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55)
마족답게 사는 법-255화(255/385)
마족답게 사는 법 255화
255 흔들림 (5)
“……헉! 윽!”
번뜩!
정신을 차리자마자 몸을 일으키던 타리크는 정신을 잃은 동안 여기저기 두드려 맞기라도 한 것처럼 전신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힘없이 침대에 털썩 누웠다.
온몸의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끄응끙 신음했다.
눈을 질끈 감고 통증을 다스리는데 귓가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타리크는 문득 이와 같은 경험을 이전에 해본 적이 있는 것 같아 눈을 뜨고 시선을 돌렸다.
“일어났나?”
“루시어스 님.”
“오기 부리지 말고 그냥 그대로 누워 있어라. 강제서임을 당했으니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겠지만.”
루시어스가 팔락팔락 넘기던 책을 덮었다. 타리크가 몸을 일으키고 두 눈을 꿈뻑이며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시야가 무척 깨끗했다.
침침하게 제대로 보이지 않던 것이 꿈이었던 듯 너무나도 밝고 선명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루시어스가 타리크에게 다가갔다. 금색 눈동자가 무심하게도 움직였다. 루시어스가 손을 뻗어 타리크의 앞머리를 걷고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저……웁!”
“짜증 나니 입 닫고 있어.”
언제 가져왔는지 루시어스가 왼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통째로 타리크의 입에 박아 물렸다.
아삭.
한 입 베자 사과가 아래로 뚝 떨어졌다. 타리크가 떨어지는 사과를 받고 우물우물 먹으며 제 몸을 살피는 루시어스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몸을 기울여서 내려온 머리카락이 눈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도, 코끝에서 맴도는 나무뿌리 특유의 묵직하고 은은한 향도.
이마를 짚은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따스하고 청명한 기운도, 봄볕을 쬐는 것처럼 기분이 나른해지는 이 감각조차도 전부 그대로였다.
이 중에 달라진 것은 자신뿐이었다.
몸을 다 살펴본 루시어스가 제게서 떨어져도 시야는 여전히 맑았다. 타리크는 자신의 오른손등에 찍힌 루시어스의 문장으로 시선을 내렸다.
‘이것 때문인가…….’
기사가 되면 장로나 다른 기사들과 혼 일부가 서로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주먹을 괜히 쥐락펴락 움직이던 타리크가 한 입 베어 문 사과를 내려다보았다. 홍옥처럼 예쁜 붉은 껍질이나 연노란색 과육이 새삼스럽게 신기했다.
그나저나 여기는 러드에 있는 제 침실인데, 그렇다면 러드의 결계도 어떻게든 해결이 된 건가?
루시어스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에 맴도는 기운이 바뀐 건 어렴풋이 느껴졌다. 결계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결계를 완전히 제거한 모양인데.
밖이 도대체 어떻게 변했을까.
흥미로워하는데 루시어스가 말했다.
“이만하면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할 만큼 몸이 무겁기는 해도 주둥이만큼은 멀쩡히 움직일 수 있겠군.”
대화를 나누기는 딱 적당하겠어.
진단을 내린 루시어스가 조금 전까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침대 앞으로 가져왔다. 그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타리크를 응시했다.
타리크는 멍하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용케 살았네요.”
물론 그건 썩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심기가 불편해진 루시어스의 눈썹이 움찔 들썩였다. 다만 타리크도 이번에는 루시어스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하지 못해 슬쩍 눈치를 살피며 기억을 더듬었다.
결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영혼을 연결해 축으로 삼았지.
의식이 간당간당하던 차에 루시어스가 찾아와 내심 반갑게 맞이했던 기억이 있다. 제대로 말을 하거나 표정을 보일 수는 없었겠지만.
그러다 정신을 잃었고…….
“겨우 살려놨더니, 뭐? 용케 살아?”
“아, 그게…….”
“아주 그대로 죽게 놔두는 게 나았다고 하지?”
