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63)
마족답게 사는 법-263화(263/385)
마족답게 사는 법 263화
263 마지막 방법 (3)
“와, 진짜 다행이다!”
케루브가 루시어스의 제안을 듣자마자 안색을 활짝 펴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생각보다 마계에서 천계를 너무 경계해 제대로 얻은 것이라고는 마정석밖에 없어 걱정이었는데, 루시어스가 직접 자신을 곁에 두어 주겠다 하니 반가웠다.
무엇보다도 케루브는 자신을 괴롭히는 지독한 마족들의 냄새 속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케루브가 흐르지도 않는 눈물을 닦는 척 눈가 아래를 소매로 찍으며 훌쩍였다.
“훌쩍. 루시어스 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치천사 ‘케루브’는 대대로 코가 좋거든요. 그래서 마계에서 지내야 한다고 듣고 얼마나 걱정이 많았는지 몰라요.”
“코가 좋다고?”
“네, 그래서 제가 가브리엘 님께 어떻게든 해달라고 졸랐었어요. 마족 중에서도 생명력이 풍부한 드라이어드나 요정족, 드루이드족 같은 경우엔 냄새가 덜하니 제발 그들이 많은 쪽으로 보내달라고요.”
고작 그것 때문에 제 곁에 케루브를 붙여 놓으려 그렇게 안간힘을 썼다고?
루시어스는 의심스러움을 지우지 못하고 가브리엘을 곁눈질했다. 가브리엘이 난감해하며 한숨을 작게 내쉬는 것을 보니 마냥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이번 ‘거래’의 대가가 이것으로 충분하다면 사양할 필요는 없다.
“그런 사정이 있을 줄이야. 이 거래가 그대에게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군.”
“잊지 않고 말씀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데요. 덕분에 즐거운 생활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슬슬 치료법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아, 치료법 말씀이시죠? 많이 까다롭기는 하지만, 준비만 철저히 하면 치료할 수 있어요. 아마도요!”
“아마도?”
케루브는 말없이 빙긋 웃어 보였다. 루시어스는 곧 웃음의 의미를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다.
치료법을 알아도 해 볼 이유가 없다.
간단하지도 않은 방법으로 병을 앓는 천사 한 명을 살리는 것보다 병을 가지고 태어난 대로, ‘운명’대로 살게 하는 것이 당연했다.
오히려 병이 있는 천사가 명줄을 붙잡고 길게 살아가는 게 오히려 천계의 손실이었다.
병든 천사가 죽으면 곧 다음 ‘이름’을 잇는 건강한 천사가 태어날 테니까. 천계를 위해 죽음이라도 불사하는 것이 그들이 가진 의무였으니까.
“……그대들은 그것이 당연한가?”
“천계를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건 더없는 영광이니까요. 그건 천사들만이 가진 특권이자 사명이에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제일의 가치죠.”
“…….”
“표정이 안 좋으시네요. 혹 저희가 실망스러우신가요?”
실망스럽냐고? 그럴 리가.
실망은 상대에게 뭔가를 바랐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루시어스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천사들에게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었다.
천사들의 사고관과 생태에 염증을 느꼈으면 모를까, 굳이 실망이라고 불릴만한 감정이 떠오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일까.
왜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걸까.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루시어스 님?”
스르릉.
케루브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으며 루시어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루시어스의 뒤에 서 있던 레녹스는 오필리아를 검집에서 꺼내 케루브에게 겨누었다.
더 가까이 다가오면 찌르겠다는 위협적인 살기가 시선으로 전해졌다.
케루브는 삐딱한 시선으로 레녹스를 응시하다가 콧방귀를 뀌고는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레녹스는 그제야 오필리아를 넣어 두고 루시어스의 어깨에 손을 살짝 올린 후 귓가에 속삭였다.
“노파심에 하는 이야기지만, 그들의 말을 모두 믿지는 않는 게 좋아.”
“……레녹스.”
“애초에 종족 자체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일뿐더러……, 바하무트와 케렌스타도 모르는 정보들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려.”
