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75)
마족답게 사는 법-275화(275/385)
마족답게 사는 법 275화
275 야시장 (2)
“우욱…….”
“더, 더는 못 해.”
며칠 동안 방과 후 대부분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낸 아이들이 결국 하나씩 털썩 쓰러졌다.
마수학 과제만 있었다면 루시어스가 준 책들을 읽는 게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과목들 또한 과제도 있었다는 점이 참으로 큰 문제였다.
그렇다. 루시어스는 모든 과제에 대해 본인이 주장하기로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이라며 아이들에게 ‘마수학과 관련된 모든’ 책을 읽게 시킨 것이다.
‘우, 우리가 중요한 걸 잊고 있었어.’
‘루시어스가 가르치는 게 얼마나 혹독했는데. 바보같이 그걸 싹 잊냐.’
앱실론 클래스일 시절에 낙제점이 있으면 안 된다며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던 루시어스의 모습을 어떻게 1년 만에 까먹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루시어스는 더는 안 되겠다며 엎어져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쪽지 시험을 치르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한 번씩 읽어보기만 하라고 했는데도 그렇게 힘들어?”
“글자만 보면 울렁거린다찌……. 찌이이. 글자가 기어 다니는 것 같다찌!”
“왠지 하늘이 종이색인 것 같, 욱.”
아이들은 10분을 앉아있어도 한참 못 움직인 사람처럼 좀 쑤셔 하며 몸을 비틀어댔다. 루시어스는 시선을 다른 학생들에게로 넘겨보았다.
키안이나 레이얼은 이미 책을 다 읽고 과제를 하고 있었다. 이전에 조별 과제를 하느라 고생했던 세 명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니 누가 이상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너무 아이들에게 혹독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정말 공부를 싫어하는 건지.
‘하지만 정말 기본적인 지식인데.’
아카데미에 오기 전에 한 번씩은 읽어봤을 법한 책들로만 골라서 가져왔는데 이렇게 힘들어할 줄은 몰랐다. 루시어스는 완전히 녹아 있는 훌른과 베른의 팔을 살짝 들었다가 놓았다.
흐물흐물.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팔이 스르르륵 책상에 다시 붙었다. 루시어스가 허어, 하고 작게 탄식했다.
‘오히려 케루브가 물 만난 물고기처럼 공부하고 있고…….’
케루브는 주변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옆에서 책장을 부지런하게 넘기며 책을 읽었다.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게 습관이라며 한쪽에 쪼그려 앉으면 그대로 몇 권이나 독파했다.
방과 후에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고 나면 루시어스가 시험 삼아 이러저러한 질문을 던지면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에 그치지 않고 본인의 의견까지 차분히 덧붙이며 관련된 천계의 지식까지 이야기했다.
마계 땅을 처음 밟아 보는 케루브도 그 정도인데, 마계에서 몇십 년 동안이나 산 마족들도 그만큼 해야 하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책상에 늘어져서 책장을 검지와 엄지로 꼬집어 넘기던 에스프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더는 못 해! 나는 끝낼 거야!”
“에스프, 그래도 과제는 해야…….”
“자. 여기 있어! 어쨌든, 과제만 제대로 하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에스프가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루시어스에게 본인이 밤새 해 온 과제물을 내보였다.
루시어스는 에스프가 써 온 과제를 받아서 천천히 읽어 보았다. 나름대로 책에서 본 지식을 동원해 열심히 써놓기는 했지만, 근거가 빈약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많았다.
자신만만한 모습에 루시어스는 이걸 어떻게 대답해 줘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냉정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이니 책을 다시 읽으라고 말해야 했고, 에스프의 체면을 생각해서 돌려 말하자면 열심히는 노력했지만 부족하니 처음부터 다시 써오는 게 어떻겠냐고 말해야 했다.
그래도 친구이니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게 좋겠지?
“으음……. 에스프.”
“그, 그만! 말하지 마!”
“…….”
