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3)
마족답게 사는 법-23화(23/385)
마족답게 사는 법 23화
023 대가 없는 호의는 없다 (4)
루시어스가 다시 문으로 다가갔다. 문고리를 잡아보니 서늘한 마기가 느껴졌다.
무슨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선 바깥과 이 공간이 완전히 단절되었음은 느낄 수 있었다.
상황을 지켜볼까.
내색하지 않은 채로 안을 둘러보는 레녹스에게 다가갔다. 약간 긴장한 표정인 걸 보니 아무래도 이 상황에 대해 조금은 눈치챈 모양이었다.
“쉴 틈을 주지 않는군.”
“그런가? 이 정도면 딱 좋지. 너무 쉬면 긴장이 풀어지는 법이니까.”
“산전수전 다 겪은 듯이 말하는데.”
“네 생각만큼 곱게 자라진 않아서 말이다.”
옅게 웃어준 루시어스가 레녹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레녹스가 그것을 바라보곤 영문도 모른 채 주저하듯 손끝을 움찔거렸다.
“오필리아는 가지고 왔겠지? 잠시 빌릴 수 있을까?”
“아. 그건가.”
레녹스가 작게 감탄사를 내뱉으며 부산스럽게 오필리아를 꺼내 건네주었다.
주인을 위해 힘을 바닥까지 소모한 오필리아가 루시어스의 손길에 파드득 떨렸다. 레녹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오필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 피를 먹이는 편이 낫지 않나? 회복도 빠를 텐데.”
“너무 굶주린 상태라 오히려 위험하지. 오필리아와의 기 싸움에서 지면 피를 전부 빨려서 죽게 될 거다.”
그래서 마련한 방법이 이거지.
루시어스가 넣어두었던 마도서 하나를 꺼냈다.
바하무트에게 받아온, 마검에 대한 전설이 적혀 있는 그 책이었다.
마도서에는 제대로 된 제목조차 적혀 있지 않았다. 단지 내부에 기록된 여러 마검들의 이름이 표지에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아무튼 뤼디거한테 이 빚은 톡톡히 받아내야겠어.’
레녹스 뿐만 아니라 검의 수리까지.
명령을 받들기 위해서라지만 업무 부담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이에 대한 청구는 자식 관리에 소홀한 뤼디거에게 할 생각이었다.
루시어스가 마도서의 봉인을 풀고 책장을 펼쳐 바닥에 던졌다. 검 모양의 그림자들이 뻗더니 책장이 녹아 슬라임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뭘 어떻게 할 생각이지?”
“저건 마검을 기록한 책이거든. 다시 말하면, 기록되어 있는 마검을 전부 잡아먹은 책이란 거다.”
오필리아를 역으로 쥔 그가 마도서에 오필리아를 강하게 꽂아 넣었다.
키에에에엑!!
형체 모를 비명이 여기저기로 퍼졌다. 책장이 촉수처럼 뻗어 오필리아를 감쌌다. 루시어스가 오필리아에서 손을 떼고 옆에 마련되어있는 의자에 앉았다.
오필리아가 마도서에 붙잡힌 걸 본 레녹스가 크게 당황하며 루시어스에게 소리쳤다.
“루시어스! 저게 지금 무슨……!!”
“수많은 마검을 집어삼킨 책에 오필리아가 닿았으니…….”
오늘은 날씨가 좋다고 말하는 정도의 단조로운 어조.
레녹스의 시선이 빠르게 오필리아와 루시어스를 번갈아 오갔다.
“운이 좋으면 마도서의 기운을 흡수해 수복될 거고, 운이 나쁘면 흡수당하겠군.”
“어째서 이렇게까지……. 대장장이에게 찾아가면 될 일이 아닌가!”
“아니. 그대로 계속 뒀으면 망가졌을 거다. 대장장이를 찾아간다고 될 일이 아니야. 그들은 만들 줄은 알지만, 이런 종류의 수리를 할 줄은 모르니까.”
레녹스가 입술을 짓이겼다.
루시어스가 테이블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게 걱정이면 가서 힘이라도 보태라. 가만히 있는 것보단 더 가망이 있지 않나.”
“그럴 생각이야.”
레녹스가 오필리아에게 다가갔다. 덕지덕지 엉겨 붙은 마도서의 마기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검신을 찾았다.
곧, 날카롭게 벼려진 검날이 그의 손등과 손가락을 길게 파고들었다.
“마도서에 잡아먹히게 둘 순 없어.”
차라리 못 쓰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말하는 레녹스의 기운이 점차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얼핏 섬짓하게 느껴질 만큼.
‘저런 건 또 제 아비를 톡톡히 닮았군.’
외모 외에는 닮은 구석이 없다 싶다가도, 이럴 때면 그에게서 뤼디거의 모습이 비쳐 보인다.
벌어진 상처 사이에서 피가 흘렀다. 오필리아는 눈이 뒤집힌 듯 주인의 피를 정신없이 빨아들였다.
쌔액!
마기가 뱀이 우는 듯 예리하게 회오리쳤다. 장벽을 하나 만들어둔 루시어스가 그 뒤에서 머리카락 한 올 바람에 휘날리지 않고 가만히 광경을 지켜보았다.
“윽!”
파앗!
강한 파공성과 함께 레녹스의 손이 튕겨져 나갔다. 동시에 뒤로 몇 발자국 밀려난 그가 숨을 몰아쉬며 오필리아를 응시했다.
