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69)
마족답게 사는 법-269화(269/385)
마족답게 사는 법 269화
269 아는 것이 약 (4)
사르르륵.
타리크는 모래 욕조에 몸을 가득 묻었다. 움직일 때마다 적당히 달궈진 모래가 몸을 쓸었다.
모래에 묻힌 팔을 들자 손등으로 모래알이 굴러떨어졌다. 타리크는 피부에 남은 모래 먼지를 가만히 응시하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마리엘라의 병은 무사히 고쳤다.
러드를 다스리게 된 후 타리크는 가장 먼저 강제로 3차 성장을 하게 만드는 약을 처분했었다.
처음에는 폐기할 생각이었으나 그러기에는 도시가 너무 가난했다. 어떻게든 금전을 융통하려면 무엇이든 팔아치워야 했다.
타리크는 바로 ‘단골’이었던 뤼디거 자카르를 찾아 마지막 거래를 했다.
더는 이 약을 만들지 않겠다 하니 뤼디거는 남은 약을 비싼 값을 치르며 사 갔다.
입막음 비용이었다.
“그놈의 막내아들이면 미쳐도 참 단단히 미친놈일 텐데, 루시어스 님은 아시려나 몰라.”
약을 뤼디거가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세르크의 기록으로 확인했었다.
당시에는 정신 나간 발상이라며 혀를 찼는데 병에 대해 알고 나니 나름대로 근거가 확실한 실험이었다. 뤼디거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마계에서 가장 미친놈은 아무래도 내가 아니라 뤼디거 자카르가 아닐까?
입꼬리가 비죽하니 즐겁게 올라갔다.
가만히 살펴보니 루시어스 곁에는 멀쩡하지 않은 놈들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천계의 병이라.”
푸른색 눈동자가 옆으로 굴렀다. 머리를 쓸어 넘긴 그가 눈을 감고 바하무트가 했던 말들을 곱씹었다.
마리엘라 르완이나 자신이 앓았던 이름 없는 병은 원래 천계의 것이고, 마족이 그 병에 걸리는 이유는 천사의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천사의 영혼과 마족의 육체의 부조화.
그것이 발병의 원인이었다.
‘배신자 루시퍼의 영혼.’
천계에서 직접 배신자로 낙인을 찍은 유일한 천사, 루시퍼.
바하무트의 태도에서 보았다시피 마계에서도 루시퍼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루시퍼가 죄를 지을 때, 천신뿐만이 아니라 마신도 함께 욕보였기 때문이었다.
마왕은 욕해도 마신만큼은 욕하지 않을 정도로 마족들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바로 마신인데, 하필 천사인 루시퍼가 마신을 욕되게 했으니 분노를 사지 않을 리 없었다.
진상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전해져 내려오는 말은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푸른색 눈동자가 뜨였다.
이름 없는 병이 천사의 영혼이 육체와 맞지 않아 생기는 병이라 육체가 영혼과의 부조화를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는 사실은 이해했다.
그렇기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장한 자신은 멀쩡할 수 있었고 불완전하게 성장했던 마리엘라는 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병은 마계의 병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왜 바하무트는 이것이 ‘본래’ 천계의 병이라고 말한 걸까.
마족의 영혼이 천계에서 태어나는 일이 있기라도 했었나? 그게 아니면 천사들의 육체에 뭔가 큰 결함이 있기라도 한가?
“게다가 내 눈도 그렇지.”
세르크 라하위스를 포함해 러드를 다스렸던 역대 지배자들도 ‘색’을 잃지는 않았다.
스콜피온 종족의 특수성이라고 하기엔 환상도서관에도 관련된 언급이 하나도 없었으니, 자신의 눈은 이름 없는 병을 앓았던 후유증에 가깝다고 해야 했다.
그렇다면 왜?
왜 루시어스 켄드릭은 제게 색을 다시 보여 줄 수 있는 걸까?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 역시 반만 더 죽여 놓을걸.’
의문이 가득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타리크가 한숨을 내쉬며 욕조에서 나와 가운을 걸쳤다.
자신이 루시퍼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당황해서 제대로 머리를 굴리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게 아니었으면 어떻게든 좀 더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얻어왔을 텐데.
뭐, 바하무트는 그걸 의도했겠지만.
“여전히 정보가 부족하군. 이러다가는 천계에 뒤통수를 맞아도 할 말이 없는데…….”
