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05)
마족답게 사는 법-205화(205/385)
마족답게 사는 법 205화
205 학술제 준비 (1)
레녹스가 본가에 들러 자리를 비울 동안 루시어스는 조별 과제의 연장선으로 참가하게 된 셀티아 학술제를 준비해야 했다.
셀티아 학술제는 마계에서는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학술제로, 성년과 미성년을 가리지 않고 본인의 연구와 조사 자료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구스타프보다는 덜해도 많은 마족이 모이기 때문에 자신을 어필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특히 토르벤 학생들은 아카데미 차원에서 심혈을 기울여 학술제를 준비하기도 했다.
“연구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학술제에 나갈 거지?”
“음…….”
어쨌든, 나름대로 의미가 깊은 자리이기 때문에 아르놀트는 루시어스를 포함한 조원 모두를 교무실로 불렀다.
앉아 있는 아르놀트 옆으로 조원들이 서서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조별 과제로 가볍게 시작한 과제를 학술제까지 가져가려니 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다.
자료를 수집해서 근거를 보완하기도 해야 하고, 분석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할 게 많고.
에스메리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걱정이 많네요. 나가게 되면 자료를 보강하는 게 최우선이겠죠. 후속 연구를 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학생이라 한계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무엇보다 그녀는 조사 자료에 대한 다른 마족들의 반응이 걱정스러웠다.
열심히 준비해서 학술제에 발표했는데 냉담한 반응이면 맥이 빠질 것 같았다. 특히 아이런은 비전투계 마족인 만큼 학술제에 거는 기대가 클 텐데.
“걱정하지 마.”
“……응?”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진 에스메리다의 어깨를 루시어스가 옆에서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나는 우리가 한 과제가 정말 마음에 들어. 솔직히 과제를 하면서 즐겁기도 했잖아.”
“그렇지, 마계의 여러 곳을 방문할 수도 있었고. 과제라기보다는 좀…….”
그녀가 아르놀트의 눈치를 흘긋 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행 같았지.”
모두 함께 떠나는 여행.
아르놀트는 다 듣고 있으면서도 듣고 있지 않은 척 시선을 거둔 채 미소만 짓고 있었다. 루시어스가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기울여 속삭였다.
“내 생각인데, 이 조사는 생각보다 반응이 훨씬 좋을 거야.”
“……그럴까?”
“날 믿어 봐라.”
루시어스가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마음 한 구석에서 조금씩 커져 가던 걱정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왠지 루시어스가 그렇다니 정말 그럴 것 같았다.
‘루시어스는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으니까.’
안 될 것 같으면 냉정하게 현실부터 짚어 줄 이가 아니던가.
왠지 머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르놀트 선생님이 괜히 학술제에 가보라고 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반응이 좋으면 오히려 아이런에게도 무척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반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때도 그렇게 덜덜 떨던 아이런이 얼마나 발표를 잘 할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후후, 그럼 발표 담당은 역시 아이런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
“으윽…… 벌써 위장이 꼬여.”
“잘 하던데.”
가만히 있던 이리누슈카가 아이런의 머리를 큰 손으로 두드리듯이 쓰다듬었다.
아이런은 몸을 베베 꼬면서도 발표를 하기 싫다고는 하지 않았다.
아르놀트가 어깨를 들썩이고는 턱을 괴며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다들 많은 마족이 모이는 자리라고 긴장하는 것 같았는데.
루시어스의 한 마디에 긴장이 풀렸다.
“그럼 나가는 걸로 알고 이름을 올려놓겠다. 담당 선생으로는 내 이름을 올려놓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거 듬직하네요.”
네임드는 아니라도 워낙 열성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탓에 아르놀트 선생의 이름은 충분히 알려져 있었다.
특히 사이러스 출신이라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니 그의 이름은 어느 정도 학생들을 보호해 줄 것이다.
아르놀트가 셀티아 위원회로 전달할 참가 신청서를 작성하며 문득 기억났다는 듯 물었다.
“학술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지?”
“그게…….”
