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61)
마족답게 사는 법-261화(261/385)
마족답게 사는 법 261화
261 마지막 방법 (1)
이걸 어떤 감정이라고 정의 내려야 할까.
아무것도 몰랐던 것에 대한 무력감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게 만든 이들에 대한 배신감일까? 아니면 가슴이 울렁거릴 만큼의 두려움일까.
그것도 아니면.
루시어스는 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들어 도서관의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쏟아져 내려오는 하얀 빛무리를 느끼며 눈을 잠시 감았다.
“제 보호자라고요……. 전하께서.”
아기집은 최초로 자신을 발견한 마족에게 보호자의 각인을 새긴다. 일반적으로 아기집의 보호자가 되는 마족은 하나뿐이다.
더미트에게 보호자의 각인이 있는 걸 몇 번이나 봤기 때문에 마왕에게도 각인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루시어스는 어느 한쪽의 각인이 가짜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보호자의 각인 정도야 마왕의 힘으로 어떻게든 복사해서 붙여넣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보호자가 아니라고 해서, 혹은 사실 보호자였다고 해서 그들과 보낸 시간이 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이들이 제게 쏟은 진심을 모르지 않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만, 단 한 가지는 화가 났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계속해서 약해지는 여동생, 마리엘라를 보며 아버지인 마왕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그녀를 살리기 위해, 내게 당신을 죽이라고 명령하려고 하셨을까.
아니면 그녀의 손을 맞잡고 당신의 목이라도 베려고 하셨을까. 그렇게 누군가를 마왕으로 만들려고 하셨을까.
“…….”
왜 항상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으시는 걸까. 지금 여기서 듣지 않았다면 나는 이 사실을 언제쯤에야 알았을까.
그분께서는 나를 정말 아들로 생각하기는 하셨나.
루시어스가 씁쓸하게 웃었다.
들었던 고개가 밑으로 내려갔다. 눈앞이 어지럽게 일그러지는 것 같아 입을 꽉 다물었다. 타리크가 다가와 루시어스의 어깨를 살짝 잡아 지탱했다.
“루시어스 님, 피곤해 보이십니다.”
“그래 보이나…….”
“이만 저택으로 돌아가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다른 이들도 그간 조사를 더 했을 테니 의견을 나눠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원래 하나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나은 법입니다. 함께 모여 고민하다 보면 누군가에게서는 정답이 나올 겁니다. 그러니.”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타리크가 루시어스를 다독여 주듯 속삭이며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옅게 웃음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루시어스의 눈동자가 잠시 그에게로 닿았다.
그가 옅게 미소지었다.
“다른 이야기들은 제가 조금 더 듣고 가겠습니다.”
“……그럼 부탁하지.”
“네, 기꺼이.”
바하무트를 향해 가볍게 목례한 후 환상도서관을 나가려던 루시어스가 발걸음을 멈추고 타리크를 돌아보았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이번에는 녀석에게서 도움을 받는구나.
손가락이 살짝 움찔 떨렸다.
루시어스는 가만히 타리크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도서관을 나갔다.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군.”
그래도 저택에는 루시어스님을 위하는 이들이 많으니 금방 회복하시겠지.
‘그럼 나는 내 할 일을 해야겠지.’
쐐애애액!
순식간에 피어오른 마기가 모래알갱이로 변하며 파도쳤다. 불어닥치는 바람이 모래를 실으며 순식간에 도서관 안을 장악했다.
쿠우웅!! 쿵!
거대한 충돌이 도서관을 흔들었다.
타리크가 모래를 방패로 삼아 반격을 막으며 빠르게 접근했다. 모래를 가른 손이 바하무트의 목을 움켜잡았다.
“크으윽! 네노옴!!”
“둘만 남았으니 어디 한 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볼까?”
푸른 눈동자가 기이하게 빛났다.
목숨을 틀어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환상도서관에 있는 지식수준이 이만할 리가 없지. 정보를 수집하고 머리만 좀 굴리면 다 나오는 내용이잖아?”
“타리, 크, 라하위스……!”
“더 아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순순히 얘기할 생각은 없어 보여서 네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었거든.”
루시어스 님이라면 대현자에게 이런 무례를 범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야.
타리크가 바하무트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이며 눈매를 곱게 휘었다. 투명한 듯 푸른 눈동자가 섬짓하다.
