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26)
마족답게 사는 법-226화(226/385)
마족답게 사는 법 226화
226 즉위 기념식 (2)
“이 안하무인한……!!”
도발적인 언사에 마족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하멜에게서 느껴지는 기도가 보통 마족답지 않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여기서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는 명백히 마왕의 권위에 반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들은 어쨌든 하멜이 ‘5장로의 대리’로 자리에 참석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신성한 즉위 기념식을 더럽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하아.”
루시어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멜 녀석이 저렇게 나오는 것도 어쩔 수는 없는 일이지만, 여기서 큰 소란을 내지는 않았으면 했다.
고위 마족들의 격노에 약하거나 어린 마족들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마왕이 ‘마왕성을 개방’한 의미가 없어진다.
루시어스는 이 상황을 말릴 수 있을 만한 마족에게 시선을 보냈다.
아쉽게도 다른 장로들은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잘못하면 ‘장로들이 합심해 마왕에게 드는 반기’로 인식될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여기서는 그녀뿐이다.
마왕이 끔찍이 아끼는 여동생, 마리엘라가 일어나 하멜의 뒤에 섰다.
“다들 하멜 경이 그렇게 궁금한가?”
그녀가 그의 두 어깨에 손을 살포시 내려놓으며 눈웃음지었다.
“그대들의 걱정이 무엇인지는 알겠다만, 5장로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리자를 보내겠다고 장로 회의에서 양해를 구했단다. 그리고 그건 전하, 우리 오라버니께서 그리하라 허가한 일이야.”
자애롭게 웃음 짓는 눈꼬리가 이보다도 서늘한 예기를 내뿜을 수는 없었다. 시선이 닿은 마족들이 괜히 자신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뒤로 물러났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었겠니? 건방지다며 찢어 죽였지.”
서로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남매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마왕이 허락했다는 마리엘라의 말에 마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이라면 하멜에게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렇다면…….”
“실례했습니다, 5장로 대리.”
무례했다며 마족들이 고개를 숙였다.
가만히 한쪽에 앉아 샴페인을 마시던 전 5장로 루거가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흐.”
루시어스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루거는 무척 태연자약했다.
“하멜 경, 곤란할 뻔했네.”
“……루거 경?”
“5장로의 대리로 하멜 경만큼 어울리는 녀석도 또 없지요. 그의 실력이야 마왕군 전체가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1장로님?”
마족들은 본인이 섣부르게 행동했음을 알고 작게 침음했다. 마리엘라가 손을 내두르며 자리에 가 앉았다.
“경들이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는 알아. 나라도 그랬을 거야.”
“못난 꼴을 보였습니다, 장로님.”
“오히려 전하를 향한 그대들의 충심을 볼 수 있어서 기꺼웠어. 다만, 5장로 또한 그대들 못지않은 충신이니.”
마리엘라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앞으로 5장로의 충심에 대한 의심은, 절대 하지 말도록.”
“……명심하겠습니다.”
1장로 마리엘라가 마왕에게 해가 될 일을 할 리가 없다. 전 5장로인 루거까지 나섰으니 더 왈가왈부할 수 없었다.
그때 두 명의 마족이 기다렸다는 듯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타리크와 더미트였다.
“나도 보증하지.”
“타리크 님?”
“이 녀석은 5장로님의 대리로 부족함이 없어. 아주 강하거든.”
타리크가 느긋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하멜에게 다가가 친분을 과시했다.
눈을 부릅뜨던 하멜이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타리크에게 친절하게 웃어 주었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지만 이런 상황에서까지 사심을 내보일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타리크 경.”
“그래, 하멜 경. 그대도 오랜만이지. 5장로님께서는 잘 계시는가? 대신 안부 좀 전해 드렸으면 좋겠군.”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둘이 제법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자 버럭 소리를 질렀던 마족들이 크게 놀라워했다.
마계에서도 괴짜로 소문이 나 있는 타리크 라하위스가 저렇게 친근하게 대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눈을 뽑거나 죽일 정도로 포악하다 하지 않았나?
“사이가 제법 돈독해 보이는데.”
“5장로께서…… 그와 친하신가?”
설마, 저런 망종과?
