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9)
마족답게 사는 법-19화(19/385)
마족답게 사는 법 19화
019 몽마의 꿈 (4)
이른 오전, 밤의 기세가 물러가지 않아 아직은 차가운 기운이 방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활짝 열린 창문 앞에 선 레녹스는 새벽 공기를 맡으며 풍경을 시야에 담았다.
옅은 보랏빛이 잔잔하게 감도는 하늘에서 비추는 햇살과 섬세하게 손질된 넓은 정원, 이 시간 특유의 조용한 소요까지.
평화로움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광경인데 오늘은 왜 이렇게 달라 보이는 걸까.
“일어났군. 기분은 어떤가?”
레녹스의 시선이 곁으로 다가오는 소년, 루시어스에게로 넘어갔다.
레녹스가 그의 말에 자신의 몸을 살폈다.
속이 진탕 뒤집혔고, 몸이 여기저기 뻐근해 피로감이 말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덕분에 아주 상쾌해.”
루시어스가 그의 답을 듣고 옅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힘이 다 빠졌는지 휴면 상태에 돌입한 오필리아를 그에게 던져 주었다.
레녹스가 움칫 놀라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두 손에 고이 눕힌 검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우웅, 주인의 손길을 느낀 오필리아가 작게 공명했다.
“신경 쓰이나?”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 있나.”
검집을 한 번 쓰다듬은 레녹스가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가 신경 쓰인다.”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어렴풋 기억하고 있다. 뭔가에 집어 삼켜지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해. 하지만…….”
레녹스가 주저하다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거다. 자고 일어났을 뿐이야.”
눈치 한 번 빠르군.
이것저것 물으면 뭐라고 답할지 고민했었는데. 아무래도 쓸데없는 우려였던 것 같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뭔가 할 말이 남은 듯 눈치를 보는 레녹스를 루시어스가 재촉했다.
“더 할 말이라도 있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초조한 듯 쥐락펴락 움직이는 손가락.
루시어스가 머뭇거리는 레녹스에게 말해주었다.
“만약 네가 에디온을 죽이지 않았다면, 사기에 먹혀 꼭두각시인 채로 다른 이들을 해치다 잡아먹혔을 거다.”
“……그런가.”
심각하게 굳어있었던 얼굴이 점점 따스하게 녹아내렸다. 입술을 꾹 다물고, 반쯤 내려간 눈꺼풀을 따라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루시어스가 레녹스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먼저 갈 테니 천천히 등교하도록 해라.”
고개를 떨어트린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 *
“강해지고 싶다.”
점심시간, 레녹스가 불현듯 찾아와 책상에 두 손을 짚고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베타 클래스 학생의 등장과 갑작스러운 발언 때문에 반 학생들의 시선이 완전히 집중되었다.
루시어스가 어깨를 들썩였다.
“이제 다른 학생들 시선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나?”
“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 네가 내 파트너라는 걸 어필해 놔야 차후 쓸데없는 다툼을 하지 않을 것 아닌가.”
“제법 강단 있는 발언이군.”
그가 웃음을 삼켰다. 붉은 눈가를 채 지우지도 않은 채 찾아와서 하는 말이 저것일 줄은 몰랐으니까.
눈이 이전과는 달리 반짝거리는 걸 보니 의욕이 차고 넘치는 모양이었다.
“그럼 방과 후에 보는 게 좋겠군. 로비에서 기다려라. 준비하고 갈 테니까.”
“알겠다. 기다리도록 하지.”
레녹스를 떠나보내고 난 후, 루시어스는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반에서 나와 교무실로 향했다.
제대로 훈련을 시켜 주려면 아카데미의 체육관을 이용하는 편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관이 하나 있었다.
체육관 사용은 아르놀트가 허가를 내주기 때문이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르놀트가 루시어스를 발견하고는 씩 웃음 지었다.
물론 눈매는 가늘게 굳어 있었다.
“왔냐? 네가 날 다 찾아오다니, 무슨 일이냐?”
루시어스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옅게 웃으며 말했다.
“체육관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허가를 내주셨으면 해서요. 원하는 곳은 제 5체육관입니다. 목적은 훈련이고, 인원은 둘. 곧 있을 파트너 수업을 대비하고 싶어서요.”
“……파트너라면 레녹스와?”
“네.”
“어떤 훈련을 할 생각이지?”
“목제 무기로 대련을 할 겁니다. 아직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가볍게 시작할 생각입니다. 가능하다면 통금 시간 직전까지 허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다.”
