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14)
마족답게 사는 법-214화(214/385)
마족답게 사는 법 214화
214 장로 회의 (2)
마왕은 이게 무슨 깃털인지 알고 다시 이마를 짚었다.
선왕들이 어째서 그렇게 천계를 싫어하고 천제라면 학을 뗐는지 이해가 갔다.
“…….”
천사의 힘은 날개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하품천사의 날개보다 상품 천사의 날개가 더욱 많고, 희고 크며 아름답다.
그렇다, 이건.
천제의 깃털이었다.
한 번 뽑히면 관리하고 자라나는 데만 한 세월이라는 깃털을 고작 이런 데에 쓰다니.
천제의 깃털이라면 중간계에서는 강산을 변하게 할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을진대.
대천사들은 이걸 말리지도 않나?
‘내가 이 편지를 뜯을 건 어떻게 안 거고.’
……그렇네.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하다.
마왕은 정말 아무 편지나 덥썩 들었을 뿐이었다. 이 편지가 좀 더 특별해 보였다는 그런 이유가 아니라, 그냥 가장 가까이에 있어서 집었을 뿐이다.
설마 하며 다른 편지도 뜯어보자.
살랑.
깃털이 내려앉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편지를 안 읽는다는 이유로 지금 편지 하나하나에 제 깃털을 동봉해서 보낸 건가?
“이 또라이 같은 놈이.”
“칭찬 감사합니다.”
마왕이 욕지거리하자마자 깃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며 맑은 빛을 내뿜었다.
빛이 마왕의 책상 위에 모이더니 아주 작은 천사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백발을 그저 흘러내리도록 둔 남자. 머리카락 사이로 맑은 하늘의 청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가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간 격조하셨습니다.”
“…….”
“왕좌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게 전해 듣게 된 지 500년이 지났습니다. 마계에서 문을 걸어 잠근 지도 어느새 500년이 지났다는 소리겠군요.”
얘는 이 얘기를 또 하고 있다.
지금까지 같은 내용의 편지만 계속 보냈으면서.
지루하지도 않은지 편지 내용을 줄줄이 읊는 천제……. 아니, 천제의 분신을 마왕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야기를 마친 천제가 마왕을 바라보며 눈을 천천히 깜빡이더니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언제쯤 제 편지를 제대로 읽어 주실지 시름겨워하고 있던 참입니다. 아, 혹 여전히 신을 믿으십니까?”
“…….”
이놈도 참 여전하구나.
진심인지 농인지 모를 질문을 건네곤 마왕의 답을 기다리던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테이블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된 모양이지. 마왕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편지는 잘 받아 보았다. 요컨대, 그간 끊겼던 마계와의 교류를 재개하고 싶다는 말이겠지?”
“그렇습니다.”
천제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뭔가를 깊게 고민하는 듯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기울였다.
“물론 시기상조라고 여길 수는 있겠지요. 500년이 짧은 세월이 아니기에 더더욱 말입니다.”
“…….”
“슬슬 마계 쪽에서도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겠죠. 저어하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마왕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천제의 입에서 이렇게 상식적인 말이 나올 줄이야. 내일 갑자기 마계의 달 하나가 뚝 떨어져 달이 하나가 된대도 믿겠다.
‘무슨 꿍꿍이속이지?’
언제까지고 문을 닫아둘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뤼디거가 슬슬 문을 여는 게 좋지 않겠느냐 묻기도 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중간계와 천계, 그리고 마계로 이어지는 순환이 오래 끊겨 있어 봤자 좋을 일이 없다. 계약을 통해 중간계로 나간 마족이 죽고, 천계와의 관계 악화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들은 싫든 좋든,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살아야 했다.
다만 마왕이 걱정하는 건 루시어스……, 정확히는 이후 마계를 이끌어 갈 마족들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들은 한 번도 마계의 문이 열린 걸 본 적이 없었다. 천계나 중간계에 관해서도 책이나 양육자에게 겨우 들었을 정도일 것이다.