“조사도 조사지만, 나가려면 훈련을 좀 해야 할 거다. 미리 말해 놓으면 수업 몇 시간 정도는 빼 주마.”
솔깃한 제안이다. 루시어스의 눈에 슬며시 이채가 감돌았다.
셀티아 학술제.
‘아카데미에 소속된 미성년 마족’들을 위한 경쟁과 화합의 장!
지덕체를 고루 갖춘 어린 마족들이 서로의 기량을 뽐내며 열띤 토론을 하며 문제를 푸는 대회!
그렇다면, 지덕체란 무엇이냐.
땅을 접어 달려 누구보다 빠르게 정답을 외치고, 날카로운 검을 바람처럼 휘둘러 상대 팀을 쓰러트리는 것.
그저 자신의 답을 고수하는 것.
자신이 생각한 바를 정답으로 밀어붙이는 능력! 자신과 반대 의견을 내놓는 팀들을 모두 묵살…… 아니, 설득하면 되는 것이 바로 훌륭한 지덕체의 완성이라 하겠다!
요컨대.
설득(물리).
“그럼 부탁드려요. 준비할 게 많을 것 같아서요.”
“그래, 알겠다. 무리하진 말고.”
“…….”
루시어스가 냉큼 대답했다.
아르놀트가 알았다며 추가로 공, 결석 처리 문서를 작성했다.
조원들은 서로 시선을 나누다가 슬금슬금 루시어스에게로 눈을 돌렸다.
루시어스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루시어스는 그대로 아르놀트에게 체육관 사용 허가를 받아 조원들을 데려갔다. 뒤에서 따라오던 셋이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우리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죽을 것 같기는 해도 죽지는 않을 만큼 훈련을 시키니까…… 아마 죽지는 않겠지.”
“좋은 기회이기는 하다.”
“그건 그렇지만.”
아이런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좋은 기회라는 건 알고 있다. 루시어스가 하라는 대로 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지 않나.
전투와 관련한 일이라면 더 그랬다.
몸을 쓰는 법에서부터 힘을 사용하는 법까지. 루시어스의 가르침은 다른 선생님들보다 더욱 실전적이며 합리적이었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라는 명을 받고 마왕성에서 파견된 스파이가 분명하다는 음모론까지 나왔을까.
‘그래도 이건 정말 좋은 기회지.’
아이런이 두 손을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약육강식이 당연한 마계가 아니던가.
약해서 억울할 일은 있어도 힘이 세서 손해 볼 일은 없다.
인생의 밑거름이 될 게 분명하다!
학생들이 서로 의견을 모았다. 시선으로 대화를 마친 그들이 깊게 심호흡했다.
‘……따라와 줘서 다행이네.’
루시어스는 등 뒤로 의기투합하는 학생들을 흘긋 곁눈질하고는 피식 웃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처음엔 전하께 성과를 보고해야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능력을 성장시키려 했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어지지 않았는가.
그러니 이번 훈련은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였다. 루시어스는 그저 친구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다.
친구들이 잘 따라와 줘서 다행이다.
“학술제에 대해선 알고 있지?”
“알고 있지.”
“마음의 준비는 했고?”
체육관에 도착한 루시어스가 그들을 보며 물었다. 셋의 눈이 횃불처럼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후우…… 와라.”
음, 꽤 좋은 마음가짐이다.
루시어스가 잠시 턱을 매만졌다.
지금 셋의 수준은 꽤 높은 편이다. 이리누슈카나 에스메리다는 물론이고, 아이런도 기계 장치를 이용한 공격에 퍽 탁월한 재능이 있다.
가만히 둬도 알아서 피어날 것이다. 봄이 오면 꽃이 피어나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하지만 그들의 ‘봄’이 당장 닥쳐 올 학술제는 아니겠지.
“자, 우선 선택지를 줄게.”
“말해 봐.”
“첫째,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것. 셀티아 학술제가 한 번으로 끝나진 않을 테니까 이번엔 분위기나 다른 학생들의 수준을 보고 오기만 하는 거지. 입상을 노리지는 않는 거야.”