떨떠름한 뒷말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루시어스는 그 뒤에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때 더미트도 나섰다.
“5장로님의 대리를 뵙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대장군.”
더미트가 하멜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하멜은 5장로의 대리로서 더미트에게 살짝 고개만 까딱여 인사를 받아 주었다.
마왕의 제일가는 충신이자 마왕군을 이끄는 대장군으로서 신임을 얻고 있는 더미트까지 나서자 마족들은 이제 하멜을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강자!
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5장로의 대리로 참석하며 저런 고위 마족들과 친하게 대화를 나누는 걸까? 전하께서 허락하셨다니 실력은 확실할 텐데.
“한 번 기회가 되면…….”
“손을 섞어 보고 싶군.”
“무슨 종족인지 잘 모르겠는데. 혹시 혼혈인가? 허어, 나중에 알아봐야겠어.”
“차라리 이번 기회에 저 대리자분과 한번 이야기를 나눠봐야겠군. 어떤 분이시련지.”
마족들이 웅성거리며 슬금슬금 하멜에게 다가갔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던 긴장의 끈이 느슨히 풀렸다.
‘다행이군.’
루시어스가 안심하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리 마리엘라에게 양해를 구하고 도움을 부탁해 놓은 것이 다행이었다. 더미트도 시기적절이 나서 주었고.
다만 타리크와 루거가 나서 준 것은 정말 의외였다. 타리크는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이해는 가지만.
‘루거는 어째서……?’
루시어스가 그녀에게 시선을 던졌다. 샴페인을 꼴깍꼴깍 마시던 그녀가 루시어스를 마주 지그시 쳐다봤다.
그리고는 입을 뻐끔거렸다.
‘이걸로, 빚 하나.’
소리 없이 그렇게 말한 그녀가 즐거운 듯 진한 웃음을 지었다.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도움을 받은 건 맞으니 간단하게 사례를 돌려 줘야겠다.
식장 내의 소란이 거의 가라앉았을 무렵.
“마왕 전하 드십니다!”
오늘의 주역이 등장했다.
발걸음 소리조차도 나지 않았지만, 식장에 있는 마족이 그가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온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루시어스는 그가 등장할 곳을 올려다보다가 가슴 위로 손을 올렸다.
그가 얼굴을 내비쳤을 때.
장로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한쪽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장로 중 가장 상석에 있는 마리엘라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식장에 울렸다.
“바알을 뵙습니다.”
“일어나라.”
좌중을 한 번 둘러본 마왕이 입을 열었다. 마족들이 일제히 자세를 바로 하고 마왕을 올려다보았다.
마신의 축복을 담은 검은 머리카락이 걸음마다 부드럽게 흔들렸다. 정순한 마기를 담아 짙어진 암적색 눈동자는 아름다운 기백을 담았다.
마왕의 기도는 무척이나 압도적이었지만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힘이 두려움과 동시에 경애했기에, 자리에 있는 이들은 누구나 마왕을 동경했다. 강하고 아름다운 군주에게 끝없는 찬사를 보냈다.
‘역시 대단하군.’
루시어스는 처음으로 겪어 보는 즉위 기념식이었다. 마왕이 마계에 얼마나 큰 존재감과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이렇게 보니 제가 알고 있는 대부가 아닌 것 같았다. 뭇 마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그가.
대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갔다.
“루시어스, 저거 보세요.”
길게 숨을 내빼는데 옆에서 레이얼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입을 열었다. 루시어스가 의아한 듯 레이얼을 바라보았다. 그가 살짝 마왕을 향해 턱짓했다.
시선을 따라가자 마왕의 망토를 고정하는 붉은 브로치가 보였다. 루시어스는 처음 보는 악세서리임에도 왜인지 낯이 익었다.
“아…….”
중앙에 박힌 보석이 얼마 전 루시어스가 마왕에게 선물했던 물건이었다.
입가에 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제 선물을 브로치로 만들어 착용하고 나와 주었다는 게 못내 기쁘고 즐거웠다.
한참 긴장하고 주변을 살피던 터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더미트와 마리엘라도 자신이 선물한 보석으로 만든 악세서리를 착용하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 모여주어 고맙네.”
