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47)
마족답게 사는 법-247화(247/385)
마족답게 사는 법 247화
247 타리크 라하위스 (2)
“사막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래, 러드 근처라더군.”
“……거길 왜 제가 갑니까.”
지금 드라이어드한테 사막까지 출장을 다녀오라는 말을 한 건가? 눈앞의 마왕은 내가 드라이어드에 미성년이라는 사실을 잊고 계시는 건가?
루시어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설마 진심은 아니시겠지, 내 의중을 떠보려고 농을 던지시는 거겠지. 생각하며 마왕을 바라보았다.
장난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
“그거야 내 마음이지.”
“전하. 저는 드라이어드입니다.”
“명령이야, 루시어스.”
그럼 그렇지.
루시어스가 말을 잃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마계에서도 척박하기로 유명한 장소인 러드의 사막에 드라이어드더러 다녀오라 하니 어이가 없었다.
저를 보내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곳의 독기가 이상하게 강해졌고 드라이어드가 독기에 민감하니 한 번 확인하고 오란다.
다만 독기에 민감하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취약하다는 말과 같았다. 보통 드라이어드라면 독기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버릴 게 분명했다.
“그대, 아무래도 내 명령에 불만이 있는 눈치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있다마다. 없을 리가 없지 않나.
독기가 강해졌으니 확인하라는 이유라면 드라이어드가 아니라 드루이드가 가는 편이 나았다.
마침 군단장 중에 드루이드도 있는데 왜 굳이 자신이 가야 한단 말인가.
“리브레에게 도움을 청해도 괜찮다. 문제를 처리하라는 게 아니야. 멀리서 지켜보고 상황을 파악해서 보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전하. 제가 가기엔 사안이 과합니다.”
“경험 삼아 한 번쯤은 가 볼 만하니 일이 대충 끝나면 리브레와 천천히 근처라도 구경하다 오도록. 러드에 가볼 기회는 딱히 많지 않아.”
“…….”
“물론 가능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좋겠지. 정말 ‘가능하면’이지만.”
위험한 일이 아니라는 듯,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고는 있지만 지긋하게 바라보는 눈동자는 어쨌든 해결하고 오라고 독촉하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명령을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
루시어스가 고개를 숙였다.
* * *
사막이 시작되는 곳에 높은 키다리 나무가 한 그루 자랐다. 나무 맨 위의 가지 위에 마족이 둘 앉아 있었다.
한 명은 나무를 소환한 루시어스였고, 다른 한 명은 대장군인 리브레였다.
리브레는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마왕의 명으로 사막에 간다고 하니 만사를 제치고 따라와 주어 무척 고마웠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더니.’
한눈에 보기에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사막은 원래 생명이 살기 좋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웬만한 독기에도 버티는 마물들의 껍질이 살살 녹을 정도였다.
이건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였으니 분명 원인이 되는 물건을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심어 둔 게 틀림없었다.
마왕에 대한 반기? 아니면 러드 시민들의 폭동? 새로 바뀐 통치자에 대한 불만인가?
어느 쪽이든 썩 반가운 상황이 아님은 분명하다.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위험할 정도로 사막이 짙은 독기에 오염되어 가고 있다.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쪽은 제7군을 좀 더 정비하고 오는 게 좋겠어요.”
“군단장님.”
사막으로 오는 내내 자신이 알아서 해결할 테니 돌아가라고 만류하던 리브레가 심각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확인하고는 다급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당신이 간간이 여러 일을 돕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마왕군 훈련까지 거뜬하게 받아낸 것도 알고 있고요. 하지만…….”
무척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리브레의, 7군단장의 어투가 달라졌다.
“하지만 이런 임무를 수행하게 할 순 없다. 이건 나와 7군단, 그리고 마왕군의 업무야.”
“군단장께서는 제7군이 움직일 때까지 주변이 버틸 수 있을 것이라 보고 계십니까?”
“……길게 버틸 수는 없겠지. 이 주변도, 나도, 그리고 그대도.”
“혼자보다는 둘이 나을 겁니다.”
“아니. 명령이다, 루시어스 켄드릭.”
이만 돌아가.
유한 성정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그는 마왕이 7군단을 맡길 만큼 강하고 유능한 마족이다.
