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82)
마족답게 사는 법-282화(282/385)
마족답게 사는 법 282화
282 고민 (3)
방과 후, 특별반 학생들이 반에 모여 앉았다. 언제나처럼 교탁에 선 라타트리아는 아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인 것을 확인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케루브와 레녹스, 그리고 루시어스도 마찬가지로 학생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이렇게 방과 후에 학급 회의를 열면 항상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치고는 하던데, 이번에는 대체 무슨 모의를 하려고 이렇게 모두 모였는지.
라타트리아가 씩씩하게 외쳤다.
“좋다찌. 드디어 특별반의 첫 번째 회의를 시작하겠다찌!!”
“와아아!”
짝짝짝짝짝.
아이들이 라타트리아를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라타트리아의 옆에 서 있는 레이얼도 활짝 웃으며 아낌없이 손뼉을 쳤다.
라타트리아가 새삼스럽게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적이고는 깍듯하게 좌중을 향해 인사를 몇 번 했다.
“오늘 회의를 연 이유는 모두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찌!”
“아르놀트 선생님 때문이지?”
“에스메리찌, 정답이다찌!”
아르놀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학생들이 서로 시선을 나누더니 여기저기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아이런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내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야. 요즘 선생님이 고민이 많으신 것 같지?”
“맞아……. 이상하게 힘이 없으셔.”
아르놀트 딴에는 열심히 숨긴다고 숨겼지만, 앱실론 클래스로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아르놀트를 보고 따랐던 학생들은 그의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어디가 확실하게 변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다만 모두 뭔가 ‘달라졌다’라는 느낌만 아르놀트에게서 받았을 뿐이었다.
목소리에 평소보다 힘이 없는 것 같다거나, 왠지 힘없이 걷는 것처럼 보인다던가.
다른 이들이 들으면 평소와 다를 게 없다고 어깨를 으쓱일 만큼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특별반 학생들이 보기에 요즘의 아르놀트는 뭔가 이상했다.
“일이 많아서 그런가? 특별반이니까 선생님도 힘드실 거 아니야. 우리 과제도 하나하나 다 검토해 주시면서 아카데미 일까지 하려니 얼마나 바쁘시겠어.”
“우으음, 우리가 너무 철이 없었나……?”
“하긴, 바쁘신데 우리랑 같이 야시장도 가주시고……. 찾아가면 바쁘셔도 언제든 맞아 주시잖아.”
아이들은 곧 자신들이 아르놀트 선생님을 그동안 괴롭혀 온 것이 아닌지 고민했다.
굳이 용건이 없어도 한 번씩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거나 시시콜콜한 농담을 건네고는 했으니 그만큼 선생님의 시간을 빼앗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는데 에스메리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아르놀트 선생님이 얼마나 철두철미하신데. 절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업무를 짊어지려고 하지는 않으셔.”
“맞는 말이군……. 게다가 학장님께서도 업무가 한 명에게 과하게 집중되지 않도록 신경 쓰고 계실 거야. 그러니 일이 많아졌으면 선생님들 모두 힘들어졌어야지.”
아무리 작은 행사라도 혼자 진행하는 법이 없는 아카데미에서 아르놀트만 그렇게 뭔가 일을 열심히 한다는 건 이상했다.
“그럼, 일 때문이 아닌가?”
“하지만 딱히 다른 이유가 없지 않아?”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찌.”
라타트리아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아이들 모두 아르놀트 선생님의 ‘개인적인 문제’가 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카데미 선생이 아닌 ‘아르놀트 스키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많지 않았으니까.
“우리는 아르놀트 선생님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자기 얘기를 많이 하시는 분은 아니시니까.”
“……누구 짐작 가는 거 없어?”
생각해보니 입맛이 참 썼다. 아르놀트는 항상 자신들의 말을 성심성의껏 들어주었는데 정작 자신들은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 같았다.
케루브와 레녹스를 포함해 스물둘이나 되는 학생이 있는데도.
루시어스는 아르놀트를 두고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며 쑥덕쑥덕거리는 학생들을 바라보다가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언제나 당당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실속 없이 행동하는 마족이 되고 싶지는 않아.
얼마 전 아르놀트는 보건실에서 당당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이 정도면 당당해져도 괜찮지 않나요?’
아르놀트와 특별반 사이의 유대감은 누구도 아닌 아르놀트가 만들었다.
그간 학생들을 진심으로 위하고 보살펴 주었기에 학생들이 나서서 선생님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학생들이 선생님을 믿고 따르는데 어떻게 그의 말과 행동에 실속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학생들이 이만큼 담임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르놀트만 모르고 있다.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좋지. 하지만 어깨 위의 짐을 조금 내려두셨으면 좋겠는데…….’
루시어스는 아르놀트가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수련해 주었으면 했다. 선생과 어른으로서의 의무감에 짓눌리지 않았으면 했다.
‘자,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대로 모른 척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옆에서 케루브가 손을 들고 발언했다.
“어쨌든, 너희들은 아르놀트 선생님에게 큰 고민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렇지.”
“그럼 고민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뇌 스물두 개 뭉친다고 정답이 나오겠어?”
케루브가 어깨를 으쓱였다. 학생들은 뒤통수를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받은 표정으로 케루브를 바라보았다.
케루브는 영문 모를 시선들에 본인이 말을 잘못했나 싶어 몸을 조금 뒤로 뺐다.
루시어스는 아이들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이마를 짚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케루브가 입을 열지 못하도록 단속해 두었을 텐데…….
“케루찌는 천재다찌!”
