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6)
마족답게 사는 법-26화(26/385)
마족답게 사는 법 26화
026 사막에서 일어나는 일 (1)
느린 걸음으로 복도를 걷던 루시어스가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원래 레녹스와 떨어질 생각이 아니었는데, 타리크 때문에 계획이 조금 꼬였다. 주박 때문에 쉽게 찾아갈 수 있다고 해도, 파트너와의 협동이 중요한 서바이벌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레녹스를 그놈한테 보이는 것보다는 낫지만, 이건 여지없이 감점이군. 아르놀트한테 한 소리 듣겠어.’
손목을 가볍게 쓰다듬자 레녹스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잠시간 뜨거운 열기가 주박을 따라 흘렀다.
“전투 중인가.”
잠시 걸음을 멈춘 루시어스의 시선이 복도를 한 번 훑었다. 복도에 흐르는 마기가 인위적으로 뒤틀려 있다.
길이 복잡하게 얽힌 탓에 찾아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길을 낼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길을 택해야겠다.
‘쉽게 쓰러질 녀석은 아니니까.’
분명 괜찮겠지.
* * *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검을 쥔 손이 느슨해진다.
레녹스가 가쁜 숨결을 진정시키며 검을 고쳐 쥐었다.
‘생각보다 소모가 너무 심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로벨리가 당장 채찍을 휘둘러 공격하면 방어하기 힘들 정도였다.
긴장을 풀면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는데 긴 시간 동안 전투를 치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로벨리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맞은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왜 공격하지 않는 걸까.
의문을 잠시 접어 둔 레녹스가 평소와는 달리 누그러진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로벨리.”
“세상 참 불공평해.”
로벨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가 스스로의 몸을 벽에 기대었다.
채찍을 잡은 손이 잠시 가늘게 떨렸다. 그녀가 먼저 똑바로 나누던 시선을 피했다.
“널 상대하려고 몇 명을 데려왔는지 알아?”
“…….”
“이거 봐. 결국, 남은 건 너와 나 둘이지. 그뿐이야? 지금 난 손가락 까딱하기도 힘들어. 진이 다 빠졌거든.”
네 마기의 반이라도 가졌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로벨리가 무척이나 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했었나? 말할 게 있었으면 진작 얘기했어야지, 지금 와서 무슨 변명을 하려고 그래?”
“로벨리, 사실은 그때…….”
“이제 됐어, 레녹스. 에디온은 죽었어. 그게 전부잖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벽에서 몸을 떨어트린 로벨리가 채찍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땅을 단단히 딛고 선 그녀의 채찍이 순식간에 뱀처럼 휘었다.
휘익! 착!
채찍이 목을 휘감는다. 반사적으로 한쪽 손을 집어넣었으나 수천 개의 가느다란 철사로 엮은 채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큭!!”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여력이 남아 있었던 건지, 로벨리가 채찍을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레녹스 또한 그녀를 따라 검 손잡이를 꽉 쥐었다.
채찍 끝에는 로벨리가 있다. 이대로 접근하면 그녀에게 한 방 먹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로벨리에게 사죄할 수 없겠지.
레녹스는 손에 주고 있던 힘을 빼고 들고 있던 검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채찍이 단번에 목에 감겨 조여들었다.
으드드드득!
숨통이 턱 막혔다. 주저 없이 목뼈를 부러뜨릴 기세였다.
레녹스는 겨우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목소리를 냈다.
“내가, 죽인 게 맞아……. 그 녀석은 내가 죽였어.”
그리고 그런 자신의 말에 로벨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분개하며 소리쳤다.
“레녹스!!”
“그건 에디온이 아니었으니까.”
“…….”
로벨리의 말문이 잠시 닫혔다. 채찍이 조금 풀리며 숨통을 틔웠다. 동그랗게 떠진 눈동자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레녹스는 그 시선을 지그시 마주했다.
“마수였다. 에디온의 탈을 쓴 켈피였어.”
“그걸 어떻게 믿어!”
“나도 몰랐다! 내가 에디온을 죽인 줄 알았어. 그래서 말할 수 없었지. 네게 면목이 없었다.”
