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0)
마족답게 사는 법-20화(20/385)
마족답게 사는 법 20화
020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1)
아르놀트가 해산을 선언했다.
레이얼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 무리를 해치며 루시어스에게 다가왔다.
반을 나서려던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바짝 다가온 레이얼이 해맑게 웃었다.
“루시어스! 요즘 어딜 그렇게 바쁘게 다니세요? 수업이 끝나기만 하면 쏜살같이 달려나가시던데.”
“별일은 아니다. 그나저나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괜한 뜸 들이지 말고 말해.”
“으음, 별일 아니라니. 아르놀트 선생님께 체육관 사용 허가를 받아 낸 걸 다 아는데.”
레이얼이 가볍게 투덜거리더니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그리곤 루시어스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혹시 오늘도 체육관 가세요? 저번에 오셨던 분이 루시어스의 파트너이신 거죠?”
“그래서?”
“에이, 이미 다 짐작하셨으면서. 혹시 두 분이 훈련하시는 거면 저희도 얹혀갈 수 있을까 해서요. 아르놀트 선생님께선 허가를 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아르놀트는 체육관 사용 허가에 대해 인색한 편이었다. 지도자 없는 개인훈련이 어린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루시어스와는 달리 아르놀트의 설득에 실패한 레이얼이 두 손을 간절히 모았다. 그를 내려다보던 루시어스가 잠시 눈을 굴렸다.
“해줄 수는 있는데.”
“와아!”
“그렇게 하면 내가 얻는 이득은 뭐지?”
그는 아예 팔짱을 낀 채로 레이얼에게 답해보라며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레이얼이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었다.
“훈련에 협조할게요. 합을 맞춰보려면 상대가 있는 편이 낫잖아요?”
“그거로는 부족한데. 너야말로 합을 맞춰보려면 상대가 있는 쪽이 좋을 테니까.”
어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루시어스의 핀잔에 레이얼이 머쓱하게 웃더니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그럼.”
“빚으로 달아 두기로 하지.”
다시 말을 꺼내려는 레이얼을 루시어스가 냉큼 막아섰다. 레이얼이 잠시 눈을 꿈뻑이며 그를 바라보다가 난감하게 웃었다.
“루시어스는 안 그럴 것 같으면서도, 참 약았어요.”
“칭찬 고맙다. 그럼 갈까.”
레이얼이 순식간에 루시어스에게 빚이 생겼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착실히 걸음을 옮겼다.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키안 또한 그들의 뒤를 천천히 따라왔다.
체육관으로 들어서자 미리 몸을 풀고 있었는지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레녹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기척을 느꼈는지 호흡을 가다듬고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루시어스가 손을 가볍게 흔들어 주곤, 꽤 놀란 표정인 레녹스를 향해 둘을 소개했다.
“체육관을 함께 쓰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다. 둘 다 나와 같은 반이지. 이쪽이 레이얼 페오, 그리고 키안 보어다. 레이얼, 키안. 내 파트너인 레녹스 자카르다.”
레녹스가 내심 당황하며 루시어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아무것도 모른 척,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레녹스에게도 꽤 좋은 경험이 될 테니.’
레이얼이 한 번 루시어스를 흘긋 바라보고는 의미 모르게 빙긋 웃은 후 공손하게 인사했다.
“방금 소개받은 레이얼이에요. 혹시 베타 클래스에 계시는 레녹스 선배님이 맞나요?”
“……맞다.”
“만나서 반가워요. 선배의 이야기라면 많이 들었어요. 검술 실력이 무척 훌륭하시다고요.”
“뭐? 아. 그게……, 그래.”
“기회가 되면 한 번 견식 하고 싶었어요. 몽마의 검술이라면 정평이 나 있으니까요. 오늘은 잘 부탁드릴게요!”
레녹스의 눈동자가 바쁘게 이리저리 구르며 흔들렸다.
아무래도 레이얼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못내 어색하고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루시어스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음을 삼켰다.
레이얼은 물론이고 시종일관 묵묵한 키안도 내심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대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레이얼은 활을, 키안은 너클을 들었다.
루시어스가 턱을 쓰다듬었다.
“레녹스, 혼자 상대할 수 있겠나?”
“그건 안 될 말이죠!”
