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199)
마족답게 사는 법-199화(199/385)
마족답게 사는 법 199화
199 꿈 (1)
제 앞에 죄를 지은 것처럼 얌전히 앉아있는 레녹스를 바라보던 루시어스가 한숨을 작게 내쉬며 미간을 짚었다.
레녹스가 제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만, 루시어스는 도무지 ‘힘내라’라고 가볍게 일을 넘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레녹스의 안위가 너무 걱정이었으니까.
‘성장통이라.’
구스타프에서 겪었던 성장통은 정말 말로 형용하기도 힘든 통증이었다.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기도, 수십 개의 검과 창이 제 몸을 꿰뚫는 것 같기도 했다.
누가 건드리면 풍선처럼 펑 터질 것처럼 몸이 뻣뻣했다. 동시에 화산이 분출하듯 터지는 마력을 그대로 밖으로 내보내고 싶은 고양감이 몸을 덮었다.
‘레녹스도 덜하진 않을 텐데.’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던 그 감각. 불안감에 울렁이던 시야.
그걸 생각하면 마음 같아서는 아카데미도 며칠간 쉬게 하고 싶었다. 지금은 괜찮다고 해도 한 달 정도는 상태를 보며 쉬는 게 좋지 않을까.
레녹스를 응시하던 루시어스가 후우, 숨을 길게 내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통증은?”
“아직 없다. 가끔 컵을 깨트리는 정도?”
“레녹스, 혹시 당분간 아카데미를 쉬는 건 어때? 성년이 될 때까지, 아니면 몸 상태가 좀 괜찮아질 때까지라도.”
“……음.”
그도 세 번째 성년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마냥 달갑지는 않았다.
성년이 되면 바로 졸업을 준비해야 할 테니까.
그럼 루시어스와 함께 졸업하지 못하게 되지 않나.
그래서 아주 잠깐.
어떻게든 성년식을 뒤로 미룰까 했다. 딱 1년만 더 버텨보자고.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접었다.
‘그래도 성장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니까. 적어도 어른이 되면 루시어스에게 조금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거고.’
그는 기사라는 직함만 가진 어린애보다는 밖에서 이런저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루시어스가 곤란할 때 나서 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난관을 헤쳐나가는 루시어스의 뒤를 따르는 게 아니라, 한 발자국 앞에서 그를 지킬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괜찮아. 다른 학생들이 휘말릴까 봐 걱정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보통 3차 성년식의 여파가 외부로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나는 지금 그걸 걱정하는 게 아니야.”
“……그럼?”
“학생들 각각의 마력, 기척, 그리고 대화를 나누는 크고 작은 소음들 모두가 네 성년식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인 거야.”
성년식을 치르는 마족의 몸은 터지기 직전의 폭탄이 아니라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은 상태다.
그것도 공기가 점점 더 들어가고 있는 풍선.
밖에서 작은 자극이라도 잘못 받았다가는 풍선이 터지듯이 펑, 터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레녹스 자카르라는 마족이 받을 타격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루시어스는 입을 다물었다가 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겼다. 웬만하면 누구에게든 사정을 말하는 게 좋겠지만.
“……정말 알리지 않을 거야?”
“루시어스, 모든 성장통이 너처럼 특별하지는 않아. 다들 한 번씩 겪는 일인걸. 괜찮을 거야.”
“그래……. 그렇겠지.”
레녹스의 말이 맞았다.
성년이 되며 폭발하는 힘이 외부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성년식 모두 애를 먹었던 자신과는 달리 레녹스는 정말 자연스럽게, 모두가 겪는 것처럼 성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놓였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고는 턱을 괴고 그에게 눈짓했다.
“그럼 이제 가서 자, 얼른.”
“……벌써? 아직 이른데.”
“혹시 모르니 컨디션 관리를 해야지. 잠이 안 오면 이 형님이 재워 줄까? 원한다면 동화책이라도 읽어줄 수 있는데.”
“루, 루시어스!”
장난스러운 말에 레녹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렸을 적 이켈이 좀처럼 자지 않는 자신을 위해 동화책을 읽어줬다는 것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게 분명했다.
레녹스가 조금 불퉁히 말했다.
“루시어스,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니다. 그리고 요즘은 불면증도 많이 좋아져서 잠도 잘 자기도 하고…….”
“레녹스.”
“……그건 다 어렸을 때 일이고.”
“알았으니까 가서 자, 얼른.”
레녹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루시어스의 말에 따라 순순히 침대로 들어갔다. 루시어스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레녹스를 응시했다.
