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88)
마족답게 사는 법-288화(288/385)
마족답게 사는 법 288화
288 체험학습 (2)
“괜찮으니 말해 봐.”
-그게……. 으음. 다른 학생들도 그렇고 루시어스 님께서도 제 편의를 많이 봐주세요! 루시어스 님께서 얼마나 정이 많으신지 몰라요.
“정이 많으시다고?”
-네, 무척 잘 대해 주세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요. 무사히 졸업할 자신이 있을 만큼 여기 적응했거든요!
‘졸업’은 계획을 늦추자는 뜻.
가브리엘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케루브가 조금 이상하다더니.’
다른 천사들의 말에 틀린 바가 없었다.
제게도 겁 없이 이렇게 말하는데, 제 눈이 없는 곳에서는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닐까.
정말 제대로 되는 일이 없군. 가브리엘이 혀를 작게 찬 후 고민하다가 웃음기 섞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그러자.”
-아, 정말요?
시리게 느껴지는 눈동자와는 달리 무척 포근한 목소리였다.
“그래,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거기서 잘 지내고 있어라. 그럼 네가 잘 적응했다니 저번에 루시어스 님께 넌지시 말씀드렸던 것이나 진행해 봐야겠구나.”
-네!
옅은 빛을 발하던 수정구의 빛이 끊겼다.
가브리엘은 조용해진 수정구를 바라보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 * *
“네에? 체험 학습이요?”
공책에 괜히 끄적끄적 낙서하며 손장난 치던 레이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케루브가 신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전에 가브리엘 님이 루시어스 님께도 말한 적이 있다고 하던데.”
“저도 그때 있었으니 기억나요. 이렇게 빨리 제안하실 줄은 몰랐지만요.”
“나도 몰랐어. 천사들이 적응하고 나면 진행할 예정이기는 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하는 레이얼을 바라보던 케루브가 루시어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비에게 간식을 먹여 주고 있던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고 있다. 분명 그런 얘기를 했었지. 그런데 레이얼 말대로 좀 이르기는 하군.”
“네, 그런데 가브리엘 님께서 제 핑계를 대시긴 했지만, 사실 다른 천사들 때문에 이걸 시행하시려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다른 천사들?”
“적응을 좀체 못하더라고요.”
케루브가 뺨을 긁적이며 말을 덧붙였다.
“얼마 전에도 굳이 제게 찾아와서 불평했으니까요. 저야 좋은 반을 만났으니…… 아, 아니. 제가 흠! 열심히 노력했으니 적응했지만!!”
케루브는 특별반 학생들을 순순히 칭찬하고 싶지 않은지 자신이 노력해서 적응한 거라며 괜히 거들먹거렸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음 지었다.
케루브가 쑥스러운 듯 루시어스의 시선을 피하며 우물우물 늘어놓았다.
“다른 천사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요. 아마 향수병이나 좀 해소할 생각이 아닌가 싶어요.”
“그럴 수도 있겠어.”
“그래서 루시어스 님께 먼저 말해두려고 했어요. 혹시 불편하시면 가브리엘 님께 의견을 전달하려고요.”
“천계로 체험학습이라…….”
루시어스가 케루브를 흘긋 곁눈질했다. 케루브를 제외한 천사 대부분이 마계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케루브의 말대로 이것은 실상 마계 생활에 힘들어하며 향수를 앓는 천사들을 며칠간이라도 천계에서 쉬게 하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보아야 했다.
갑자기 학생들을 송환시키면 의도치 않은 반발을 살 수 있으니 체험학습 명목으로 데려가는 게 제일 뒤탈이 없는 방법이긴 했다.
‘그 외의 꿍꿍이라면 뭐가 있을까.’
헤아려 보는데 옆에서 부담스럽게 콕콕 박히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두 손을 꼭 모은 채 뭔가를 기대하는지 반짝거리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케루브가 보였다.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천계에 가고 싶어?”
“저는 상관없어요, 루시어스 님께서 싫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가능하면 반 녀석들한테 천계를 보여 주고 싶어서요.”
“반 애들한테?”