“너, 숨기고 있는 게 있지?”
말하지 않은 지식이 분명 있잖아.
마계에서 ‘아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금단의 지식이나, 기록조차 남지 않은 중간계의 오래된 지식이나.
혹은 천계의 지식 같은 것.
“곱게 뒤지고 싶으면 아는 대로 전부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바하무트.”
주군께서 곁에 안 계시면 나는 상당히 성질이 더러워지거든.
“내 소문이나 성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내가 그대를 어떻게 괴롭힐지 맞혀 볼래?”
어디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
타리크의 등 뒤로 전갈 꼬리가 나와 보랏빛 독을 떨어트렸다. 독극물이 뚝 떨어진 곳이 깊게 녹아내렸다.
꼬리 끝에 있는 날카로운 독침이 그의 심장을 겨누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독기가 모래를 새까맣게 물들였다.
천천히, 천천히.
마치 독에 잠식되기라도 하는 듯 모래알갱이가 변색했다. 바하무트의 발끝부터 독 모래가 하나씩 달라붙었다.
바하무트가 이를 갈았다.
제 실책이었다. 이 녀석이 이런 놈이라는 사실은 진즉 알고 있었는데!
“처……천사다!”
“천사?”
이것 봐. 역시 숨기고 있었지.
타리크가 손에 힘을 빼고 그를 놓아주었다. 털퍽 주저앉은 바하무트가 마른기침을 해댔다. 바닥을 짚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자, 친절하게 말하기 편하라고 손도 놔줬어. 그러니 말해봐. 천사가 뭐?”
“쿨럭……. 이 병은 영혼과 육체가 맞지 않아 생기지. 하지만 생각해 봐라. 마족은 최강의 전투종족이다. 육체가 아무리 약한들 일반적인 영혼 하나도 제대로 못 버틸 것 같나.”
“영혼에 문제가 있으니 천사들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한다는 건가?”
“아니.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본래 천계의 병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혼이 마계의 것이 아니라 천계의 것이기 때문이지!”
바하무트가 손에 마기를 끌어모았다.
“네놈이 바로 천계의 배신자인 루시퍼의 영혼을 가진 것처럼 말이야!”
“……뭐?”
타리크의 눈이 홉뜨렷다.
방심한 사이 마기를 실은 바하무트의 손바닥이 복부 깊숙이 박혔다.
* * *
저택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서재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얼굴들에 루시어스가 다녀왔다며 미소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이들이 멈칫, 몸을 굳히며 서로 시선을 나누었다.
웃음 짓는 모습이 평소와 다르지 않은데도 어딘가 어색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레이얼이 자리에 앉는 루시어스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잘 다녀오셨어요?”
“응, 생각보다 수확이 있었어.”
“그래요? 다행이네요! 하하…….”
하하, 하. 하.
너무나도 서먹한 분위기에 어색하게 웃음 짓던 레이얼이 곧 입을 다물었다. 안 좋은 소식이었으면 ‘수확’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마침 성에서 뤼디거를 만나고 귀환한 레녹스도 선뜻 말을 걸지 못하고 루시어스의 눈치를 살폈다.
마족들이 슬금슬금 모여 앉았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그, 네……. 그래요!”
“우선 우리가 가졌던 의문점부터 설명하려고 하는데.”
루시어스는 모여 앉은 이들에게 차분하게 케렌스타와 바하무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자세히 전달했다.
레이얼은 루시어스의 고저 없는 목소리를 듣다가 발로 툭툭 옆에 앉아있는 레녹스를 건드렸다. 레녹스의 눈동자가 레이얼에게 닿았다.
‘무슨 일인 것 같아요?’
흘금흘금.
저를 곁눈질하는 레이얼의 눈이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레녹스는 레이얼에게 답해 주지 못해 고민하다가 더미트를 바라봤다.
‘혹 아시겠습니까?’
보호자인 그라면 뭔가 아는 것이 없을까 했는데 더미트도 딱히 짚이는 바는 없는 모양인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더미트의 시선은 곧 리브레에게로 향했다.
루시어스의 ‘수확’이라는 정보가 혹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치료술에 능한 리브레라면 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리브레도 영문을 몰랐다.
‘들어보니 치료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절망적인 정보들은 아닌데…….’