감시하듯이 계속.
이불을 덮은 레녹스가 눈을 감고 한참 잠을 청하려 하다가, 결국 작게 신음하며 물었다.
“내가 잘 때까지 그렇게 보고 있을 셈이야?”
“그렇게 해 달라면 해 줄 수 있는데.”
이불에서 잠시 사부작거리던 레녹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저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는 루시어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루시어스가 여전히 턱을 괸 채 말했다.
“나도 전하께 두들겨 맞은 뒤엔 항상 며칠간 깊게 잠들었었지. 자고 일어나면 몸이 씻은 듯 낫고는 했어.”
“그래서?”
“아플 땐 수면이 최고란 말이다.”
단호한 말투에 레녹스가 작은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했다.
“난 딱히 아픈 건 아니잖아.”
“그럼 바꿔 말해 줄까?”
“어떻게 바꾸려고?”
“성장기엔 잠이 최고다.”
“푸핫. 큽, 큭큭.”
형님 말 들어.
잠이 최고라고 말하는 루시어스의 표정이 짐짓 비장했다. 얼굴에 가득 담긴 걱정스러움에 레녹스가 기분 좋게 웃었다.
“알겠다, 알겠어. 이제 잘게.”
“잘 자.”
루시어스가 레녹스의 주변으로 프난을 몇 송이 소환해 주었다.
레녹스가 곧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일어나자 언제나처럼 레녹스가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루시어스가 눈가를 가볍게 비비며 기지개를 켰다.
루시어스가 가장 먼저 물었다.
“좋은 아침. 몸은 어때?”
“……음, 잘 모르겠어.”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레녹스의 컨디션은 꽤 괜찮아 보였다. 저번에 루시어스가 고역을 앓았던 걸 기억하는지 나비가 조금 걱정스러운 듯 레녹스의 옆을 맴돌았다.
레녹스가 얼핏 웃으며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제는 그렇게 화내더니.
“뭔가 어지럽거나 기분이 붕 뜨거나 하지는 않고? 힘 조절이 갑자기 더 안 된다거나.”
“걱정보다 멀쩡해. 어제 일찍 자서 그런지……, 잠을 충분히 잔 게 효과가 있었나 봐.”
루시어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레녹스를 탐색하듯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녹스가 무조건 괜찮다, 힘들지 않다고 말하지 않고 이렇게 제 몸 상태를 알려주니 참 다행이었다.
이전처럼 꾹꾹 눌러 참고 있는 게 아니니 분명 힘들어지면 말해 주겠지.
“정말 힘들어지면 꼭 말하고.”
“물론이지. 막내 형님 걱정시켜서 얻는 게 뭐가 있다고.”
레녹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럽게 맞받아쳤다. 루시어스는 ‘막내 형님’이라는 말에 조금 놀라다가 픽 웃어 버렸다.
저렇게 농담을 던질 정신이 있는 걸 보면 정말 멀쩡한 것 같았다.
“그래도 최대한 기숙사에서 쉬었다가 늦게 출발하는 게 좋겠어.”
“그러다 지각하면 어떡하지?”
“살면서 지각 한두 번쯤은 할 수도 있지, 뭘. 누가 뭐라고 하면 일러.”
형님이 손 봐줄게.
루시어스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먼저 등교할 준비를 마쳤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등교하고 싶지만, 학술제에 가기 위한 회의를 아침에 하기로 했던 터라 조금 일찍 출발해야 했다.
“천천히 준비하고 와. 수업이 끝난 후에는 내가 알파 클래스로 갈 테니까 기다리고.”
“알겠어.”
“그럼 먼저 갈게.”
달칵.
레녹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어스가 등교하고 나자 방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고요한 정적 사이로 레녹스가 긴 숨을 내빼었다.
이제 루시어스가 말한 대로 조금 기다렸다가 준비하고 나가기만 하면 됐다. 조용한 시간을 혼자 보내려니 퍽 감회가 새로웠다.
“…….”
왜일까.
정체 모를 불안이 엄습한다.
뭘까, 이 위화감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레녹스가 걸음을 천천히 움직였다. 발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가벼웠다.
그래서인지 제 몸이 무척이나 날래게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하다.
조금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두근, 두근, 두근.
팔을 뻗고 발을 디딜 때마다 심장이 두근대는 소리가 울렸다.
그 고동 소리가 너무 빠른 것 같기도, 너무 느린 것 같기도 했다.
