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06)
마족답게 사는 법-206화(206/385)
마족답게 사는 법 206화
206 학술제 준비 (2)
조원들은 루시어스의 수업이 정말 별거 아닐 거라 생각했다.
겨우 씨앗을 돌보는 일이 아닌가.
적당히 화분을 구하고 흙을 덮어 주고 물을 주면 되겠지. 사흘 만에 꽃까지 피는 모양이니 아마 금방 자랄 것이다.
무슨 의도로 이걸 하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꽃을 피워 가면 다음 지시를 내려 주지 않을까?
그렇게 씨앗을 돌본지, 단 하루.
“생각보다 쉬운데?”
“오…….”
물을 주자마자 뽁! 하고 연둣빛 떡잎이 나더니 잠시 눈을 떼기가 무섭게 쑥쑥 자라 꽃망울이 맺혔다.
셋은 서로의 화분 앞에서 무슨 색의 꽃이 필지 무척 기대하며 개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푸시시식.
그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
“……??”
꽃망울이 맺히자마자 식물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며 꽃이 풀썩 쓰러져 버렸다.
정말 풀썩. 맥없이.
바람이 빠진 풍선이 이보다는 기운찰 것 같다.
그들은 갑자기 픽 죽어 버린 꽃…… 이 될 예정이었던 식물을 보다가 서로 시선을 나누었다.
그리고 입을 꾸욱 다물었다.
‘루시어스한테 가서 새 씨앗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씨앗이 처음부터 썩어 있었나?’
‘해…… 해치웠나?’
각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서로 빠르게 오가는 시선 속에는 단 하나의 의미만 담겨 있었다.
‘루시어스에게 뭐라고 하지?’
지금 이 상황이 매우.
아주 매우! 유감스럽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걸 루시어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루시어스에게 실토하는 게 좋을지 생각하며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하니 참 이상했다.
루시어스가 내준 숙제였고, 루시어스는 다른 종족도 아닌 드라이어드였다.
그가 정말 이걸 몰랐을까?
“…….”
“……….”
“………….”
시선이 빠르게 오갔다.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내려진 결론은 비슷했다.
루시어스는 이미 이렇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자신들에게 이걸 키워 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렇다면 사흘 내로 어떻게든 키워야 했다. 루시어스가 말한 대로 아주 정성스럽게 돌봐야 했다.
“우선 이게 뭔지부터 알아 봐야겠다.”
“립톤 선생님께 가 볼까?”
“드루이드셨지. 좋은 생각이야.”
드루이드인 립톤 선생님이라면 식물에 대해서 상당히 해박할 테니 이게 무슨 식물인지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조금 도움을 청하는 건 괜찮겠지.
그들이 성큼성큼 보건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누가 오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한적한 일상을 보내던 립톤은 멀리서 느껴지는 학생들의 기척에 조용한 시간은 지났구나,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셋을 위한 찻잔을 준비하고 차를 정성껏 우려 놓자 기다렸다는 듯 벌컥 문이 열렸다.
“립톤 선생님!”
“누군가 했더니 아르놀트 선생님의 반 학생분들이셨네요.”
아이들을 환대해 주면서도 립톤은 저를 찾아온 세 명이 참 어색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예티고, 하나는 오우거고, 하나는 드워프라.
싸우다가 어디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일일까. 고개를 기울이던 립톤의 시야에 그들이 들고 있는 화분이 보였다.
“어디 아픈 건 아니에요. 그냥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오, 말씀해 보세요.”
“……이 식물인데요.”
에스메리다가 립톤에게 다가가 화분을 보여 주었다. 맥없이 쓰러진 식물이 눈에 띄었다.
립톤은 이 식물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아르놀트가 또 심술이라도 부리고 있는 걸까? 이거라면 아이들이 당황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몰라.”
“아…… 모르시나요?”
“아, 아니요. 몰라요.”
“립톤 선생님도 모르시면 도서관에라도 가서 찾아 봐야 하나?”
아이들의 시선이 살짝 가늘어지며 옆으로 기울였다. 립톤은 무구하게 눈을 깜빡이다가 잠시 이마를 짚었다. 창백한 얼굴에 잠시 열기가 돌았다.