낮게 가라앉은 침통한 목소리에 에스프가 루시어스를 향해 두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며칠 밤은 혈투를 벌인 것처럼 의자에 털썩 앉아 눈물을 삼켰다.
몰래 시선을 교환하던 훌른과 베른, 라타트리아 셋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루시어스가 의아해하기도 전에 쌍둥이가 다가와 루시어스의 양팔을 잡았다. 라타트리아가 콧김을 한 번 세게 내쉬더니 외쳤다.
“모두 루시어찌한테 돌격!”
“헉……! 그, 그래!”
“으와아아!”
“그리고 꽁꽁 묶어라찌!”
특별반 몇몇을 제외한 학생들이 타라트리아의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루시어스에게 달려들었다. 루시어스는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미소 지어 주었다.
멈칫.
그린 듯이 아름다운 미소인데 왜 이렇게 섬뜩할까. 달려오던 아이들이 잠깐 발을 멈췄다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다 더는 안 되겠다고 루시어스에게 달려들었다.
꽁꽁 묶어 놓고! 도망가야겠어!
“놀러 갈 거야아아아아!”
“공부하기 싫어어어!!”
이쯤 소란이 일어나서야 케루브가 책에 박혀 있던 고개를 겨우 들고 시선을 돌렸다. 대체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어 눈을 꿈뻑였다.
“하아……. 너희도 정말이지.”
“각오해라! 루시어스 켄드릭!!”
“기세는 훌륭하지만,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 하지 않겠니?”
정면에서 대놓고 덤빌 만큼 내가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잖아. 루시어스가 작은 목소리로 한탄하며 발을 가볍게 굴렀다.
곧 천장에서 휘리릭, 넝쿨이 쏟아져 내려오더니 아이들의 발목과 팔을 하나씩 낚아채 위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넝쿨이 아이들의 몸을 꽁꽁 옭아맸다.
“으아아악!”
“허으아아!”
순식간에 박쥐처럼 천장에 대롱대롱 달린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넝쿨 안에서도 학생들이 꿈틀꿈틀 애벌레처럼 움직이며 반항했다.
“으아아, 이거 풀어라! 놓아라!”
“새 마계의 어린이는 밖에 나가서 놀기도 바쁘다!! 도서관에서 썩을 시간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아!”
케루브도 책을 덮고 슬금슬금 루시어스에게 다가와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아이들을 올려다보았다.
발악하듯이 외치던 아이들이 곧 울먹거리며 애절한 시선을 루시어스에게 던졌다. 루시어스는 묵묵히 아이들의 시선을 받아내다가 턱을 매만졌다.
“그렇게 과제를 하기 싫어?”
“흑흑. 과제는 할게요…….”
“하지만 놀고 싶어요.”
“그렇다찌…….”
매일 웃기도 바쁠 녀석들이 저렇게 울상을 하니 루시어스도 괜히 기분이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다만 루시어스는 아무리 학생들이라고 해도 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확실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적절한 때가 있는 법 아니겠는가.
그들의 의욕에 불을 붙여줄 뭔가가 있으면 좋을 텐데.
고민하는데 옆으로 레이얼이 쪼르르 다가와서 귓가에 속삭였다.
“루시어스. 얼마 전에 영지 내에서 야시장을 열도록 하셨잖아요. 거긴 어때요?”
“아, 그런 일이 있었지. 야시장이라.”
“밤에 놀러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야시장이면 색다른 경험이 될 거에요. 거기다가 불꽃놀이도 계획했으니 볼 것도 많아요.”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아니, 오히려 딱 좋았다.
사실 야시장은 자주 열리지 않아 웬만한 마족들도 가본 경험이 많지 않으니 아이들이 솔깃해할 만했다.
이번에 야시장을 여는 것도 천계와의 교류나 갑작스러운 지진 등 많은 일이 일어나면서 일각에서 이것이 천사들의 짓이라거나 좋지 않은 징조라고 여기는 마족들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놀란 민심을 보살피기 위해 루시어스는 영지에서 야시장을 크게 열기로 했다.
