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87)
마족답게 사는 법-287화(287/385)
마족답게 사는 법 287화
287 체험학습 (1)
“내가 먼저 부르기 전에는 접촉하지 말라고 누누이 얘기했을 텐데.”
“…….”
케루브가 미간을 찌푸리며 제 앞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천사들을 바라보았다.
아카데미에 오기 전에 천계의 천사들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집합 신호를 정해 두기는 했다. 다만 쓸데없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급한 일이 아니라면 서로 최대한 접촉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급한 일’이 무엇인지는 엄연히 상품천사인 케루브가 정해야만 했다.
눈앞에 있는 하품천사들이 저를 오라 가라 하기 위해 신호를 만든 것이 아니라, 케루브가 이 하품천사들에게 빠르게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호란 말이다.
그런데 건방지게 먼저 나를 불러내다니 천계였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어이가 없군. 여기가 마계라고 천계의 규율을 잊기라도 했나?”
“……죄송합니다.”
“하아.”
물론 천사들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또한 케루브를 불러내는 데에 얼마나 오랫동안 주저했는지 모른다.
천사들은 케루브를 앞에 두고도 감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건방지게 불러낼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규율을 지키는 척이야?’
케루브의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았다. 어째서인지 천사들을 마주하니 속이 착잡했다. 제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꼴을 보니 더욱 그랬다.
입을 열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을 그들을 알고 있으니 더욱.
“젠장.”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규율을 어긴 천사들을 건방지다며 훈계한 후 자신의 죄를 뉘우치도록 벌을 내렸을 텐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정확히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도.
‘답답해.’
그래, 너무나도 답답했다.
마치 거대한 새장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새장에서 태어나 새장 안에서만 살아가던 새가 어느 날 문턱을 넘고 하늘을 날다가 다시 붙잡혀 온 것만 같은, 그런 답답함이었다.
눈앞에 이들이 없었으면 케루브는 당장 주먹을 쥔 손으로 제 가슴을 쾅쾅 내리쳤을 것이다.
다만 앞에 천사들이 있으니 케루브 또한 체면을 차리며 형식을 지켜야 했다. 케루브가 낮은 목소리로 천사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이렇게 모였지?”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케루브의 눈매가 불쾌하게 접혔다. 그가 잠시 조소하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었다.
“혹 가브리엘 님의 전언인가?”
“……아니요.”
“그럼 천제 님의 전언이라도 되나?”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불러냈지? 설마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임무에 대한 사감이라도 내게 늘어놓으려고?”
천사들이 의기소침하게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들의 머릿속은 참 뻔했다. 제게 쉽게 말을 꺼내지 않는 걸 보니 더욱 그랬다. 마계가 너무 힘들다거니, 천계로 돌아가고 싶다거니 어리광이나 부리러 온 것이 틀림없었다.
케루브가 잠시 시간을 확인한 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선은 들어주지. 빨리 말해. 다음 수업에 들어가야 하니까.”
“다음 수업…….”
케루브의 말을 들은 천사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케루브는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빨리 이놈들이 저를 불러낸 이유를 말하고 꺼져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천사들은 서로 눈치를 교환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케루브 님께서는 괜찮으십니까?”
“무엇이?”
“마족과 어울리는 것이요.”
케루브가 마족들을 싫어하는 것은 천계에서도 무척 유명했다.
마족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소스라치며 학을 떼었으니 당연히 그들은 케루브 또한 마계의 아카데미에 다니는 것을 힘들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케루브는 생각보다 열심히 아카데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뿐이랴? 마족들과 곧잘 어울리며 아카데미 생활에 금방 적응했다.
“당신께서는 마족을 무척 싫어하지 않으셨습니까. 저희야 어떻게든 버틸 만 하다지만 케루브 님께서는 워낙 힘든 점이 많으실 테니 걱정이 되어…….”
“걱정이라고? 너희들이 나를?”
케루브가 어이없다는 듯 숨을 짧게 내뱉었다.
“내 핑계 대지 말고 솔직히 말해라. 너희는 그냥 본인들이 힘든 거잖아. 천계에 돌아가고 싶나? 내게 문이라도 당장 열어달라 하려고 왔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희도 이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알고 있어요. 다만.”
“다만, 뭐?”
“다만…….”
말하던 천사가 입을 다물었다.
처음에 천사들은 케루브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싫어하는 마족들과 함께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도 눈 깜짝하지 않다니 역시 천계의 총아라고 말이다.
천계의 거사를 위해서라면 저렇게까지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구나.
“…….”
하지만 요즘 그의 행동들을 보니…….
자신들이 생각했던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움직이는 시선 사이에서 케루브가 천사들에게 보란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리광부리지 말고 얌전히 아카데미에 적응이나 하도록 해. 지령……이 내려오기까지 말이야.”
케루브는 괜히 입안이 껄끄러워짐을 느끼고 턱을 매만졌다. 주춤거리던 천사들이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고는 옅게 웃으며 케루브에게 물었다.
“케루브 님은 마족 학생들과 상당히 가까워지신 것 같던데, 어떻게 그렇게 친해지신 건지 방법을 여쭈어도 괜찮을까요?”
“어떻게 가까워졌냐고? 음…….”
의외로 영양가 있는 질문이 나오자 케루브가 내심 만족스러워하며 눈을 굴렸다.
