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71)
마족답게 사는 법-271화(271/385)
마족답게 사는 법 271화
271 특별반 (2)
‘이런 수를 쓰다니.’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레녹스를 바라보며 케루브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기묘한 기류가 흐르자 레녹스를 반기던 학생들이 입을 다물고 의아해하며 서로 눈치를 살폈다. 아르놀트는 한숨을 얕게 내쉬면서도 자리를 비켜 주었다.
루시어스는 레녹스와 케루브의 첫 만남을 한 번 상기해 보았다. 이유가 어쨌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검을 들이밀었으니 사이가 좋을 수는 없겠다 싶었다.
굳어 버린 분위기를 살피던 라타트리아가 헤프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선배가 아니라 선생님이라고 불러야겠다찌. 그렇찌?”
“임시 교직원일 뿐이니 편한 대로 불러도 된다. 무엇보다 너희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느낄 상대라서 여기로 배정된 거거든.”
“그렇구나찌. 선배까지 있으니 완전히 다시 모인 것 같다찌. 라티는 아무렴 좋다찌!”
“다들 반겨주니 기쁘네. 아, 나는 아마 수업의 보조랑 새로 반에 오게 된 친구를 도와주는 일을 많이 맡게 될 것 같으니 그렇게 알아줘.”
레녹스가 말하며 라타트리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러자 레녹스를 보던 학생들이 조금 어색해하는 시선으로 케루브를 힐긋 곁눈질했다.
평범한 천사라고 해도 다가가기 힘들 텐데 천계나 마계에서도 유명한 ‘케루브’라고 하니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반응을 지켜보던 루시어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
“으응?”
“친구처럼 지내라고 하기는 했어도 하루아침에 친구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어색한 건 서로 똑같으니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함께 지내다 보면 가까워지든 멀어지든 하겠지. 억지로 친한 척을 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관계를 만드는 게 낫다. 양측이 바라는 결과물이 그런 경험들이니까.
루시어스의 말 한마디에 괜히 부끄러워져 뺨을 긁적이던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케루브에게 다가왔다.
케루브는 제게로 다가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킁킁, 가볍게 냄새를 맡아보았다.
어린 마족들이라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만큼 냄새가 심하지는 않았다.
곁에 천연 방향제가 함께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그다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긴 한데. 이게 천계의 명령이기도 하고…….’
게다가 루시어스가 이렇게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족들이라니 호기심이 생긴다. 케루브는 여전히 친구들을 보고 있는 루시어스를 곁눈질했다.
자신이나 가브리엘 앞에서 분위기를 잡고 거만하게 말하던 ‘5장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 녀석들이 그리 특별한가……?’
흐으으으음.
케루브가 눈을 가늘게 뜨고 학생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가볍게 웃음 지어 주었다.
아카데미에서 잘 생활하며 반에 녹아드는 것이 자신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임무이니 레녹스 자카르는 몰라도 학생들에게는 잘 보일 필요가 있었다.
어린애들 구슬리는 거야 쉽지!
웃으며 이야기를 들어주며 적당히 대꾸해 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호감은 살 수 있는 법이다.
“아직 내가 얼굴들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혹시 다들 이름을 좀 알려 줄 수 있을까?”
“라티! 라티부터 하겠다찌!”
라타트리아가 후다닥 다가와 케루브를 올려다보았다. 케루브는 무척 작은 키를 가지고 있는 라타트리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책으로만 접했던 랫맨 일족.
랫맨이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미성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더 작았다.
전투종족이 아니라 천계에도 랫맨에 대한 기록은 다른 종족에 비해 빈약한 편이었다. 케루브가 내심 적잖이 신기해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라티는 라타트리아라고 한다찌. 라티라고 불러 줘찌.”
“잘 부탁해, 라티. 외모를 보아하니 랫맨인가보네. 랫맨에 대해서라면 알고 있어. 몸이 날렵하고 민첩한 데다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뛰어난 적응력도 가지고 있다지.”
“찌…… 찌??”
