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34)
마족답게 사는 법-234화(234/385)
마족답게 사는 법 234화
234 선택 (2)
기숙사로 돌아오자 레녹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레녹스가 자켓을 받아들고 크라바트를 풀어 주었다.
옷차림이 가벼워지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루시어스가 쓰러지듯 의자에 걸터앉았다.
나비가 폴짝 뛰어와 무릎을 차지했다.
“상담은 잘했어?”
“으음.”
레녹스의 물음에도 루시어스는 시선을 아래로 고정하고 미동하지 않았다.
그걸 잘했다고 해야 하나.
아르놀트 선생한테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고 외치고 온 기분이기는 한데.
“잘 모르겠어. 그냥…….”
“그냥?”
“고민만 늘어서 왔어.”
아마 2년 전의 나였으면 하지도 않았을 고민.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저도 많이 변한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루시어스가 그제야 고개를 들고 레녹스를 바라보았다.
2년 동안 사실 제일 많이 변한 건 이 녀석이지. 처음 봤을 때의 레녹스는 많이 예민했고, 건강도 안 좋았는데. 지금은 훌륭하게 성장까지 했으니.
“아르놀트 선생은 너무 훌륭해서 탈이야.”
“엄하지만 좋은 분이지.”
“상담한다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는데, 결국 그분 앞에서 나는 학생이 되더라고. 다른 마족들 앞에서는 5장로가 되기도, 학생이 되기도 하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아르놀트 선생님 앞에서는 그냥 학생이 되어 버리더라.
“알아. 그분은 정말 선생님이니까.”
레녹스는 헝클어진 루시어스의 머리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가 앉아 있는 루시어스의 뒤로 다가가 머리끈을 풀어 천천히 빗질했다.
“그래서 대답은 뭐라고 했는데?”
“무슨 상담을 할지 알고 있었어?”
“이 시기에 상담할 내용이면 뻔하지. 너도 그것 때문에 계속 고민했으면서.”
레녹스까지 제 고민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루시어스가 괜히 자신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데, 아르놀트도 그렇고 레녹스도 그렇고 어떻게 알아챈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얼굴에 티가 많이 나나?
둘이 좀 유난히 눈치가 빠른 편이기는 하다.
아르놀트는 학생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편이고 레녹스는 다른 이들의 감정 변화를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니까.
“레녹스. 너는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 말인가? 나는.”
빗질해주던 손이 잠깐 멈췄다.
레녹스의 시선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자면, 그냥 함께 졸업했으면 하지. 하지만…….”
“……?”
“1년이든, 2년이든. 네가 원하는 만큼 아카데미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 내년이 되면 네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대신할 수 있을 테니까.”
“성장한 지 만 1년도 되지 않았으면서, 5장로 대리직을 수행할 자신이 있다는 말이야?”
“필사적으로 익숙해져야겠지?”
레녹스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정말로 1년 내로 힘을 모두 갈무리하고 완벽한 기사로 나타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일 정도였다.
하긴 성년도 되지 않았는데 5장로가 된 마족도 있는 판국에, 3차 성장의 힘을 1년 내로 갈무리하는 마족이 있을 수도 있지.
왠지 레녹스라면 가능할 것 같다.
그는 무척 심지가 굳은 마족이니까.
머리를 다시 단정하게 묶어 준 레녹스가 루시어스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손을 뻗어 루시어스의 한쪽 머리카락을 가볍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의 눈매가 빙긋 휘었다.
“벌써 나는 5년이 넘게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는데도 올해가 지나면 졸업이라는 게 아깝거든.”
“그러고 보니 그렇게 됐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아카데미 생활은 무척 즐거웠어. 아마 아카데미를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망설임 없이 사이러스를 갈 거야. 그런데 겨우 2년으로 졸업이라니?”
“……조금 아깝긴 하지.”
“조금이 아니라 많이, 아까워.”
각 클래스에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놓친다는 소리잖아.