리브레가 으음, 하고 작게 신음하다가 하멜에게로 의문을 넘겼다.
턱을 괴고 나비를 손으로 이리저리 놀아 주고 있던 하멜이 리브레의 시선을 받고 말없이 눈동자를 굴려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결론적으로는 ‘축복’을 사용하지 않고 누님을 치료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계획을 잡아 보죠.”
하멜은 나비를 내려놓고 일어나더니 서재 밖으로 나갔다. 열린 문이 닫히기 전에 나비가 하멜의 뒤를 따라갔다.
눈치를 살피던 레이얼이 우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그렇게 해 보는 게 좋겠어요. 그런데 성장에는 체내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잖아요?”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육체가 성장의 여파를 버틸 수 있을까요?”
리브레가 레이얼의 의견에 덧붙였다.
부풀어 오른 거대한 마력 덩어리들이 신체 곳곳에 스며듦으로써 몸이 강화되는 것이 성장인데, 마리엘라의 몸은 깨진 찻잔이나 다름이 없다.
오히려 팽창한 마력이 몸을 망가트릴지도 몰랐다. 틈이 더 벌어지며 상처가 덧나면 그때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안 그래도 약한 마리엘라의 몸이 그만한 충격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게다가 어떻게 해야 성장까지 유도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그건 강제로 성장하게 하는 약을 쓰면 될 것 같다. 혹시 몰라서 내가 구해 왔어. 위험성을 좀 낮추기는 해야겠지만, 가능성은 있을 거야.”
“아, 잠깐 나갔다가 오신다더니 그것 때문이군요?”
덜컥.
마리엘라를 어떻게 ‘성장’까지 유도할 것인지에 대해 레이얼과 레녹스가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재 문이 열렸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하멜이 서재 안으로 다시 들어오더니 말없이 성큼성큼 루시어스에게 다가갔다.
“삐, 삐이!”
그리곤 앉아있는 루시어스의 허리를 두 손으로 딱 잡더니 단번에 들어 올려 어깨 위에 들쳐 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루시어스가 목소리를 높였다.
“하멜!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아이고, 우리 주인님 무서워서 못 살겠네. 마수 살려라, 마수 살려.”
“당장 이거 내려……!”
“삐이이이익!”
대체 무슨 생각인지 저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 하멜의 행동에 루시어스가 힘을 쓰려는데 나비가 하멜의 몸을 타고 올라와 루시어스의 등에 앉았다.
“삑! 삐비! 삐비비빗!!”
팍팍팍! 팍! 파파팟!
그러더니 갑자기 가만히 있으라는 듯 등 뒤에서 솜방망이 같은 앞발과 뒷발로 루시어스의 등을 마구 내리쳤다.
하멜은 그렇다 쳐도 나비까지 이렇게 나온다니. 의아함에 입이 벌어졌다.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하기도 전에 루시어스는 하멜에게 짐짝처럼 실려 나갔다. 더미트나 기사들이 하멜을 말리지도 않으니 더욱 혼란스러웠다.
눈을 깜박거리는데 하멜이 발로 방문을 밀어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여기 앉으시고요.”
“너 이게 대체 무슨……!”
하멜은 방에 놓인 소파에 루시어스를 내려 두었다. 하멜에게 화를 내려던 루시어스는 한쪽에서 얌전히 차를 준비하고 있는 하멜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돌리자 그제야 테이블에 가득 차려진 음식이 보였다.
“그래 봤자 70년밖에 안 살았으면서 뭐 그렇게 혼자 생각이 많습니까? 당신 걱정하느라 안절부절못하는 마족들 꼴 보는 것도 슬슬 지겹습니다.”
하멜이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려놓으며 루시어스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거기서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당신께선 마리엘라 님을 살리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하멜이 루시어스가 즐겨 먹었던 쿠키 하나를 집어 입에 푹 밀어 넣었다.
“그럼 그것에만 집중하세요. 다른 일들은 그냥 과자라도 먹으면서 잠깐 잊으시고요. 뭐든 중요한 것부터 먼저. 그게 당신이 일을 처리할 때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었잖아요.”
“삐!”
나비가 루시어스의 무릎에 탐스럽게 볼록한 배를 내밀며 발라당 누웠다.
마치 만져도 괜찮다는 것처럼.
루시어스가 두 계약 마수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어 버리고 나비의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