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35)
마족답게 사는 법-235화(235/385)
마족답게 사는 법 235화
235 선택 (3)
스승의 날에 아르놀트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루시어스가 수치스러움에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차마 아이들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아이들은 오히려 더 호들갑을 떨었다. 루시어스를 놀릴 기회를 놓칠 만큼 그들은 어수룩한 사냥꾼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은 루시어스가 정말 대단한 마족이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레이얼이 빙그레 웃으며 거들었다.
“루시어스가 장로가 되면, 저는 루시어스의 기사가 될래요! 어때요?”
“……내가 먼저다, 레이얼.”
“네에? 이럴 땐 양보하세요, 선배.”
“싫어.”
둘이 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거야?
장단을 맞춰 주는 건 좋지만, 왠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레녹스와 레이얼이 서로 루시어스의 첫 번째 기사 자리를 탐냈다.
학생들이 흥미진진하게 둘의 언쟁 아닌 언쟁을 지켜보다가 루시어스에게 휙 시선을 돌렸다.
둘 중 누굴 택할 거냐는 듯이.
‘나한테 묻지 마…….’
저기서 누구 편을 들어도 상황이 이상해진다. 루시어스가 레이얼과 레녹스에게 조금 원망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레이얼이 장난스럽게 배시시 웃었다.
“그럼 우리 반에서 장로님은 한 명, 기사님은 두 명이나 나오는 거네?”
“크으, 정말 그렇게 되면 전설적이라고 교과서에 쓰일지도 몰라. 한구석에라도 내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거한 자리 감당 못 한다. 감당할 자신이 없어! 미안하다, 루시어스!”
히죽히죽.
어색했던 분위기가 몽글몽글하게 풀어지다 못해 신나게 날아올랐다.
라티가 교탁 위로 올라가 검지를 높게 추켜 올리며 말했다.
“라티는 마왕군에 들어갈거다찌!”
“오오, 라티가?”
“교류회를 하면서 알았다찌. 꼭 강해야만 동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아니라고찌.”
물론 자기 목숨을 부지할 실력 정도는 있어야겠지. 하지만 종족의 특성을 살리면 동료들에게 다른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어떤 환경이든 버틸 수 있는 적응력, 잽싸게 움직일 수 있는 민첩성,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체구.
마왕군 중에서도 마계의 정보 수집을 도맡아 하는 부서라면 충분히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고향에 돌아가서 치안 유지에 힘쓰고 싶어. 알다시피 룬타 지방에는 트롤이 많이 나오거든. 좋은 추억을 만들려고 찾아오는 마족들을 지켜 줘야지.”
“하긴 거기가 좀 위험하긴 하지?”
“응, 그래도 참 아름다운 곳이야.”
언제나 냉막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에스메리다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녀가 훈풍이 불어오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
라타트리아와 에스메리다를 시작으로 너도나도 하고 싶은 걸 이야기했다.
직업뿐만이 아니라 미래에 해 보고 싶은 소원들도 많았다. 소설 속에 나올 것 같은 연애를 해 보고 싶다던가, 아기집을 발견해서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주고 싶다던가.
마계를 떠돌아다니는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중간계에 놀러 가보고 싶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네임드랑 결투해 보고 싶기도 해.”
“맞아, 그건 그렇지.”
“아르놀트 선생님보다 강한 마족들이 100명이나 있는 거잖아. 얼마나 대단할까?”
“학장님도 안 그래 보이지만 네임드잖아. 나는 전부터 학장님 실력이 궁금했어.”
“장로급은 눈만 마주쳐도 오금이 저린대.”
오금을 저려 하기는커녕 한 판 더 하자고 득달같이 달려들 때는 언제고?
루시어스는 수업 시간 내내 귀찮을 정도로 덤비던 친구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순진하게 마계 사회에 대한 로망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무척 귀엽게 느껴졌다.
반 안에 키득키득 웃음꽃이 피었다.