루시어스의 말에 답한 건 레녹스가 아니라 레이얼이었다.
그가 활시위에 화살을 걸며 부루퉁하게 항의했다.
“저희 밑천만 드러나는 거잖아요. 레녹스 선배도 궁금하긴 하지만, 루시어스의 실력도 많이 궁금하거든요.”
“흐음.”
“무기를 드세요. 주로 쓰는 거 하나쯤은 있죠?”
솔직하고 발칙한 도발에 루시어스가 장봉을 들었다.
의외의 무기였는지 봉을 휘두르는 그를 한참 바라보던 레이얼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곤 키안과 한 번 시선을 나눈 후 먼저 공세를 퍼부었다.
시작은 레이얼이었다. 후방에 자리를 잡자마자 그가 활시위를 당겼다.
퉁!
현악의 줄을 튕기듯, 시위를 놓자마자 강한 빛을 발산하는 화살비가 내리꽂혔다.
‘우선은 시야를 교란시키고.’
절로 찌푸려진 시야 사이로 키안이 파고들며 레녹스에게 정권을 내질렀다.
루시어스는 저를 노리고 새로이 달려드는 화살을 가볍게 피하며 레이얼에게 접근했다.
그러자 레이얼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흘금 상황을 살피자, 그의 활을 떠나간 화살이 키안을 가림막 삼아 레녹스를 노리고 있었다.
‘일대일을 유도하는 척, 활의 긴 사정거리를 이용한 협공.’
부웅, 탕!
아쉽게 허공을 가른 장봉이 루시어스의 어깨 위로 가볍게 올라갔다.
“친구라 그런가? 합이 잘 맞네.”
“그게 저희의 강점이거든요.”
레이얼이 재빨리 후방으로 벗어나더니 시위를 당겼다.
치고 빠지기도 잘 해, 거리를 유지할 줄 아니 까다롭게 느껴질 만했다.
레녹스는 미처 화살을 살피지 못하고 어깨에 타격을 입은 채 키안을 상대하고 있었다.
‘실전이었으면 평범한 화살이 아니었을 테니, 레녹스는 이미 전투 불능이었겠어.’
상당히 잘 짜인 협공이었다.
특히 키안의 육감이 뛰어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기행이 돋보였다.
조금만 더 늦게 몸을 비틀었으면 레이얼의 화살은 레녹스가 아니라 키안에게 꽂혔을 테니까.
기꺼이 리스크를 짊어지는 담력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어때요, 생각보다 쉽지 않죠?”
레이얼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물었다.
루시어스가 가늘게 웃으며 답했다.
“빚을 달아놓은 보람은 있다.”
요즘 레녹스에게 신경이 집중된 탓에 레이얼이나 키안을 살피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이렇게 대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실력을 점검해보기도 쉬웠다.
그가 레이얼과 거리를 단박에 좁혔다.
‘사정거리에서의 우위를 뺏기면 어떻게 나오려나.’
“우와앗!!!”
코앞으로 봉 끝이 지나가자 놀란 듯 비명을 지르던 레이얼이 빠르게 태세를 정비하고 목단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작은 체구와 날렵한 몸놀림으로 급소를 향해 찔러 들었다.
원을 그리듯 봉을 회전시켜 공격을 막자, 레이얼이 다시 거리를 확보하며 뒤로 물러났다.
움칫.
레이얼이 몸이 순간 멈추었다.
뭔가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더 이상은 실력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가 천연덕스레 두 손을 들었다.
“저희는 여기까지만 해요. 충분한 것 같으니까. 계속하면 제가 지겠어요. 그쵸?”
“……누가 누구보고 약았다고 하는 건지.”
분명 숨겨놓은 수가 있을 것 같아 좀 더 몰아세워 보려는 찰나에 귀신같이 항복을 선언하다니.
“칭찬 감사합니다.”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루시어스가 어깨를 들썩이곤 장봉을 내려두었다.
레이얼이 흥미롭게 물었다.
“저쪽은 어떨 것 같아요?”
레이얼의 물음에 루시어스의 시선이 아직도 대치하고 있는 레녹스와 키안에게 닿았다.
루시어스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툭 내뱉었다.
“키안의 패배다.”
단호한 어조에 레이얼이 루시어스에게서 둘에게로 시선을 천천히 돌렸다.
