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96)
마족답게 사는 법-296화(296/385)
마족답게 사는 법 296화
296 추풍낙엽 (1)
“즉위 기념식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만나니 무척 반갑습니다.”
“다행이군. 워낙 갑작스럽게 방문했으니 불편하지 않을까 했는데.”
“당치도 않습니다.”
빙긋 웃어 보이는 가브리엘을 보며 타리크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가브리엘은 대접이라도 해 주려는 생각인지 서툰 솜씨로나마 열심히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타리크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난 그대가 내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요. 마계와 교류하기로 했으니 고위 마족들의 이름과 소문에도 관심이 많은 것을요. 일이 많아 찾아뵙지는 못했지만요.”
“그렇게 말해 주니 다행이야.”
가브리엘이 찻잔을 내밀었다.
타리크가 고맙다는 말을 정중하게 남긴 후 찻잔을 기울였다. 입안으로 익숙한 차향이 퍼졌다.
달칵.
찻잔을 테이블에 다시 내려둔 타리크가 능청스러운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마왕성에서 충분히 신경을 써주었는지 천사들이 지내는 데는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좋은 방이군.”
“바알께서 살펴주시는 덕이지요.”
“그런데……, 그대 또한 대천사로서 천계를 지키는 고위 천사가 아닌가. 편히 말해도 되는데.”
“대천사이기는 하나 사절단의 일원이지 않습니까. 사절단으로서 예를 취할 뿐입니다.”
가브리엘을 보며 타리크가 과장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런, 예는 전하와 장로께만 차려도 충분해. 대천사인 그대가 너무 자세를 낮추면 다른 천사들 또한 과히 낮아지지 않겠나.”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번에 천계와 마계는 동등한 입장에서 교류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더욱, 말 편하게 해.”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이제부터 말을 편히 하도록 하지.”
“이제 좀 듣기 좋군.”
그가 이런 시기에 가브리엘을 찾으려 한 이유는 간단했다.
바하무트의 태도도 그렇고 천계에서 갑작스럽게 아카데미에 천사들을 보낸 것도 그렇고,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계획을 알아내기에는 이쪽이 가진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내게 정보가 없다면 가장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상대를 찾아 털면 되는 일.’
그 상대가 바로 눈앞에 있는 대천사 가브리엘이었다.
이켈 자카르 또한 비슷한 이유로 가브리엘을 찾아가 그를 심적으로 ‘압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 천계에서 분명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마음대로 가브리엘을 만난 걸 아시면 루시어스님께서 화낼 테니.’
제9군단장의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당위성이 부족한 감이 있었다. 루시어스는 항상 제게 박하게 굴고는 하니까.
나중에 루시어스에게 혼나지 않으려면 가브리엘과의 만남에서 커다란 이득을 취해야 했다.
천계가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직접적인, 말하자면 그들의 목적에 대해서라던가…….
그러려면 장치가 몇 개 필요하다.
‘첫째, 가브리엘 본인이 사절단의 대표라는 점을 상기시킬 것.’
타리크가 눈동자를 한 번 굴리며 가브리엘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둘째, 그가 나와 동등하거나 그 위의 존재임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의심을 자극할 것.’
상대의 현재 상황과 의심이 많고 조심스러운 성격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용한다.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기려 할 때, 오히려 대화에 빈틈이 생기니까.
“내가 이번에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천계에 대해 알아 두고 싶어졌기 때문이라네.”
“천계에 대해 말인가?”
“이번에 주군, 5장로께서 천계에 가셨으니 말이야.”
“아아…….”
“천계에서 이번 체험 학습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궁금해졌거든.”
타리크는 자신의 위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마계에서 자신은 마왕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었다. 하물며 마왕군과 깊게 연관된 것도 아니다.
그저 러드를 좀 다스리는 제6위 서열의 마족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가브리엘에게 표면적으로 내밀 수 있는 카드는 하나뿐이다.
루시어스 켄드릭의 기사.
천계로 간 주군의 안위를 걱정하고 궁금해하는 바람직한 기사.