변화는 혼란을 가져온다.
그렇기에 마왕이라 하더라도 절대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될 사안이었다.
“천사들은 정해진 수명이 없기에 세대교체가 무척 느린 편이지요. 그러니 이렇게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마왕께서 느낄 당혹감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요. 저희도 재촉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 번에 문을 활짝 열어달라는 것도 아니고요.”
마왕은 의뭉스러운 눈으로 천제를 바라보았다.
마족이 천사를 싫어하듯, 천사 또한 마족을 싫어한다. 그건 영혼에 새겨져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아주 본능적인 일이었다.
지금까지 마족에게 존댓말을 쓰는 천사는 없었다. 마왕과 천제 사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첫 만남에 드잡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현 천제는 마왕인 제게 존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계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체 천계에서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마왕께서 허락하신다면 기회가 닿는 대로 한 번 마계에 찾아뵈려고 합니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예, 물론입니다. 사절단을 크게 구성할 생각도 없습니다. 첫 시작이니 소소하게 몇 명만 보낼 생각이에요.”
그래도 형식상으로 보내는 사절로 끝내고 싶지는 않으니 대천사 한 명 정도는 윤허해 주셨으면 합니다.
천제의 조곤조곤한 부탁에 마왕의 시선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천제는 탐색하는 듯한 시선을 의연하게 버티며 초지일관 미소만 짓고 있었다.
“천제, 대체 무슨 꿍꿍이지?”
“저희가 원하는 건 정말 교류뿐입니다. 전하께서 선대와 다르듯이, 저 또한 선대 천제와는 다르니까요.”
“마족과의 화합을 원한다?”
“시기가 허락한다면.”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마왕이 천제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서로 이전처럼 으르렁거리기만 하며 지낼 바에는 차라리 손을 잡고 화합을 하는 게 나았다. 천계와 의미 없는 소모전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당장 두 세계의 왕이 이렇게 마주 앉아 차분하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관계 개선의 여지는 있다.
“이건 천계 전체의 입장인가?”
고민하던 마왕이 물었다.
천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
“왕의 숙명을 짊어지고 태어나, 눈을 뜬 그 순간부터 모든 천사의 수장으로서 천계를 이끈 몸입니다.”
힘으로 모든 것을 쟁취하는 마족과는 달리 천사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직위가 정해진다.
천제도 마찬가지였다.
마신이 자격을 충족한 마족에게 축복을 내려준다면 천신은 태어날 천사에게 축복을 내려 자격을 만들어준다.
“제가 곧 천계입니다.”
오만하기는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제의 명령을 거스를 수 있는 천사는 하나도 없다. 그가 마계와의 교류를 선택했다면 당연히 따를 것이다.
천제의 눈매가 곱게 접혔다.
“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게도, 그대께서도 저도 서로에게 악감정은 없지 않습니까.”
“만나자마자 전쟁부터 일으켰던 수많은 선대 마왕들에 비하면 그렇지.”
“그렇지요. 게다가 500년 동안 왕위를 지킨 마왕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저는 가능하면 당신의 치세가 길게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왕이 신중하게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단을 내린 듯 제안했다.
“마왕 즉위 기념식.”
“……!”
“곧 즉위 500주년을 맞이하는 참이다. 천계와 마계의 원만한 교류를 위한 시작으로 즉위 기념식에 와서 자리를 빛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군.”
“호오…….”
“어떤가. 참 좋은 생각이 아닌가?”
또라이 같은 놈이라 욕해도 천제는 명실상부 천신의 뜻을 받들어 태어난 왕의 재목이었다. 천계의 이득에 반하는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그는 천계의 ‘이득’을 위해 과연 어디까지 자존심을 굽힐 수 있을까.
과연 마왕의 즉위 기념식에 참석해 축하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들로서는 얼굴을 붉히며 크게 화를 낼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다.
마왕은 당연히 거절의 말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의 예상과는 달리 천제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즉위 기념식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을 보내면 반발도 적을 테니, 자연스럽게 교류를 시작할 수 있겠죠.”