“아, 좋은 생각이 났어요!!”
“응? 갑자기?”
“잠깐 기다려 주세요! 금방 올게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레이얼이 뭔가 생각난 듯 벌떡 일어나 반 밖으로 나갔다. 모두 무슨 일인가 궁금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레이얼을 기다렸다.
레이얼은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품에 작은 상자가 안겨 있었다.
“저희 타임캡슐을 묻도록 해요.”
“타임캡슐이 뭔데?”
교탁에 상자가 턱 올라갔다. 제법 멋있게 꾸며진 보물상자는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그리고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마법이 걸려 있었다.
생소한 단어에 학생들이 고개를 기울였다.
마계에는 타임캡슐이라는 놀이가 없었다. 레이얼도 도서관에 있는 책을 보며 인간들에게 그런 놀이 문화가 있음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건 아마, 마계 최초의 타임캡슐이 될 것이다.
“인간들은 이런 상자에 소중한 물건이나 편지를 넣었다가 자기들이 큰 후에 다시 파 보고는 한 대요. 그걸 타임캡슐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왜 그런 짓을 하는데?”
“음, 어렸던 내가 남긴 흔적을 어른이 되어서 받아 보는 거죠.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추억을 담아 놓는 거예요. 이 추억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저희 타임캡슐을 묻어 놓고 시간이 지나면 다 같이 모여서 찾기로 해요. 100년……, 100년은 너무 짧나? 500년쯤 지나서 모이면 좋겠어요.
500년 전의 내가 어떤 흔적을 남겨 놨을까. 그때쯤이 되면 아마 기억이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 좋은 생각인 것 같아.”
“맞아, 좋은 생각이야.”
쌍둥이가 나란히 레이얼의 제안에 동조했다. 루시어스도 레이얼의 생각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을 담아 놓기에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500년 후에 다시 상자를 찾을 날을 고대하면서, 모두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겠지.
“그래, 준비해서 묻자.”
“해 보지 뭐. 타임캡슐이라는 거.”
“그럼 어디에 묻을까?”
마계는 워낙 싸움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 정말 깊고 안전한 곳에 묻어 두지 않으면 상자가 500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500년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만한 곳에 묻어 놔야 할 텐데, 마땅한 곳이 있을까?
잘못하면 중간에 다른 마족이 발견해서 가져갈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했다. 고민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라타트리아가 슬쩍 말을 꺼냈다.
“루시어찌네 집은 어떠냐찌?”
“……우리 집?”
루시어스가 조금 당황스럽게 되물었다. 라타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대장군님의 저택이잖아찌! 그만큼 안전한 곳이 또 없을 거라찌!”
“오, 들어 보니 그게 맞긴 하네.”
“어중간한 곳에 묻을 바에는 그게 훨씬 낫지. 잊어먹을 일도 없고.”
“맞지, 맞지. 게다가…….”
아이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들이 음침하게 웃으며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관심은 순식간에 루시어스가 사는 저택으로 돌아갔다.
대장군의 저택! 루시어스의 본가!
혹시 저택에 사령이 날아다닐까? 샤먼이 사는 저택이니 분위기가 음침할까? 아니면 루시어스가 지내는 곳이니 정원이 가꿔져 있나?
넓은 훈련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각종 무기가 잘 손질되어 진열되어 웅장하게 전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캡슐이고 뭐고 저택이 더 궁금해!
“흐흐흐흐.”
“우후후후후후.”
서로 재빠르게 눈치를 교환하던 학생들이 이내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좋아, 루시어스네 집에 놀러 가자!”
“야호! 두근두근 저택 탐험이다!”
“네 번째 반, 전원 출격!”
……방금 뭔가를 들은 것 같은데.
“……탐험? 출격?”
루시어스가 귀를 의심했다.
* * *
한창 저택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더미트는 이동진이 가동된 걸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이런 시간에 루시어스가 왔나?