레녹스가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루시어스의 무릎을 차지한 나비를 데리고 자신의 의자로 가서 앉아 나비 전용 빗을 꺼냈다.
“뿌이이.”
루시어스에게서 떨어트려 놓았다고 시위라도 하는 건지 나비가 가볍게 반항하듯 바동거렸다. 레녹스는 개의치 않고 털을 빗겨 주었다.
“그리고 아마 다른 분들께서 무척 아쉬워하실걸? 그쪽 때문에 네가 졸업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면 세 분이 어떻게 나오실지 몰라.”
“아쉬워하는 걸로 끝나면 다행인데.”
“음, 아마 전쟁이겠지.”
루시어스는 차마 그러지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가 없었다.
마왕군을 이끄는 더미트와 장로진의 수장인 마리엘라, 마계의 최고 결정권자인 마왕까지 뜻을 모으면 전쟁 한두 번 정도는 전혀 우스운 일이 아니었다.
레녹스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답했는데?”
“…….”
루시어스가 조금 주저하다가 말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어.”
그런데 아무래도 그냥 아카데미에 남아 있겠다고 해야 할까 봐. 정말 전쟁이라도 나면 뒷수습을 어떻게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루시어스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 *
“곧 방학이 다가온다.”
모든 학생의 진로 상담이 끝났다.
이제는 학생들 나름대로 크든 작든 선택하고 결심할 때가 왔다. 어떤 수업을 듣고 싶은지, 최종적으로는 어떤 클래스로 졸업하고 싶은지. 그 외에도.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가질 건지까지.
“그리고 알다시피 델타 클래스가 끝나면 제군은 각자 승급하게 된다.”
본인의 성적에 맞는 클래스로.
알파, 베타, 감마로 승급하게 된다.
원하지 않더라도 반 학생들은 내년이 되면 헤어져야 했다. 졸업할 때까지 같은 수업을 들으며 추억을 쌓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언젠가는.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
고작 반이 갈리는 것뿐이지만, 2년 동안 아옹다옹 부대끼며 지낸 학생들에게는 그마저도 크게 느껴질 터다.
“찌이…….”
“…….”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가 초상집이나 다름이 없었다. 반이 좀 달라진다고 해서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닌데도.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적잖이 섭섭한 모양이다.
작지만 소중한 감정이다.
아르놀트는 그들의 아쉬움을 유난스러운 감정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
“제군들.”
“네에…….”
힘없는 목소리였다.
교탁에 선 아르놀트가, 평소와는 달리 물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승급 클래스는 종합 성적을 기준으로 정해질 거고, 간단한 시험이 치러질 거다. 내일부터는 바빠지겠지.”
“네에에.”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으니 특별히 오늘은 쉬는 시간을 주마. 모여서 서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봐라.”
“…….”
“나는 무엇이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게 설령 감정일지라도 말이다.”
지금 하는 고민과 걱정들.
그리고 그래서 느끼는 감정까지도.
몇 년이 지나면 참으로 하찮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것을 걱정했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사실 별거 아닌 일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의 가치를 평가할 순 없다. 쓸모없는 경험이라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그러니 마음껏 생각해 봐라.”
학생일 때 할 수 있는 고민과 걱정을, 몇 년만 지나도 참으로 하찮고 쓸데없어 보일 이 수많은 고민을 할 수 있을 때 오롯이 해 봐라.
“그러고 나면 분명히 너희의 안에서 바뀐 게 있을 거다.”
혹자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한다.
“…….”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아르놀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다들 울상이 되어있는 걸 보니 거꾸로 웃음이 나왔다.
친구지만, 하나같이 너무 못생겼다.
“바보 같아.”
“푸흐흐. 누구는 안 그런가?”
제게 하는 말인지, 남들의 표정을 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분위기가 풀리자 학생들이 천진하게 웃었다.
아르놀트가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정말, 제자들이 좋았다.
* * *
아르놀트는 이후 자리를 비켜 주었다.
