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54)
마족답게 사는 법-254화(254/385)
마족답게 사는 법 254화
254 흔들림 (4)
강제 서임은 강한 마족을 제 밑에 꿇리고 기사로 삼고 싶은 장로들이 종종 사용하고는 했던 방법으로 무척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다.
서약문을 들을 필요도 없이 머리에 손을 올리고 강제로 마기를 주입하기만 하면 끝인, 상대방을 그저 옭아매는 데에 치중한 이기적인 방법.
강제 서임의 가장 큰 문제는 기사가 될 마족이 겪어야 하는 통증이었다.
조직, 혈관, 세포 하나에 이르기까지 주군이 누구인지 일깨우고 각인하는 데에서 따르는 통증은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마족이 있을 정도로 끔찍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서임을 자신이 하게 될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 빌어먹을 녀석이…….’
어쨌든 루시어스는 타리크를 살살 다룰 생각이 전혀 없었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니, 통증을 포함한 모든 뒷감당을 하는 것은 이놈의 몫이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미친놈이라면 어떻게든 목줄을 걸고 움켜잡아놓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레녹스와 레이얼은 아직 배울 점이 많은 어린아이니.
이놈을 대신 일 하게 하면 일석이조가 되지 않을까?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게 만들어 주면 뉘우치는 게 좁쌀만큼은 생기겠지.
‘그나저나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어도 신음 한 번 안 내는군.’
루시어스는 타리크의 오른손등을 한 번 확인했다.
아주 천천히 제 인장이 떠오르고 있는 걸 보면 서임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타리크는 미간을 잠깐 찌푸리기만 할 뿐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이 정신 나간 놈이 기사 자리에 가지고 있는 환상과 집착이란 대체 무엇일까. 루시어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문장이 모두 발현될 때까지 마기를 때려 부었다.
“흐읍……! 콜록!”
문장이 모두 새겨질 무렵.
타리크가 마른기침을 토하며 작게 신음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루시어스는 서임이 마무리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등을 돌렸다.
“나중에 두고 보자.”
이번엔 지금까지처럼 순순히 넘어가 주지 않을 테니까.
루시어스는 이후로 타리크가 있는 곳에서 나와 저번에 심어 놓았던 나무, 클로에를 찾아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러드가 지하에 있으니 이 사달이 난 거지.’
녀석뿐만이 아니라 역대 사막 도시의 수장들이 대부분 그랬다.
그들은 결계와 폐쇄성을 들먹이며 마왕의 감사까지 거절한 적도 있었고, 지하도시임을 이용해 마계에서 금기시되는 여러 물건을 밀거래하는 창구 노릇을 했던 적도 있다.
당장 타리크 전의 지배자였던 세르크 라하위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러드의 특수성 때문에 제멋대로 행동하며 ‘마계의 시민’들을 착취했다.
타리크가 아무리 오만방자하게 굴어도 지배자로서 일은 똑바로 하니 지금까지 살려둔 것이었는데.
이렇게 나오면 봐줄 필요가 없다.
“사실 해결 방법은 간단해.”
루시어스가 클로에 앞에서 부드럽게 기둥을 슥슥 쓰다듬었다. 그간 관리하기는 했는지 촉촉하고 기분 좋게 까슬한 감촉이 닿았다.
“지하에서 살기 답답하면 지상으로 나가면 될 일이지. 결계 유지가 힘들면 결계를 아예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면 돼.”
눈이 닿는 곳에 도시가 존재한다면 누구든 허튼짓을 못 하게 되겠지.
나뭇잎이 흔들리며 순풍이 불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사사사, 사삭…….
바람을 타고 걱정스러운 소리가 전해졌다. 루시어스가 이마를 톡, 나무 기둥에 가볍게 부딪히며 웃었다.
“괜찮으니 나를 좀 도와줘.”
그 녀석한테 한 방 먹여야겠거든.
“함께 밖으로 나가자, 클로에.”
* * *
어떤 언어로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장엄하고 정숙한 광경이었다.
깊은 곳에서 시작된 흔들림이 점점 격렬해지며, 사막의 바람이 눈을 뜨기도 힘들 만큼 거칠게 휘몰아쳤다.
거대한 재해와 다름이 없어 보이는 폭풍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솟아올라 하늘에 닿았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을 수도, 폭풍 속에서 날개를 펴고 거만하게 하늘을 날 수도 없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존재가 자세를 낮추었다. 마물과 마수는 물론이고 마족도, 그리고 몰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천사들까지 모두, 하나도 빠지지 않고.
쏴아아아아아.
바람과 함께 하늘로 솟아오른 독기가 맑은 물이 되어 아래로 쏟아졌다. 소낙비가 사막을 적시며 음산한 기운을 모두 몰아냈다.
“신이시여…….”
어느새 방독면을 벗은 케루브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하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을 가득 머금은 빗줄기였다.
가브리엘은 두 손 가득 빗물을 모았다. 모래처럼 금방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가고 마는 그것을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감상에 빠진 그를 케루브가 불렀다.
“이걸로 모두 확실해졌네요.”
“……그렇구나.”
“그놈이 저렇게 매달릴 만한 상대는 그분뿐이니까요. 게다가 비에서 느껴지는 힘도 그렇고.”
“케루브. 아무래도 끝이 아닌 것 같다. 우선은 멀리 피해 있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두두두두두두.
둘이 있던 자리에서 멀리 벗어나자마자 땅이 강하게 울렸다. 아래에서 뭔가 나오기라도 하는지 사구가 높이 치솟으며 모래가 쏟아졌다.
모래가 점점 걷히며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났다. 가브리엘과 케루브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것은 한 그루의 나무였다.
