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95)
마족답게 사는 법-195화(195/385)
마족답게 사는 법 195화
195 조별 과제 (3)
코안 숲의 마정석은 기대보다 훨씬 더 컸다. 루시어스도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라 감탄이 절로 나왔다.
마정석의 크기뿐만이 아니었다.
마정석 주변으로 수없이 많이 떠올라 있는 각종 마법진들이 그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
“가까이서 보시겠습니까?”
핀텔이 그렇게 물어보며 바람의 정령을 움직여 학생들의 몸을 위로 띄웠다. 특히 이리누슈카와 에스메리다의 눈이 감동과 이채에 반짝거렸다.
루시어스가 천천히 마법진의 문자를 읽었다. 마정석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숲 모든 곳에 다다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른바, 숲에 비료를 주기 위한 마법식이라고 볼 수 있다.
‘엘프들의 마법은 이런 방향으로 발전되어 있구나.’
책으로 읽어 알고 있기는 했으나 그들의 마법적 정수를 이렇게 확인하니 감흥이 남달랐다. 루시어스가 잠시 마정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코안 숲의 마정석은 엘프의 보물.
만지지 말라고 말릴 법한데도 핀텔은 루시어스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루시어스를 바라보는 핀텔의 눈동자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토옥.
손끝에 약간 차가운 감각이 닿았다.
쏴아!
“……!”
동시에 숨이 막힐 것 같은 거센 돌풍이 몰아닥쳤다. 루시어스는 잠시 눈을 꾹 감았다가 바람이 산들바람처럼 솔솔 가라앉을 때쯤 눈을 떴다.
까르륵, 까륵.
나무들의 웃음소리가 귀며 목덜미를 간질였다. 간지러워, 옅은 웃음을 터뜨린 루시어스는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시도록 높은 하늘과 지평선 너머까지 뻗은 푸른 초원. 싱그러운 풀 내음에 묻은 따뜻한 봄볕까지.
루시어스가 작게 숨을 토했다.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이 광경은 코안 숲의 마정석이 보여 주고 있는 언젠가의 마계다.
그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마계.
“혹 보셨습니까?”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코안 숲의 광경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핀텔의 손이 루시어스의 손목을 살며시 잡고 있었다.
손이 마정석에서 슬슬 멀어져갔다.
핀텔이 루시어스와 학생들을 데리고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가 귓가에 살짝 속삭였다.
“홀리면 안 됩니다.”
“……그럴 리가.”
“그렇겠지요.”
하지만 괜히 걱정되어서요.
핀텔이 어깨를 으쓱였다. 루시어스는 잠시 마정석이 보여 주었던 광경을 되새기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스라이 내려앉고 있는 밤하늘 밑에는 짙은 마기가 움튼 숲이 존재하고 있다. 무척이나 본능적이고 위험천만한.
그 또한 잘 아는 마계의 숲이다.
학생들을 모두 땅에 내려준 핀텔이 웃으며 마정석으로 다가가며 말문을 텄다.
“마정석이 처음부터 이렇게 컸던 건 아닙니다. 이곳에서 나는 마기를 양분으로, 그리고 동물과 시체를 거름으로 이만큼 자랐지요.”
“이 마정석이야말로…… 엘프들의, 지식의 정수로군요.”
이리누슈카는 감탄을 숨기지 않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핀텔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코안 숲은 마계의 긴 역사를 모두 견뎌낸 아주 강인한 숲입니다. 엘프들은 코안의 시작과 함께하며 이 마정석을 모두의 아이처럼 키웠습니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사근사근한 목소리였다. 그들은 마정석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마정석이 지낸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처음에는 겨우 손톱만 했을지도, 혹은 주먹만 했을지도 모르는 마정석이 이만큼 자라나기까지 대체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그래서일까요. 기록에 따르면 코안 숲은 마정석을 통해 마음에 드는 마족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해주기도 한다 합니다.”
“혹시 핀텔 님께서도 보셨습니까?”
“저는 아쉽게도.”
그가 고개를 도리 저었다.
루시어스는 그제야 핀텔이 홀리면 안 된다고 말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길고도 긴 시간을 견딘 마정석의 기운이 루시어스에게 해를 입힐까 걱정한 것이다.
코안의 심연에 다가갔으니 코안 또한 진득한 심연을 내보일 것이라 우려한 것이다.
마정석이 보여 주는 광경을 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것이다.
살에 닿는 부드러운 기운을, 눈에 보이는 그저 아름다운 광경을, 그리고 송연하도록 느껴지는.
그 슬픔을
루시어스가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어둑한 녹음 사이로 수풀이 흔들리며 그를 반겨 주었다.
‘너는 대체…….’
무엇을 그리 슬퍼하고 있나.
* * *
마정석을 구경한 이후엔 핀텔이 만들어놓은 엘프의 길을 따라 숲을 한 번 돌아보았다.
숲은 엘프들의 관리에 의해 조화로운 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풀과 나무를 비롯한 마물들까지 가리지 않은 정말 완벽한 생태계였다.
그 모습에 감탄하기도 몇 번째.
“허억, 허억. 헉.”
“얼마,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후우……, 후.”
아이들은 왜인지 녹초가 되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는 건지 잠시 고민하던 루시어스가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하고 이마를 짚었다.
엘프의 길은 숲을 원활하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같으며 엘프의 길 1m가 본래 길의 10m와 같다.
하지만 그 말이 그만큼 체력이 없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동한 만큼의 체력이 그대로 요구된다.
“이렇게 힘들어하실 줄은 몰랐는데.”
핀텔이 조금 당혹스러워하며 학생들에게 다가가 물을 건네주었다.
루시어스가 옆에서 너무 멀쩡한 얼굴로 걷고 있던 터라 미처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제 실수였다.