좀 더 어른스럽게 말해야 하는데.
“흠흠, 그러니까. 몰라입니다.”
“……?”
‘입니다’를 붙인다고 딱히 어른스러워지는 건 아니었다.
립톤이 이번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가 똑 떨어진 시선을 차마 들지 못했다.
열기가 얼마나 몰렸는지, 누가 보면 몇 백 년 만에 얼굴에 화색이 돈다고 할 것 같았다.
그가 겨우 변명을 덧붙였다.
“그 식물의 이름이 ‘몰라’입니다.”
“아.”
그들이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립톤은 오해를 풀었다는 생각에 무척 다행스러워하며 작게 헛기침했다.
‘몰라’는 상당히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식물이었다. 그 특징이 무엇이냐 함은…….
“이 식물이 왜 죽는지 아무도 몰라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몰라’ 랍니다.”
“……예?”
그런 이유였다.
립톤은 당황스러워하는 아이들에게 몰라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몰라의 꽃은 시중에서도 비싸게 거래되는데, 발아하기 쉬운 만큼 작은 스트레스에도 쉽게 죽기 때문이었다.
전문가 몇 명이 달려들어도 꽃 하나를 개화시키는 데에 씨앗이 100개는 족히 들었다.
얼마나 키우기가 힘드냐면.
햇볕이 없으면 죽고, 햇볕이 있으면 죽고, 물을 주면 죽고, 물을 안 주면 죽는다. 바람이 불면 죽고, 불지 않아도 죽는다.
재채기 소리 한 번에 푸쉬쉬 쓰러져 버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심하면 씨앗을 땅에 덮는 순간 죽기도 했다.
긴 연구 끝에 몰라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마력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매일 마력을 조금씩 공급해 주면 생존력이 확 높아진다는 것이다!
덕분에 꽃 하나에 드는 씨앗이 1000개에서 100개 정도로 줄었다.
정말 대단한 발견이었다.
“그렇군요. 마력을 조금씩…….”
“음, 그게 문제였군.”
“물론 흙이나 물 문제도 있겠지만.”
학생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데 립톤이 말을 얹어 주었다.
“그런데 그 마력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어요. 저도 젊을 때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처참히 패배했답니다.”
“…….”
젠장, 이걸 어떻게 키우라는 거야?
아이런들은 조금 울고 싶어졌다.
* * *
“슬슬 립톤 선생에게 몰라에 대해 들었겠군.”
루시어스가 책을 내려 두고 의자에 몸을 묻었다. 책상 위에서 루시어스와 함께 책을 읽고 있던 나비가 가늘게 울며 코끝을 뺨에 부볐다.
굳이 아이들에게 몰라를 피워 오라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몰라는 정말 다루기 까다로운 식물이었다. 완벽한 환경을 조성해 주고 적절한 마력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절대 꽃이 피지 않는다.
루시어스도 몰라를 꽃피워 내려면 하루 내내 화분 옆에 붙어 있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돌연사해 버리고 마는 게 바로.
‘몰라’였다.
“그래도 셋이 붙어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안 그러니?”
“삐!”
나비가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어스는 그들에게 조금 더 섬세하고 즉각적인 힘의 사용법을 알려 주고 싶었다.
물론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알려 줄 수 있었다. 루시어스가 당장 창을 들고 매섭게 약점을 들쑤시면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마냥 좋은 가르침은 아니지 않을까?
깨닫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스스로 하려고 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몰라는 정말 좋은 학습 재료가 될 것이다. 몰라의 꽃을 피우기 위해 그들은 온도를 차갑게 떨어트리기도, 따뜻하게 올리기도 할 것이다.
바람을 적당히 불게 하기도 하겠지. 조금이라도 시들 낌새를 보이면 몰라를 죽이지 않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신속하고 즉각적인 판단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리누슈카와 에스메리다의 힘이 닿지 않는 부분은 아이런이 해결해 줄 거고.”
