 보았다.
고소한 맛이 부드럽게 혀를 감쌌다. 적당히 따뜻한 우유 향이 목을 축이고 속을 따뜻하게 했다.
‘맛있네…….’
제게 먹이려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으니 당연히 맛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기대보다도 훨씬 맛있다.
“어때? 응?”
“맛있어요.”
“그럼 이것도 먹어 볼래?”
그녀는 아예 옆으로 바짝 다가와서 이것저것 음식을 가져왔다. 루시어스는 마리엘라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주는 것을 한 입씩 받아먹었다.
맛있었다. 빈말이 아니고, 정말.
따뜻한 음식들이 속을 채운다. 노곤하게 몸이 풀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만족스러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준비된 요리들을 보니 전부 제가 좋아하는 것들뿐이었다.
‘생각보다 입에 잘 맞아…….’
이만큼이나 입맛에 맞춰 준비할 수 있는 건 하멜 정도밖에 없을 텐데. 하멜이 준비를 했으면 이미 제 앞에 나와서 힘을 좀 썼다고 생색을 냈을 거고.
루시어스가 묵묵히 음식을 한 입 먹었다. 은근하게 어우러지는 맛과 향이 놀라울 정도였다.
한 입, 두 입.
느리지만 부지런히 음식을 먹던 루시어스가 식기를 내려두었다. 더는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속이 꽉 찼다.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진 것 같아 불쾌하기만 했는데 오늘은 왜인지 참 든든하고 만족스러웠다.
후아아.
길게 숨을 내빼자 마리엘라가 생글생글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루시어스가 눈을 나른하게 반쯤 내리감았다.
“맛있게 잘 먹은 모양이네.”
“네, 무척 맛있었어요.”
“다행이야. 열심히 준비했거든.”
“……누님께서요?”
마리엘라가 은근하게 미소지으며 어떨 것 같으냐 물었다. 루시어스는 잠시 입을 다물고 눈을 굴리다가 입술을 삐죽였다.
눈치챘구나.
그녀가 턱을 괴며 말했다.
“화해의 표시로 네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오빠랑 더미트가 열심히 만들었어.”
“하멜이랑 아르놀트 선생님도 도와주고요? 레녹스는…….”
“레녹스는 모르고 있었지.”
그냥 눈치가 조금 빠른 것 같던데?
찡긋하고 눈웃음치는 그녀가 치사하면서도 고맙다. 장난스러운 미소에 괜히 응석을 부리고 싶어진다.
“오빠가 하고 싶은 말이 있대.”
“…….”
“그래서 음식이 마음에 들면 정원으로 나와 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저는…….”
“부담스러우면 나가지 않아도 돼.”
기다리는 건 오롯이 오빠의 몫이니까.
마리엘라가 상냥한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루시어스는 잠시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못이 박힌 듯 잠시 테이블 앞에 서 있던 그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보폭이 커지고 걷는 속도가 빨라져 갔다.
빠른 걸음으로 저택 정원으로 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니 마왕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왕이 아니라 루겔 르완이었다.
내리쬐는 햇살 밑으로 흐르는 벌꿀색 머리카락이며 돌아보는 짙고 깊은 붉은색 눈동자에서는 마왕으로서의 근엄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루시어스는 다가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마왕이, 루겔이 잠시 입을 뻐끔거리더니 옅게 웃으며 말했다.
“왔니?”
무척이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 몸이 움칫 떨렸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모습인지라 눈앞에 있는 마족이 정말 제가 알던 그가 맞나 싶었다.
“…….”
“……잠시 걸을까?”
짧은 정적 사이로 루겔이 제안했다. 루시어스를 향해 손을 뻗었던 루겔은 주춤거리는 루시어스를 바라보다가 손을 거두었다.
발걸음을 먼저 옮기자 루시어스가 뒤를 따랐다. 루겔은 그것만으로도 퍽 만족스러웠다.
“식사는 마음에 들었어?”
“네, 맛있었습니다.”
“아르놀트 선생이나 하멜이 도와줘서 더미트와 함께 겨우 만들었단다.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때까지 며칠이 걸렸는지 몰라.”
“…….”
“네가 먹을 거라고 하니 대충할 수가 없어서 정말 열심히 만들었어.”
루겔이 옅게 웃었다.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으려니 과거의 자신이 생각나더라. 어렸을 때의 자신은 마리엘라를 위해 서툰 솜씨로 우유와 밀을 섞은 어설픈 죽을 만들고는 했지.
부엌 안으로 들어가니 마왕이니 뭐니 하는 것이 전부 쓸모가 없어지더라.
아들에게 손수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하는 루겔 르완만 남더라.
그때 더 여실히 깨달았다.
마리엘라가 원하던 ‘오빠’가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미안하다.”
루시어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루겔도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떨어져 있는 다섯 걸음의 거리는, 루시어스와 자신 사이의 마음의 거리와도 같았다.
루시어스는 조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마왕에게는 루시어스의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났는지, 아니면 조금은 용서해줄 마음이 들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 입장을 강요하기만 해서 미안해.”
“…….”
“너를 위한다면 먼저 해 줄 말이 참 많았는데, 바보같이 그걸 몰라주어서 미안하구나.”