그것이 타리크 라하위스가 쓸 가장 완벽한 가면이다.
“자네가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내가 다스리는 도시에 크게 지진이 났었지.”
“아, 그때 마왕성이 많이 소란스러웠던 것 같은데.”
“맞아, 부끄럽게도 내 힘으론 도시를 지켜내기 역부족이라 주군께서 도와주셨거든.”
타리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이후로도 쉼 없이 일하셨으니 쌓인 피로가 만만치 않을 텐데, 천계까지 가셨으니 걱정이 많아.”
“러드가 그만큼 변화한 걸 보면, 5장로님이라 해도 힘을 많이 쓰시긴 했겠군.”
“그렇지, 그래서 걱정이야.”
가브리엘은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매끄럽게 혀를 놀리는 타리크를 곁눈질했다.
타리크의, 루시퍼의 본성이.
절대 이런 온화한 것일 리 없다.
가브리엘은 타리크가 대체 무슨 꿍꿍이속으로 저를 찾아온 것인지 헤아려보며 눈을 가늘게 접었다.
“무엇보다도…….”
타리크가 조금 주저하다 말했다.
“모든 마족이 천사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듯, 모든 천사가 마족들에게 호의적이지도 않겠지.”
“그렇지 않아. 많은 천사가 마계와의 교류에 찬성했으니…….”
“교류에 찬성하는 것과.”
타리크의 눈이 은밀히 번뜩였다.
“호의적인 것과는 다르지.”
“부정할 순 없군. 마족과 천사는 오랜 반목을 거쳤으니.”
가브리엘이 잠시 입을 닫았다.
주군의 몸 상태가 평소 같지 않음을 누설하며 걱정된다고 말하는, 속이 뻔히 보이는 기사 놈에게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
금방 들킬 거짓말은 안 된다.
적당히 진실을 섞어서, 다만 완전히 속셈을 드러내지는 않은 채로.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런가?”
“상제의 뜻이 곧 천계의 뜻. 상제께서 원하신다면 천사는 따를 뿐이야. 대의 앞에 사감을 내세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지.”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야.”
“참 걱정이 많군.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양쪽이 서로를 향해 은은히 웃었다. 기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곧 타리크가 안심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덧붙였다.
“천계도 많은 천사가 불안해하고 있겠지만, 다들 교류에 대한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을 거라 믿어.”
“고맙네, 그대 같은 마족들 덕에 교류가 무사히 진행되는 거지.”
“과찬은. 말이라도 고맙다.”
“사실인 것을.”
타리크의 눈매가 가늘게 접혔다.
가브리엘이 어떤 말을 하며 ‘교류’를 하자고 했는지는 루시어스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다만 타리크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천사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얼마나 억센지는 지난 역사가 그대로 말해 주고 있지 않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찻잔을 들었다. 가브리엘의 말을 천천히 곱씹으며 의미를 되새겼다.
‘대의 앞에 사감을 내세우지 못한다는 건, 사감을 가진 천사들이 여전히 많다는 의미겠지.’
반마감정이 여전함에도 천사들이 교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받아들일 만한 합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의, 대의라…….’
천계가 흔들릴 만한 일.
천사 대부분이 위협으로 느낄 만큼 거대하며, 천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을 만한 사건.
‘천제의 안전과 직결되었다거나.’
아니, 좀 더 명확하게.
천제의 안전이 흔들리는 것은 그저 과정이나 결과물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움직이려면.
좀 더 천계가 뒤흔들려야 해.
‘천사들의 자존심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지? 그들이 가장 중요히 여기는 것이 뭐지?’
대천사 가브리엘.
그가 마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더라?
즉위기념식에 참석한 것?
마왕이 건네는 성수를 마신 것?
아니, 그런 것 말고. 그가 가브리엘로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자발적으로 했던 행동.
벼락이라도 맞은 듯. 타리크의 뇌리에 무엇인가가 스쳐 지나갔다.
‘루시어스 켄드릭.’