아르놀트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우선 다음 쉬는 시간에 와라. 몇 가지 확인할 게 더 있으니까.”
* * *
“후우.”
제5체육관 3실에 도착한 루시어스가 한숨을 작게 토했다.
여길 이용하려고 아르놀트와 얼마나 입씨름을 했는지.
그는 이용 목적이나 방법, 인원 등에 그치지 않고 정보 확인을 핑계로 사적인 부분까지 질문을 끊임없이 퍼부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어젯밤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다른 건 몰라도 거대한 마력 파동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멜이 어떻게 설명했는진 몰라도 소란이 크게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군.’
루시어스의 눈치를 흘긋 보던 레녹스가 말했다.
“설마 바로 허가증을 받아올 줄은 몰랐다. 폐를 끼쳤어. 학기 초라 허가가 잘 안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내가 상대라 더 힘들었을 텐데.”
“알아주니 영광인걸. 간단한 몸풀기라면 제6체육관도 충분하다는 이야기였지. 다른 체육관들은 밀폐성 때문에 위험도가 높아서 안 된다고.”
“굳이 이 체육관으로 한 이유가 있나?”
“변두리에 위치해 있어서 제일 사용률이 낮거든. 자, 시간 없으니 바로 시작하지.”
레녹스의 목젖이 위아래로 꿀꺽 움직였다. 긴장해 굳은 눈동자가 그를 지긋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루시어스가 타박타박 걸어 체육관 한쪽에 즐비한 무기들을 살폈다.
무기의 형태는 검과 곤봉, 그리고 활로 무척 간단했다.
그러나 그것들의 길이, 무게, 형태 등이 제각각이었다.
루시어스는 하나씩 손에 쥐어보며 한 번 허공을 베기도 해 보고, 한 번 굴려 원을 그려 보기도 했다. 그러다 손에 맞는 길이의 단봉을 찾아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걸로 하고.”
이어서 그가 레녹스를 향해 적당한 목검을 던졌다.
얼추 오필리아와 검신의 길이가 비슷한 녀석이었다.
“넌 그걸로 해라.”
“오필리아는?”
“그 녀석도 쉴 시간이 있어야 하니까. 우선은 그걸로 참아.”
던진 목검을 받아 든 레녹스가 검을 한 번 사선으로 휘둘렀다. 그리고는 루시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선을 받은 그가 입을 열어 설명했다.
“오늘부터 너는 나랑 대련하게 될 거다. 무슨 방법을 써도 좋으니 내게 유효타를 먹이면 돼.”
“……무슨 방법을 써도 좋다고?”
“독이든 암기든, 하다못해 흙을 뿌려도 상관없다는 뜻이야. 나도 봐주진 않을 테니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봉이 주로 쓰는 무기인가 보지?”
“정확히는 장창이지만 대련에서는 봉이 낫지.”
루시어스가 단봉을 한 번 손에서 굴렸다. 팔뚝만 한 길이의 봉이 손바닥과 손등을 오가며 원을 그렸다.
사전 준비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루시어스가 레녹스에게 성큼 다가가 두 팔목을 잡았다.
의아한 표정인 레녹스의 팔에 단숨에 마력을 불어넣어 주술을 새겨 주었다. 그러자 무릎이 꺾여 땅에 닿았다.
레녹스는 갑작스럽게 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에 이를 꽉 다물었다.
“이건……?”
“마기를 운용해서 적당한 농도로 방출하면 멀쩡히 움직일 수 있을 거다.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해.”
“그러다간 머지않아 탈진할 텐데.”
“그야 당연히, 탈진하지 않도록 잘 조절해야지.”
별것 아니라는 듯 태평한 어투.
레녹스가 헛웃음을 삼키며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그냥 대련하기만 하는 건 아쉬우니 내기를 하나 하도록 할까?”
레녹스와 마주 선 루시어스가 그에게 제안했다.
‘더미트가 자주 내기를 걸곤 했지. 처음엔 우습게 본다며 화만 냈는데 나중엔 오히려 그게 즐거움이 되었어.’
루시어스가 곰곰이 과거를 되짚으며 말했다.
“만약 네가 1년 내로 내게서 유효타를 받아내면 원하는 걸 하나 들어주도록 하지. 어떤가?”
“퍽이나 자신이 있나 본데.”
“대신 성공하지 못하면 네가 내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
“좋다. 날 우습게 본 걸 후회하게 해주지.”
