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31)
마족답게 사는 법-231화(231/385)
마족답게 사는 법 231화
231 나비와 친구들 (1)
낮의 옌 공원은 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뽐냈다.
식물들은 모두 조용히 땅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키안의 말대로 마수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마족들로 붐볐다.
즉위 기념식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참이라 간간이 루시어스를 알아본 마족들이 다가와 인사를 나누곤 했다. 직업 체험으로 갔던 스위티에서도 본 적이 있다며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이쪽은 루시어스 학생의 계약 마수인가요? 학생 때 계약하는 경우는 없는데…….”
“레녹스 학생은 3차 성장을 했네요? 아, 성장했으니 학생이라고 부르면 안 되나? 레녹스 경?”
그들은 루시어스의 정체를 모르는데도 일행에게 말을 놓지 않고 공손히 대했다.
루시어스가 워낙 뛰어난 두각을 보이니 미리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던 탓이다.
졸업하고 성장을 하면 훌륭한 마족이 될 게 뻔하니 지금부터 점수를 쌓아 놔야 했다.
어린 마족일수록 잘 보이기도 편한 법이다. 어른 마족이 제게 존대하며 잘 대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비는 마수학 선생님의 계약 마수인데, 선생님께서 워낙 바쁘셔서 제가 맡아서 돌보고 있어요.”
“마수학 선생님이라면…….”
정보가 빠른 몇몇 마족들의 눈매가 잠시 다르게 번뜩였다.
조금 전까지는 어린 나이에 마수 계약까지 한 루시어스가 대단하다는 시선이었다면, 이번에는 사이러스의 마수학 선생님인 하멜이 궁금한 눈빛이었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 마왕을 포함한 고위 마족들의 지지를 받으며 5장로의 대리로 즉위 기념식에 참석한 하멜은 마족들에게 꽤 흥미로운 존재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하멜의 계약 마수라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멜의 뒤에 5장로가 있다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들은 더 캐묻지 않았다.
평범한 학생들이 하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럼 여기에는 산책하러 오신 건가요?”
“네, 나비에게 친구를 만들어 줄까 해서요.”
“삐!”
나비가 한쪽 손을 번쩍 들어 보였다. 애교 섞인 목소리와 행동에 마족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비의 머리를 한 번씩 쓱쓱 쓰다듬었다.
가만히 손길을 받으며 고롱거리니 정말 순하고 귀엽다며 칭찬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루시어스가 나비를 살짝 고쳐 안으며 말했다.
“나비가 어릴 때부터 아카데미에서 생활해서 다른 마수를 많이 못 만나 봤거든요. 그래서 좀 경험을 하게 해 주려고요.”
“좋은 생각이죠. 애들 사회성 기르는 데에도 참 좋고요. 공원에서 뛰어놀면 스트레스도 풀리니까.”
이쪽으로 좀 와 보라며 그들이 루시어스 일행을 안내했다.
넓은 공터에서 마수들이 모여 서로 어울리고 있었다.
마족들은 마수들이 놀 수 있도록 풀어놓고 대화를 나누거나, 마수를 상대로 가벼운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루시어스가 나비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가 볼래?”
“삐?”
잠깐 루시어스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던 나비가 마수들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비가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더니 저쪽으로 뛰어갔다.
이제 잠깐 놔두면 되겠지?
좋은 친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마족들 틈에 파묻혀있는 레이얼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워낙 애교가 많고 붙임성이 좋다 보니 마족들도 레이얼을 귀여워했다. 마수들이 옆에서 놀 수 있도록 놔두곤 서로 주거니 받거니 농담을 던졌다.
레이얼은 거기서 정말 자연스럽게.
“요즘 천사들은 어떻대요? 마계에 계속 지낸다는데……. 보신 분 있으세요?”
천사에 대한 정보를 캐내고 있었다.
촉촉이 젖은 눈으로 ‘천사 때문에 너무 무서워요!’ 하고 말하는 어린 마족을 딱히 경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레이얼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이 아는 것들을 줄줄 말했다.
그들은 분위기를 타고 천사에 대한 소문을 말했다. 구름 잡는 듯한 뜬소문부터 조금은 구체적인 소문까지 전부.
루시어스가 조용히 감탄했다.
“저건…… 대단하네.”
“레이얼에게는 저게 일종의 취미 같은 거거든. 떠도는 소문을 수집해서 마계 지도를 펴 놓고 어디서 뭐가 일어날지 예측해 보는…… 그런 거.”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닌지 키안이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해 주었다.
루시어스는 레이얼이 대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낸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저런 취미를 가지게 되는 걸까?
“그런데 저건 괜찮은 건가?”
나비가 공원에서 잘 뛰어노는지 지켜보던 레녹스가 조심스럽게 루시어스와 키안을 불러 물었다.
시선을 돌려보자 나비가 꼬리며 털을 세우고 다른 마수들을 향해 으르릉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작은 몸에서 분출된 열기가 주변 잔디를 바짝 말렸다.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무슨 일이?
“크르르릉.”
“꾸루룩.”
나비는 친구를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는지 마수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구미호가 먹이사슬 피라미드에서는 최상층에 올라있기 때문인지, 나비보다 덩치가 몇 배는 큰 마수들까지 꼼짝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끼이잉, 낑.”
“뀨우…….”
나비는 사실 다른 마수들에 대해 생각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비는 루시어스와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면 계속 하멜과 함께 있는 터라 마수학 책을 보거나 설명을 들을 기회가 많았다.
조금만 뭔가를 궁금해하면 하멜이 자신이 겪었던 일이나 사건들을 말해 주고는 했다. 그게 또 상당히 흥미진진해서 나비도 눈을 빛내며 듣곤 했다.