“그래, 알고 있어.”
마리엘라의 몸 상태를 일찍이 알고 있던 그들이 마왕과 마리엘라의 돈독한 모습을 보고서도 교섭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잘만 이용하면 교류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천계가 우위를 점할 수 있었을 텐데.
‘이들의 속셈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누님을 살릴 수 있다면.’
루시어스가 생각을 떨쳐 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마리엘라를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금 들뜬 것 같았다.
“내 기사가 잠시 실례했군. 지금 천계의 이야기는 궁금하지 않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래서 병을 치료할 방법은?”
“……궁금하지 않으시다니 저희로서는 애석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죠. 바로 설명해 드릴게요.”
케루브가 말하는 치료법은 확실히 방법이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우선 대천사 급 천사가 한 명, 그리고 장로급 마족이 한 명. 거기에 치료에 능한 마족이나 천사가 두 명, 결계에 능한 마족이 최소 열 명, 단순히 마력을 공급해 줄 마족이 스무 명 이상 필요했다.
그 외에도 신성석과 마정석을 대량으로 준비해 치료 순서나 상황에 따라 신석성과 마정석의 비율을 바꾸어야 했다.
방 주변에 미리 쳐둬야 하는 결계와 긴급 사태를 대비한 안전장치로 준비할 마법만 스무 가지가 넘었다.
루시어스는 이야기를 들으며 차분히 가브리엘과 케루브의 안색을 살폈다.
방긋방긋 웃으며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걸 전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을까?’
케루브의 치료법은 본질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목표에 비해 준비과정이나 재료들이 너무나도 까다로웠다.
게다가 거래에 순순히 응하고 치료법을 알려 주니 수상하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거짓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정보가 마계에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따로 의도하는 게 있나?’
그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누님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니 신중해야 했다. 여기서 당장 결정하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과 의논해서 향후 치료법을 결정하는 게 좋겠지.
“자, 이상입니다.”
“……정보 고맙다. 그대들 덕에 방도가 좀 보이는 것 같군.”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루시어스가 간단하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녹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루시어스의 소맷깃을 가지런하게 정리해 주었다. 루시어스가 얼핏 웃으며 케루브가 가브리엘을 흘겨보았다.
“다만 엄연히 종족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 따로 고려할 부분이 많겠지. 아무래도 이쪽에서 이야기를 따로 나눠야 할 듯싶네.”
“그 말씀은……?”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내 기사를 보내도록 하지. 그때에는 그대들의 정보가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 증명해 주었으면 좋겠어.”
“지금 저를 못 믿으시는……!”
“당신께서 그러시다니 저희는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뭔가 억울한 듯 반박하려는 케루브를 막아서며 가브리엘이 루시어스를 배웅했다. 루시어스는 가브리엘과 케루브에게 한 번씩 시선을 주고는 등을 돌리고 방을 나섰다.
케루브는 매정하게도 등을 돌리고 나가는 루시어스를 바라보다가 입을 삐죽 내밀고 소파에 다시 드러눕고는 침울하게 구석으로 파고 들어갔다.
케루브의 몸이 점점 작게 줄어들더니 네댓 살 어린아이처럼 변했다.
“지금 저희랑 완전히 선 그으신 거죠! 그런 거죠? 이이잉!”
“지금은 마족의 몸이시니 당연하지. 그리고 그분께서 그런 성격이신 건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나.”
“거기다 기사? 기사아아? 내 기사아아아? 언제부터 마족의 몽마 나부랭이가 그분 기사였다고!”
가브리엘은 천제 앞에서 어리광을 부릴 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케루브의 어린 모습을 꽤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치워두었던 서류를 가지고 왔다.
오늘 겨우 처음 보았던 상대에게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걸 보면, 확실히 영혼에 새겨진 기억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긴 한가 보다.
“마계의 장로들은 두 명의 기사와 한 명의 보좌관을 거느릴 수 있게 되어 있지. 영혼으로 이어진 계약관계니 중히 여기시는 게 당연해.”