루겔이 루시어스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루시어스를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었지만 조금 멀기 때문인지 여전히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자신의 손을 쥐락펴락 움직인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체를 숨기라고 한 건, 네가 그냥 어린아이로서 다른 아이들과 놀기를 바랐기 때문이란다.”
사실 정체를 들키든 말든 상관없었어.
“재능이 있는 학생을 데려오라고 한 것도, 네게 좋은 친구가 생기길 바랐기 때문이야.”
그게 누구라도 상관이 없었지. 네 마음에만 든다면 누구든.
“아카데미에 가라고 한 것도.”
잠시 말을 멈췄던 그가 말을 이었다.
“네게 또래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봐. 혹시 커서 아카데미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서.”
“…….”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
“내가 고집을 부렸단다.”
하지만 그 전에 물어봤어야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봐야 했다.
타리크 라하위스를 보내기 전에 차라리 너를 불러 혼을 내고, 꼬맹이는 놀기나 하라며 뾰로통하게 얘기하고, 다른 부자처럼 대판 싸운 다음 등이라도 두드려 주며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고 해야 했다.
그걸 몰라서 이렇게 힘겹게 돌았다.
“루시어스, 내가 미안하다.”
“…….”
“앞으로는 안 그러려고 노력할 테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지 않겠니?”
루겔이 두 손을 뻗었다.
멈춰있던 걸음이 움직였다.
멀던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루겔은 혹시 루시어스가 그대로 뒤돌아 정원을 나갈까 잠시 걱정했다. 하지만 루시어스는 계속 움직여.
와락.
열린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조금 놀라 크게 뜨인 눈이 스르르 감겼다.
품에 들어오는 온기가 어렸을 때랑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아 웃음이 나왔다.
“대부님.”
루시어스가 나지막하게 루겔을 불렀다.
전하가 아닌 대부님이라고.
벌린 팔을 접어 등을 토닥여 주던 루겔이 반색하며 루시어스를 내려다보았다. 루시어스는 여전히 품에 얼굴을 푹 묻고 있었다.
“그놈은 백 대쯤 맞았으니.”
“……응?”
“한 대만 맞아주세요.”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퍼억!
하고, 힘이 없어 솜방망이 같은 주먹이 루겔의 배에 깊숙이 박혔다.
루겔은 일부러 앓는 소리를 내며 뒤로 철푸덕 넘어져 주었다. 몸이 기울어지자 루시어스의 몸도 그대로 아래로 고꾸라졌다.
루시어스는 그제야 정원 바닥에 완전히 드러누운 대부님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조금 기쁘게.
혹은 조금 수줍게.
어떻게 보면 조금 악동처럼.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환하게 미소지었다.
“저도 사랑해요, 아버지.”
* * *
아르놀트는 학생들이 방학을 지내고 제게 보낸 일기를 읽고 있었다.
방학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그래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는 건. 아르놀트가 선생 일을 하며 즐기는 소소한 낙이었다.
선생이 되고 학생들에게 일기 숙제를 몇 번 인가 내기는 했지만,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루시어스의 일기가 아닐까 싶다.
특히 처음에 냈던 일기는 정말 가관이었다.
얼마나 일기를 쓰는 게 힘들었으면 답지 않은 딱딱한 어법과 비문을 잔뜩 늘어놨나 싶었다.
물론 정체를 알고 난 이후론 왜 그런 일기를 썼는지 조금 이해했지만.
‘그동안 느낀 게 많은 것 같아 다행이군.’
그가 루시어스가 이번에 보낸 일기를 읽으며 엷게 웃었다. 둘이 화해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접하니 참 느낌이 새로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화창한 날이었다. 높이 떠오른 햇볕은 따스했고, 불어오는 바람은 산뜻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라고 시작했던 전의 일기와는 정말 차원이 다른 서두가 아닌가.
아르놀트가 흐뭇하게 읽었다.
「그 날은 함께 식사하자는 누님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기대보다는 불안해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차려진 만찬을 먹으면서도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스러웠다.
대부님과의 싸움이 길어지는 건 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나, 굽히고 들어가야 하나 몇 번이나 고민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분께서 날 이해해줄 거라는 기대가 조금씩 사라졌다.
그러던 대부님이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한 건 정말 큰 충격이었다.
다신 그렇지 않겠다고 말하는 대신 그렇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겠다고, 용서해달라고 말하는 대신 한 번만 기회를 다시 달라고 말씀하셨다.
일련의 행동들에서 강압적인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높은 곳에서 내리쬐는 햇볕처럼 무척이나 조심스럽고 따뜻할 뿐이었다.
그때 날씨는 정말 그분 자체였고, 그래서 더욱 눈이 부셨다.
남에게 사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힘이 강할수록, 높은 곳에 올라가 있을수록 힘들어지겠지.
그런데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높은 대부님께서는 정말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끝끝내 대부님께 속을 썩여서 미안하다고,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할 수 있는 게 어른이라면, 잘못을 뉘우치고 나아갈 수 있는 게 어른이라면 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존경하는 아버지들처럼.
훌륭한 어른이.」
일기는 거기서 끝났다.
아르놀트는 가만히 일기를 들여다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루시어스에게는 그때 보았던 하늘이 그렇게나 눈부시도록 아름다웠구나.
아르놀트가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잘 됐구나, 루시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