이 녀석, 정말 진심인가?
지난 100년 동안 저쪽의 연락을 철저히 무시했는데도 답신이 제대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며 쳐들어오지 않은 것만 해도 용하기는 했다.
그래도 이렇게 순순히 즉위 기념식에 오겠다 할 줄은 몰랐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교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한다고?
……마계와의 교류가 천계에 가져올 이득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좋아, 대화는 이걸로 끝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내부 회의를 거친 후 공식적으로 전달하도록 하지.”
“회의……?”
“사절단을 맞이해야 하는 일이니만큼, 우리 쪽에서도 논의해야 할 사항이 많아. 양해해 줄 거라 믿겠다.”
불만스러워도 참으라는 뜻이었다.
천제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렇게 알죠.”
“아, 조약의 허점을 파고들어 분신을 보내는 걸 눈감아 주는 것도 한 번뿐이다. 두 번은 없어.”
“네, 그건 제 실책이 맞습니다. 답이 느려지니 조급해졌나 봅니다.”
“알겠으면 이만 돌아가라.”
마왕은 정말 마지막까지 조금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의문스러움만을 남긴 채 천제의 분신이 서서히 사라져갔다.
여전히 마왕은 천제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 * *
이야기를 마친 마왕이 미간을 가볍게 짚었다.
그간 이런 일들이 있었을 줄은 몰랐던 터라 루시어스도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턱을 매만졌다.
“그만큼 자존심을 건드렸으면 떨어져 나갈 법도 한데…….”
“그러게 말이다.”
“뭔가 있네요.”
“네 생각에도 그렇지?”
천사는 정말 귀찮게 구는구나.
그동안 희희낙락 알아서 잘 살던 마계에 갑자기 천사를 뿌리는 것만큼 귀찮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마계의 문을 연다는 건 중간계와의 교류도 시작된다는 의미이니…….
일이 더 많아질 게 분명하다.
‘끔찍하군.’
지금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물론 정 귀찮으면 천계가 뭐라고 나오든 거절하고 문이나 꽉 걸어 잠그는 것도 방법이기는 했다. 그쪽에서 억지로 열고 들어온다면 전쟁이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버틸 순 없는 일 아닌가. 마계의 폐쇄는 루시어스같은 어린 마족들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독이 될 것이다.
당장 몸이 편해지자고 그 사실을 외면할 순 없다.
루시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교류 자체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쪽도 환영할 만한 일이죠. 천제가 공인한 일이니, 천사들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 겁니다.”
마왕 또한 루시어스와 같은 생각이기는 했다. 다만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 주저가 되었을 뿐이다.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말했다시피 네 정체를 감추기 위해 학생들을 초대하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상황이 꼬여서 어느 쪽이든 껄끄럽게 됐어.”
“……네?”
학생들을 초대하지 않으면 정체에 대한 소문이 일파만파 퍼질 것이다. 입을 단속시킨다 해도 한계가 있겠지.
즉위 기념식에는 너무나 많은 눈과 입이 모이니까.
정체가 밝혀지면 이전처럼 아카데미를 다닐 수는 없게 될 터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들도 루시어스를 부담스러워할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학생들을 초대했다가, 그로 인해 학생들이 위험에 빠지기라도 하면.
루시어스가 감당해야 할 죄책감과 책임이 너무나 무거워진다.
“학생들을 초대하면 그들이 위험에 빠질지도 모르지. 천계의 속셈을 아직 알 수 없으니 말이다.”
“…….”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학생들을 초대하고 싶단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네가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쪽을 선택하고 싶어.”
이는 단순히 루시어스가 학창 생활을 길게 지속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욕심일 뿐이었다.
마왕이 조심스럽게 재차 물었다.
“그렇게 해도 괜찮겠니?”
천계와의 교류를 시작하고, 학생들을 즉위 기념식에 불러도 괜찮겠느냐.
루시어스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마왕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