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62)
마족답게 사는 법-262화(262/385)
마족답게 사는 법 262화
262 마지막 방법 (2)
루시어스는 우선 나비의 배를 쓰다듬으며 하멜이 준비한 음식들을 조금씩 먹었다.
몇 입 먹고 나자 금방 배가 불러와 차를 기울이며 입 안을 씻었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포만감에 숨을 얕게 내쉬자 하멜이 반대편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
“좀 기분은 나아지셨습니까?”
“……덕분에.”
“그렇다면 참 다행이네요.”
입에 뭔가가 들어가니 확실히 기분전환이 되는 것 같다. 주변 분위기가 조용하니 오히려 생각을 정리할 수도 있었다.
하멜의 말대로였다.
지금껏 자신은 일을 처리할 때 공사와 우선순위를 가장 중요시했다. 장로는 무엇이 더 급한 사안인지 판가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을 생각하고 철저히 일을 처리하며 살아왔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이 되니 모두 잊어버렸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한 번에 몰려와 힘들다는 핑계를 대면서 도망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마리 누님에 대해서 생각할 때지. 적어도 지금은 말이야.’
마왕이 제 보호자라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의 관계가 달라질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만약 그가 정말 제게 자신을 죽이고 마리엘라를 살려달라는 명령을 내릴 생각이었으면, 그날 그렇게 시간을 내어 마리엘라의 과거를 설명하지도 않았을 터다.
해결책을 찾아보겠다고 했을 때 부탁한다고 하지도 않았을 터다.
머릿속에 낀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음 짓자 배를 까뒤집고 있던 나비가 앞발로 루시어스를 타고 올라와 혀로 뺨이며 입술을 할짝였다.
“간지러워, 나비.”
“삐이. 삣!”
할짝할짝!
위로라도 해 주는 모양새였다.
나비에게까지 이렇게 위로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루시어스가 나비의 작은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그나저나 의외네. 하멜, 네가 이렇게까지 날 극진히 대해 줄 줄은 몰랐는데.”
“참 모르는 소리 하시네요. 저는 항상 당신을 충분히 극진하게 대접하고 있었는데요.”
“물론 그랬지. 굳이 내 기분까지 살피며 위로해 주지는 않아도 괜찮잖아?”
“그건 그렇죠. 그런데 주인이 멍청한 짓을 하면 보는 제가 더 불편하거든요. 제 주인은 여러모로 완벽해야 해서요.”
어린 주인을 맞이했더니 말년에 고생이 많네요. 하멜이 어깨를 으쓱이며 보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모두 완벽주의 때문이라는 걸까. 루시어스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하멜을 바라보다가 나비에게 위로해 줘서 고맙다며 이마에 입을 맞춰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비가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루시어스의 발목에 얼굴을 부볐다.
“나 때문에 다들 걱정이 많았겠네. 가면 미안하다고 해야겠어.”
“서재에 모여 있는 모든 마족이 서로 눈치만 보면서 아무 말도 못 하게 하셨으니 죄송해하기는 하셔야죠. 다행히 주인께서 마지막 양심은 있으셨네요.”
“너는 참…….”
어느 정도 맞는 말만 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한 대 꼭 때려 주고 싶을까.
루시어스가 하멜을 지그시 응시하다가 피식 웃었다. 그런 후 방에서 나가 서재로 돌아가자 묘한 정적이 흘렀다.
더미트는 물론이고 리브레나 기사들까지 제 눈치를 슬쩍 살피고 있으니 조금 미안했다.
“걱정하게 해서 죄송해요. 저는 괜찮으니 계속 이야기해 보죠.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까요.”
“루시어스, 힘들면 조금 쉬는 게 어떠니? 조사는 우리가 계속할 테니까.”
더미트가 여간 걱정스러웠는지 루시어스에게 다가와서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시어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게다가 다른 마족도 아니고 누님 일인걸요. 제가 나서야죠.”
“그래. 괜찮다면 다행이구나.”
한결 편해 보이는 아들의 표정에 더미트가 무척 다행스러워하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다시 모두 자리에 모여 앉았을 때쯤, 뒤늦게 저택으로 귀환한 타리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루시어스가 대뜸 툭 던지듯 물었다.
“바하무트와 이야기를 잘 끝내고 온 모양이군.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음, 그 방법이 성공할지 실패할지에 대해 예측하기가 힘든 이유는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죠.”
타리크는 마치 이곳에서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답했다. 루시어스가 두 손을 깍지끼고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료가 부족하기에 계속 ‘추측’해서 ‘가정’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결과지. 안 그래도 나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하지만 루시어스. 모을 수 있는 자료는 충분히 모았다고 봐야 하지 않나요? 대현자와 마룡에게까지 의견을 구했는데요.”
환상도서관에도 제대로 된 답이 없었으니 마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것이 전부라고 봐야 했다.
현재로서 제일 나은 방법은 레녹스가 구해 온 약을 마리엘라에게 먹여 강제로 4차 성장을 치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레이얼의 의문에 루시어스 대신 타리크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부족하지. 겨우 중간계의 지식과 마계의 지식만 알아보았을 뿐이니까. 레이얼 페오, 혹시 아직 남은 방법이 있다는 걸 잊고 있는 건 아니겠지?”
“……어……?”
설마.
레이얼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마계에도 중간계에도 답이 없다면.
남은 곳은 하나뿐.
타리크가 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루시어스 님. 마침 천계의 지낭 가브리엘이 마계에 와 있습니다.”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확 털어 버리죠, 그놈.
* * *
루시어스는 바로 천사들과 접촉하기 위해 나섰다. 많은 수가 몰려가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천사와 만나는 인원은 루시어스 본인과 기사인 레녹스, 그리고 제7군단장인 리브레뿐이었다.