그리고 하멜의 긴 일대기를 들으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그놈들은 전부 멍청이입니다. 상종도 하지 마세요. 마수? 그런 카테고리에 함께 엮이는 것도 불쾌합니다.”
……라는 말이었다.
하멜은 저희 둘을 제외한 마수들은 전부 바보 같은 놈들밖에 없다고 매번 욕하고는 했다. 미식의 미도 모르는 족속들이라며 혀를 차던 하멜의 목소리를 나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비가 자신도 하멜처럼 지낼 수 있을까, 걱정하며 고개를 기울이면 하멜이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하죠. 누가 가르치는데. 그러니 그들에게 관심 두지 마세요. 어울릴 생각도 마시고요. 멍청함이 옮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
하멜이 그렇게 교육해 놓은 터라 나비는 다른 마수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마족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옆에서 조금씩 음식을 뺏어 먹는 게 더 즐거웠다.
무릎에 앉으면 쓰다듬어 주는 루시어스의 손길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는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듯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움직이는 손이 얼마나 따뜻한데.
마수들은 제 털을 그렇게 기분 좋게 빗겨 주지도 못하고 맛있는 걸 주지도 못한다.
그들은 루시어스나 하멜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비, 라고 이름을 불러주지도 못한다!
에잇, 전부 쓸모없는 것들!
“킁!”
마음 같아서는 전부 뒷발로 걷어차고 앞발로 후려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나비는 똑똑해서 루시어스의 고민이나 걱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나비도 루시어스가 혼자 있는 것보다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는 걸 더 좋아했다. 주인의 표정이 혼자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 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곤 했다.
가끔은 주인이 자기만 쓰다듬어 줬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내키지는 않아도 루시어스가 다른 마수들과 어울리기를 바라면 못할 것은 없었다.
“…….”
번뜩!
나비의 눈동자가 경고라도 하듯 불타올랐다. 성큼, 앞발을 내디뎌 걸음을 옮기자 마수들이 꾸물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어딜 도망가려고?
“크르릉.”
“끄으응.”
위협적인 소리를 내고 나자 마수들이 석상이 된 것처럼 자리에 가만히 굳었다. 나비는 톡톡,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나비는 그들의 주변을 한 번 돌아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질린 표정으로 멀어지기도 했다.
마수들은 정말 하나같이.
냄새가 별로였다.
“……킁.”
어떻게 이렇게 마음에 드는 마수가 없을 수가. 나비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피유우우.”
들으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루시어스는 당황스럽게 나비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마족의 손을 너무 많이 타서 마수를 싫어하게 된 건 아닌지 걱정이었다.
키안과 잠시 시선을 나누던 루시어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나비에게 손을 내밀며 속삭였다.
“미안해. 이런 곳은 처음인데 갑자기 친구들이 너무 많아서 놀랐나 보네.”
“뺘아?”
“나 때문에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비가 루시어스에게 다가와 손바닥에 얼굴을 마구 비볐다.
깊숙이 파고들려고 할 때마다 루시어스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역시 최고로 기분이 좋았다.
한껏 애교를 부리던 나비가 슬쩍 마수들을 돌아봤다. 그리고는 몇몇 마수에게 시선을 던졌다.
너, 너, 그리고 너.
마치 불러내기라도 하는 듯이.
“……끼잉?”
“끄으응.”
“그르륵…….”
눈빛으로 지명 당해 끌려온 마수들이 루시어스의 앞에 나란히 섰다. 나비가 눈을 빛내며 마수들 옆으로 가서 몸을 부비고 친근한 목소리를 냈다.
“삐이, 삐이익.”
“……친구들이니?”
뭔가…… 좀 이상한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 밖으로 그 사실을 내뱉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작고 어린아이가 그 짧은 시간에 마수들을 휘어잡기라도 했으려고?
“반갑다, 얘들아.”
나비의 친구라니 인사는 해야겠지.
루시어스가 옅게 웃으며 마수들을 향해 손을 뻗자.
냉큼!
뻗은 손에 나비가 얼굴을 들이밀고 고롱거렸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수 친구……들을 돌아보며 위협적으로 하악질 했다.
“캬아아악!!”
“끼이잉, 낑.”
“캭!!”
쟤가 저런 성격이었나……?
아무리 봐도 나비는 마수 중에서도 성질이 좀 더러운 편에 속하는 것 같았다. 루시어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며 상황에서 도피했다.
“서열 정리를…… 하는 거겠지?”
“정리는 옛날 옛적에 끝내고 괜히 신경질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키안이 냉정하게 대답해 주었다.
루시어스는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건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닐 걱정 할 필요가 없으니 좋기는 한데.
우리 애가 이렇게 대단하기는 한데.
제게 친구가 생기고 좋은 일이 많았던 것처럼 나비도 그런 경험을 하길 바랐는데, 이래서야 친구는커녕 적만 만들고 가게 생겼다.
저를 아카데미로 보내던 더미트와 마왕, 마리엘라의 심정이 딱 이랬을까?
“나비야.”
“크릉……. 킁?”
“이리 온.”
도도도도.
한창 마수들을 상대로 성질을 부리던 나비가 루시어스가 부르자마자 표정까지 달리하며 뛰어왔다. 자리를 잡고 앉아주자 애교스럽게 무릎으로 올라와 뒹굴뒹굴했다.
“삐이이이!”
좀 전과는 정말 다른 마수 같았다.
한창 서열 정리를 당하던 마수들도 황당한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수들의 시선을 느낀 나비가 루시어스의 무릎에서 마구 애교를 부리다 말고 눈을 부라렸다.
“캬악!!”
마수들이 고개를 땅에 박을 듯 숙이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
세상에…….
루시어스가 조용히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