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98)
마족답게 사는 법-298화(298/385)
마족답게 사는 법 298화
298 추풍낙엽 (3)
“이걸 레녹스도 아니고 케루브에게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루시어스가 프난으로 만든 향초에 불을 붙이며 중얼거렸다.
혹 천계에서 레녹스의 불면증이 심해질까 걱정해 가져온 물건인데, 이걸 케루브에게 쓰게 될 줄이야.
“으으…….”
향초를 피우자 얼마 지나지 않아 케루브의 숨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루시어스는 케루브의 머리맡에 향초를 조심스럽게 내려두며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이유가 있는 것 같긴 한데.’
함께 세라프를 만나러 갔을 때부터 케루브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종일 넋을 놓고 있으면서도 괜찮다 하니 모른 척해 주기는 했다. 하지만 이쯤 되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계에서도 멀쩡히 잠을 쿨쿨 자던 케루브가 제대로 잠도 못 이루며 끙끙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세라프를 못 만나서?
“대체 무슨 일인지…….”
제게 말하지 않고 혼자 앓는 걸 보면 천계와 관련된 문제인 것 같은데. 그것도 꽤 심상치 않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할 거면, 정말 신경이 안 쓰이게 해 주던가.”
루시어스가 한숨을 삼켰다.
눈꼬리의 눈물 자국이 왜 이렇게 안쓰러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단순한 동정인가?’
아니면 그간 친해졌기 때문일까.
“울지 마라, 울지 마.”
“훌쩍…….”
토닥, 토닥.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았다. 루시어스가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학생 신분으로 천계에 머물고 있으니 따로 요청이 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신이 아카데미 생활을 충분히 즐기길 바라며 제 9군단장인 이켈을 파견한 마왕의 속내를 알고 있으니 더더욱.
다만 상황을 보아하니.
‘최대한 무시하려고 했는데.’
더는 얌전히 있을 수 없겠어.
적어도 천계 내부에서 이켈이 어떤 정보를 손에 넣었는지는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루시어스가 케루브의 어깨를 토닥여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기다리기만 하는 건 성미에 안 맞았으니까.”
슬슬 움직여 볼까.
* * *
방 밖으로 나가자 당연하다는 듯 레녹스가 루시어스의 뒤를 따랐다.
따로 언질을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인 후 물었다.
“이 밤중에 왜 안 자고 나왔어?”
“잠이 안 와서, 밤이라 해도 실감이 안 나는 시간이긴 하잖나.”
“흐음, 또 불면증이 도진 건 아니지?”
“그건 성년이 된 후 말끔히 나았다 했는데도 아직 걱정하는군.”
내 말을 믿지 않는 건가?
레녹스가 일부러 무척 억울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그 표정이 다 큰 체구와는 맞지 않게 무척 어려 보여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레녹스는 딱딱하게 굳어 있던 루시어스의 표정이 풀리는 것을 확인하곤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천계까지 프난을 가지고 왔어? 향이 나는 것 같은데.”
“혹시 몰라서 가져왔었는데, 케루브가 잠을 통 못 자길래 피워 줬다. 지금은 푹 자고 있겠지.”
“그런가, 왠지 좀 이상하더니.”
레녹스는 구태여 길게 묻지 않았다. 짧은 정적 속에 둘이 걸어가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똑똑.
얼마 후, 이켈이 머무는 방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자 그가 손수 문을 열어주며 웃었다.
“들어와요.”
“실례하겠습니다.”
간단하게 인사한 후 둘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켈은 먼저 루시어스를 테이블 자리까지 안내했다.
‘보안에 신경을 많이 썼군.’
신성석이 마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천계 내부에 신성석을 이용한 결계를 치다니.
마왕군 내에서 신성석 연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만했다.
루시어스의 앞에 선 이켈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5장로님. 제9군단장인 이켈 자카르입니다.”
“5장로 루시어스 켄드릭이다.”
사적으로는 몇 번이나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어도 공적으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둘 다 자신의 위치와 자리에서 마땅히 보여야 할 태도를 보였다.
레녹스 또한 자리에 앉지 않고 루시어스의 곁에 굳건히 서서 이켈과 마주 보고 있었다.