순간 파괴력이 좋지만, 장기전에는 약한 키안과 공방이 안정적인 검술을 바탕으로 지구력 싸움에 강한 레녹스.
키안에게는 불리한 구도라 할 수 있었다.
레이얼이 눈동자만 굴려 다시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루시어스에게는 매번 지는 것 같아.’
첫 수업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루시어스의 실력을 좀 들춰보고 싶었을 뿐인데 이쪽의 패만 전부 내보이게 생겼다.
‘루시어스를 상대로는 본전도 못 건지겠어.’
그가 허탈한 웃음을 삼켰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 수학여행의 첫날이 도래했다.
* * *
대강당은 학생들의 소요 때문에 상당히 시끄러웠다.
기선제압이라도 할 생각인지 몸집을 크게 부풀리는 학생도, 목소리에 은근히 힘을 싣는 학생도 있었다.
루시어스는 레녹스와 한쪽 구석에 서서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제전과 관련한 첫 행사이기 때문인지 학생들의 기대가 이만저만하지 않아 보였다.
그런 와중, 레녹스를 발견한 몇몇 학생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야, 저기 봐. 그놈도 왔다.”
“아직 잘도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네. 진작 때려치운 줄 알았는데.”
“나 같으면 어떻게든 한 10년은 집에서 쉬려고 했을걸.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냐?”
“혹시 모르지. 뭔가 베는 손맛이 그리워진 걸지도.”
목소리를 죽일 생각도 없는지,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그들이 제멋대로 나누는 이야기들이 들렸다.
루시어스가 흘긋 레녹스를 바라보았다. 걱정과는 달리 그는 퍽 담담한 표정이었다.
“옆에 있는 마족이 이번 파트너인가? 앱실론인 것 같은데.”
“진짜 불쌍하다. 야, 얼마나 버틸지 내기할래? 난 이번 수학여행까지 버틴다에 건다.”
레녹스가 작은 목소리로 탄식했다.
“괜히 미안해지는군. 따로 올 걸 그랬나.”
“파트너인 걸 어필할 생각 아니었나? 음, 아니면 너도 내가 수학여행을 겨우 버틸 거라고 생각해?”
짓궂은 물음에 잠시 난감한 듯 웃던 레녹스가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웬만하면 내가 네게 한 방 먹일 때까진 버텨 줬으면 하는데.”
레녹스의 답을 들은 루시어스가 피식 웃었다.
팔락, 팔락.
슬슬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머리 위에서 손바닥만한 종이가 흩날렸다.
루시어스는 허공을 날고 있는 그것을 하나 집어 들곤 주변을 살폈다.
학생들이 하나씩 종이를 챙기고 있었다.
그나저나.
“학생 수보다 종이 수가 더 적은 것 같은데. 착각인가?”
“착각이 아닐 거다. 스크롤을 손에 넣지 못한 녀석들은 여기서부터 낙제인 거겠지.”
“호오……. 이런 말은 못 들었는데.”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받았던 보고서에서도, 학기 중에서도 보고받지 못한 사실이었다.
루시어스의 눈동자가 빠르게 강당을 훑었다.
먼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글렌이 스치듯 지나가는 시선을 받고는 몸을 움츠리며 안절부절못했다.
하멜조차 알지 못했는지 낭패감이 짙은 얼굴로 루시어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구성이 갑자기 변경된 건가?’
아카데미에서 그 정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마족은 학장인 글렌을 제외하면 단 한 명뿐.
‘무슨 생각이지, 아르놀트 선생.’
아쉽게도 이곳에선 아르놀트의 기척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래도 먼저 이동한 모양이었다.
루시어스가 스크롤을 다시 살펴보았다.
종이의 앞면에는 이동 술식이, 뒷면에는 좌표가 기입되어 있었다.
‘여기가 어디더라. 좌표상으론 동쪽인 것 같으니, 헨즈 지대나 스팃 섬이겠군.’
그가 확인 겸 레녹스에게 물었다.
“혹시 낙제하면 어떻게 되지?”
“궁금하면 한 번 낙제해보겠나?”
장난스러운 답에 루시어스가 다시 웃음을 머금었다.
레녹스가 마주 웃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스크롤에 마력을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