“네, 아무래도 그편이 루시어스님께도 낫지 않았겠습니까?”
“…….”
루시어스가 이마를 짚었다.
타리크도 알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루시어스가 직접 강제로 서임하는 방법뿐이라는 걸.
하지만 아무리 루시어스가 정이 많고 너그러운 마족이라고 해도 굳이 그렇게까지 저를 도울 이유는 없었다.
기사 자리를 주면서까지 모난 놈을 살려 놓을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뭐, 살았으니 다행이지만.
“후우우우…….”
심호흡하며 정신을 가다듬은 루시어스가 타리크를 노려보았다. 타리크가 몸을 움찔 떨며 저도 모르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자세를 바로 했다.
적당히 대화할 분위기가 된 것 같다.
루시어스가 먼저 운을 뗐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우선 이것부터 묻도록 하지. 어째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나?”
“무모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행동은 아니었을 텐데요.”
“그래, 잘못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 구역의 지배자로서 그런 면모를 보여주었으니 훌륭하다고 할 수 있어. 그런데 그렇게 훌륭했으니 문제야.”
“……?”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희생정신이 가득한 마족이었다고 그런 짓을 했느냔 말이다. 마족 몇 명이 죽어 나가도 눈 깜빡 안 하는 놈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죽을 각오까지 하며 러드를 지켰냐고.”
타리크 라하위스가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얻는 이익이란 무엇이었을까?
하다못해 키아라에서 일을 벌여 놓았을 때처럼 저를 위해서라는 변명거리라도 있었으면 그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연관되어 있지 않은 자연재해였다. 레이얼이나 키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면 그저 둘의 뒷목이라도 잡아 밖에 내다 버렸으면 되는 일이다.
굳이 러드 시민들을 몽땅 끌어안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행동해도 이상하지 않은 마족이 그였다.
루시어스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타리크는 조금 멍청하게 루시어스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루시어스 님께서는 제가 왜 그랬는지 솔직한 대답이 듣고 싶으신 겁니까?”
“그래, 그간 나를 왜 그렇게 귀찮게 굴었는지도 포함해서, 전부!”
“흐음.”
타리크가 시선을 한 번 굴렸다. 푸른색이 차오른 눈동자가 곱게 휘고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간지럽게 닿았다.
“그걸 말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그래도 들으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타리크가 본인의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제 시력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지요?”
“그래, 알고 있다.”
“시력뿐만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색도 분간하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루시어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리크 라하위스라는 마족이 살아온 생이 생각보다 처참해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가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행동을 용서할 수는 없다. 이놈은 그것과는 별개로 참 잘 만들어진 쓰레기였으니까.
“왜 진즉 그 얘기를 하지 않았지?”
“처음엔 색을 찾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당신을 곁에 두려고 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욕심이 생겼다고?”
“당신께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요.”
“그렇다면 더욱 말했어야지. 너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지금껏 나를 농락하고 기만했어! 적어도 말이라도 했으면!”
“그럼 저를 동정하셨겠지요.”
“너는 끝까지……!”
“그렇게 동정을 사도, 당신께서는 저를 곁에 두지 않았을 것이고요.”
“타리크 라하위스!!”
루시어스가 일갈하며 그를 불렀다. 가쁜 숨이 씨익씨익 새어 나왔다. 타리크는 말없이 루시어스를 바라보다가 몸을 정돈하고 두 무릎을 꿇었다.
그가 깊이, 아주 깊이 고개 숙였다.
“잘못했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짓을 반복할 놈이고, 그런 말로 당신의 진노가 가라앉지도 않을 테니까요.”
손등에 새겨진 문장이 은은하게 빛났다. 루시어스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대신 다시는 당신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겠다고 맹세하겠습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타리크 라하위스의 서약문이었다.
“당신께 무엇도 바라지 않겠다는 사실을 아시고, 저를 그저 곁에 두어 주십시오.”