“네, 이거 보실래요?”
케루브가 활짝 웃더니 루시어스에게 총총총 다가왔다. 루시어스는 케루브가 제게 다가오자 뒤에서 허리춤에 매단 칼집에 손을 가져가는 레녹스를 발견하고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체험 학습 이야기가 나온 순간부터 레녹스와 레이얼이 케루브를 경계하고 있었다. 레녹스를 눈짓으로 진정시킨 루시어스가 케루브에게 물었다.
“뭔데?”
“체험학습은 2박 3일 정도로 계획될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2박 3일이면 사실 시간이 빠듯하거든요? 그래서 가브리엘 님께 듣고 제가 보여 주고 싶은 곳을 리스트로 만들어 놨어요.”
촤르륵!
케루브가 한 손에 쥐기도 힘든 두꺼운 두루마리를 펼쳤다. 두루마리에는 작은 글씨로 보여 주고 싶은 장소의 이름과 그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해 꼼꼼히 적혀 있었다.
가브리엘의 힘으로 봤던 천계는 무척 작은 섬에 높은 탑이 올라가 있는 듯한 세계였는데, 그곳에 이만큼 볼 공간이 많다니 새삼스레 신기했다.
“사실 천계는 마계만큼 볼거리가 많지 않긴 해서…… 그래도 제가 관리하는 도서관은 제법 볼만하거든요. 천계의 책은 사뭇 다른 느낌이라 신기할거에요!”
“흐음, 이 문이라는 건?”
“천계의 문이요! 제가 문도 열 수 있거든요. 마계로 막 드나드는 건 힘들겠지만, 제가 지키는 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여줄 수 있어요. 천계에서는 문을 실체화할 수 있거든요.”
“아, 천계의 세 문은 생김새가 모두 달랐지?”
“맞아요. 그리고 제 ‘문’은 도서관이랑 이어져 있어서 천계 내에서 문을 열면 바로 도서관에 도착할 수 있어요. 신기하죠?”
케루브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어떻게든 루시어스나 다른 친구들에게 천계를 보여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루시어스가 케루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케루브가 뭔가 생각났는지 아, 하고 말을 또 이었다.
“제가 엄청 옛날에 불꽃놀이를 본 곳도 있거든요? 지금은 중간계와의 거리가 멀어져서 불꽃놀이는 못 볼 것 같긴 한데, 거기도 보여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또…….”
“보여 주고 싶은 곳이 그렇게 많아?”
“간 김에 전부 보여 주는 게 좋잖아요. 이런 기회가 두 번이나 있겠어요?”
게다가 다른 천사들은 마족을 별로 안 좋아하니 자주 가는 것도 좋진 않을 거예요. 케루브는 천사들은 아무튼 꽉 막힌 놈들뿐이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루시어스가 케루브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다가 손에 걸리는 깃털 장식을 매만졌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도록 하지.”
“헤헤, 루시어스 님은 하나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가서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제가 재빨리 마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드릴게요.”
“네가? 그러다 가브리엘에게 혼나면 어쩌려고?”
“에이, 안 혼나요. 그리고 그런 일은 애초에 안 일어날 테니까 괜찮아요!”
케루브가 말아 쥔 주먹으로 본인의 가슴을 땅땅 때리며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케루브는 참 순수하고 어린 면모가 많은 천사라 믿을만해 보였다. 루시어스가 깃털에 엉킨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손을 뗐다.
‘적어도 케루브는 진심인 것 같은데.’
다만 이 계획을 제안한 천사가 가브리엘이라 괜히 입맛이 껄끄러울 뿐.
루시어스가 한숨을 삼켰다.
* * *
루시어스는 그날 밤 바로 마왕성으로 향했다. 따로 기별을 넣지 않았는데도 마왕와 마리엘라, 더미트가 집무실에서 루시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시이이이!”
“누님.”
“오래간만이야!”
와락!
마리엘라는 루시어스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와락 달려들어 끌어안고는 뺨을 루시어스의 얼굴에 마구 부볐다. 마리엘라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을 무렵에 루시어스가 개학하는 바람에 제대로 만날 수가 없었다.