루시어스가 턱을 가볍게 괴었다.
시선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보고부터.”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이켈은 곧바로 아발론에 와서 지금까지 있던 일들과 본인이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한 내용을 루시어스에게 전달해 주었다.
특히 미카엘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며 피식 웃는 이켈의 표정은 상당히 험악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그는 금방 표정을 풀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가면을 덧대어 놓는 것처럼.
“곧,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겠지요. 이미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내외로 들쑤셔 놨으니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내외라고?”
루시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켈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체험학습을 나온 동안 마계에서 천계에 ‘압박’을 주었다는 것인데.
마왕성에 자주 들르지 못했다고 해도 교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제게 이런 계획이 전달되지 않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자세히 말해 봐라.”
“먼저, 5장로님의 존재로 천계 내의 긴장 상태를 유발합니다.”
숨기고 있는 계획이 무엇이든 천계에 진입한 5장로의 존재는 그들에게 충분한 긴장감을 줄 테니까.
“거기서 마왕성의 정보책인 저를 추가합니다. 일부러 눈에 띄게 행동해 ‘정보책이 움직이고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시킵니다.”
보란 듯이 방에 신성석을 이용한 결계를 치고, 아발론 내부를 확인하며 천사의 행동을 살핀다.
밤에 은밀한 척 움직이면서도 천사를 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천사들의 눈에 띄는 편이 좋았다.
제 쪽으로 다가오던 천사가 미카엘임을 알고 얼마나 기뻤는지.
“혹 중요한 장소를 들키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하게요.”
그의 목소리는 마치 귓가에 비밀을 속삭이는 듯 나지막했다.
이야기를 듣던 루시어스는 이켈이 마계에서 가브리엘을 압박할 수단으로 무엇을 선택했는지 깨닫고 이마를 짚었다.
“타리크 라하위스군. 미리 협력요청서라도 보냈던 건가.”
“그렇습니다.”
“…….”
“의뭉스럽게 행동해 속을 뒤집어 놓는 건 그……, 의 특기니까요.”
적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놈, 이라고 칭하려던 이켈이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를 좋게 보지 않고 있다 해도 5장로 앞에서 기사를 흉볼 순 없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이켈이 제9군단장으로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는지는 알겠다.
이런 상황에 5장로가 위그드라실에 접촉하기까지 했으니.
‘조급함을 느낀 거야.’
천계가. 정확히는, 천제가.
그래서 천계 내에서 어떤 행동을 했고, 케루브는 그 사실을 세라프의 부재로 확인했다. 그녀의 부재는 완전히 돌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은.’
그저 놀란 표정은 아니었는데.
루시어스는 조금 전 방을 나서기 전에 보았던 케루브의 눈물을 상기하며 한숨을 삼켰다.
톡……톡, 톡.
테이블을 손끝으로 두드리던 루시어스가 시선을 이켈에게 돌렸다.
뼈를 에는 듯, 시린 시선이었다.
“정보를 수집하느라 고생 많았네, 제9군단장. 많은 일을 했군.”
“……가, 감사합니다.”
루시어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켈이 절로 숨을 멈추며 고개를 숙였다.
뒷목부터 가슴께까지 오싹해지는 한기가 몸을 덮쳤다.
분위기가 단숨에 바뀌었다.
여름날, 녹음이 무성한 숲속에 있는 것처럼 청량했던 기운이 갑작스럽게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찬바람이 부는 겨울의 설산처럼.
“…….”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켈은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쥐락펴락 움직이며 루시어스의 말을 곱씹었다. 제 무엇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찾아야 했다.
‘변덕은 아닐 테니.’
상대가 누구든 걸맞은 예를 보이는 마족이 바로 루시어스였다.
이유가 없다면 제게 이런 압박감을 줄 리가 없다. 이켈은 점점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며 손을 꽉 쥐고 마른침을 삼켰다.
한참 기세를 버티던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추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내 미처 몰랐군. 장로의 기사를 다룰 수 있는 권리가 군단장에게 주어졌을 줄이야.”
“아닙니다. 타리크 경에게 협력요청서를 보낸 것은 제 실수이며, 명백한 월권행위였습니다.”
