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95)
마족답게 사는 법-295화(295/385)
마족답게 사는 법 295화
295 하얀 밤 (4)
“여기서 뭘 하는 거지?”
급한 속내를 숨기고 미카엘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복도를 어슬렁거리는 마족에게 접근했다.
혈연인지 상당히 닮은 외모의 두 마족이 저를 발견하고 능청스럽게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중 하나가 앞으로 살짝 나오며 성격 좋게 웃었다.
미카엘은 그들이 방에서 조금 멀어지자 내심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간만에 동생을 만나 즐거운 마음에 담소를 나누며 아발론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길을 잃었습니다.”
“동생이라.”
“제 이름은 이켈, 이쪽은 제 막냇동생인 레녹스입니다.”
이켈이 간단하게 예를 표하며 고개를 까딱였다.
미카엘은 이켈을 향해 살짝 고개를 기울인 후 레녹스라는 동생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레녹스에 대해서는 미카엘도 알고 있었다.
그분, 메타트론.
루시어스 켄드릭이 선택한 기사가 아니던가.
“혹, 실례가 아니라면 저희도 성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미카엘이다.”
“아, 대천사셨군요.”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다. 미카엘은 이래서 몽마가 싫었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다른 존재를 꾀어내는 힘을 가졌으니.
“말로만 듣던 천계의 검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러는 그대는…….”
“키아라 아카데미의 선생입니다.”
“선생? 인력 낭비가 심하군.”
“하하, 과찬이십니다.”
미카엘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아무리 마계가 어린 마족의 육성에 힘쓰고 있다 해도 이 정도 실력의 마족이 선생일 리가 없었다.
학생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천계에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파견된 특수 요원이면 모를까.
하아, 기분 탓인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오는 것 같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시간만 괜찮으시다면 대화라도 나누고 싶습니다. 마계의 선생님으로서 천사들이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거든요.”
“달리 들려줄 만한 것은 없다.”
마계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든 현재 ‘선생님’일 뿐이라면 대천사에게 더 추근댈 수는 없을 터.
미카엘이 단호히 거절하려고 하니 옆에서 레녹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사소한 것도 괜찮습니다. 천사들을 아카데미에 잘 적응시키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는 중이었거든요. 사소한 것이라도 두 세계의 교류를 위한 일이 되겠지요.”
“…….”
“아니면 많이 바쁘십니까?”
말을 참 잘하는군.
미카엘이 레녹스를 노려보았다.
대화 요청일 뿐이었다면 적당히 거절했겠으나 레녹스가 교류를 들먹이며 바쁘시냐 물었던 것 때문에 미카엘의 선택지가 확 줄었다.
그들은 명백히 천계와 마계의 교류를 위해 파견된 마족들이다.
‘이 또한 교류의 일부’임을 주장하며 마계 아카데미에 파견된 천사들을 위한 대화를 하고 싶다 하면 미카엘은 대천사로서 이를 거절할 수 없게 된다.
“바쁘지만 잠깐이면 괜찮겠지.”
“영광이군요. 미카엘 님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아카데미에 있는 천사들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요청을 거절한다면 그들에게 ‘교류를 위해 마족과 소통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완전히 휘말렸다. 이 두 놈에게.
‘방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한 것만으로도 다행인가.’
완전히 손해만 본 것은 아니다.
저 방의 비밀을 지킬 수 있다면 제 시간쯤이야 얼마든 내어줄 수 있다. 미카엘이 생각하며 레녹스와 이켈에게 턱짓했다.
“여기서 대화하기는 어려울 테니 자리를 좀 옮기도록 하지.”
“좋습니다. 밤에도 날이 밝으니 참 다행이에요.”
“……이리로.”
이켈의 말은 듣지 못한 척. 미카엘은 괜히 씁쓸해지는 입맛을 외면하며 둘을 안내했다.
오늘따라 날이 참 밝았다.
빌어먹게도 밝은, 하얀 밤이다.
* * *
“뭔가 있네.”
“뭔가 있군요.”