“가브리엘 님께선 억울하지도 않아요? 원래 그분을 모시던 건 4대천사였잖아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안 나려고 하는구나.
가브리엘이 씁쓸하게 웃으며 괜스레 종이를 매만졌다. 한숨을 작게 내쉰 그가 미간을 살며시 엄지로 눌러 마사지했다. 그러다가 다시 그것을 확인하며 덧붙였다.
“애초에 오늘 그분을 계속 시험하고 자극한 건 네놈이질 않나. 어리광만 피우지 말고 반성이나 해라.”
“그건 그렇지만……. 저는 뭔가 얘기해 드리면 기억하시려나 싶어서.”
“역효과다. 그렇게 강제로 끄집어내려 한다고 될 일이 아니야.”
“……네에.”
케루브의 어깨가 밑으로 추욱 꺼졌다. 한껏 기가 죽어있는 모습에 가브리엘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한참 우물쭈물하던 케루브가 본모습으로 돌아와 가브리엘이 보는 서류를 가져오며 턱을 괴었다.
“아무래도 오해를 샀나 봐요. 제가 말씀드린 건 ‘진짜’ 치료 방법이 맞는데.”
“어쩔 수 없지, 그분께서 아직 기억을 찾으신 것도 아니고 우리를 믿기 힘드셨을 테지.”
“히잉, 저는 정말 안전한 방법을 알려드렸을 뿐인데, 다른 의도는 없었다구요! 그냥 힘을 쓰시는 모습을 옆에서 직접보고 싶었을 분인데!”
케루브가 억울해하며 축 늘어진 어깨를 으쓱였다. 가브리엘이 그런 케루브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걸 세간에서는 다른 의도를 가졌다 한다, 케루브. 알 만한 놈이 계속 억지를 부리는군.”
“으으으으……!”
“나중에 아카데미에서라도 다시 만나면 주제넘었다고 사죄하기나 해라.”
“맨날 나만 뭐라고 하고! 너무해!”
“네가 잘못했으니까.”
아무리 떼를 써도 가브리엘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케루브가 다시 소파에 드러누워서는 상제님이 뵙고 싶다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 * *
“레녹스. 성장을 강제하는 약을 준비해 왔다고 했었지. 분량은 어느 정도나 되지?”
“……출처는 안 묻나?”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 가져왔는데 캐묻거나 책망할 수는 없지. 그래서 분량은?”
긴급한 상황이라고는 해도 불법적인 약물을 가져왔으니 질책 한두 번 정도 들을 것은 각오했었다.
그런데도 루시어스가 아무것도 묻지 않으니 괜히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전적인 신뢰라는 건, 누군가를 주군으로 모신다는 건 원래 이런 걸까.
레녹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답했다.
“3차 성장을 하지 못한 아이들 열다섯 명이 복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그리고 그걸……, 전하의 피로 만든 와인과 섞어서 가져왔어.”
“와인과 함께?”
“장로님께 조금이라도 부담이 덜 되려면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저택에 도착해 서재로 향하던 루시어스와 리브레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리브레가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며 물었다.
“하지만 전하의 피라면 아무리 와인으로 가공했다고는 해도 축복이 섞여 있을 텐데요?”
“마왕이 되기 전, ‘루겔 르완’의 피로 만든 와인입니다. 마신의 축복을 받지 않은 피죠.”
“세상에. 하지만 그렇다면…….”
리브레가 눈을 내리깔고 뭔가를 열심히 고민하며 머리를 굴렸다.
그 모습이 레이얼과도 퍽 비슷해 보여 신기했다. 어딘가에 푹 빠져 있는 학자들은 다들 곧잘 저런 표정을 짓고는 할까.
“가능성이 있어요. 조금만 가공하면 훨씬 더 안정적으로 성장을 유도할 수 있을 거예요. 우선 모두 함께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화색이 도는 리브레의 말에 루시어스가 짙게 웃음 지었다.
“좋아, 그럼 가서 계획을 세우자.”
이번에야말로 누님을 깊은 잠에서 깨우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