끝없이 거대하고 거대해 이 세계를 직접 떠받칠 수도 있을 것 같은 한 그루 나무. 찬란한 은색 광휘가 축복처럼 땅에 내려앉는 아름다운 한 그루 나무.
나뭇잎과 가지의 그늘로 도시를 뒤덮고도 남을 듯 거대한 나무였다.
아주 천천히 장정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다 껴안을 수 없는 단단한 기둥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지 깊은 곳까지 뻗어있는 단단한 뿌리가 땅을, 정확히는 도시를 사막 위로 끄집어냈다.
지진 때문에 산산이 조각난 도시를 뿌리와 가지가 감싸듯 보호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도시의 파편이 나무에 맞춰, 높고 낮게 솟으며 자리를 잡았다.
기적과도 같은 모습에 케루브가 신음했다.
“……위그드…….”
“케루브, 조용히.”
“…….”
“……말하지 말아라.”
가브리엘은 케루브의 입을 단속하면서도 그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두 천사는 깊은 기억 속에 새겨진 천계의 첫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하늘을 뚫고 높이 솟아오른 대지를 낙원이라고 부르며, 그 위에 세운 탑을 요람 ‘아발론’이라고 칭했다.」
곧 지진이 완전히 멈추었다.
다만 나무는 멈추지 않은 채 영역을 넓히며 지반을 튼튼히 지탱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이 도시를 둥글게 감싸듯 고이며 끊임없이 흘렀다.
초목이 자라며 주변을 뒤덮었다.
누구도 병들지 않고 다치지 않으며, 마물과 독기에 위협당하지 않을 것처럼 나무가 도시를 포근하게 감쌌다. 특유의 청량한 기운이 도시를 보호했다.
‘낙원…….’
사막의 낙원, 유일한 오아시스.
가브리엘이 몸을 일으켰다.
나무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한 명의 마족을 찾기 위해서.
곧 가브리엘의 시야에 마족 하나가 들어왔다. 나뭇잎이 발하는 빛과 똑같은 색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소년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자마자 비가 멎으며 구름이 물러갔다.
어둠 속에서 햇볕이 쏟아진다.
더없이 찬란하도록.
신의 검. 옥좌를 지키는 수호자.
대천사들을 이끄는 수장. 천제와 비견될 정도로 강하고 아름다운 천사.
“드디어, 찾았어…….”
그동안 끊임없이 찾아 헤맸던.
그분이 눈앞에 계신다.
* * *
러드의 지진이 끊이지 않아 곧 붕괴하겠다는 소식이 마왕성에 전해졌다.
각 진원지에 대한 보고를 들으며 발을 동동 구르던 마리엘라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러드로 향했다.
어련히 잘하겠지. 생각하면서도 아직 어린 동생에게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워 마음이 조급했다.
두근……, 두근, 두근.
경고하듯 심장이 계속 울렸다.
‘처음부터 어떻게든 같이 따라갈걸.’
마리엘라가 후회하며 뛰쳐나갔다.
마왕은 그녀를 잡지 않았다. 덕분에 마리엘라는 빠르게 사막에 다다랐다.
지진의 여파 때문에 러드 내부로 향하는 이동진은 쓸 수 없다는 말에, 알아서 직접 갈 테니 길이나 내어놓으라며 제6군단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러드가 솟아올랐다.
누구도 입을 열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감탄도, 탄식도, 환호도 할 수 없이 그저 넋을 놓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만 했던 러드가 멀쩡하게 사막 위로 나왔다. 평생을 도망쳤던 사막의 독기가 비에 쓸려가듯이 정화되었다.
“다행이다…….”
마리엘라가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루시어스가 상황을 잘 해결했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지?
“……왜 이렇게 불안하지.”
그녀가 손을 꾸욱 말아쥐었다.
바람을 타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의 폭풍이 몰아닥치며 두 어깨를 압도했다. 심장 안쪽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입술이 아주 조심스럽게 달싹였다.
“설마……, 벌써?”
피를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자각한 내뱉은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으며 거세게 뜀박질했다.
몸을 가득 채운 마기가, 마왕의 피가, 마신의 축복이 울렁거렸다. 모든 소리가 귀 가까이에서 울렸다.
‘안돼, 지금은 안돼. 조금만 더 참아.’
그녀는 이 순간이 아주 느리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빠르게 느껴졌다.
저도 모르게 무너지는 몸짓과 걱정스러운 듯 다가오는 제6군단장을 포함해 저를 발견하고 멀리서 뛰어오는 이들의 모습까지 전부.
섬뜩하게 소스라치도록 빠르며 불안하고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입을 틀어막은 손등으로 뭔가가 주르륵 흘렀다.
“장로님? 장로님! 무슨 일이십니까?”
“……러워.”
“마리엘라 장로님……!”
“시끄러워!! 읍!”
신경질적으로 외치는 목구멍을 타고 비릿한 뭔가가 넘어왔다. 마리엘라가 그것을 쿨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뱉어 내며 입을 막았던 손을 떼었다.
손이 붉은색으로 흠뻑 물들어 있었다.
붉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힘들 정도로 처참하고 확실하게 물들어있다.
마리엘라는 핏빛으로 일그러진 시야로 러드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붉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속이 울렁거려.’
뚜두둑. 둑.
귓가에 울리는 이명 가운데 선명하게 뭔가 깨지고 끊기는 소리가 울렸다.
곧 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잠이 쏟아졌다. 찬란한 사막 도시를 응시하던 눈동자가 서서히 감겼다. 몸이 옆으로 서서히 기울었다.
“오……빠.”
손이 허공을 의미 없이 갈랐다.
부름에 대답해 주는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