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43)
마족답게 사는 법-243화(243/385)
마족답게 사는 법 243화
243 협상 (2)
“정말 알 수 없는 놈들이군.”
가브리엘이 자리를 비우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마왕이 입을 열었다. 뤼디거가 그의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여타 교류 물품을 정하고 조율하는 건에 있어 가브리엘은 정말 노련한 모습을 보였다.
뤼디거가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느낄 정도로 가브리엘은 무척 급한 듯 행동하면서도 철저하고 섬세하게 손익을 계산했다. 괜히 가브리엘이 온 것이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아카데미에 대한 건 달랐다.
천계가 확실히 손해를 보고 있었다.
무척 조급해하고 있다.
“그쪽이 본론이라고 봐야겠죠.”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5장로.”
무슨 수를 써서든 천사들을 아카데미에 보내려 하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만약 회의할 때, 셋중 누군가가 가브리엘에게 ‘다음 가브리엘’을 데려오라고 했다면.
그는 바로 본인을 희생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을 수 있는 어떠한 ‘미래’가 천계에 있다는 소리였다.
3대 천사 중 한 명인 가브리엘을 희생해서까지 손에 넣어야 하는, 이득이.
루시어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카데미에 대한 안건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우선 저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음은 명백합니다.”
“패를 전부 보이진 않았겠지. 내일 천계의 상황을 이야기해 주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기대할 순 없을 거야.
마왕은 본인이 알고 있는 천계에 대한 정보를 되짚었다.
문이 닫혀 있기는 했어도 그쪽과 아예 연락하지 않았던 건 아니니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짐작되는 바가 없다.
천계가 교류에 매달리는 이유라…….
“본격적으로 접촉하려고 했던 건 100년 전이지만, 생각해보면 천제는 내가 즉위했던 500년 전부터 이미 내게 접근하려고 했다.”
“당시 천제가 교류하자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까?”
“……아니, 신을 믿냐고 묻던데?”
“……예?”
“신을 믿냐고 묻더라고.”
그 미친놈이.
루시어스가 못 들을 것을 들은 마냥 미간을 찌푸렸다. 마왕 또한 별반 다르진 않은 기분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이상한 놈이었다.
“그러면서 평화를 위해 헌신할 생각이 없냐고 묻는데, 그때부터 이미 교류할 준비를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욱 그쪽과 연락을 끊었지만.”
“……500년이라.”
뤼디거도 도통 그들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지 고개를 기울였다. 500년을 넘어 오래되어 먼지가 켜켜이 쌓인 기억까지 끄집어내어 탁탁 털어 봤지만, 도무지.
뤼디거가 마왕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하께서는 계약이나 다른 사정으로 중간계에 나가 본 적이 있으십니까?”
“중간계는 갈 시간이 없었지.”
당시에 문이 열려 있었기는 했지만, 마리엘라를 돌보느라 가 보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딱히 관심을 가지려 하지도 않았다.
마리엘라가 그걸 알고 슬퍼할까 봐.
“그런데 그건 왜 묻지?”
“제가 중간계에 한참 나가 있었을 때니, 한 800년은 지난 옛날 일입니다.”
그가 미간을 살포시 찌푸렸다.
“본래 중간계 일에는 크게 간섭을 하지 않는 천사들이 유난히 심하게 중간계에 내려와 간섭하며 귀찮게 군 기간이 있었습니다.”
“흐음.”
“저는 그들의 간섭이 거의 끝날 무렵에 중간계에 갔습니다만, 한 200년은 그랬었다고 압니다. 당시 마족들이 많이 몸살을 앓았었죠.”
그가 말하는 기간이 언제인지는 루시어스도 알 것 같았다. 분명 과거 기록을 정리할 때, 유난히 천계에 대해 많이 언급된 기간이 있었다.
중간계 대륙이 혼란스러워 마족들이 중간계에 많이 나가게 되니 천계 쪽에서도 제재를 가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얼마나 마족들이 중간계에 많이 나갔었는지, 덕분에 당시 마계는 상당히 풍요로웠었다.
“천제가 세대교체를 하면서 천계의 태도가 많이 변한 모양입니다만……. 문제는 천제도 ‘이름’을 잇는지라.”
“반마감정이 없을 리 없다, 이거군.”
“그렇습니다.”
평화적인 교류를 계속하기 위해 어린 천사들까지 보내 교육을 하려 할 정도로, 천사들의 이름과 기억에 얽힌 반마감정은 무척 강력하다.
생각해 보면 천제씩이나 되는 천사의 감정이 한 세대 만에 희석되었을 리가 없다.
누구보다 마족을 싫어하면 싫어했지.
천제가 워낙 미친 듯이 굴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그 또한 전대의 기억을 이은 천사라는 걸.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주의하는 게 상책인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마왕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그의 눈이 여전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가라앉아있었다.
한참 그러고 있던 마왕이 결심한 듯 몸을 일으키고 루시어스에게 말했다.
“이번 아카데미와 관련한 결정은 모두 5장로에게 위임하도록 하지.”
“……전하.”
“나와 2장로는 천계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좋지 않아 합리적인 판단이 힘들다. 이런 태도는 오히려 협상에 독이 될 수 있어.”
마왕이 루시어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풀어진 듯 옅게 웃음 짓는 표정이 평소에 익히 보여주는 헤픈 얼굴이라 괜히 안심되었다.
그리고 속내도 빤히 보였고.
“현재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는 그대의 의견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 내린 결정이다. 5장로가 잘 조율해 보도록.”
“……알겠습니다. 전하.”