“쉽게 성장하기는 힘들지만, 방향성을 잡고 제대로 훈련해서 좋은 마족이 된 사례가 가끔 있는 종족이야. 약하다고 여겨지지만, 잠재력은 충분한 마족이지.”
꿈뻑꿈뻑.
마치 백과사전처럼 술술 나오는 말들에 라타트리아가 당황스럽게 케루브를 쳐다봤다.
인사를 건넸을 뿐인데 자신에 대한 종족을 파악함은 물론이고, 알고 있는 지식을 줄줄 늘어놓으며 칭찬해 주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고, 고맙다찌…….”
괜히 얼굴이 확 달아오른 라타트리아가 슬금슬금 아이런의 뒤로 숨었다. 아이런이 헛기침하더니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가슴을 팡 때렸다.
“나는 아이런이다. 자랑스러운 드워프 일족이지!”
“아, 드워프 말이지? 드워프는 우리 쪽에도 참 자료가 많아. 특히 드워프의 시조라 불리는 마족에 대해 기록된 여러 이야기가 많지. 들어 볼래?”
“……! 헉! 말해 줄 수 있나?”
아이런이 눈을 부릅뜨며 케루브에게 매달렸다.
드워프는 물론이고 예티, 오우거, 랜턴, 위습 일족 등. 케루브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아이들과 그렇게 서슴없이 이야기를 이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곧 아이들은 할아버지 앞에 모여 옛날이야기를 듣는 손주들처럼 모여 앉았다. 루시어스는 케루브의 남다른 친화력에 속으로 감탄했다.
‘천계에 기록된 내용이 저럴 리가 없는데.’
천사들이 가진 반마감정을 생각해보면 마족들에 대해 저렇게 좋은 말로 써 두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케루브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마족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적당히 단어를 골라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건데.
‘교류하겠다는 게 진심인가?’
솔직히 ‘천사’인 케루브가 마족을 좋게 말하는 데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도 다른 이들도 아닌 지천사 케루브가 이만큼 감내하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려는 걸 보니 적어도 교류하겠다는 말에 진심이 없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어색함도 사라졌는지 케루브와 학생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케루브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슬쩍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다들 루시어스니……랑도 많이 친하겠네?”
“…….”
자연스럽게 존칭하려던 케루브가 겨우 말끝을 얼버무렸다. 루시어스가 타박하는 듯한 시선을 던지자 케루브가 뺨을 긁적였다.
애들이 루시어스와 케루브를 한 번씩 바라보더니 되물었다.
“케루브는 루시어스랑 원래 알던 사이였어?”
“나? 으음. 마계에 와서 가장 처음 본 마족이 루시어스니……, 였어!”
다시 겨우 얼버무린 케루브가 이마를 짚으며 루시어스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루시어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케루브가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아니, 아무리 루시어스 켄드릭이 마족이라고 해도 영혼은 총관 메타트론의 것일진대!
어떻게 함부로 이름을 부르고 말을 막 놓겠나! 대체 어느 천사가 버르장머리 없이 그런 짓을 해!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에게 꼬박꼬박 존칭을 쓸 수도 없었다. 케루브가 한 번 깊게 심호흡하고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부릅떴다.
“사실 여기 오자마자 바로 전하를 뵈러 갔어야 했는데, 마계가 너무 신기해서 보고도 없이 성 밖으로 나와 막 놀러 다니다가 길을 잃어버렸지 뭐야?”
“와아, 역시 케루브쯤 되면 전하께 인사를 올리러 가는구나.”
“응, 그러다가 루시어스를 만나서 도움을 받았어. 내가 천사인데도 딱히 신기해하지도 않더라. 조금쯤은 놀랄 줄 알았는데 말이야.”
“루시어스 녀석이 그런 성격이기는 하지.”
“놀라는 게 오히려 더 상상이 안 간다.”
저런 일화는 또 언제 만들어 왔는지.
케루브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술술 루시어스와 자신의 첫 만남에 대해 떠들어댔다.