“와, 그러네. 모르면 알아보면 되는 거잖아? 이 쉬운 걸 왜 생각하지 못했지?”
“천계에서 제일 똑똑한 놈이라더니 정말인가 봐. 나는 지금까지 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껏 날 의심한 거야?”
학생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케루브가 펄쩍 뛰며 불만을 표시했다. 루시어스가 미간을 슬슬 문지르며 난감하게 웃었다.
“얘들아. 너희의 마음은 알겠지만, 선생님께서 불편하실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 루시어스 말이 맞다! 선생님께서 불편하실 수 있으니 조용히 움직이는 게 좋겠어! 선생님껜 절대로 스트레스를 주면 안 된다!”
“아이런. 그런 게 아니라…….”
“루시어스. 네 말뜻은 알고 있어. 우리 실력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는 거겠지?”
아이런이 루시어스의 말허리를 자르며 힘차게 외쳤다.
루시어스는 이미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고 턱을 괸 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케루브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뒤늦게 깨닫고 루시어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럼 조를 나누는 게 좋겠다찌.”
아르놀트 선생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다른 선생님들에게 접근할 학생들과 다른 반 친구들한테 요즘 선생님의 수업이 어떤지 물을 학생들이 팀으로 나뉘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정보 수집을 위한 팀을 구성하고, 자신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공작팀까지 꾸렸다.
레녹스는 부담임이니 아르놀트 선생님을 집중 마킹하기로 했다.
‘대체 왜 이렇게 본격적이야?’
기분 탓인지 어째 날이 갈수록 일을 벌이는 실력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루시어스와 케루브, 라타트리아가 한 팀이 되었다. 아르놀트 선생님을 상대로도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셋이었다.
“우리 셋은 아르놀트 선생님 뒤를 밟으면서 선생님의 상태를 확인하는 거다찌!”
“루시어스라면 안심하고 맡길 수 있지. 라타트리아도 요즘 실력이 엄청 좋아졌으니 선생님께 들키지 않게 따라가는 건 충분히 가능할 거야.”
“천사들은 날 때부터 능력을 다룰 줄 안다고 하니 케루브도 걱정이 없겠다. 정말 든든해.”
라타트리아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아이들은 루시어스와 케루브까지 동그란 어깨동무 진열에 끼운 후 눈을 빛냈다.
“그럼 아르놀트 선생님의 고민 알아보고 해결하기 작전! 시작이다!”
“오우! 오!”
“하아…….”
루시어스가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다.
* * *
“수업 계획서는 잘 써가고 있나? 뭔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도 좋다.”
“아직 괜찮은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아요.”
“하긴, 너는 그런 데에는 도가 텄지.”
명색이 아카데미에 부담임으로 와있는지라 레녹스도 명목상으로나마 몇 번은 수업에 들어가야 했다.
다만 레녹스는 일반적인 선생들과 달리 특수상황 때문에 마왕의 명령으로 파견을 온지라 선생이 되기 위한 교육과 실습 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카데미에서는 레녹스에게 간단한 교육을 하고 수업 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하게 했다.
학장이 계획서를 승인하면 수업 시연을 통한 연습을 거친 후 교실에 천천히 투입해 선생 일에 점차 익숙해지도록 하는 계획이었다.
요즘 레녹스는 아르놀트의 도움을 받아 수업을 위한 계획서를 한창 작성하고 있었다.
아르놀트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부담임이라는 제도가 생각보다 좋은 것 같다. 선생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지켜볼 수도 있고, 학생들과 친해질 수도 있고 말이야.”
“학생들에게서 눈을 떼도 조금 안심이 되고 말이죠?”
“맞아. 눈을 떼면 언제 사고를 칠까 불안하거든. 네가 곁에 있으니 참 안심이 돼. 게다가 새로운 선생님들도 천천히 아카데미에 익숙해질 수 있으니까.”
단체로 선생을 양성하려면 조금 힘들지도 모르지만, 한두 명씩 이런 식으로 교육을 하는 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물론 일거리가 늘어나는 셈이니 기존 선생님들은 부담스러워하겠지만 말이다.
레녹스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던 아르놀트는 문득 뭔가를 느끼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옆에서 시선이 느껴진 것 같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느껴지는 게 없다.
“선생님?”
“응? 아. 레녹스, 혹시 저쪽에 누가 있지 않았나?”
“저쪽이요?”
레녹스는 아르놀트가 손짓한 곳으로 눈동자를 한 번 굴려보았다. 그러다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옅게 웃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뭔가 있었나요?”
“으음. 아니, 됐다. 기분 탓인가 보지.”
오늘도 늦은 새벽까지 훈련했으니 감각이 과하게 예민해져 있을 수도 있었다. 아르놀트가 머리를 가볍게 헝클고 걸음을 옮겨 교무실에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아르놀트가 바라봤던 쪽 복도의 벽 뒤에는…….
‘미행 시작하자마자 들키는 줄 알았다찌.’
‘레녹스가 잘 얼버무렸군.’
‘난 대체 왜 여기 낀 거지?’
라타트리아와 루시어스, 그리고 케루브가 찰싹 붙어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르놀트가 교무실로 들어가자 셋이 동시에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루시어스는 동시에 숨을 뱉는 라타트리아와 케루브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라타트리아가 쪼르르 벽 뒤에서 튀어나가 다른 쪽으로 빠르게 움직여 몸을 숨겼다. 그리고 루시어스와 케루브를 바라보며 조용히 수신호를 보냈다.
‘다시 움직이자찌!’
이런 뜻이었다.
루시어스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라타트리아의 뒤를 따랐다. 아르놀트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
루시어스가 웃음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