아니지. 루시어스라면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한창 듣고 있을 테니 하멜인지도 모르겠다.
이동진을 타고 도착한 이가 누구인지 가만히 가늠해 보던 더미트가 익숙한 기운을 느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표정이 무척 부드러워졌다.
언제 만나도 반가운 아들들이…….
아들……들이?
“……?”
루시어스의 기운을 느끼고 반갑게 맞이하러 가려던 더미트가 곧 와르르 쏟아지듯 나오는 기척들에 몸을 움찔 굳혔다.
하나, 둘, 셋, 넷…….
저택에서 느껴지는 기운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기운이 아주 작은 걸 보니 학생들인 것 같았다.
‘설마 친구들을 데려온 건가?’
그것도 레녹스나 레이얼이 아니라 반 친구들을?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루시어스가 친구를 데려오다니, 레이얼과 레녹스 말고는 아무도 저택에 초대하지 않았던 그 루시어스가!
더미트는 이동진이 설치된 방으로 이동하며 속으로 할 말을 열심히 골라보았다.
어서 오거라. 편히 쉬다 가거라. 잘 왔다. 우리 아들을 잘 부탁한다.
기대감에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루시어스!”
“더…… 아버지.”
시선을 의식했는지 이름을 부르려던 루시어스가 재빨리 호칭을 바꿨다. 더미트는 루시어스의 뒤에 와글와글 모인 학생 무리를 흘긋 곁눈질했다.
딱 보니 네 번째 반의 아이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
“잠깐 놀러 왔습니다!”
“어서 오거라.”
아이들이 씩씩하게 외치며 인사를 건넸다. 더미트는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열심히 연습했던 말을 학생들에게 해 주고는 루시어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쉬시는 데 방해가 됐나요?”
루시어스가 간절한 눈빛으로 더미트를 바라봤지만, 더미트는 그런 루시어스의 눈빛을 알아채지 못한 채 무척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이 친구들을 데려왔는데 방해일 리가 없잖니. 오히려 너무 반갑단다.”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이 가득했다.
샤먼, 그것도 대장군이 아들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사실은 우리밖에 모르겠지.
아들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툭툭 두드리는 다정한 손길을 보고 누가 그를 샤먼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지난 2년간 몇 번 더미트를 먼발치에서 봤기에 망정이지, 말로 전해 들었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니 뭐, 왕자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아도 딱히 믿기지 않고.’
‘모르는 놈들이나 그렇게 말하지. 저렇게 사이가 좋은데 부자 관계가 아닐 리가 없으니까.’
안 그래도 샤먼은 보호자가 되어도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며 마계 내에서 말이 많은 종족이 아닌가.
아들도 아닌데 저렇게 아낄 리 없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찾아왔니? 한창 수업할 시간일 텐데.”
“친구들이랑 타임캡…….”
“루시어스가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저택을 구경시켜 준다고 했어요!”
사정을 설명하려던 루시어스의 말을 학생들이 뚝 끊으며 끼어들었다.
루시어스가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봤지만, 학생들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미트가 앞에 있다고 아주 배짱을 부렸다. 루시어스라도 보호자인 더미트 앞에서는 이빨 빠진 호랑이일 뿐이었다.
“……정말이니?”
“신기한 게 정말 많다고 하던데요?”
“맞아요. 그리고 루시어스가 아버지가 멋지다고 얼마나 저희한테 자랑했는지 몰라요!”
“오늘도 지금 가면 뵐 수 있을 거라고, 자기도 오랜만에 뵙고 싶다고 했어요.”
아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부정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의 말을 들은 더미트가 무척 감동한 눈으로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루시어스는 차마 기뻐하는 더미트에게 사실을 말할 수가 없어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그랬구나. 그래, 잘 왔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놀다가 가거라.”
“네!!!”
졌다. 저 천진난만한 기세에 밀렸다.
루시어스가 미간을 짚었다.
……얘들아. 타임캡슐은 어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