마음 같아서는 사절단으로 온 천사 한 명 정도만 몰래 납치해서 아는 걸 전부 말하라고 협박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몰래 그런 짓을 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루시어스를 정말 다시는 못 볼 것 같고.
그렇다고 진지하게 천사 하나 납치해서 털어 보자고 말했다가는 저번처럼 서재에서 머리나 박고 있게 시킬 것 같고.
“끄으응…….”
신음하며 턱을 매만지던 타리크가 곧 손을 짝 맞부딪혔다.
그때쯤 베르틴이 간만에 러드에 복귀한 주군에게 상황 보고를 하기 위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타리크 님, 도시가 지상으로 올라오며 수로가 망가져서 대대적으로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
“음, 그럼 겸사겸사 수로 확장을 하며 현재 도시 상황에 맞게 재정비하도록 하지. 도면을 그려 줄 테니 그대로 하도록 해. 그나저나 베르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타리크가 손가락을 휙 내저었다. 종이 하나가 허공에 둥실 뜨더니 순식간에 도시 전체의 수로 공사를 위한 도면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타리크는 펜을 거침없이 움직이면서도 베르틴을 향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루시어스 님과 마왕성에 기별을 넣도록 해. 아카데미와 관련한 일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다고 말이야. 가능한 빨리 날짜를 받아 와.”
“……타리크 님. 지금 생각하고 계시는 게 무엇이든 그분들께서는 싫어하실 것 같은데요.”
“초 치지 말고, 내가 다 생각이 있으니 너는 연락이나 넣어. 답신이 돌아오면 바로 불러.”
순식간에 완성된 도면이 베르틴 앞으로 팔락팔락 날아갔다. 타리크가 옷을 갈아입으며 밖으로 나섰다.
베르틴이 타리크를 잰걸음으로 따라가며 순식간에 오백 년쯤 늙은 듯한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또 어딜 가시려고요!”
“러드를 좀 돌아보려고.”
“하아, 그럴 줄 알았습니다. 역시 루시어스 님을 괴롭히러 가시려는…… 예? 뭐라고요?”
“명색이 지배자이니 도시 꼴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는 확인해야지. 러드가 이만큼이나 변했는데 네게만 맡겨 놓을 수는 없잖아. 눈으로 확인해야 할 부분도 있고.”
“다, 당신은 누구시오!! 타리크 님이 그런 정신 똑바로 박힌 말씀을 하실 리가 없소!”
우뚝.
타리크가 걸음을 멈추고 베르틴을 돌아보았다. 이전과는 다른 푸른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조금의 웃음기도 베어 물지 않은 입매가 느긋하게 열렸다. 베르틴은 타리크가 무슨 말도 하기 전에 바로 바닥이 꺼지듯 순식간에 몸을 낮췄다.
콰과과광!
간발의 차로 벽 한쪽이 훤히 뚫리며 날아갔다. 타리크는 재빨리 반대편 벽으로 움직이는 베르틴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이만 죽고 싶으면 돌려 말하지 말고 죽고 싶다고 해. 그대는 그간 세운 공이 있으니 특별히 한 번에 죽여 줄게.”
“이 베르틴, 타리크 님께서 러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다녀오십시오. 기별이 오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베르틴이 벽에서 얼굴을 살짝 내밀며 뻔뻔하게 외쳤다. 타리크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손을 내저었다.
타리크는 도시로 나가며 콧노래를 불렀다.
‘러드 상황을 빨리 안정화해야 루시어스 님을 뵈러 가도 쫓겨나지 않겠지?’
* * *
시간은 지나고 지나.
어느덧 개학일이 되었다.
사이러스는 여느 개학일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어린 천사들이 아카데미에 다닐지도 모른다는 소문 때문에 학생들의 낯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외에도 방학 중에 일어난 일들이 워낙 많으니 좀처럼 이야깃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네 번째 반 학생들도 다르지는 않았다. 그들은 반 한곳에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만 새 학기가 찾아와 각각 실력에 맞는 클래스로 승급했을 자신들이 왜 함께 있는지는.
“왜 여기에 모이라고 한 걸까찌?”
“그러게. 그래도 이렇게 모여있으니까 좋기는 하다. 여전히 우리 반 같고.”
그들도 잘 몰랐다.
에스메리다가 머리를 살짝 쓸어넘기며 미소지었다. 라타트리아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펄쩍 뛰었다.