“닥쳐! 그깟 켈피한테 당할 리가 없잖아!”
그런 것한테, 당할 리가.
로벨리의 몸이 털썩 주저앉았다. 채찍을 힘없이 놓친 그녀의 고개가 푹 내려앉았다.
딩동댕동.
동시에 종소리가 수업의 끝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수학여행은 이걸로 끝이다. 모든 전투 행위를 중단하고 방으로 돌아가도록. 지금부터 벌어지는 전투는 교칙으로 제재하겠다.
허공을 잠시 올려다보며 아르놀트의 말을 경청하던 레녹스가 시선을 내렸다.
툭, 투둑.
결계 때문에 일그러져 있던 바닥으로 물방울이 처량하게 떨어졌다. 로벨리가 작은 목소리로 울먹였다.
“그럴 리가…….”
“……미안하다. 더 빨리 말하지 않아서 미안해.”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레녹스는 차마 위로도 해 주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녀의 모습은 에디온을 죽인 직후의 자신을 닮아 있었다. 그러나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던 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추스르고 일어났다.
로벨리는 부축을 거절하곤 말없이 떨어져 있는 채찍을 주워 허리춤에 갈무리했다.
“……가 볼게.”
짧은 작별 인사를 툭 건넨 로벨리가 복도 너머로 사라져 갔다.
레녹스는 그런 그녀를 응시하다가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채찍에 눌린 살갗이 붉게 달아올라 아릿했다.
“레녹스, 우리도 슬슬 방으로 돌아가지.”
“루시어스.”
대체 언제 온 건지. 등 뒤에서 들리는 루시어스의 목소리를 따라 몸을 돌렸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루시어스가 방으로 향하는 적당한 문을 찾다가 레녹스를 곁눈질했다. 그리곤 문을 활짝 열며 말했다.
“울고 있는 걸 어찌 달랠 줄 몰라 안절부절못할 때쯤 왔다. 위로에는 영 소질이 없던데?”
“그, 그건!”
“다행이야.”
능청스럽던 루시어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그에게 다가가던 걸음이 저도 모르게 잠시 멈췄다.
놀랄 것도 없는 말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깊숙이 가슴에 박히는 걸까.
원래 이렇게 웃는 녀석이었나? 매번 뭔가를 숨기듯,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곤 했는데.
멈췄던 발을 다시 움직여 방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문을 찾아낸 건지, 아르놀트 선생이 배정해 줬던 방이었다.
“고맙다, 루시어스.”
그 한 마디로 긴장이 쭉 풀렸다. 몸에 힘이 쭉 빠진 레녹스가 쓰러지듯이 벽을 짚고 주저앉았다.
‘어지러워.’
마기 소모가 너무 심했다. 오필리아의 수리만으로도 벅찼는데, 그 와중에 서바이벌 훈련까지 했으니까.
“이래서 체력 배분이 중요한 건데.”
“그래도 덕분에 머리는 식혔어.”
루시어스의 핀잔에 가볍게 답해 준 후 벽에 아예 기대앉았다. 정말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지쳤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우선 좀 쉬어라. 내일은 자유행동이라니 못 잔 잠을 자도 좋아.”
기분 탓인지 어디선가 은은한 냄새가 났다.
몸이 가벼워지며 절로 붕 뜨는 듯한 감각.
그와 동시에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
왠지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느릿느릿 좁아지는 시야 사이로 루시어스의 얼굴이 보였다. 방금 봤던 부드러운 웃음이 입가에 걸려 있었다.
눈두덩에 손바닥이 와 닿았다. 청량한 마기가 안쪽으로 조금씩 흘러들었다.
의식이 아른아른하게 흩어졌다.
‘매번 번거롭게 만드는군.’
루시어스가 완전히 잠든 레녹스를 바라봤다.
눈 밑의 그늘이며 푸석푸석해진 피부와 머리카락이며 답지 않게 흐트러진 옷매무새까지. 자신이 없는 동안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법도 하다.
“이번엔 확실히 고생했으니 봐 줄까.”
내상은 충분히 회복시켜 놨으니 옮겨 놔야지. 계속 바닥에서 자게 할 수도 없으니까.