미카엘과 대화를 마친 후 레녹스와 이켈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켈이 레녹스를 툭툭 건드렸다.
“제법 미카엘을 잘 구워삶던데?”
“형님만 하겠습니까.”
“겸손은 여전하구나. 네가 아니었으면 미카엘이 대화 요청을 받아주지도 않았을 거다.”
“제가 말하지 않았으면 형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겠죠.”
형제가 서로를 대단하다며 추켜세우고 있었다.
이 광경을 로진이 보면 입을 떡 벌리다 못해 형님이 동생들을 차별한다며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웠을 것이다.
어쨌든, 미카엘을 떠나보낸 후 방으로 돌아오는 복도를 걸으며 이켈과 레녹스가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그 방이 수상하네요.”
“그러게, 미카엘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고…….”
교류이니 뭐니 여러 수를 두기는 했으나 미카엘이 대화 요청을 받아들인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심적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바쁘지만 바쁘지 않은 척.
급하지만 급하지 않은 척.
여유롭지 않으나 여유로운 척.
어떻게든 뭔가를 숨기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꼴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오더라.
지낭과는 달리 검은 다루기 편하군. 이켈이 옅게 조소하며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레녹스가 턱을 매만졌다.
“그 방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맞아, 하지만 우리 때문에 그쪽 경비가 강화되었을 테니 더 움직일 수는 없겠어.”
“움직임에도 신경을 많이 쓰겠죠. 시간도 부족하군요. 천계에서 2박만 하기로 했으니…….”
“여기서 만족해야지. 뭔가 있다는 걸 안 것만으로도 수확이야.”
이켈이 손으로 자신의 입가를 가리며 말을 이었다.
“라고, 평소라면 포기했겠지만.”
“……네?”
레녹스가 의외의 말에 이켈을 돌아보았다. 심연처럼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유난히 어두운 복도 안에서 섬뜩하게 빛났다.
“이 형님은 엉덩이 무거운 작자들이 정말 너무 싫거든.”
“…….”
“엉덩이가 무거우면 들게 해야지. 어렵지 않단다. 그저 방석 아래에 작은 압정을 놓기만 하면 돼.”
크게 다치지는 않겠지만.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따끔함.
“그 정도면 아무리 엉덩이가 무거워도 다 일어나게 되어 있어.”
이켈이 손 밑으로 웃고 있었다.
이 상황이 무척 즐겁다는 듯이.
* * *
타리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도 당연한 것이 타리크는 아카데미가 개학하기 직전 열심히 러드를 보살폈다.
그리고 마왕성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연락을 넣어 방문 일정까지 잡은 후 루시어스와 마왕을 대면했었다.
루시어스의 기사가 되었으니 허례허식이라도 지킬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이렇게 하면 그 둘이 좀 더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을까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 말고 레녹스 녀석을 보내시다니 너무하시지.’
그는 둘에게 교생 실습과 부담임 제도를 언급하며 자신이 다른 마족들과 섞여 사이러스에 파견되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미 ‘리크 선생님’이 사고를 치기는 했으나 뭐 어쩌겠는가.
필요하다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인식 방해 마법이라도 걸고 가면 될 일이었다.
애초에 그건 저 혼자의 생각으로 저지른 일도 아니었다.
마왕의 명령이 있었던 일이니 그 죄를 제게만 덮어씌우는 것은 타리크에게도 퍽 억울한 일이었다.
‘직접 케루브라는 놈을 감시하려고 했는데 일이 꼬였어.’
타리크가 속으로 혀를 걷어찼다.
현재 자신보다 더 천계에 대한 정보를 아는 마족은 따로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핑계를 붙여 아카데미로 들어가 케루브를 곁에서 감시하려고 했다.
물론 다른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면 그것 또한 거짓말이겠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열심히 머리를 굴려 대책을 세워 왔는데 정작 다른 놈이 홀라당 자리를 채갔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타리크가 삐딱하게 소파에 앉아 턱을 괴었다.
‘뭐, 이것도 내 탓이긴 하지만.’
