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97)
마족답게 사는 법-197화(197/385)
마족답게 사는 법 197화
197 조별 과제 (5)
“사이러스에서 오신 학생분들이지요? 러드는 제가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루시어스는 러드의 안내역을 해달라는 연락을 이디스에게 넣어 놓았었다. 학생들에게는 그쪽에 아는 어른이 있다고 설명해두었고.
러드의 전반적인 생활 모습, 마정석의 사용 규모를 알아본 후 사막 초입까지만 가서 마정석의 상황을 확인해 볼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얘가 왜 여기서 나와.’
루시어스와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이디스가 아니었다.
바로 러드의 지배자, 타리크였지.
물론 타리크가 나타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수학여행을 왔을 때도 기어코 인사를 하러 나타났던 녀석이었으니까.
타리크는 제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자기 자신을 ‘지나가던 스콜피온’쯤으로 소개하고는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태평한 모습에 루시어스가 가볍게 탄식했다.
이 녀석은 키아라에서 그 난리를 쳐 놓고 학생들 앞에 나타나고 싶을까. 아이들이 옹이눈도 아닐진대, 정체를 들키기라도 하면 대체 뭐라고 변명하려고 이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잘 부탁드립니다, 라하위스 씨.”
“잘 부탁, 합니다.”
“현지인분이시라니 러드에 대해서는 정말 잘 알겠군요!”
“…….”
생각해 보니 키아라로 교류회를 갔던 건 루시어스 혼자뿐이었다.
타리크가 조금 험하게 생긴 듯해도 웃으면 인상이 참 좋아 보이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별 의심 없이 타리크와 손을 맞잡고 있었다.
루시어스가 사전에 안내역이 있다고 말한 탓도 큰 것 같았다.
잠시 미간을 짚던 루시어스가 숨을 가늘고 길게 후우 몰아쉬고는 타리크를 쏘아보았다. 인사를 나누던 타리크가 살랑살랑 눈웃음치며 다가왔다.
“오랜만이네요, 루시어스.”
“…….”
이 녀석이 보는 눈이 있다는 핑계로 이렇게 친근한 척 다가오는구나.
물론 이편이 쓸데없는 의심을 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루시어스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답해 주었다.
“오랜만이십니다.”
“자, 그럼 가지요.”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며 타리크가 루시어스와 학생들을 안내했다. 우선 러드의 가장 낮은 곳, 빈민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며 올라가 주겠다면서.
루시어스는 그의 옆에 바짝 붙어서 학생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연락을 넣은 건 네가 아닌데.”
“흐음?”
“……이디스는?”
그녀가 배신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를 따르는 듯 굴어도 급한 상황이 닥치면 당연히 타리크에게 붙을 말이었으니까.
아무리 힘을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멀리 있는 5장로보다는 가까이 있는 타리크 라하위스가 더 무서운 법이다.
그런데도 루시어스는 그녀에게 그간 여러 일을 시키고 두고 보았다.
타리크가 자신이 그녀를 통해 사막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경고하는 게 목적이었다.
어쨌든 내 눈이 닿아있으니 방심하지 말라고, 같은 일을 저지를 생각은 하지 말라고.
“이디스, 이디스…… 아, 그 여자 말씀이시군요.”
잠시 이름을 혀로 굴려보던 타리크가 기억났다는 듯 가볍게 손바닥을 마주쳤다. 루시어스는 순간 엄습하는 생각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설마 죽였나?”
“어떨 것 같으세요?”
“…….”
자신과 이어져 있음을 알면 당연히 살려놓을 줄 알았는데. 루시어스가 노골적으로 불쾌함에 미간을 찡그렸다.
루시어스의 표정을 본 타리크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 자극하면 사달이 나겠다 싶었다.
“살려뒀습니다.”
“……정말인가?”
“당신께서 저를 감시하게 해 주는 좋은 연락책 아닙니까. 당연히 살려둬야죠.”
“…….”
“믿지 못하시겠다면 당장…….”
“됐다. 그냥 둬.”
그 말을 끝으로 루시어스는 침묵했다. 하지만 조금 안도했는지 굳어 있던 표정이 풀어졌다. 타리크는 그걸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사실 루시어스가 떠나던 그 날 이디스를 죽여놓으려 했다. 루시어스의 힘을 목격한 마족을 곧이곧대로 살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순순히 놓아줄 수도 없으니.’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모르는 멍청한 마족이 입을 잘못 나불거렸다가 루시어스의 앞길을 방해하면 안 되지 않나.
그런 가능성을 점쳐보니 속이 진창 꼬였다. 하지만 그러면 루시어스에게 또 크게 혼날 것 같아 참았다.
대신 옆에 두고 잘 감시하기로 했다. 게다가 루시어스가 이디스를 제게 보이는 경고이자 연락책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으니 손을 쉽게 댈 수도 없었고.
‘나쁜 결과는 아니지.’
전에는 찾아가도 얼굴도 안 보여주지 않았었나. 그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참을 만하다.
타리크는 터지려는 웃음을 겨우 참고는 루시어스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장 먼저 빈민촌으로 안내했다.
“여기가 러드의 빈민촌입니다.”
“……세상에.”
“러드는 마정석과 각종 몬스터의 부산물로 막대한 부를 쌓았지요. 그래서 러드에서는 그 누구도 굶주리지 않습니다.”
빈민촌의 참상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보이는 건 깨끗한 집과 밝은 표정의 아이들이었다.