레이얼은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못해 자신을 지킬 수단이 부족하니 놓고 갔고, 더미트는 군단장인 리브레가 있는 자리에 굳이 참여할 필요는 없어 대기하기로 했다.
하멜이나 나비는 부르면 바로 달려올 수 있으니 저택에서 대기하고, 마지막으로 타리크는 루시어스가 쫓아냈다.
러드나 좀 더 제대로 수습하고 오라고.
그쪽은 알아서 처리하고 왔으니 괜찮다고 핑계를 댈 줄 알았는데 타리크는 의외로 순순히 러드로 돌아갔다. 그게 명령이라면 당연히 따르겠다면서 말이다.
‘정말 알 수가 없는 놈이야.’
환상도서관에서도 바하무트와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얘기도 없으니 참 불안하다.
저놈이 조용한 게 꼭 사고를 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이번에는 도움이 됐군.’
살려둔 보람은 있을 정도였다.
루시어스가 그렇게 생각하며 천사들이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서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가브리엘이 살짝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의 곁에 처음 보는 천사가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누구인지는 뻔히 알 것 같아 루시어스가 안으로 들어가며 자리에 앉았다.
가브리엘이 맞은편에 앉으며 웃었다.
“생각지 못하게 손님이 오셔서 반갑군요. 5장로님에, 그의 기사……, 그리고 제 7군단장이셨지요.”
“언질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와 결례된 건 아닌지 걱정이군.”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 그나저나 케루브가 벌써 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런저런 일이 있어 소개가 늦었습니다. 케루브, 와서 인사드리거라.”
시선이 닿자 케루브가 움찔 떨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뺨을 발그레하게 상기한 케루브가 활짝 웃으며 자기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루시어스 님! 천계의 문 하나를 지키는 천사 중 하나인 케루브라고 합니다.”
“……그대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 알고 있다. 천계의 문과 도서관을 관리하는 천사. 가브리엘이 천리안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모르는 것이 없는 지식의 총아라고 불린다지.”
“과분한 별칭들이지요.”
케루브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고는 루시어스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시선을 던졌다.
루시어스는 과하게 호의적인 케루브의 행동에 잠시 의아해하다가 작게 헛기침했다. 가브리엘이 케루브를 뒤로 물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 실력이야 볼품없겠으나 오셨으니 뭐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차라도 한잔하시렵니까?”
“아니, 괜찮다. 따지자면 이곳은 마계이니 그대들이 손님이지. 객에게 대접을 받을 순 없어.”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브리엘이 가볍게 예를 표한 후 루시어스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본론을 꺼냈다.
“여기 오신 건 1장로님의 병 때문이리라 예상하는데, 맞는지요.”
“그렇게 예상하는 이유라도 있나?”
아무 언질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본론을 짚어내는 것이 과연 가브리엘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가 병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봐야 할지.
루시어스가 조용히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폈다. 가브리엘은 경계심이 가득한 루시어스를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저번 회동 때 우연히 1장로님과 마주쳤을 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치료법에 관한 이야기는.”
가브리엘을 케루브를 가리켰다.
“저보다는 케루브와 나누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케루브가 많은 것을 알고 있거든요.”
“네, 제가 말씀드릴게요.”
케루브가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쏙 몸을 기울였다. 루시어스가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이자 케루브가 술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마리엘라 르완, 1장로의 병은 천계와 중간계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유형의 병이에요. 보통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해 금방 죽어 버리는 병이죠.”
“……천계에도 이런 병이 있나?”
“있어요. 몸이 유독 약하게 태어나는 천사들이 가끔 있거든요. 사실 1장로처럼 길게 사는 경우가 드물어요. 그렇게까지 자신을 아껴주는 존재가 곁에 있음에 감사해야 할 정도죠.”
케루브는 그렇게 말했지만 루시어스는 그의 말에 동감하지 못해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그것은 그녀가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적어도 루시어스는 마리엘라가 자신을 아껴 주었음에 감사하고 있다.
먼저 사랑을 베풀어 준 것은 마리엘라였고, 자신은 그것에 보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살리고 싶다.
좀 더 함께 살아가고 싶다.
“치료 방법은?”
“있어요. 준비해야 할 것은 많지만요.”
참으로 속 시원한 대답에 루시어스를 비롯한 마족들의 눈이 빛났다.
처음으로 희망이 보인다. 루시어스는 끝없이 기대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 표정을 관리했다. 루시어스가 숨을 가다듬고 케루브와 가브리엘에게 말했다.
“거래를 하지.”
“거래 말씀입니까?”
케루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 직접 천사들까지 찾아올 정도면 1장로가 무척 소중한 존재라는 건데, 설마 강압적으로 치료법을 요구하지 않고 거래를 제안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우리야 어느 쪽이든 환영이지.’
루시어스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루시어스 또한 마리엘라의 목숨을 두고 거래를 하는 게 기껍지는 않았다. 다만 여기서 거래를 하지 않으면 마계와 마왕은 천계에 빚을 지게 된다.
자신 때문에 천계에 빚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면 마리엘라는 속이 상할 것이고.
어쨌든 천계가 마리엘라의 목숨을 구한 이상 마왕은 천계가 ‘빚’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때 거절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상황을 제 손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가브리엘. 그대가 전에 내게 말했지. 케루브를 사이러스, 그리고 내 곁에 붙여 두고 싶다고.”
“……그랬었지요.”
“그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치천사 케루브를 사이러스로 배치하고 파트너로 삼겠다. 어떤가?”
그토록 원했으니 거절할 수는 없겠지.
마침, 레녹스가 졸업해 파트너 자리가 공석이 된 참이다. 이를 이용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기회다.
“케루브의 배치에 대해서는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대신 누님의 병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라. 그것이 거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