특별반 녀석들이랑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 되짚어보다가 피식 웃었다.
“먼저 다가가 봐.”
“……먼저요?”
“그래, 좀 험악하게 생기기는 했어도 아직 어린애들이라 순수한 면도 있거든. 서로 어색한 건 똑같으니 누군가는 용기를 내야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그럭저럭 지낼 만하게 될 거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사들은 케루브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참 상위 계급의 천사인 케루브에게 이 이상 토를 달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럼 아카데미 생활 열심히 해라. 아, 맞아. 날 또 부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
“유념하겠습니다.”
“건방진 짓을 봐주는 건 한 번뿐이야.”
케루브는 천사들에게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한 후 바로 걸음을 옮겼다. 천사들은 금방 특별반 마족들 사이에 끼어 체육관으로 향하는 케루브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주, 가만히.
* * *
“케루브가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예.
사이러스 아카데미로 파견된 하품천사들에게 연락을 받은 가브리엘이 이마를 짚으며 얕게 신음했다.
하품천사들은 요즘 케루브가 과하게 마족들에게 정을 주며 아카데미 생활을 하는 것 같다며 가브리엘에게 근심과 우려를 늘어놓았다.
-저희의 역할이야 크지 않으니 어찌 되었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케루브 님께서 그런 상태면……, 이러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후우.”
물론 천사들의 걱정은 케루브의 안전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천계를 위한 본인들의 거사가 물거품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러울 뿐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가브리엘 님.
“우선은 이대로 지켜본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도록.”
-알겠습니다.
연결이 끊긴 수정구가 빛을 잃었다.
가브리엘은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눈을 가볍게 감았다. 케루브를 아카데미로 보내면서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점쳐놓기는 했다.
케루브는 무척 어린 천사라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편인데다가 원래부터 총관을 잘 따랐다.
그러니 5장로 루시어스 켄드릭과 주변의 마족들에게 호의를 가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가 곁에 두는 마족들이라면 케루브도 본능적으로 적대하지 않으려 할 테니까.
“메타트론 님의 영향력이 이렇게 강했었나.”
그렇게 마족을 싫어하던 케루브가 마족들에게 ‘먼저 다가가 보라.’라고 말할 정도로 바뀌다니.
읊조리던 가브리엘이 눈을 떴다.
케루브가 루시어스나 주변 마족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케루브가 본인의 무게 중심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천사는 아니었다.
지금 어디에서 누구와 친구를 만들었다 해도 케루브는 명실상부 천계의 지천사였다.
때가 오면 본인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쯤은 그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케루브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이번 작전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달려 있으니…….
“불안 요소인 건 맞나.”
무작정 케루브를 믿어 줄 순 없다.
가브리엘은 이번 계획에 많은 것을 걸었고, 많은 것을 잃었다. 그리고 거사가 실패하면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몰랐다.
천계를 위해서라면 조금의 불안 요소도 남겨놓을 수 없었다. 그 불안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다른 손해를 입게 될지라도.
“계획을 당겨야겠어.”
케루브가 마족들에게 홀려 완전히 무게 중심을 잃기 전에 움직이기 시작해야 했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바알을 만나 이후의 일정을 논의해야 했다.
그의 손가락 끝에 빛이 맴돌았다.
마왕을 만나기 위한 핑계는 얼마든 갖다 붙일 수 있었다. 마족들이 아무리 날고뛰며 발버둥 쳐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천계를 절대 이길 수 없었다.
현 상황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했으니까.
어떤 일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다. 강한 무력과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어도 정보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
반대로 정보가 충분하다면 누굴 상대하든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아카데미에 파견된 천사들의 현재 교육 상황에 대한 후속 회의를 하고 싶다는 정도면 되겠지.”
그 전에 케루브에게 연락해 상태를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눈을 감고 긴 숨을 천천히 몰아쉰 가브리엘이 머리를 가볍게 뒤로 넘겼다. 그리고 한 쪽에 치워 두었던 수정구를 가져와 케루브에게 연락을 넣었다.
희미한 빛이 몇 번 깜빡였다.
-가브리엘 님!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케루브. 잘 지내고 있나?”
-네,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님께서도 무탈하시지요?
“그래, 잘 교류하고 있다니 안심이 되는구나. 다른 일은 없고?”
-그럼요. 그런데 무슨 일로…….
“슬슬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어서 말이다. 매일 함께 있었기 때문인지 요즘 네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아…….
케루브가 머뭇거리는 기색을 보이자 가브리엘의 눈가가 가볍게 일그러졌다.
통신할 때 누군가가 도청당할 가능성 때문에 케루브와 가브리엘은 사전에 암구호 몇 개를 정해 두었었다.
그중 ‘네 생각이 많이 난다.’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첫 번째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알리는 말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게.
“누가 널 괴롭히기라도 해?”
-……아니요. 아닙니다.
“그래, 그런데 왜 그래.”
누가 널 괴롭히느냐는 건, 혹시 주변에 누가 있냐는 뜻.
한참 침묵하던 케루브가 조심스럽게 수정구 너머에서 입을 열었다.
-가브리엘 님. 꼭……. 그게, 그,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화내지 않으실 거죠?
가브리엘의 한쪽 눈썹이 위로 달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