반에 덩그라니 남은 학생들은 처음엔 새삼스럽게 서로 눈치를 보았다.
쉬는 시간에는 하지 말라고 해도 삼삼오오 모여 별별 이야기를 다 했지만, 막상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 주니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다니 괜히 쑥스럽기도 했다.
“나 궁금한 게 있었어.”
어색한 정적을 깨고 손을 든 건 위습 일족인 에스프였다. 학생들의 시선이 에스프에게 한 번에 몰렸다.
수업 시간에 발표해도 이만큼 시선을 끌지는 못했던 것 같은데.
에스프가 조금 당황하다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루시어스는 어떻게 할 거야?”
“……나?”
“미래 계획 같은 게 있나 싶어서. 왠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루시어스는 뭐든 잘하잖아. 뭐든 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없을 것 같은 루시어스가 나중에 어떤 길을 걸어갈지 궁금했다고, 에스프가 말하며 뺨을 긁적였다.
“사실 루시어스의 아버지께서 더미트 대장군이시잖아? 그래서 나는 네가 당연히 마왕군에 갈 줄 알았는데, 직업 체험은 전혀 다른 곳을 갔더라고.”
“그러고 보니 너는 그쪽에 관심이 많았지.”
“그게…… 응,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즉위 기념식에 다녀왔더니 더 욕심이 나서, 정말 열심히 노력해 볼 생각인데.”
에스프는 루시어스가 당연히 마왕군을 지망할 줄 알았다. 보호자의 직업을 따르는 마족은 무척 많았으니까.
그런데 직업체험에서 루시어스가 디저트 카페인 스위티에 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저렇게 실력도 성격도 훌륭한 학생이 마왕군이 되지 않는다면, 고위 마족이 되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누가 미래의 마계를 이끌겠냐고!
‘내심 루시어스가 차기 대장군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어쨌든 에스프는 루시어스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할지, 천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난 친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루시어스가 평소에 자신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기에 더더욱.
궁금하다!
“어때? 미래 계획이라던가, 있어?”
“계획이라니…….”
학생들 전원이 루시어스를 응시했다.
같은 반 학생으로 지낸 지 벌써 2년이 되어가는데, 생각해 보니 루시어스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었다.
루시어스가 뜸을 들이자 라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마왕군이 아니면 혹시 네임드를 노리고 있냐찌? 장로라던가찌!”
“와, 스케일 장난 아니네.”
“루시어스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우선은 조기 졸업 아닐까? 저 녀석이라면 내년에 알파 클래스로 바로 승급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역사상 전무후무한 천재로 졸업하는 거지!”
“오오오오, 역시 그렇구나!!”
그렇게 이어지는 마족 사회 데뷔!
끊임없는 결투!
그 끝에 있는 건 네임드! 장로!
캬아아아! 키야아아아!
친구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루시어스라면 분명 가능할 거라고, 그걸 위한 완벽한 계획이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눈치였다.
“어, 으으음.”
어떻게 장로가 될 것인지 묻다니, 질문의 난이도가 너무 높지 않나!
아니, 애초에 왜 자신이 틀림없이 장로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
“말씀해 주십시오, 루시어스 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장로가 될 생각이십니까? 혹시 따로 감춰 둔 비결이 있습니까??”
대체 어쩌다 이런 분위기가 된 걸까.
아르놀트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상당히 감동적인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학생들이 아예 단체로 루시어스에게 바짝 다가오며 대답을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들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루시어스가 입가를 씰룩이다가 그들의 시선을 스르르륵…… 피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졸업하면 아마, 되겠지.”
“오오오, 무엇이 되나요!!”
“……장로가?”
말끝이 조금 올라갔지만, 학생들에게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눈을 번뜩 빛내며, 아주 아카데미가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 워어어어어!”
“히야아아! 장로님이다, 장로님!”
“멋있다아!! 최고다!”
“…….”
루시어스가 뒤늦게 조금 후회했다.
그냥 계획이 없다고 할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