전하께서도 알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학생이라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느니, 자기를 정말 알뜰살뜰하게 잘 챙겨 줘서 감동적이었다느니.
좋은 마족이 있다는 걸 그때 알고 아카데미에 빨리 와 보고 싶었다느니.
‘이 정도면 지식의 총아가 아니라 그냥 똑똑한 사기꾼 같은데.’
루시어스가 그렇게 생각하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얼굴을 살폈다.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으니 차라리 그럴싸한 거짓말로 인연을 만들어두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지만, 저렇게 몰입해서 듣는 걸 보니 양심이 콕콕 찔렸다.
케루브는 아이들이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자 신이 났는지 이야기를 쉴 새 없이 계속했다.
“그래서 이번 교류에는 루시어스랑 함께 아카데미를 다니고 싶어서 내가 가브리엘님께 떼를 썼어. 그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이 혼났는지 모르겠다니까.”
“아, 가브리엘이라면…… 그분?”
“좀 엄해 보이기는 하더라.”
“천계의 지낭이라잖아. 얼마나 엄하겠냐. 솔직히 나였으면, 으으으!”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몇몇이 몸서리쳤다. 케루브는 그것만큼은 동감하는지 큽, 하고 터지려는 웃음을 속으로 겨우 삼키고 있었다.
“어쨌든, 루시어스랑 같이 파트너가 되고 같은 반에 배정되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너희들을 봐서 더 다행이고. 다들 좋은 마족들인 것 같다!”
“크흠흠…….”
“조금 부끄럽긴 하네.”
“금칠 한 번 시원하게 잘하는구만.”
다들 머쓱해하면서도 케루브의 그런 말들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일반 하품천사도 아니고 지천사인 케루브가 마족이나 마계, 그리고 친구인 루시어스와 자신에 대해 좋게 말해 주는데 기분이 나쁠 리 없었다.
루시어스는 살살 풀리기 시작하는 분위기가 퍽 나쁘지 않아 옅게 웃었다.
케루브에게 어떤 의도가 있든 앞으로도 자신의 친구와 마족들을 상대로 이렇게 사회생활을 잘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터다.
루시어스가 자세를 고치며 물었다.
“천계와 비교하면 마계는 어때? 아무래도 다른 점들이 무척 많을 텐데.”
“어, 으음. 아무래도 신기하기는 하지. 내가 ‘케루브’의 기억이 있어도 실제로 마계를 온 건 처음이거든. 게다가 이건 비밀이기는 한데…….”
케루브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은 비밀이라는 말을 무척 궁금해하며 나란히 고개를 숙이고 속닥이는 목소리를 들었다.
“천계는 무지 바쁘거든.”
“……?”
“잊었어? 나는 지천사 케루브란 말이야. 태어나서 눈을 뜨자마자 한 게 쌓여 있는 일을 처리한 거라고.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는 일을 몇십 년이나…… 으아아아!”
왠지 이번에는 조금 진심이 묻어있는 것도 같았다. 루시어스 또한 그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렇지.
일이란 그런 존재지.
해도 해도 끝이 나지 않는…….
“그래서 마계에 와서 일을 안 해도 돼서 좋아. 너희에게도 쌓인 서류를 꼭 보여 주고 싶다.”
“이 녀석 불쌍한 놈이었네.”
“온종일 놀기만 해도 바쁜데 태어나자마자 일이라니……. 잘 왔다, 케루브. 우리가 진짜 끝장나게 놀아 줄게!!”
눈물을 흘리는 척 손수건을 꺼내 눈두덩을 톡톡 찍자 케루브를 안쓰럽게 여긴 아이들이 합심해서 케루브에게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주자며 의견을 합일했다.
케루브는 한쪽 눈을 슬쩍 떠서 그 광경을 보고는 떠오르는 웃음을 숨겼다.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이만큼 내 편을 만들어 놨으면 앞으로 아카데미 생활이 좀 편하겠지?
케루브의 그런 생각이 깨지는 데에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