그가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아이들을 돌볼 무렵 루시어스는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훈련이 부족했나 보군.’
이 정도로 나가떨어지다니.
제가 40살일 때도 이렇게 체력이 약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기초 체력 훈련을 좀 시켜야겠어. 유연성을 늘릴 필요도 있을 것 같고.’
물을 마시던 아이들의 몸이 움칫 떨렸다.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루시어스의 금색 눈동자가 그들이 보기에는 퍽 불길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꼬르륵.
그때, 아이런의 배꼽시계가 울렸다.
“앗, 이런……. 하하하…….”
“죄송합니다. 어린 분들이니 슬슬 배고플 때가 되었을 텐데.”
“아닙니다, 아니에요. 너무 즐거워서 넋을 빼놓고 있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지도 몰랐습니다!”
아이런이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외쳤다. 마을에 공급되는 목재들이 어떻게 자라며 엘프가 나무들을 어떻게 가공하는지 눈앞에서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뛸 정도로 기뻤다.
가능하다면 손질이 끝난 목재를 가지고 와서 바로 조각이라도 서걱서걱하고 마법을 음각으로 새겨보고 싶을 만큼!
핀텔도 그런 아이의 마음을 알았는지 빙긋 웃어 주었다. 그리고는 뭐라도 먹는 편이 좋겠다며 나란히 앉아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만한 작은 공터로 안내해 주었다.
‘기회로군.’
루시어스는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준비해온 도시락 바구니를 슬그머니 꺼냈다.
미리 말해두지 않았기 때문인지 대충 챙겨 온 빵 쪼가리를 주섬주섬 꺼내던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큼큼, 작게 헛기침한 루시어스가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이며 바구니를 열었다.
“이걸 정말 네가 만들었어?”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배고플 것 같았거든. 허기질 때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준비했지.”
“와……. 진짜 못 하는 게 없구나.”
에스메리다가 동그랗게 뜨인 눈으로 루시어스가 만들어온 샌드위치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우선 앉자며 함께 둘러앉았다.
흐뭇하게 웃으며 자리를 비운 핀텔은 숲에서 과일들을 몇 개 따와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방금 딴 과일이니 맛있을 거라면서.
“루시어스, 잘 먹을게.”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하나씩 샌드위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예쁘게 모양이 잡힌 샌드위치를 한 조각씩 집으니 입에 침이 절로 고였다.
빵은 폭신폭신했고 안에 들어간 샐러드는 신선해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뭐든 잘할 수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들이 한 입 크게 물었다.
“……!”
맛있다.
루시어스는 입 한가득 샌드위치를 베어 물고 행복하게 우물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애써 숨겼다.
별맛이 없는데 허기져서 저리 맛있게 먹는 건지, 아니면 정말 맛있어서 저러는 건지 잘 알 수 없었다.
“핀텔 님도 좀 드세요.”
“감사합니다, 루시어스.”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핀텔에게도 루시어스가 샌드위치를 건넸다. 핀텔이 샌드위치를 먹어보고는 안을 살짝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정말입니까?”
“네, 베이컨이 들어가서 간도 적당히 된 것 같고요. 안에 들어간 드레싱도 맛있습니다. 시판용 같지는 않은데 직접 만드셨나요?”
“그건……, 준비되어 있던 걸 썼습니다.”
샌드위치를 만든다는 말을 듣고 하멜이 득달같이 달려와 급하게 만들어 준 드레싱이었다.
핀텔이 그걸 제외하고도 참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재료를 잘 썼다고 칭찬을 늘어놓아 주었다. 루시어스가 괜히 머쓱해 뺨을 긁적였다.
“루시어스, 하나 더 먹어도 되나?”
“물론이지. 더 먹어.”
아이런이 이미 하나를 더 꺼내 입안에 가득 넣으며 루시어스에게 물었다. 루시어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배고팠나 보다.
루시어스가 이리누슈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입에 잘 맞아?”
“음……. 생각보다 훨씬.”
이리누슈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거들은 육식을 즐기는 편이라 그녀 또한 채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맛있다고 해줘서 다행이었다.
그녀가 잠시 고민하며 턱을 매만지다가 입을 열었다.
“난 채소를 싫어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런데?”
“……지금 먹어 보니 맛있다.”
즐겨 먹지 않았을 뿐이지, 싫어하는 건 아니었던 모양이야.
루시어스는 그 말을 듣고는 다행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위해서 준비했는데, 저번처럼 맛이 형편없으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었다.
“배를 채우고 나면 근처에 있는 드워프 마을에 가자.”
“음! 거긴 내가 잘 안내해 줄 수 있지.”
배가 불러서 힘이 났는지 아이런이 벌떡 일어나 가슴을 쾅쾅 쳤다. 다른 아이들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핀텔이 아이들에게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일어난 작은 파동이 빛이 되어 몸을 감쌌다.
“드워프 마을로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오늘 하루 참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좋은 여행이 되길.”
특유의 부드럽고 옅은 웃음을 마지막으로 핀텔의 모습이 점점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루시어스가 눈을 감고 그의 마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깡! 깡! 깡!
금속을 열심히 망치질하는 소리가 주변에 가득 울리고 있었다.
“이봐,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여!”
“납품 시간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우리 드워프는 뭐가 생명이다?”
“품질과 신뢰!”
“바로 그거야!”
누가 찾아왔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루시어스가 뺨을 긁적였다.
분명 연락을 먼저 보내 놓았는데?
이쯤이면 납품이 끝나 여유로울 때쯤이라 들었는데 아무래도 뭔가 착오가 생긴 모양이다. 이렇게 바쁠 줄 알았으면 조금 더 후에 들를 것을.
“어엉? 저건…….”
“어머니!”
어지럽게 돌아가는 와중 아이런이 어머니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