그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리브레의 목소리와 마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루시어스는 기운을 받으면서도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확산 속도가 지나치게 빠릅니다. 이대로 두면 일주일 내에 지하에 있는 러드가 심각한 피해를 보겠죠. 그렇게 되면 내륙에도 영향이…….”
“그건 내가 걱정할 문제다. 그대가 그런 것까지 걱정하지는 않아도 돼.”
“전하의 명령입니다.”
“…….”
“제게 이 일을 해결하고 오라는 명령을 내리신 분은 전하이십니다. 그러니 저는 7군단장님의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루시어스의 말을 들은 리브레가 키다리 나무의 가지에 손을 뻗었다. 마기를 불어넣자 가느다란 가지가 솟아나며 얇은 나뭇잎이 싹을 틔웠다.
가지가 움직여 루시어스의 발과 손을 단단히 잡았다. 루시어스가 나뭇가지를 살짝 내려다보았다.
그런 후에야 리브레가 루시어스를 압박하던 마기를 거두며 몸을 일으켰다.
목소리와 어조가 부드럽게 돌아왔다.
“이건 저희의 영역이에요.”
“……리브레 님.”
“당신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가 대장군 얼굴을 어떻게 마주하겠어요. 저를 믿어 주세요, 루시어스. 잘 해결하고 돌아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세요.”
이럴 때를 위해 마왕군과 제7군이 존재하는 거예요.
리브레가 손을 꼭 잡으며 기도하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루시어스를 향해 살포시 웃어 준 후.
타닷!
혼자 밑으로 내려갔다.
루시어스는 혼자 사막으로 떠나는 리브레를 바라보다가 나뭇가지를 손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나뭇가지가 손쉽게 풀리며 애교라도 부리듯 루시어스의 손가락에 붙어 살랑였다.
“혼자서는 힘드실 텐데.”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드루이드가 제힘을 쓸 수 있을 리 없다.
사막 끝에서도 느껴지는 독기도 이렇게 위협적이니 안쪽이 어떤 광경일지는 뻔했다. 약으로 겨우 건사하고 있는 리브레의 몸이 버티지 못하고 망가질지도 몰랐다.
옅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군단장님만의 영역이었다면 전하께서 절 보내지도 않으셨겠지요…….”
전하께서 명령한 순간 다른 누구도 아닌, 루시어스 켄드릭이 책임져야 할 일이 되어 버린 것을.
‘가능하면 처리하고 오라고 하셨지.’
수습을 강제하지 않았던 건 마왕이 제게 보인 호의일까, 아니면 저를 시험하는 유혹일까.
고개를 저어 상념을 떨쳐 냈다. 이대로면 이 근방에 사는 마수, 마물, 마족까지 전부 죽는다. 일을 해결하러 간 리브레도 멀쩡하게 돌아오지는 못할 확률이 높다.
불이 나는 곳에 기름을 부은 꼴이니 기세는 절대 움츠러들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뒀다간 흉흉한 독기가 사막을 넘어 대륙 중앙까지 흘러들어올지도 몰랐다.
손 쓸 타이밍을 완전히 놓치기 전에 독기의 원인이 되는 물건을 최대한 빨리 제거해야 한다.
루시어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만 더 버텨 주십시오.”
크르르르릉…….
까드득, 까득!
나무 아래에 지독한 독기에 홀려 몰려온 마수와 마물이 루시어스를 발견하고 벌게진 눈으로 침을 흘리고 발톱으로 나무 밑동을 긁어내고 있었다.
“우선은 저것들부터.”
전부 처리하고 갈 테니 말입니다.
* * *
사막의 생태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마물들을 최대한 죽이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비정상적으로 독한 기운 때문인지 마물들은 모두 흉측하게 변이되어 있었다.
그대로 놔두면 오히려 생태계를 파괴하고 마족들을 해치고도 남을 정도라 루시어스는 그냥 보이는 마물들을 전부 쓸어버렸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나.”
창을 휘둘러 마물의 피를 털어 낸 루시어스가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리브레가 원인을 찾으러 갔으니, 자신은 밖으로 독 안개가 나가지 않도록 간단한 폐쇄형 결계를 설치해 둘 생각이었다.
식물을 매개로 구축하는 결계라 길게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일이 끝날 때까지는 버텨 줄 것이다.