“으음.”
고민하는 듯 이리누슈카의 눈이 밑으로 굴렀다. 이리누슈카는 무척 조심스러운 편이니 분명 그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겠지.
전투엔 자신이 없는 아이런도 고민을 깊게 하고 있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은근히 호전적인 에스메리다는 루시어스가 제안한 첫 번째 선택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셋의 시선이 모였다.
“칼을 들었으면 뭐라도 베어야 하지 않겠어? 입상을 노리고 학술제에 나간다. 무조건 준우승 이상을 목표로 하는 거지.”
“그건 좀 힘들지 않나.”
“되게 만들어야지. 도와줄게.”
루시어스가 굳이 의견을 묻는 건 그들이 강제적으로 훈련을 받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다.
쿵!
이리누슈카가 앞으로 성큼 나서며 지팡이를 꺼내 바닥을 찍었다. 그러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토르벤에서 많은 걸 배워 왔다.”
“그렇다 했지.”
“……그걸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좀 더 많은 걸 배우고 싶다며 그녀의 눈이 보기 드물 정도로 반짝거렸다. 타리크를 처음 봤을 때의 레이얼도 저런 눈을 했었다.
루시어스는 바로 아이런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런이 움칫 떨더니 뺨을 긁적였다.
“그…… 사실 나는 너도 알다시피 기계에만 관심이 있었으니까. 이리누슈카처럼 뭔가 배우거나 강해지고 싶다는 건 모르겠다.”
“그래, 이해한다.”
“하지만 하나 곰곰이 생각하긴 했지.”
아이런이 샐쭉하니 입을 내밀었다. 괜히 루시어스의 눈치를 보던 그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학술제야 또 하겠지만, 넌 어차피 그 전에 졸업해 버릴 게 아니냐.”
“나 말인가?”
“다른 애들도 내년엔 승급할 거 아니냐. 그럼 반이 또 갈리게 될 텐데, 나는 뭔가 한다면 우리 조원들끼리 해 보고 싶거든.”
“……그건 조금 놀랍네.”
“나중에 후회할 것 같으면 어떻게 되든 도전해 보는 게 났잖아. 내가 발목을 잡을 것 같기는 한데, 안 그러게 최대한 노력해 보마. 어쨌든, 뭐…….”
우물우물 늘어놓던 아이런이 머리를 벅벅 긁다가 버럭 소리치듯 외쳤다.
“뭐! 어쨌든 하겠다고! 한다!”
얼굴이 잘 구운 황토처럼 익었다. 쭈뼛쭈뼛하게 서 있는 아이런이 낯부끄러운 말을 했다고 연신 중얼대고 있었다.
에스메리다는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혹시 차가운 게 필요하지는 않냐며 아이런을 옆에서 즐겁게 놀리고 있었으니까.
“자, 그럼 숙제를 내줄게.”
“……숙제?”
당장 워런 숲에 던져 놓으려고 한다거나, 아니면 차라리 결투라도 할 줄 알았는지 학생들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루시어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톱만한 씨앗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자, 이거다.”
“……?”
“이걸.”
“……던져서 맞추는 게 숙제인가?”
이리누슈카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꽤 작아서 멀리서 사격하라면 맞추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것도 이런 씨앗 몇 개를 동시에 맞추는 걸 요구한다면…… 하나라도 제대로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에스메리다도 마찬가지였다. 무척이나 민첩한 대신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었으니까.
다만 그런 훈련이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빠르고 정확하게 정답을…… 아니 정답을 맞히려는 다른 학생들을 밀어내야 하지 않나.
아이런은 말이 없었다. 저걸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루시어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대체 얼마나 더 대단한 걸 시킬지 감도 오지 않아 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너희들을 위한 모의고사를 준비해야 해서 지금부터 바빠질 예정이거든. 그러니.”
“……응?”
“사흘 내로 키워 와라.”
“……?”
“정성스럽게 돌보면 꽃을 피워 줄 거야.”
“……??”
“꽤 예쁘니까 기대해.”
상상도 하지 못한 숙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