“…….”
“당신을 위해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어차피 이 목숨은 당신이 아니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루시어스는 서약문을 마친 타리크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강제로 서임했으니 서약문을 읊으며 속을 내보이고 허락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타리크는 루시어스가 제 서약문을 허락하기를 기다렸다.
그저 목숨줄을 이어 붙여 놓기 위한 서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루시어스가 자신을 온전히 기사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좀 좋았을까.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바짝 자세를 낮추는 상대를 앞에 두고 계속 화만 내고 싶지는 않아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불허한다.”
차갑게 울리는 목소리에 타리크가 잠시 크게 뜨다가 곧 씁쓸하게 웃었다. 하긴, 받아줄 리가 없나.
“네가 너를 곁에 두는 이유는 제멋대로 행동하는 널 감시하기 위함이야.”
“……루시어스 님.”
“기사로서 인정한 게 아니다. 망둥이 같은 놈에게 목줄을 채워 둔 거지. 그러니 눈 밖으로 나가지 마라.”
이것 봐요. 바보같이 다정하면서.
루시어스가 해 준 답이 마음에 차고 넘치도록 기뻐 미소지었다.
그는 여전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루시어스를 살피다 바짝 굳혔던 자세를 풀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다가가서 루시어스를 살짝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잘 하지 않았습니까? 저야 조금 위험했다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잖아요.”
“거두절미하고 할 말만 해.”
“칭찬은 안 해 주십니까?”
“……뭐?”
뒷수습은 루시어스 님께서 해 주신 것 같지만, 맡기셨던 두 학생을 포함한 모든 마족이 무사히 밖으로 대피했으니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칭찬 한마디도 안 해 주실 생각입니까? 상벌은 확실해야 하잖아요. 칭찬받고 싶습니다.”
“너…… 후우.”
입을 뻐끔거리던 루시어스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타리크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뭔가를 기대하는지 루시어스에게 바짝 다가갔다.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세요.”
단호한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이번엔 다른 의미로 힘이 빠지고 말을 잃었다.
“아니, 네댓 살 어린애도 아니고…….”
“솔직히 제가 하는 짓이 하나같이 심보 고약한 어린애 같긴 하잖아요.”
“네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도 않나.”
“사실인걸요. 자, 어서요.”
농담이 아니라는 듯 그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들이밀었다. 루시어스는 손가락을 움찔거리며 의심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이놈이…… 드디어 미쳤나?
아니지, 이놈은 원래 미쳐 있었지.
갈등하던 루시어스가 조심스럽게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그리곤 나비를 어루만질 때처럼 살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만히 손길을 받던 타리크는 이제 아예 루시어스가 본인의 머리를 잘 쓰다듬을 수 있도록 그쪽으로 머리를 대고 몸을 말아 누웠다.
본격적인 자세에 손이 절로 멈췄다.
“……지금 날 놀리기라도 하는 건가?”
“설마요. 정말 이거면 됩니다. 잘했다고 입으로도 좀 더 칭찬해 주셔도 좋겠지만요.”
눈을 가늘게 뜬 타리크가 루시어스와 시선을 마주하고 빙글빙글 눈웃음쳤다.
루시어스는 푸른색 두 눈동자에 똑바로 비치는 자신을 바라보다가 타리크의 얼굴을 밀어내고 이마에 손가락을 세게 튕겼다. 딱! 하고 꽤 큰 소리가 울렸다.
“볼일은 끝났으니 나는 저택으로 돌아가도록 하지. 너는 여기서 도시를 수습하고 있어라.”
“네, 알겠습니다.”
“생각보다 고분고분하군.”
저택으로 가려던 루시어스의 몸짓이 움찔 멈췄다. 생각해보니 그게 그렇게 되긴…… 하는데.
‘그 녀석들이랑 이 녀석이랑 같이?’
순탄하기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루시어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