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79)
마족답게 사는 법-279화(279/385)
마족답게 사는 법 279화
279 야시장 (6)
도박판을 모두 정리한 후 루시어스는 조금 이르게 아이들과 약속했던 장소로 이동했다.
야시장 마지막 날에 있는 불꽃놀이를 함께 보기로 했으니 미리 준비해 놓을 참이었다.
루시어스는 주변 공터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야시장 매점이나 불꽃놀이를 보러 온 마족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단체로 불꽃놀이를 볼만한 장소가 없었다.
“이쯤이면 될 것 같은데?”
“거기는 조금 좁을 것 같은데. 인원이 생각보다 많으니 넉넉하게 앉으려면…….”
“그럼 그냥 나무라도 하나 키우는 건 어때.”
케루브가 제안했다.
땅에 앉을 자리가 없다면 나무라도 키워서 나뭇가지에 앉으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비행이 가능한 마족들은 공중에 자리를 잡고는 하니 안될 것도 없었다.
위로 올라가면 경치도 훨씬 좋을 거고.
“그러려면 아예 뒤쪽으로 가야겠어. 앞에 나무가 있으면 다른 마족들에게 방해가 될 테니.”
“내가 보고 오도록 하지.”
레녹스가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전에 봤던 것보다 더 큰 날개가 날갯죽지 아래로 길게 늘어졌다.
땅을 박차고 힘차게 위로 올라간 레녹스는 곧 적당한 장소를 찾았는지 손가락으로 방향을 알려 주었다. 루시어스가 케루브와 함께 레녹스를 따라갔다.
곧 나무 하나 정도는 거뜬히 키울 만한 공터가 나왔다. 야시장과 조금 멀기는 하지만 주변에 다른 마족이 없으니 편히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애들을 이쪽으로 데려와 줘. 곧 약속 시각이니 하나씩 모일 거야.”
“알겠어.”
“나도 다녀올게!”
레녹스와 에스프 일행이 바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루시어스는 그 사이에 한쪽 무릎을 꿇고 땅을 한 번 짚으며 나무가 자랄 만한 환경이 되는지 한 번 살펴보았다.
케루브가 옆으로 다가오며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이왕 심는 거니 조금 더 쓸모가 있었으면 해서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야. 평범한 나무면 금방 벌목 당할 거거든.”
덩그러니 놓인 나무를 정성스럽게 돌봐 줄 정도로 인력이 넘쳐나는 건 아니니 신중해야 했다.
고민하던 루시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공터를 한 번 돌아보았다. 공터 자체는 충분히 넓으니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럼 그걸 한 번 해 볼까.”
애들이 케루브와 즐겁게 얼음땡 놀이를 하는 걸 보고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으며 땅을 발로 톡톡 건드렸다.
* * *
레녹스는 약속한 장소에 모두 모인 특별반 학생들의 인원을 모두 확인했다.
가장 늦게 도착한 아르놀트가 축제는 잘 즐겼다며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툭툭 쓰다듬었다.
불꽃놀이를 볼 장소를 물색해 놨으니 그리 가자며 레녹스가 안내했다. 아르놀트와 아이들은 레녹스의 뒤를 따라 루시어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 앞에 곧 놀이터가 펼쳐졌다.
“이제 왔어?”
“와아…….”
그곳은 어떻게 보면 놀이터로, 또 어떻게 보면 작은 마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늘을 향해 쭉 뻗은 나무 기둥에는 계단처럼 자란 버섯이 있었다. 위에는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나뭇가지가 그물처럼 엮인 공간이 있었다.
마치 둥지 같은 이 공간은 비바람도 잠깐 피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정교했다. 나뭇가지 사이에는 해먹이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도 딱 좋아 보였다.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도록 미끄럼틀도 설치되어 있었다.
라타트리아가 눈을 반짝이며 후다닥 달려갔다. 몽실몽실한 버섯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금방 루시어스가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루시어찌! 이게 다 뭐야찌?”