“이대로 한 학기 더 보냈으면 좋겠다찌. 천사들도 온다는데 모두랑 떨어져 있으면 불안할 것 같다찌!”
“그런데 그게 사실일까? 천사들이라니.”
“즉위기념식에서도 대천사가 루시어스한테 그런 말을 하기는 했잖아? 그런 자리에서 없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겠지.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봐.”
“……루시어스는 아직도?”
에스프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데 이리누슈카가 고개를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곧 집합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루시어스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일찍이 도착해있을 레이얼이나 키안도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문을 한 번 열어 복도를 둘러본 에스프가 턱을 매만지다가 반으로 다시 들어오며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작당이라도 하려는 듯 에스프가 훌른과 베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자세를 낮췄다.
분위기에 휩쓸린 다른 아이들도 동그랗게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키가 작은 아이런이나 라타트리아는 공중에 바동바동 떠 있었다.
“……너네, 그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찌?”
“마계 여기저기서 지진이 났을 때 러드도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잖아.”
“아, 그건 들었다찌. 러드가 사막 위로 샘솟았다고 하던데찌? 처음에 듣고 놀랐다찌.”
모두 자기들도 들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프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무너지려는 러드를 지킨 게 5장로님이라는 말이 있거든.”
“5장로님?”
“그분이 갑자기 왜 나와?”
훌른과 베른이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거렸다.
“봐봐. 1장로님은 전하와 친하시니 성에 계셨을 거고, 2장로님은 에스메리다가 있던 룬타 지방으로 갔고, 3장로님은 리마이라 해역을 정리하셨잖아? 4장로님은 마물과 마수 담당이라 캐들로 가셨대.”
그럼 남는 게 누구겠어?
바로 5장로님이잖아!
전 5장로였던 루거는 도플갱어라 러드를 그렇게 변화시킬 힘이 없으니 당연히 정체를 감추고 있다는 5장로님이 아니시겠어?
“러드의 지배자가 있잖아.”
“응, 7위. 사막의 패자.”
“이 바보들아! 7위인 타리크 라하위스가 러드를 그나마 잘 다스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성격이 그렇게 개차반인데 도시를 지키기나 했겠어? 그분 소문 못 들었어?”
마음에 드는 마족의 눈을 뽑아서 전시하는 게 취미라잖아!
게다가 고문을 즐겨서 러드에서 가끔 마족들이 실종되는 것도 다 타리크 라하위스가 꾸민 일이라는 소문까지 있다는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몸을 부르르 떨던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5장로님이 루시어스랑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너희 혹시 우리 수학여행 때 러드에 생겼던 큰 은색 나무 기억하고 있지?”
“기억하고 있다찌.”
“허,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
“이번에 러드가 위로 올라오면서 그 은색 나무가 도시를 덮을 만큼 크게 자랐대. 그게 뭘 의미하겠냐 이거야. 나무를 그만큼 키울 수 있는 종족이라면 하나뿐이잖아?”
에스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이들도 슬슬 에스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것 같았다. 아이런이 목을 앞으로 길게 빼며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네 말은 루시어스가 바로 5장로…….”
“사실은 5장로님 아들인 거지! 아들이 너무 뛰어나서 아카데미에 보내면 자기가 겉으로 드러날까 봐, 5장로님께서 대장군에게 대부 역할을 맡긴 거야! 루거 님께서 그분이 쑥스러움이 많다고 하셨잖아!”
“어……? 어, 어. 그렇겠지.”
뭔가 좀 이상한데? 말이 뚝 끊긴 아이런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살폈다.
추리가 제법 그럴싸하게 느껴졌는지 모두 “그런 비밀이 있었다니…….” 하고 감탄하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더 말을 얹을 분위기가 아니라 아이런도 순순히 분위기를 타고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즐겁게 해?”
“야, 너는 지금까지 얘기도 안 듣고 뭐 했, 어어어어어어! 루시어스!”
기척도 없이 다가와서는 고개를 내밀고 살짝 웃어 주는 얼굴을 마주한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며 어깨동무를 풀고 후다다닥 루시어스에게서 멀어졌다.
‘이건 루시어스가 말하기 전까지는.’
‘모르는 척해 주자!’
‘……출생의 비밀.’
그들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더니 헛기침하고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자신을 감싸고 도는 듯한 아이들의 기묘한 분위기에 루시어스가 속으로 적잖게 당황하며 의아해했다.
얘들아……? 왜 날 그렇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