어깨를 감싸며 몸을 기대게 하자 머리가 가슴팍으로 톡 떨어졌다. 세상모르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어린아이다워서 웃음이 났다.
레녹스를 침대에 눕혀 둔 후 다른 상처는 없는지 확인하는데 문밖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똑똑.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리는 노크 소리.
‘아르놀트겠지.’
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아르놀트가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결과를 알려 줘야 하지 않겠냐. 레녹스는?”
“피곤했는지 방에 들어오자마자 잠들었습니다.”
“그럼 네가 듣고 전해 줘라. 우선은 고생했다. 마지막까지 용케 살아남았구나. 본선에는 너희를 포함한 네 쌍의 페어가 진출하게 되었으니 그리 알고 있어라.”
“감사합니다.”
“흠잡을 곳이 없었다. 식량도 잘 확보했고, 최소한의 수면을 챙겼지. 길이 복잡했을 텐데도 잘 찾아다니더군.”
“골머리 좀 앓았죠.”
“하지만.”
아르놀트가 머리를 몇 번 긁적이고는 눈을 홉떴다.
“네 놈의 동선을 중간에 놓쳤다. 짐작 가는 게 있겠지?”
추궁하는 시선이 내리꽂혔다. 루시어스는 고민하듯 눈동자를 굴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타리크와 만났을 때겠지.
그라면 아카데미 선생들의 통과하고, 내부에서 들키지 않게 이중 결계를 치는 것도 가능하니까.
“레녹스랑 헤어졌을 때인가요?”
“그래, 덕분에 교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냐?”
곧이곧대로 말해 줄 수는 없는데.
상위 네임드이자 사막 도시를 다스리는 수장이 고작 학생을 보러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믿을 것 같지도 않고.
도움이 안 되는 놈이야.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이자 그가 한탄하듯 말을 토했다.
“너 때문에 못 산다, 내가.”
위치 파악이 안 되었을 테니 골머리를 앓았겠지. 파트너 없이 혼자였으니 더욱 걱정했을 것이다.
“좋은 선생을 일찍 잃어서 아쉽네요.”
“성격하고는.”
가벼운 핀잔이 날아왔지만, 루시어스는 모르는 척 옅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헤어지게 된 것도 사고였고.”
“루시어스. 앞으로 치를 훈련은 많다. 당장 학생이 무사하니 괜찮다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 혹시 뭔가 문제가 있었으면 자세히 설명해 줘야…….”
“그냥 조금 길을 잃었을 뿐이에요.”
아르놀트는 납득할 수 없는지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학생’이 무사한데 어쩌겠는가.
“걱정할만한 일은 없었어요.”
아르놀트의 모습은 오히려 의아하까지 했다.
경외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행동들을 보아하니 장로라는 의심은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왜 저렇게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까?
“후우……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감사합니다.”
루시어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르놀트가 말을 이었다.
“아카데미로는 모레 돌아갈 예정이다. 내일은 자유 활동이니 나가서 관광해도 된다. 다만.”
그가 조금 머뭇거리며 눈치를 살피더니 옅게 한숨을 쉬었다.
“많이 지쳤을 테니 되도록 방에서 쉬어라. 폐쇄되어 있던 도시라 외부인에 대한 시선이 좋지만은 않거든. 특히 넌 너무 눈에 띄니까.”
대답하기도 전에 아르놀트가 다시 강조하듯 읊었다.
“알겠냐? 웬만하면 숙소에 있어라. 나가서 사고 칠 생각하지 말고. 만에 하나 나가게 되어도 대로변으로 다녀. 세대교체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치안이 안 좋다.”
“예……?”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선생을 호출하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해라. 긴급 상황 시의 매뉴얼에 대해서는 알겠지?”
“…….”
정말 수상한데. 이렇게 걱정이 많은 위인이었나?
의아해하는 시선을 느꼈는지 아르놀트가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환기했다.
“편히 쉬도록.”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문을 닫고 나갔다.
닫힌 문을 바라보던 루시어스가 벽에 기대어 서선 턱을 매만졌다.
‘뭔가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