“그게 어떤 결과로 나타나든 문책하지 않을 테니, 편히 결정하도록.”
괜히 배려해 주기는.
루시어스가 살짝 웃었다.
* * *
다음날 같은 시간에 회의가 시작되었다.
가브리엘이 이번에 제안한 무역품은 ‘신성석’이라는 천계의 자원이었다.
정확히는 신성석과 마정석의 가치를 비교해 적당한 가격으로 물물교환을 하기를 바랐다.
물품을 교환하는 데에 필요한 준비는 천계에서 할 테니 물건만 준비해 주면 좋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신성석이라.”
“네, 천계에서는 무엇보다 마정석의 공급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마정석을 천계에 공급하는 건 그리 큰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설마 천계에서 마정석의 대가로 신성석이라는 카드를 내밀 줄은, 마왕도 예상하지 못했다.
신성석.
발생 원리는 마정석과 같다.
신성석은 신성력이 모여 응집되는 보석으로, 천계의 대표적인 산물이다.
그러나 마계 전역에서 다양한 속성의 마정석을 채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신성석은 조건이 맞는 특별한 장소에서만 생산되고, 양도 무척 적었다.
천계에서도 귀한 보물로 취급한다.
그리고 천계의 주된 동력원으로 중추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순도를 가진 물건이었다.
마왕 또한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지 미간이 고민으로 찌푸려졌다.
“……마정석의 사용처는?”
“연구입니다.”
마왕의 물음에 가브리엘이 답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폈다. 천장을 향한 손바닥 위에 하얀빛이 조금씩 모이더니 작은 구슬이 되었다.
“바알, 실례가 아니라면 관련된 내용을 설명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허가한다.”
가브리엘의 손 위에 있던 구슬에서 빛이 나더니 물보라가 일어나 원탁과 함께 모두를 감쌌다.
물의 장벽이 일렁이며 뭔가를 비추기 시작했다. 곧 선명하고 강력한 환각이 오감을 지배했다.
가브리엘이 가진 힘이었다.
“……천계군.”
“맞습니다.”
루시어스는 천계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마계와는 달리 폐쇄적이고 제한된 영역을 가진 세계가 펼쳐졌다.
천계의 땅은 작은 섬이었고, 지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높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연녹색의 짧은 잔디가 빼곡하게 깔린 작은 섬의 중앙에는 천사들이 사는 거대한 ‘탑’이 존재했다. 지하부터 지상까지 끝없이 높게 세워진 탑이었다.
“이곳이 저희의 아늑한 요람입니다.”
사방 어느 쪽으로 나아가도 30분만 지나면 세계의 끝에 다다를 수 있다.
땅은 무척이나 작고 볼품없으며, 하늘은 그저 순수한 하얀색이었다. 고립된 곳에 세워진 탑이라니.
마족들의 눈에는 천사들이 섬에 갇힌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마계의 땅에서 뛰어노는 마족들은 도통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답답한 삶이었다.
가브리엘은 천천히 천계를 소개했다.
“천계의 탑, 아발론의 중앙에는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천계를 지탱하며 지상을 이어 주는 하나뿐인 신목이지요.”
“오랜 옛날에는 저것이 중간계에 있었다고 하지.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말이야.”
“맞습니다. 차원이 세 개로 나뉘고 난 후 천사들이 관리하게 되었지요. 이것을 이용해 저희는 중간계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각 천사는 타고난 대로 정해진 층에서 정해진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모든 업무에는 신성석이 사용된다.
지상의 목소리를 들으며 축복을 내리고 생사를 결정하는 일 모두.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라면?”
“마계와 천계의 다툼이 적어지고 평화로운 시기에 돌입하니 인간계에도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가브리엘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듯 말했다.
“전쟁이 줄어들며 문화와 의료가 발전하고 수명이 길어졌습니다. 사실 무척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지요.”
“대신, 관리할 게 많아진 거군.”
“맞습니다. 신성석을 채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천사들의 수도 정해져 있는데 말이죠.”
루시어스는 가브리엘을 응시했다.
분명 이전부터 천계는 그런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중간계에 목소리를 전하고 각 계로 흘러가는 원소의 흐름을 통제하며 영혼을 관찰해 지은 죄에 따라 적당한 생명체로 탄생시킨다.
그런데 점점 관리해야 할 범위가 늘어나니 업무가 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천사들이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긴 연구 끝에 계속해서 신성석만을 쓰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시선을 느꼈는지 가브리엘 또한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맞물리듯 마주쳤다. 어디선가 청명한 바람이 불어와 은색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그는 루시어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또박또박 말을 맺었다.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여전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루시어스는 한쪽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정리하며 천계의 모습을 다시 눈에 담았다.
꼬르르르.
물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곧 천계의 모습을 담았던 물방울이 사라졌다. 가브리엘이 기운을 갈무리했다. 손 위에 있던 구슬이 빛을 잃으며 흩어졌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마정석입니다.”
“마정석은 신성석과 완전히 형질이 다른 힘을 지니고 있지. 실용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데에만 해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될 터다. 알고 있을 텐데?”
“형질이 전혀 다르기에 섞였을 때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준비는 끝났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제 눈이 보증하지요.”
“그대들답지 않은 선택이군.”
가브리엘은 얼핏 웃었다.
자조적으로까지 보이는 웃음이었다.
“바알. 저희는 항상 같습니다. 그게 어떤 운명이든 따르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덕목입니다. 천계를 위해서요.”
“그게 마계에 손을 벌리는 일이라도, 말인가?”
“네.”
단호한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