야시장이 열리리라고 널리 알려 두었으니 기분 전환 삼아 다른 마족들도 야시장을 많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에게 보일 만한 볼거리이기도 하지.’
특히 천계는 탑으로 이루어져 있어 유흥거리나 이런 축제 문화가 자리 잡기 힘들었다.
평범하게 모여서 노는 마족들을 보고 함께 참여하는 것도 좋은 기억이 되겠지.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이얼이 빙긋 웃으며 물러 나갔다. 루시어스가 여전히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내려 자리에 앉히고 이야기했다.
“이번 과제를 다 하면 책임지고 야시장에 데려가 줄게. 외부 체험학습 계획서는 물론이고 허가까지 내가 다 받아 오도록 하지. 어때?”
“……야시장이라고?”
“맞아, 야시장이 열린다는 소문 들었어.”
대들어서 혼나기만 하고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줄 알았는데 루시어스에게서 생각보다 괜찮은 제안이 나왔다.
아이들이 술렁거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활짝 웃었다.
잠깐 외출하는 것도 아니고 밤중에 단체로 나갔다 오려면 선생님의 동의를 꼭 받아야 하는데, 그걸 루시어스가 책임지고 대신해 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단! 과제를 다 한 녀석들만 데려갈 거야. 과제를 다 못하면 학교에 혼자 남아야 해.”
“좋아, 한번 해 보자고!”
“할 수 있다찌!”
아이들이 의기투합해 서로 함성을 내지르더니 바로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과제를 하기 시작했다.
루시어스는 그 후 며칠 동안 레녹스와 아이들이 완성한 과제를 하나씩 검사하며 고칠 부분을 알려 주고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틈틈이 자신이 해야 할 과제들도 완벽히 끝내 놓고 외부 체험 학습 계획서와 일정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음……. 좋아, 통과.”
마지막 학생까지 전부 과제를 끝마치고 야시장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와아아아아!”
“만세! 야시장이다!!”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루시어스가 과제물을 전부 정리해 레녹스와 레이얼의 품 안에 안겨 주었다.
아르놀트에게 가서 과제물들을 한 번에 제출하고 계획서를 제출해 외출 허가를 받아야 했다.
옆에서 루시어스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던 케루브가 고개를 옆으로 기우뚱 기울였다.
‘분명 아카데미에서는 평범한 학생으로 지낸다고 하지 않았었나?’
마계는 보통 학생이 과제물을 검사하고 알려 주면서 애들 하나하나를 돌봐 줘? 아카데미 선생님도 안 저러지 않아?
* * *
“야시장에 가고 싶다고?”
“네, 야시장 마지막 날에 맞춰서 가려고요. 그때 불꽃놀이를 화려하게 한다고 해서요.”
“으음. 그래서 이렇게까지 해 온 건가?”
아르놀트는 제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도착한 과제를 가볍게 훑으며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대체 애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과제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야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기는 한데……. 끄응,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긴 한데 말이다.”
대충 훑어보기만 했는데 보고서의 내용이 특별반 학생들이 작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보고서를 알파 클래스 졸업 논문처럼 써서 낸단 말인가?
모든 과목의 한 학기에서 일 년 치 예습은 다 시켜 놓은 것 같았다.
아르놀트가 신음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선생으로서 학생들의 비약적인 성장에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앞으로 할 수업 계획서를 전부 갈아엎어야 하니 슬퍼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아아아……. 알겠다. 마족이 워낙 많이 모이는 곳이라 안전상의 문제도 있으니 나와 하멜 선생님, 그리고 레녹스가 동행하는 것으로 하도록 하자.”
“네, 그럼 그렇게 전달해 놓을게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려는데 아르놀트가 다시 루시어스를 불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가서는 머리를 꾹 눌러 쓰다듬었다.
“애들 보살피느라 고생이 많다.”
“……새삼스럽게요?”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서 말이야. 그럼 가서 쉬어라.”
이제 가보라는 듯 아르놀트가 훠이훠이 손짓했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으며 교무실에서 물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