그래도 타리크는 자신이 과거에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어서 굳이 불평하지는 않았다.
당장 루시어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천계에 가시는 데 나만 쏙 놓고 간 건 너무하신걸.”
타리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부담임으로 파견되는 것에 실패한 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할 수 있었으나, 천계에 따라가지 못한 것은 기사로서 가슴 아팠다.
다른 두 놈은 잘도 가는데!
나만 못 가지 않았는가, 나만!
“그것도 뤼디거 놈의 자식은 둘이나 갔지……. 루시어스 님만 아니었어도 손을 봐 뒀을 텐데.”
타리크가 혀를 쯧 차며 읽던 편지를 던져 없애버렸다.
시선이 낮게 가라앉았다. 루시어스가 체험 학습을 가기 직전, 제 앞으로 편지 하나가 도착했다.
뤼디거 자카르의 첫째 아들.
이켈 자카르에게서.
‘숨겨진 제 9군단장이라…….’
타리크는 이켈이 마왕군의 제9군단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레녹스가 루시어스의 파트너임을 알고 주변을 캐다 보니 나오더라.
물론 자신이 이켈 자카르에 대해 제9군단장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마왕성의 모든 정보를 손안에 두고 통제하는 이켈 자카르가 ‘일부러’ 제게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몇 년 전에 뤼디거의 약점을 잡으려 정보를 조사할 때 이켈에 대해 알았겠지.
아마 협박할 요량이었던 것 같다.
동생, 레녹스 자카르를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제깟 것이 아무리 날고뛰어 봤자 내 발끝도 못 미치는데.’
당연하게도 그는 이켈의 은근한 협박에 꿈쩍하지 않았다. 이켈 또한 눈에 띄는 행동을 취할 생각은 없었는지 그 이후로도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그런 놈이 있다는 것도 잊을 찰나에.
이켈에게서 연락이 왔다.
체험 학습 동안 따로 움직이라는, 군단장으로서의 ‘협조 요청서’였다.
타리크가 부루퉁하게 중얼거렸다.
“하아, 움직일 생각이긴 했는데, 이놈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 같아서 통 내키질 않는단 말이지.”
하지 말라면 어떻게든 하려고 할 텐데, 하라고 시키니 왜 이렇게 하기가 싫은지!
루시어스도 아닌 놈의 명령을 듣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그것도 조금도 아니고 엄청나게 나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게 다 루시어스 님을 위한 거니까. 타리크는 그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을 들어 딸랑딸랑 흔들었다.
다다다다다! 콰과광!!
곧 베르틴이 헐레벌떡 뛰어와 문을 거칠게 열었다. 타리크는 한쪽 귀를 손가락으로 막고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저었다.
“살살 좀 열어. 귀청 떨어질라.”
“헉, 헉……, 아니, 헉. 무슨 일이십니까. 젠장맞을 주, 헉. 군.”
“지금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썩을놈님.”
요즘 타리크는 손수 베르틴의 약점인 청력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아주 작은 소리가 나는 종을 옆에 두고 자신이 그것을 흔들면 5초 내로 방에 찾아오게 한 것이다.
원래 이런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요즘 이 녀석이 목을 내놓고 열심히 일하는 꼴을 보니 배알이 뒤틀리…….
아니, 아주 대견하더라.
그래서 손수.
다른 이도 아닌 러드의 지배자이자 서열 제 6위인 자신이 손수!
베르틴의 훈련을 봐주고 있었다.
타리크가 옅게 웃음 지었다.
“힘차게 뛰어오는 걸 보면 훈련에 익숙해진 모양이군. 다음부턴 종소리를 좀 더 작게 해야…….”
“무슨 일이십니까, 러드의 지배자시며 저의 자랑스러운 주군!”
베르틴이 불손한 자세를 금방 지우며 태세를 전환했다. 타리크가 피식 웃으며 베르틴에게 턱짓했다.
“외출 준비다.”
“외출이요? 어디로 가십니까?”
“마왕성. 가브리엘을 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