그리 풍족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먹고 살 수는 있을 정도의 가정. 이 정도면 밖에 나가서도 빈곤하다는 말을 듣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타리크가 러드에서 드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였다.
세르크 라하위스는 주민들의 고혈을 뽑아먹는 마족이었다. 이렇게 깨끗한 옷을 입고, 배불리 먹고, 목숨의 위협 없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가 이곳 주민의 생계를 보장해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들은 계단을 따라 도시 위쪽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한참이나 걸어 올라가자 시장과 광장, 그리고 아래에 있는 빈민촌이 한 번에 보였다. 마정석으로 만들어낸 바람이 솔솔 불었다.
루시어스는 고개를 돌려 조금 멀리 있는, 자신이 심어두고 간 나무를 바라보았다. 좁디좁은 지하에서 밖으로 나왔기 때문인지 나뭇잎이 여전히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 번 마을을 보세요, 여러분.”
“…….”
“아시다시피 러드는 사막 아래에 지어진 지하도시입니다. 대규모의 결계를 이용해 무너지지 않는 도시를 지었지요.”
“대단하네요.”
“그렇게 버틴 지 몇천 년입니다.”
타리크의 입매가 살짝 비틀렸다.
“끝없이 채굴할 수 있는 마정석과 높은 가치를 가진 마수와 마물의 부산물. 그 덕분에 다들 걱정 없이 잘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씁쓸해 보이기도 하는 웃음이었다.
“사실 저는 이 상황이 매우 위태롭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의 너무 많은 부분을 마정석에 어쩔 수 없이 의지하고 있는 거네요.”
“맞아요. 이해가 빠르시군요.”
학생들은 타리크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채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루시어스가 여전히 침묵한 채로 도시를 바라보았다.
얼핏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이 도시는 그야말로.
모래 위에 지어진 성이었다.
“러드는 거대한 결계로 유지되고 있어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하고는 합니다. 아마 마정석의 공급에 차질이 있으면 큰일이…….”
입을 열던 타리크가 갑자기 입매를 꾹 다물었다.
고개가 올라가고 턱이 들렸다.
시선이 어딘가 먼 곳을 향했다.
그리고 루시어스가 낌새를 눈치채기도 전에.
우두두두두두!
땅이 흔들렸다.
“헉!!”
“꺄악!”
지진을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던 에스메리다가 눈을 질끈 감고 주저앉았다. 발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공포가 몸을 마비시켰다.
이리누슈카가 혹여 아이런과 에스메리다가 다칠까 봐 둘을 껴안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타리크가 재빨리 학생들이 다치지 않도록 주변으로 얇은 모래막을 쳐주었다.
두두두…….
울림이 멎었다.
루시어스가 자세를 낮추고 고개를 들었다. 몸을 웅크리고 있던 아이들이 겨우 시선을 돌렸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한 눈동자가 바쁘게 굴렀다.
“이, 이리누슈카. 괜찮아?”
에스메리다가 화들짝 놀라 그녀가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이리누슈카가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건…….”
“지진입니다. 러드에서는 흔한 일이에요.”
그들이 조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러드의 마족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에스메리다가 털썩 이리누슈카의 품으로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이게 흔하다고요……?”
“네. 많이 놀라신 것 같네요. 조금 쉴까요?”
“아, 아니요……. 괜찮아요.”
잠시 심호흡한 에스메리다가 자신의 두 발로 다시 서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타리크가 옅게 웃고는 그들을 다시 안내해 주기 시작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얼마 없습니다. 다만 결계를 유지하는 데에 여러 속성을 가진 마정석을 대량으로 사용하는 건 확실합니다.”
“룬타 지방…….”
“네. 그쪽을 포함한 많은 곳에서 정기적으로 마정석을 구매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네. 그래도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도시가 위험질 정도라면……, 이곳의 주인이 누구보다 먼저 알 테니까요.”
학생들이 눈을 꿈뻑였다.
러드의 주인이라면 입에 담기도 힘든 끔찍한 소문이 있는 타리크 라하위스가 아니던가.
이런 도시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타리크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어쨌든, 결계는 멀쩡하게 구동되고 있습니다. 아니면 러드가 이미 모래에 파묻혔을 거예요.”
“그렇습니까…….”
“결계가 워낙 크다 보니 가끔 이렇게 불안정함에 흔들릴 때가 있기는 하지만요.”
타리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의 존재가 러드에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루시어스는 그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러드의 지배자란.
곧 도시를 지키는 수호자다.
러드의 결계는 마정석을 이용해 시전자와는 관계없이 독립적인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결계의 마정석이 부족하거나 도시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시전자, 즉 러드를 지배하고 있는 마족의 마기를 사용하게 되어 있다.
유사시에는 무려 도시 하나를 유지하게 하는 결계의 마력을 마족 하나가 공급해야만 했다. 그러니 정말 결계에 문제가 생겼다면 타리크가 누구보다 먼저 알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잘 모르는 법이죠. 저는 여러분의 조사가 러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네. 조사 결과에 따라 마정석 비축량이나 소모량을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마 전보다 더 결계가 안정화되겠지요.”
그러면 잦은 지진도 해결될 겁니다.
타리크가 학생 중 가장 소스라치게 놀란 에스메리다의 등을 살짝 두드려주며 이야기했다. 격려해 주는 듯한 행동에 그녀가 조금 쑥스럽게 답했다.
“다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이, 이 정도로 뭘. 큼큼.”
이어지는 칭찬에 학생들이 서로 헛기침을 하며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 타리크가 피식 웃었다.
“다음으로는 마정석 채굴장을 잠깐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