“편하게 불꽃놀이를 보려고 준비해봤지.”
“이걸 혼자 다 준비했다찌? 미리 말해 줬으면 라티도 도와줬을 텐데찌.”
실제로 도움을 얼마나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루시어스가 말없이 혼자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다. 라타트리아가 조금 볼멘소리를 내자 루시어스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들 과제 하느라 고생했잖아? 이건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거야.”
“찌이……. 루시어찌.”
“다들 올라와 봐. 경치가 좋아.”
아이들이 한 명씩 버섯 계단을 밟으며 위로 올라갔다.
버섯은 발이 푹 빠질 것처럼 몽글몽글한데도 쉽게 꺾이거나 꺼지지 않아 계단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고 있었다.
그들은 한 명씩 넉넉히 자리를 잡은 후에야 시선을 돌아보았다.
별도 빛나지 않아 어둡게 내려앉은 밤하늘 밑으로 멀리 야시장 불빛이 반짝이고 있다. 멀리에서 들리는 화기애애하고 시끌벅적한 목소리들이 꿈결처럼 흩어졌다.
“……예쁘다.”
누군가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들이 언제 봤던 것보다 찬란하게 반짝였다.
케루브는 루시어스 옆에 앉아 넋을 놓고 야시장 전경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응시하다가 한 번 콧잔등을 비비고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반짝. 사르르르.
야시장 불빛이 닿지 않아 어두웠던 나무에 하얗게 반짝이는 빛이 내려오며 주변을 은은하게 밝혔다.
코끝에 닿은 빛이 눈처럼 사르륵 녹았다. 빛이 머금고 있는 약간의 신성력 때문에 아이들의 시선이 케루브에게로 몰렸다.
“크흠, 단체로 어두운 곳에서 그러고 있으니까 엄청 수상해 보여서 조금 불을 밝힌 거야. 곧 불꽃놀이를 하니까 조금만 밝게…… 뭐야, 왜 그렇게 봐?”
“우흐흐, 보면 볼수록 정말 의외다 싶어서.”
에스프가 음흉하게 웃더니 케루브를 뒤에서부터 덮쳐 어깨를 감싸 안고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케루브는 ‘어두워서 조금 밝게 빛을 비췄다.’라고 했지만, 아이들 모두 알고 있었다. 케루브는 그저 이곳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힘을 썼을 뿐이었다.
마계의 이 고즈넉하고 은은한 분위기에 자신도 슬쩍 녹아들고 싶었을 뿐이다.
“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푸히히히. 아, 얘들아! 오늘 케루브가 한 거 들어볼래? 이 녀석이 글쎄 날 도와주겠다고 도박판까지 뛰어들었다니까?”
“엥?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도박판?? 뭘 하고 다녔길래 도박판까지 휘말려?”
그러는 와중 가장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아르놀트가 아래로 내려와 에스프의 뺨을 한 손으로 잡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지금 뭐라고 했냐. 도박파안?”
“어? 아, 으에. 그게요, 선생님!”
“이 녀석아! 편한 대로 다니라고 풀어 줬더니 그새 도박판까지 기어 들어 가?”
“으악! 선생님! 경험, 경험이 중요하다면서요! 이게 다 제 피와 눈물 같은 경험이……!”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아르놀트가 건방진 입이 바로 이거냐며 에스프의 입을 잡고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에스프가 우으으, 하고 우는 소리를 내며 팔을 퍼덕거렸다.
하지만 아르놀트가 저렇게 깜짝 놀라며 혼을 내는 것도 어쩔 수는 없었다.
여기가 누구도 아닌 루시어스의 영역이니 큰일이 나지 않은 거지, 다른 곳에서 펼쳐진 불법 도박판이었으면 에스프가 호된 꼴을 봤을지도 몰랐다.
“선생님, 에스프도 반성하는 것 같으니까 그만 하세요. 헤헤, 에스프, 하던 얘기나 계속해 봐!”