세 걸음마다 심장이 한 번씩 요동친다. 제 걸음이 빠른 건지, 심장 소리가 느린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삐이이.”
옆에서 나비가 조금 불안한 듯 울었다.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낀 건 그때쯤이었다. 사지말단에서 핏기가 가시는 듯 체온이 물러갔다.
뭔가에 짓눌린 듯 몸이 무겁다.
레녹스는 숨을 길고 빠르게 내쉬며 몸을 낮게 낮추었다. 고개를 가볍게 젓자 흐릿한 시야가 조금 맑아졌다.
“뭔가, 이상한데…….”
레녹스가 겨우 몸을 일으키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벽에 몸을 기대자 차가운 기운이 찌르듯이 스며들었다.
“후우.”
분명 괜찮았는데.
조금 전까지는 정말 괜찮았는데.
숨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마시고 내쉬는 단순한 호흡조차도 코 위에 물수건을 올려놓은 것처럼 괴로웠다.
온몸이 꼬이는 것 같다.
멀쩡한 거울 속의 자신에게서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뭔가가 펑 터질 것 같은데. 폐에 물이 들이차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데.
레녹스는 그제야 지금 자신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제기랄.’
비틀.
다시 두 다리로 몸을 일으킨 레녹스가 거울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나비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맴돌며 울었지만, 그 울음소리는 전혀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숨이 가빠왔다.
그가 잠시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침대를 짚은 손을 움직여 제 머리를 겨우 받쳤다.
‘루시어스에게 알려야 하는데.’
이렇게 쓰러지면 걱정할 텐데.
‘벌써 이렇게…….’
눈앞이 흐릿했다.
레녹스가 손을 툭 떨어트렸다. 몸의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겨우 손가락이며 발가락을 움직였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걸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그것이 제 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의식이 점점 까무룩 가라앉았다.
이제는 움직이지도 않는 손과 발끝으로 뭔가 검은 기운이 천천히 다가왔다.
어쩔 줄 모르고 빙글빙글 돌던 나비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적막했던 방이 보이지 않았다. 울리던 심장 소리가 멀리 물러갔다.
하나씩, 하나씩 감각이 사라져 간다.
검은 기운이 점점 좀먹듯이 팔과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레녹스는 그것의 정체가 뭔지 알고 있었다.
‘꿈이, 다가오고 있어.’
레녹스가 직감했다.
악몽이 다가온다.
* * *
“……스, ……녹스!”
“……!”
“레녹스!”
레녹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는 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켈이 있었다. 그가 뺨을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정신이 없어?”
“……이켈 형님?”
“그래, 어디 아파? 일이 고되니? 창고 관리가 좀 힘들기는 하지?”
그 말에 레녹스가 주변을 한 번 돌아보았다. 익숙한 광경이 눈에 담겼다. 어릴 적부터 몇 번이나 드나들고는 했던 곳.
아버지의 와인 창고였다.
이켈의 손에는 새로운 와인을 만들기 위해 가져온 재료가 있었다. 시선이 닿자 이켈이 병을 감싼 천을 들추었다. 붉은 피가 넘실거렸다.
다른 마족이나 마수의 것이겠지.
이켈 형님은 옛날부터 아버지의 양조 작업……, 피를 채취하는 작업을 도왔으니까.
“그건 누구의…… 피입니까?”
“응? 아, 누구였더라.”
그놈 서열이 몇 위였지? 잘 기억이 안 나네. 이켈은 별 관심이 없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는 레녹스의 뒤에 있는 와인병을 하나 꺼내 라벨을 살폈다. 어차피 여기에 꼼꼼히 쓰여있을 게 분명하니까.
“어디 보자, 서열……. 아, 네임드가 아니었구나. 그런 것 치고는 꽤 애먹었는데 말이야.”
“……그런가요.”
힘없는 대답에 이켈이 미간을 살짝 일그러트렸다. 그리고는 바짝 다가가 막내의 얼굴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오늘따라 우리 귀여운 막내가 왜 이렇게 기운이 없을까 싶었다.
“어디 아프지는 않은 것 같은데 정신이 딴 곳에 팔렸네. 오늘 피크닉 때문에 그러니? 어서 가고 싶어서?”
“피크닉이요? 제가 말입니까?”
조금 놀라 반문하자 이켈이 정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 어제까지만 해도 피크닉을 간다고 들떠 있었잖아.”
“제가, 누구랑……?”
“누구긴.”
그가 정말 그림처럼 웃었다.
“네 소중한 친구인.”
“…….”
“에디온과 로벨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