그가 다시금 오필리아를 쥐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마도서의 힘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쿨럭!”
내상이 치료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레녹스가 핏덩이를 토했다. 그가 이를 꽉 다물고 힘을 더 불어넣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슈우우우.
강하게 불어 닥치던 마기의 소용돌이가 점차 가라앉았다. 검을 닮았던 그림자가 사라지고, 불쾌한 색의 슬라임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마도서의 내지가 완전히 비었다.
“아무래도 잘 된 것 같군.”
루시어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고통을 삼키던 레녹스가 그것을 들고 바라보았다. 오필리아의 검신이 우아하게 빛났다.
“이제 천천히 회복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레녹스는 홀린 듯 검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루시어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 눈동자에 루시어스가 담겼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골똘하게.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입술을 달싹이던 레녹스의 말문을 막은 건 다름이 아니라 숙소 전체에 울리는 방송이었다.
-다들 잘 쉬고 있었나?
아르놀트의 목소리였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제군.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본격적인 수학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수학여행은 오늘부터 3박 4일이다. 3박 4일 동안 제군들은 이 숙소에서 살아남으면 된다.
“쯧. 아르놀트 선생도 참 운치가 없어.”
루시어스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레녹스의 턱에 흐른 핏줄기를 손으로 가볍게 훔쳤다.
“쉴 시간은 없는 모양이다. 일어나라.”
살아남으라.
아르놀트의 지령을 헤아려보던 루시어스가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두 번 똑똑 노크해보고는 문고리를 잡아 활짝 열었다.
평범했던 복도에 보랏빛 안개가 자욱했다. 그뿐만 아니라 환각을 보는 듯 기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단, 적어도 세 시간에 한 번씩 다른 페어와 ‘전투’를 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전투를 하지 않으면 기권으로 간주해 추가 수업을 받게 될 거다.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루시어스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쥐락펴락 움직였다. 학생들을 죽게 놔둘 수는 없으니, 이 숙소 자체를 다른 공간으로 분리해 둔 것 같았다.
이 방에 들어올 때 느꼈던 위화감은 이것이었나.
-성적에 따라 구스타프 본선 페어전의 시드배치 우선권이 지급되니 충분히 노력해 주기 바란다. 이상이다.
그의 말이 끝나고 잠깐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복도로 나서지는 않은 채 현관에 가만히 서 있던 루시어스가 레녹스를 향해 손짓했다.
“몸 상태는?”
“겨우 살아남을 정도는 되는군.”
“잘됐군. 검도 멀쩡해졌으니 감을 일깨우긴 좋겠어.”
루시어스가 레녹스와 함께 복도로 나섰다.
구불구불한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하는 루시어스의 표정엔 긴장감이라곤 한 톨도 섞여 있지 않았다.
레녹스가 그를 따라 움직이던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루시어스.”
“뭐지?”
“확실히 해 두고 싶은 게 있다.”
“말해봐.”
“네가 원하는 건 구스타프 우승인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루시어스는 진지하게 답을 고민했다.
그가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은 역시 이것뿐이겠지.
“달리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신입생이 이름을 떨칠 절호의 기회니까.”
“……그래, 묻고 싶은 건 많지만 접어두도록 하지.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레녹스가 다시 걸음을 옮겨 복도를 앞서 걸었다. 그리고는 전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오필리아를 들었다.
“우승이라면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 좋겠지. 우선은 수학여행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걸 목표로 하도록 하자.”
“……제법 본격적인데?”
“받은 건 갚아야 도리니까.”
대가 없는 호의는 사양이다.
레녹스가 가볍게 대꾸하고는 기분 좋은 울음을 흘리는 오필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에게서 오필리아를 받았을 때의 흥분이 조금씩 차올랐다.
이 검을 쥐고 다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레녹스의 입가가 루시어스 몰래 조용히 올라갔다.
“내가 앞에 설 테니 후방을 부탁한다.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루시어스는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선 레녹스의 등을 바라보았다. 더미트나 마왕 외에, 제 앞을 이렇게 건방지게 막고 있던 마족이 따로 있었던가.
사방을 잘 살피라는 말은 들었어도 후방만 지켜달라고 하는 건 또 처음이다.
이미 내 실력을 짐작하고 있을 텐데. 옅게 웃음 지은 루시어스가 등 뒤쪽으로 식물을 소환했다.
주변을 살필 수 있는 눈알 식물과 함께 훈련된 마족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꽃가루를 뿌려 두었다.
‘이런 곳에선 길을 잃기도 쉬우니 표시해두는 게 좋겠지.’
왜곡된 공간에서는 같은 문을 열어도 다른 곳으로 나오기 일쑤다. 어느 정도의 예방책을 마련해 둘 필요성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기척이 느껴졌다. 레녹스가 벽에 몸을 붙이며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눈으로 학생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 레녹스가 루시어스와 시선을 교환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자, 그가 질주하며 단번에 거리를 좁혔다.
“헉, 잠깐! 저기 누가……!”
“뭐……!!”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레녹스의 검이 군더더기 없는 검로를 지나 단번에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학생들은 순식간에 빛 알갱이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레녹스는 검을 한두 번 털어내고 갈무리하며 그것을 당연한 결과라는 듯 바라보았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오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루시어스가 흡족하게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서포트할 필요도 없었군.’
아무래도 잠자던 맹수를 잘 길들여놓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