화초를 키우기 위해 다양한 기계를 고안하고 만들어 보는 건 그에게 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비전투계 마족들에게 아카데미 차원에서도 많이 지원하고 있다고 하기는 하지만, 루시어스가 보기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특히 활용이 문제였다.
제작을 지원해 주고 지식을 알려 주면 뭘 하나. 써먹을 곳이 없는데.
어쨌든, 몰라의 꽃을 피우기 위해 루시어스는 그들이 온갖 노력을 해 주길 바랐다. 사흘 후 그들의 힘으로 피어날 꽃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기대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안 그러니?”
“뿌.”
“네가 도와줘서 참 다행이구나.”
나비는 피곤하다는 듯 투덜투덜 짜증 내듯 울었다. 하지만 곧 루시어스의 무릎 위에서 배를 뒤집고 그의 손길을 받았다.
그릉그릉 기분 좋은 소리도 냈다.
루시어스는 나비를 만져 주며 다시 본인이 하고 있던 일거리들에 시선을 던졌다. 종이들이 이리저리 분류되어 높게 쌓여 있었다.
그가 나비와 하고 있었던 일은.
근 10회분의 학술 자료를 항목별로 정리하고 100여 권의 권장 도서를 모두 확인, 요약집을 만든 후 10회분의 예상 문제를 추출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셋 개개인의 수준에 맞춰 문제지를 재구성하고 있었다.
즉, 30회 분량의 모의고사를 만들고 있다는 말씀.
그걸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아무리 루시어스라도 이걸 혼자 하루 만에 뚝딱 해치울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나비가 옆에서 도와준 덕분에 일을 조금 덜었다.
하멜 옆에서 뭔가를 배웠는지, 아니면 똑똑한 건지 글자를 순서대로 구분할 줄 알더라.
“그래도 끝이 보이긴 하는군.”
루시어스는 잠시 내려 두었던 책의 책장을 다시 넘기며 중얼거렸다.
셀티아 학술제.
학술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름이 아니라 ‘누가 제일 강한가’였다.
발표를 하기 위해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임과 동시에 다른 팀을 견제해야 했다. 팀은 완벽한 분업을 위해 무척이나 전략적인 준비를 해야 했다.
제시되는 논의가 무엇인지, 결과는 무엇인지 따위는 이미 뒷전이었다.
논리가 어긋났다고? 상관없다.
이기면 정론이다.
승자가 영웅이 되는 게 당연한 세상이다. 목소리 크고 힘센 놈이 외친 답이 정론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조금 덜 민첩해서 발표하지 못했거나 이의가 있다고 외치지 못했다면 그냥 장갑을 집어던지며 결투를 신청하면 된다.
결투에서 기회가 온다.
그걸 위해 각 팀 앞에 장갑이 무지개색으로 준비되어 있다. 마음에 드는 장갑을 그때그때 던질 수 있도록.
‘하지만 그런 건 내가 못 보지.’
학술제에 나오는 논의들은 대부분 기본 중 기본이었다.
본인의 논제를 잘 파악하고 있고 학문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서 정말 기본적인 것만 알고 있으면 어떤 말에도 받아칠 수 있다.
혹시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를까 싶어 셀티아 위원회 측에서 추천하는 도서들도 전부 읽어 보았다.
그리고 루시어스는 판단했다.
이건 전부 상식 중 상식이라고.
결투하고 이기는 건 좋다. 강한 놈의 답이 정론이 되는 것도 상관없다.
하지만 어쨌든 곡론은 안 된다.
이긴다면 깔끔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완벽하게 이겨야 하지 않겠나. 나는 친구들을 그렇게 무식한 놈들로 키우지 않았다.
어디 가서 우리 반 애들이 망신살 겪는 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본다.
“이 정도면 다 외우는 데 일주일 정도면 충분할 거고.”
어차피 반쯤은 아는 내용일 텐데.
일주일이면 넉넉할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을 바보로 아느냐고 불만스러워할지도 모른다.
“이걸 다 외운 다음엔 싸우면서도 물음에 답할 수 있게 훈련하면 전투 능력 향상에도 좋겠다.”
“삐!”
루시어스가 즐겁게 미소 지었다.
오래간만에 재미있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