루시어스가 마리엘라를 끌어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고 쓸다가 이내 느껴지는 위화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마리엘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의아한 듯이 물었다.
“눈높이가 저랑 비슷해진 것 같은데, 혹시 키가 크신 거예요??”
“응! 역시 루시는 알아보는구나?”
마리엘라가 밝게 웃으며 루시어스에게서 떨어져 한 바퀴 몸을 휘리릭 돌렸다. 루시어스가 기쁘게 웃었다.
선천적으로 앓았던 병 때문인지, 아니면 불완전한 성장 때문이었는지 마리엘라는 일반적인 뱀파이어 치고는 몸집이 무척 작은 편이었다.
원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죽을병을 앓고 있었음을 안 후로는 그것이 못내 가슴 아팠었는데.
“우리 마리가 정말 예뻐졌지?”
“네, 정말 많이요.”
이제야 마리엘라가 가져야 했을 모습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마리엘라는 원래도 아름다운 마족이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병을 이겨 낸 마리엘라는 이전보다 훨씬 눈부시게 웃을 줄 알았다.
근심 걱정이 없어 보이는 맑은 웃음.
마음속의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여유로움이 넘치는 그런 웃음을 지었다.
‘나도 이렇게 기쁜데 전하께서는 어떠실까.’
아마 날아갈 듯 행복하겠지.
루시어스가 마왕에게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사랑스러운 동생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과 행복함이 가득했다. 보는 이마저 마음을 푹 놓게 만드는 행복이었다.
이렇게 보니 이전의 둘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어휴. 들어봐, 루시. 글쎄 더미트는 내가 키가 큰 걸 모르지 뭐야?”
“……그, 그건…….”
“어차피 조그마한 나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이거지. 어차피 시야 밖에 있는 건 똑같으니까 말이야.”
“아니, 아닙니다. 마리엘라 님.”
“아니면 나한테는 관심도 없던가. 더미트 대장군이 관심 있는 건 우리 오빠랑 아들인 루시어스 뿐인 거지?”
“…….”
더미트는 마리엘라의 짓궂은 빈정거림에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마리엘라는 틈을 놓치지 않고 더미트를 계속 신나게 물어뜯었다. 더미트는 고개를 툭 떨어트리며 순순히 마리엘라에게 당해 주었다.
루시어스는 마리엘라와 더미트가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그러다 마왕이 몇 번 헛기침하고는 본론을 꺼냈다.
“케루브를 통해 소식을 들은 모양이네, 루시어스.”
“맞아요. 가브리엘이 케루브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해?”
마왕이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진지한 표정으로 루시어스에게 물었다.
“알다시피 가브리엘이 마족들에게 천계를 보여 주고 싶다는 제안을 했어. 그리고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고.”
“천계에 대해 알 수 있으니까요.”
“맞아, 마리엘라의 병을 고치면서 더욱 절실히 느낀 참이었거든. 마계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걸.”
마계 정보의 양과 질은 천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지니 문헌들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불타 없어지고 분란이 일어나면 썩어 사라졌다.
마왕은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지난 500년간 외부와 소통하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천계와 교류를 이어가고 거래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 정보의 부족은 커다란 결점이 된다.
“체험 학습은 마계의 장로가 직접 천계 내부를 확인할 좋은 기회지. 하지만 루시어스, 네가 친구들이 걱정된다면 제안을 물리도록 할게.”
“……천계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해야 가브리엘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숨을 고른 루시어스가 마왕과 한 번, 더미트와 한 번 시선을 맞추었다.
“그러니 다녀올게요, 아버지들.”
마왕과 더미트가 조금 크게 뜨인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다 웃었다. 마리엘라가 질투라도 하는지 펄쩍 뛰며 루시어스에게 바짝 다가왔다.
“루시, 나는? 나는??”
“다녀올게요, 누님.”
“후후, 응. 루시어스, 다녀와.”
마리엘라가 루시어스의 이마에 입을 쪽 맞춰 주었다. 루시어스는 못 말리는 보호자들을 보며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