가장 높은 곳에 나선 마왕이 입을 열었다. 루시어스는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처럼 많은 마계의 마족들이 자리를 빛내 주니 왕으로서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어. 그대들의 충심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네.”
마왕이 저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을 응시하며 조용히 웃었다.
“경사로운 날 그대들에게는 비밀로 내 특별한 손님을 모셨지. 만나기 힘든 손님들이니 그대들 또한 부디 반갑게 맞이해 줬으면 좋겠네.”
자, 이제 올 것이 왔다.
루시어스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다른 마족들은 새로운 5장로를 지칭하는 것인가 싶어 수군거렸지만, 사정을 아는 마족들은 숨을 죽이고 ‘그들’이 등장할 문을 바라보았다.
스륵. 스르륵.
소요 속 옷자락 끌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기분 나쁜 기운에 마족들이 하나같이 미간을 찌푸리고 몸을 굳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경종이 땡땡 울리고 있었다. 짐승형 마족들의 목울림이 퍼졌다. 마왕 앞에서 감히 무기를 꺼낼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다들 짙은 살기를 흘리며 감각을 끌어올렸다.
루시어스는 가장 먼저 자리에 참석해있는 학생들의 상태를 살폈다. 회장 안에 그득한 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의 기운 때문인지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지금 쓰러지지 않는 건 아마.
‘아르놀트 선생이 막아 주고 있군.’
아르놀트가 기운을 끌어올려 학생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레녹스와 레이얼 또한 안색이 좋지는 않았다. 둘 다 적잖이 긴장한 표정으로 루시어스보다 한 발 앞에 서서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두 진정하라.”
쿠우웅……!
낮은 목소리와 함께 날 선 분위기가 조금 수그러들었다. 특히 학생들처럼 약한 마족들의 안색이 퍽 편해졌다.
누군가는 비틀거리며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기도 했다.
아르놀트 또한 숨을 돌렸다.
아무래도 마왕이 그들이 느끼는 감각의 부담을 덜어 준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기절하지는 않은 이들이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하아……, 하…….”
루시어스가 안도하며 시선을 돌렸다. 어두운 복도 너머로 천천히 천계의 사절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머리카락과 천계의 맑은 하늘을 담은 듯한 벽안.
경건하게 차려입은 사제복 뒤로는 그들의 힘을 나타내는 날개가 몇 쌍씩 펼쳐져 있다. 그들은 마족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한 걸음으로 마왕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이 표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로서 마왕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천계의 일각을 수호하는 대천사 가브리엘, 바알 벨제뷔트께 인사 올립니다.”
“방문에 감사하네. 설마 천계에서 나서서 자리를 빛내 줄 줄은 몰랐어.”
“천계에서는 마계와의 교류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바알의 즉위 기념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낼 수 있다면 오히려 기쁜 일입니다.”
가브리엘은 무척이나 차분한 목소리로 마왕에게 예를 표했다. 루시어스는 조금 멀리서 가브리엘을 천천히 관찰하다가 미간을 살짝 일그러트렸다.
천제가 대천사를 보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을 듣기는 했지만, 설마 그를 보낼 줄은 몰랐다.
대천사 가브리엘.
옥좌를 수호하는 세 명의 대천사 중 한 명. 명석한 두뇌와 함께 미래를 내다보는 천리안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 바로.
천계의 지낭.
‘그 정도로 마계를 믿는다고?’
가브리엘은 대천사 중에서는 가장 약한 천사다. 마계에서 변고가 생기기라도 하면 천계로 귀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천계가 입을 타격이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지낭’이라는 별칭이 있는 만큼 가브리엘의 정책 결정권은 다른 대천사에 비해 월등하다.
천제가 다른 대천사도 아닌 가브리엘을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마계를 믿고 거래하겠다는 의사 표명이기도 했다.
루시어스가 턱을 매만지다가 다른 장로들의 안색을 살폈다. 마리엘라가 입을 꾹 다물고 창백한 표정으로 대천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경계하는 빛이 역력했다.
마왕이 입을 천천히 열었다.
“그럼 특별한 손님도 도착했으니 본격적으로 식을 시작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