“그래, 레녹스 선배랑 케루브가 어땠다고?”
“크흠흠! 그게 말이야!”
에스프는 곧 케루브와 레녹스가 했던 도박을 무용담처럼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는 본인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것처럼 자랑스럽게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별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떤다며 케루브가 이마를 짚었다. 루시어스는 그 모습이 아이들 때문에 곤란해하던 자신과 닮아 있는 것 같아 웃음 지었다.
피유우우우웅! 퍼버벙!
에스프의 이야기를 즐겁게 듣고 있는데 곧 멀리서 불꽃 소리가 울렸다. 혜성처럼 밤하늘에 오른 작은 불빛이 터지며 형형색색의 꽃잎을 만들었다.
“…….”
루시어스는 그때쯤 불꽃이 아니라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루시어스의 시선을 느끼고 눈을 마주친 아이들이 불꽃보다 더 환하고 밝은 웃음을 지었다.
펑펑 터지는 불꽃은 저만큼 멀리 있는데도 괜히 따뜻한 감각이 밀려 들어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기를 바라며 불꽃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없이 평화로워 마음이 놓인다.
‘졸업하지 않기를 잘 했어.’
만약 작년을 끝으로 졸업했다면 이런 경험은 더 할 수 없었겠지.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놓치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다. 이런 일상을 더 이어갈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다. 이런 나날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다행이다.
루시어스는 고개를 돌리고 불꽃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참 풍경을 즐기다가 케루브에게 물었다.
“어때?”
“……예뻐요.”
정말 너무나도 예쁜 불꽃이다.
케루브는 숨기지 않고 건조하지만 솔직하게 답했다. 루시어스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불꽃놀이는 처음 봐요.”
“네가? 아니면 ‘케루브’가?”
“……아마도 ‘케루브’가.”
영혼이 태어나 수많은 환생을 거듭한 지금까지 케루브는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었다.
“축제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어떤 풍경인지는 다 파악하고 있었으니까요. 새로운 지식도 아닌데 굳이 시간을 할애할 필요는 없잖아요. 게다가…….”
“게다가?”
“바쁘니까요. 중간계를 다스리고 목소리를 전하는 일도 영혼을 거두고 지은 죄를 사하는 일도 전부 저희가 해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균형이 흔들리니까.”
천사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의 영혼을 보며 그들에게 삶과 죽음을 부여한다.
그것은 신이 허락한 천사들의 유일한 권능이자 권력이자 권리이고, 의무였다.
인간들이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마족들이 조금만 더 말이 통하는 상대였다면 이렇게 힘들지도 않았겠지. 케루브는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떴다.
그러다 문득 기억을 되짚고 옅게 웃었다.
“아니다.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중간계와 천계 사이가 지금만큼 멀지 않았을 때요.”
천계 대지의 끝에 앉아 있으면 중간계의 존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볼 수 있었을 정도로 무척 가까웠던 때. 천계에 아직 낮과 밤이 존재했던 때.
총관 메타트론과 불꽃놀이를 본 적이 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봤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때 보았던 불꽃은 참으로 조잡했다. 아무런 능력도 기술도 없는 인간들이 축제를 즐기겠다며 처음으로 준비한 불꽃이었으니 오죽했으랴.
하지만 그 불꽃도 이만큼 아름다웠던 것 같다.
“이제 그게 마지막이 아니게 됐네.”
불꽃을 바라보던 케루브가 옆에서 들리는 루시어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여전히 불꽃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루시어스의 입가가 불꽃보다도 더 고운 호선을 그렸다.
“그때 보고 지금 또 봤으니, 그게 마지막이 아니게 됐지. 그리고 앞으로 불꽃을 더 보면 이것도 마지막이 아니게 될 거야.”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케루브는 그 후로 입을 다물고 불꽃이 터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마족들은 하나같이 말이 안 통하는 고집불통에 야만적인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꽤 괜찮을지도 몰라.
정말로,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이 불꽃놀이도.’
마지막이 아니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