‘옛날 생각이 나는군.’
그의 눈매가 즐거운 호선을 그렸다. 자신만만한 표정인 레녹스에게서 어린 날의 자신이 보인 탓이다.
레녹스가 한 번 심호흡하더니 눈을 부릅뜨며 검을 두 손으로 꼭 말아 쥐었다. 그리고는 루시어스도 감탄할 정도로 빠르게 돌진해 거리를 좁혔다.
위에서 아래로 올곧게 내리찍던 검이 봉과 부딪히며 물 흐르듯 옆으로 비껴가더니, 그대로 검로를 바꾸어 중단을 깊게 베어왔다.
뒤로 한 발짝 물러나 검날을 피하자 그만큼 간격을 좁힌 레녹스가 아래에서 위로 검을 그어 올렸다.
한 치 옆으로 허공을 가르는 검격이 흘렀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대단한 솜씨였다.
“……제법인데.”
타앙!
목검과 목봉이 부딪히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검을 튕겨낸 봉이 레녹스의 명치를 찔러 들었다.
“큭!! 쿨럭!”
자세가 무너진 레녹스가 마른기침을 토하며 신음했다.
루시어스는 가만히 서서 레녹스를 가늠했다.
‘몽마족은 마계에서 무기술을 발달시킨 종족이지. 뤼디거의 핏줄이니 기대하고 있긴 했지만.’
천재라는 명성에 걸맞은 무위였다.
괜히 알파 클래스까지 승급했던 게 아니었다.
‘웬만한 성년 마족도 이만하진 못하겠어.’
성장하면서 마기량이 늘어나고 제어에 능숙해지면 놀라울 만큼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아, 후. 후우…….”
빠르게 승부를 볼 생각으로 덤볐는지 레녹스도 생각보다 상당히 지친 것처럼 보이긴 했다.
루시어스가 그를 채찍질했다.
“기세등등한 것 치고는 많이 지친 것 같은데? 설마 벌써 포기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 없잖아.”
레녹스가 아직 여력은 남아 있는 듯 자세를 가다듬고 목검을 쥐었다.
퉁, 타앙!
다시 체육관 안에 목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루시어스는 레녹스가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계속 그를 상대했다. 그리곤 기절한 레녹스를 방으로 데려가 회복을 도와주었다.
그러기를 열흘.
방과 후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대련하는 일과가 슬슬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이다. 아, 전달사항이 있으니 잠깐 기다려라.”
수업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루시어스를 아르놀트가 눈짓으로 저지했다. 그리고는 품에서 일정표를 꺼내 한 번 훑더니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번 연도에 구스타프 제전이 있는 건 모두 알고 있겠지? 그 준비를 위해 사흘 후부터 수학여행을 가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발언에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사전에 이야기를 듣지 못한 루시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학장이 준 계획표에 따르면 수학여행은 적어도 2주 후에 예정되어 있었을 텐데. 이맘때쯤이면 수학여행이 아니라 파트너십에 대한 수업이 있었을 거고.’
곧 루시어스의 의문을 아르놀트가 풀어주었다.
“원래는 가벼운 태그매치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학생들의 부담도 있고, 제전 때문에 따로 매치를 준비하기가 번거롭다는 의견이 나와 수학여행과 통합하게 되었다.”
나쁘지 않은 변화였다. 아직은 레녹스의 변화를 숨기고 싶었으니까.
아르놀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고로 이번 수학여행은 파트너와 움직이게 된다. 그러니 내일은 조례시간까지 파트너와 함께 대강당으로 모이도록 해라. 여기까지 질문 있나?”
“수학여행에서 정확히 뭘 하는 건가요?”
“잘 물었다. 너희는 내일부터 아카데미에서 받은 의뢰들을 하나씩 처리하게 될 거다.”
사이러스에서는 매번 수학여행을 명목으로 몇몇 잡일거리를 의뢰받아 처리해주고는 했다.
학생들은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고 의뢰인은 적당한 가격에 용병을 구할 수 있어 내외로 환영받는 행사였다.
아르놀트가 계속해서 설명했다.
“의뢰를 마친 후, 남는 시간 동안 근처를 탐방하거나 구경하게 될 거다. 웬만한 시설물들엔 허가를 받아놨으니까. 담당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라.”
대략적인 설명을 마쳤는지 아르놀트가 몇 번인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촉구했다.
더 이상 질문이 나오지 않자 그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일 보도록 하자, 제군. 이만 해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