타리크는 러드를 다스리는 서열 6위의 마족이자 루시어스의 기사다. 현시점에서 타리크에게 명령할 수 있는 존재는.
주군인 5장로와 마왕뿐이다.
다른 장로들도 서로의 기사와 보좌관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심지어 마왕조차도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기사 서임을 마친 마족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꼭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되면 미리 해당 장로에게 연락해 둔다.
마왕의 명령이니 통보나 다름없다 해도 그것이 예의다. 당신을 장로로 인정한다는 무언의 약속이다.
그런데 고작 제9군단장이 약속을 어겼다.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고는 하지 말게. 2장로님을 아버지로 둔 그대에게 듣기엔 치졸한 변명이니.”
“……루시어스님, 저는.”
“자, 이제 이유를 말해보게. 혹시 내가 5장로인 것이 불만인가?”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그것이 아닌데도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 타리크를 장로의 기사로 인정하지 못하겠다. 이건가?”
“…….”
“맞나 보군.”
차마 아니라고는 대답할 수 없는지 이켈이 입을 꾹 다물었다. 온갖 곳에 적이 있는 놈이니 이런 일이 언젠가 일어날 줄은 알았다.
상대가 이켈일 줄은 몰랐지만.
“그대들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타리크 라하위스는 내 서임을 받은 마족이다.”
물론 루시어스가 서약문을 거절하기는 했으나, 대외적으로 타리크 라하위스는 5장로의 기사다.
그러니 그를 장로의 기사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루시어스에게 반기를 들겠다는 것과 같다.
“그 사실을 절대 잊지 말도록.”
“예.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한 번은 넘어가 주지.”
기세에 눌린 몸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이켈이 안도하며 숨을 돌리는데 루시어스가 덧붙였다.
“나는, 말이야.”
“……예?”
“나는 넘어가 주겠지만, 전하께서도 같은 생각이실진 모르겠군.”
이켈이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루시어스를 올려다보는 눈이 당혹스러움과 놀라움에 크게 뜨여 있었다.
그러다 이켈이 푸흐흐, 옅게 웃으며 자리에 주저앉아 고개를 툭 떨어트리고 머리를 긁적였다.
루시어스의 눈가가 곱게 접혔다.
“제가 졌습니다, 졌어요.”
“나는 이기려고 한 적 없는데.”
“저의 멍청한 짓거리를 전하께서 아시면, 저는 죽은 목숨인걸요.”
“그런가?”
능청스럽기 그지없는 미소였다.
이켈은 루시어스의 표정이 꼭 마왕을 닮았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아직 잘 붙어있는 제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정말, 목이 달아나는 줄 알았다.
“정보나 협력을 원하신다면 얼마든 말씀 주셔도 괜찮았는데요.”
“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그대에게 협력을 요청한 적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
“……전하께는 비밀로 정보를 공유해달라는 말씀이시군요.”
천계에 체험 학습을 간 아들이 장로로서 움직인 걸 알면, 또 아카데미 생활은 안 하고 일이나 한다며 불만스러워하실 테니까.
망나니 놈 하나 부려먹은 댓가가 너무 큰 것 같다고 이켈은 생각했다.
루시어스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여 보이기만 했다.
“아, 본의 아니게 계속 세워 뒀군. 우선 앉는 게 어떤가?”
“정말……, 나이 많은 마족들을 상대하는 기분입니다.”
설마 자리에 앉으라 말하지 않았던 것도 이걸 위해서였나?
원하는 것을 원하는 방식대로 얻기 위해, 제게 압박감을 주려고?
‘어린데도, 참 무서운 마족이야.’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루시어스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자리 잡는 레녹스를 바라보며 이켈이 장난스레 투덜거렸다.
“하아. 우리 막내는 형님이 곤란해져도 가만히 서 있기만 하고. 형님이 참 섭섭하구나.”
눈을 꿈뻑이던 레녹스가 답했다.
“형님이니 가만히 있던 겁니다.”
아니었으면 주군께 무례를 범한 마족을 그냥 두지 않았겠지요?
빙긋 웃는 레녹스의 미소가 지금만큼 무서워 보인 날이 없었다.
이켈이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