‘그럼 이제 군단장님을 찾아야겠다.’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독기가 피부를 찔렀다. 방심하면 살갗이 녹을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루시어스가 걸음을 재촉해 독기가 가장 강한 곳으로 서슴없이 들어갔다.
드루이드는 독에는 내성이 없고 강하면 강할수록 육체가 병드는 종족이다.
리브레도 온갖 약초와 마법으로 몸을 멀쩡히 건사하고 있지만,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면 금방 컨디션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만다.
안 그래도 독한 독기가 결계 때문에 더욱 짙어졌으니 최대한 빨리 리브레와 합류해 그를 보호해야 했다.
“……리브레 군단장님!”
짙은 안개 속에 그림자가 보였다. 루시어스가 눈을 크게 뜨며 리브레를 향해 뛰어갔다.
사막에 주저앉아 입가에 흐르는 핏줄기를 닦으며 숨을 몰아쉬던 리브레가 제게로 다가오는 루시어스를 발견하고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루시어스, 왜 여기에……!”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십니다. 우선 아무 말씀도 마시고 몸을 보호하는 데 집중하십시오.”
“쿨럭, 콜록콜록!”
몸을 일으키려던 리브레가 다시 무너지듯 주저앉아 기침을 토했다. 루시어스가 다가가 두 손으로 어깨를 받쳐주고 조금씩 마력을 흘러 넣었다.
리브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전 괜찮으니까, 도망쳐요. 루시어스…… 여긴, 너무 위험해…….”
핏덩이를 울컥 토해내면서도 루시어스의 몸에 정화마법을 건 리브레가 곧 의식을 잃고 몸을 늘어트렸다.
루시어스가 리브레의 몸을 살폈다.
“괜찮습니다. 잘 버텨 주셨습니다.”
그를 곱게 눕혀 놓은 후 독기가 주변으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작은 결계를 치니 리브레의 안색이 훨씬 좋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루시어스가 시선을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 독기의 원인이 있었다.
피 웅덩이 속, 남자가 누워 있었다.
가슴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피웅덩이에서 끊임없이 독 안개가 생성되며 주변으로 자욱하게 퍼졌다.
그뿐만 아니라 몸에서도 보랏빛 독이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건 폭주인데…….”
루시어스가 중얼거리며 마족을 한 번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느껴지는 힘이 평범한 마족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엉망이기는 했으나 입고 있는 옷도 사막에서는 보기 드문, 견고하고 정밀하게 짜인 아라크네의 비단이었다.
가슴의 상처는 리브레가 치료해 놓았는지 더는 피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이만한 치유술을 발휘할 수 있다니 역시 대단했다.
‘그런데 이상하네.’
루시어스가 남자를 응시했다.
그을린 듯 보기 좋은 피부와 건장한 육체. 흐트러진 적포도주색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두 눈이 감긴 얼굴. 사막 일족 특유의 굵고 진한 선을 가진 남자.
분명 처음 보는 마족인데, 낯익다.
‘지나치듯이 만난 적이라도 있나?’
폭주로 이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정도로 강한 스콜피온 마족은 러드에서 한 명뿐일 터다.
사막의 패자. 세르크 라하위스.
“……하지만 그가 아닌데.”
루시어스는 오래된 흉터와 새로 생긴 상처로 얼룩진 몸을 바라보았다.
마족에게 흉터가 남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몸이 이렇게까지 상했다는 건, 그가 그만큼 많은 고난을 겪었다는 뜻이리라.
우선 원인이었던 상처는 리브레가 치료했으니 고비는 넘겼다. 다만 피 웅덩이를 처리하며 독기를 정화하고 남자의 폭주를 수습해야 했다.
루시어스가 그의 가슴 위로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상대도 상대이고 종족도 종족인지라 루시어스는 리브레에게 하던 것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마기를 다루었다.
천에 물이 스며들듯 한 방울씩.
똑, 똑, 똑.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보다 그렇게 반발이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스콜피온이면 드라이어드의 기운에 크게 반발할 법도 한데, 그의 마기는 루시어스의 마기를 곧잘 따라왔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어린아이처럼,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유순히 움직였다.
생각보다 쉽게 폭주했던 마기가 가라앉았다.
기운이 완벽하게 순환하며 제자리를 찾았고 몸에서 끊임없이 뚝뚝 나오던 독이 멎었다.
“……후우, 이제 마지막인가.”
이번에는.
사막을 메워 가는 독기를 정리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