즉위기념식에서 가브리엘은 본인의 행동이 자유롭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루시어스를 찾았다.
“……후우.”
그는 부르르 떨리려는 몸을 내리눌렀다. 잇새로 새어 나오려는 웃음 대신 가느다란 숨을 뱉었다.
‘그렇다면 루시어스 켄드릭이 천계에 필요한 이유는.’
그에게 관심을 보일 만한 이유는 단 하나뿐이지 않던가.
천계의 자존심.
천계를 비롯한 각 차원과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유일한 나무.
세계수 위그드라실!
‘세계수에 문제가 생긴 거야.’
잘 생각해 보면 그들의 태도는 항상 일관적이었다. 가브리엘은 마계에 오자마자 루시어스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거래를 진행하면서는 ‘미래를 위해 천사들을 아카데미에 파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되었는가?
무려 케루브씩이나 되는 천사가 루시어스의 옆에 붙었다. 그리고 지금은 루시어스 본인을 체험 학습 핑계로 천계에 불러들였다.
‘하지만 체험 학습은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지지.’
그를 천계로 불러들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납치? 감금?’
그럴 리 없지.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아직도 가브리엘이 마계에 남아있을 리 없다. 루시어스에게 당장 손을 댈 생각은 없다고 봐야 했다.
‘……잠깐만.’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하다.
세계수에 문제가 생겼다 해도 천사들이 순순히 마족의 힘을 빌리려 할 리가 없다.
천계의 식물을 마족이 감당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지 않나.
식물을 다루는 힘이 있어도 드라이어드는 마족이다. 그것도 마계에서 힘이 약하기로 소문난.
그런데 드라이어드에게, 마족에게 세계수를 맡기겠다고 생각했다고?
최연소 5장로인 루시어스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이해가 됐겠지만, 루시어스는 아직 태어난 지 100년도 되지 않았다.
마계에 오기 전까지 그들은 루시어스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브리엘은 기다렸다는 듯이 루시어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지금껏 다른 식물계 마족들에게 접근한 적이 없다. 오직 루시어스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루시어스 님을 모르고 있었음에도 루시어스 님이 목적이었다면?’
위그드라실을 다룰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
천사가 믿을 수 있는 존재라면.
‘같은 천사뿐.’
그렇다, 천사.
천사의 영혼이다.
루시어스 켄드릭이 그들이 찾던, 위그드라실을 관리하던 어떤 천사의 영혼이었다면 어떨까?
그 천사가 천계에서 사라짐으로써 세계수의 힘이 쇠퇴했다면?
그래서 천계가 무너질 위기라면?
“과연, 천사군.”
이제야 그림이 그려진다.
천계가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이.
타리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가브리엘은 고개를 가볍게 기울였다.
“나 말인가?”
“……그대도, 그리고 천계의 다른 천사들도 말이야.”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찻잔 입구를 손끝으로 빙글빙글 쓸었다.
“마족은 즉흥적인 이들이 많지.”
타리크가 몸을 일으키며 가브리엘과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
똑 닮은, 두 쌍의 푸른 눈동자가 서로를 응시했다.
“마왕의 명을 따르지 않는 이들도, 스스로 마왕이 되고자 반역을 일으키는 이들도 있어. 하지만 천계는 천제의 명을 받들 뿐이니.”
타리크가 의뭉스럽게 속삭였다.
얻어내고 싶었던 정보는 모두 얻어냈으니 이번에는 가브리엘과 천계를 아주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압박해야 했다.
어떤 움직임이라도 보이도록.
타리크는 어떤 때보다도 더욱 은밀하게 속삭였다. 마치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 미소지었다.
그에게는 마침 이럴 때 쓸 만한 아주 강력한 카드가 있었다.
타리크 라하위스가 준비한 세 번째 장치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배신자 루시퍼의 환생체인, 나.
“아주 좋아 보여, 가브리엘.”
타리크의 입매가 곱게 휘었다.
“…….”
그리고 가브리엘에게는 고요하지만 확실한, 불안의 파도가.
넘실넘실.
조용히 넘쳐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