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299)
마족답게 사는 법-299화(299/385)
마족답게 사는 법 299화
299 추풍낙엽 (4)
체험 학습 마지막 날.
루시어스가 느지막이 눈을 떴다.
이켈과 대화하고 방에 돌아온 후 잠을 설쳐서 그런지, 몸이 물 먹은 듯 무거웠다.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도 싫었다.
‘……피곤해.’
날짜로 사흘이다. 고작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피곤한 걸 보니 마계가 얼마나 마족이 살기 좋은 환경인지 느껴졌다.
동시에 천사들이 마계에 와서 느낄 불편감의 정도도 알 수 있었다. 이러면 마계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루시어스가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옷매무새를 정돈하던 케루브가 눈을 돌렸다.
“아, 일어나셨어요?”
“응, 잘 잤나?”
“천계인데 제가 못 잘 리가 없잖아요. 오랜만에 엄청 잘 잤어요.”
케루브가 활짝 웃었다.
그것이 왠지 어젯밤의 눈물 자국을 감추려는 것처럼 보여 루시어스는 그 몰래 한숨을 삼켰다.
“오늘 드디어 마계로 돌아가네요. 사흘간 많이 피곤하셨죠?”
“그럭저럭 버틸 만했어.”
“다행이에요. 다들 몸이 쑤신다고 난리던데. 몸을 움직이고 싶다나.”
못 말린다니까.
케루브가 어깨를 으쓱이곤 루시어스가 입을 옷을 가져왔다. 그가 옷 단추며 주름을 매만져 주었다.
“아, 저는 상제님을 뵈어야 하니 먼저 집합 장소에 가 계세요.”
“……천제를?”
“잊으셨어요? 이래 봬도 제가 바로 천계의 총아라고요! 떠나기 전에 얼굴 한 번 더 비추는 게 당연하잖아요. 다들 절 기다릴걸요?”
“그래, 그랬지. 알겠어.”
“네, 그럼 다녀올게요.”
머리까지 한 갈래로 완벽하게 묶어준 케루브가 만족스러워하며 방 밖으로 나섰다.
루시어스는 케루브가 나가고 적막이 앉은 방에서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가라앉은 눈동자가 폭 감겼다.
천제는 왜 케루브를 불렀을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길.
루시어스가 눈을 천천히 떴다.
정보 수집은 여기까지. 지금은 마계로의 귀환을 우선시할 때였다.
* * *
방 밖으로 나온 케루브의 얼굴에서는 웃음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조금 전 루시어스의 앞에서 웃어 보이던 모습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딱딱하게 굳은 채였다.
사실 케루브는 지금 천제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정확히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보고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논할 자신이 없었다.
다만 천제의 명령에 제 의사 따위는 필요가 없는 것이라.
어쩔 수 없이 부름에 따랐다.
“왔구나, 케루브.”
“부르셨습니까.”
“이리 와서 앉도록.”
집무실에 도착하자 천제가 반대편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주저하던 케루브가 순순히 자리에 가서 앉았다.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케루브.”
“……예.”
조금 느린 대답에 천제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다만 그것도 잠시, 그는 아무렴 상관없다는 듯하려 했던 말을 이어서 했다.
“아카데미에 잘 적응한 것 같더구나. 학생들이나 선생과도 친밀하게 지내는 것 같고.”
“네, 생활하는 데 문제는 없을 정도입니다.”
“임무는 잘 수행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밑으로 케루브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왜 이렇게 입이 버석버석해지는지 좀체 모를 일이었다.
처음부터 그의 목적은 천계와 마계의 교류 따위가 아니었다. 계획을 실행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지.
루시어스를…….
정확히는, 그의 영혼을 자극해 천사로서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계획 일부로써 움직였을 뿐이다.
“가브리엘에게 보고는 들었다. 네가 그를 많이 따른다고.”
“네. 좋은, 분이시니까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 너는 예전부터 그를 곧잘 따랐으니까.”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지 천제가 흐릿하게 웃었다. 눈치를 살피던 케루브가 마른침을 삼켰다.
“저뿐만이 아니지 않습니까.”
“음?”
“상제께서도 그분을 많이 좋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뿐만 아니라 모든 천사가 그랬지 않았습니까.”
메타트론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며 천계의 밤을 빼앗겼음에도, 그 누구도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가 있던 때를 그리워할 뿐.
케루브도 알고 있었다. 현재 천계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상제께서는 이 상황이 계속되면 본인은 더 환생하지 못하리라 말씀하셨다.
알고 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쯤.
케루브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기억이 없으셔도, 그분은 여전히 그분이셨습니다.”
“…….”
메타트론이 모습을 감춘 후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영혼 깊숙이 잠든 기억을 깨웠을 때, 그의 현재 육체에 어떤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었다.
처음에 케루브는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 여파로 육체가 죽음에 다다른다 해도, 영혼을 잘 인도하기만 하면 천계에서 천사로 다시 태어날 테니까.
아니, 오히려 케루브를 포함한 천사들은 메타트론이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육체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를 바랐다.
계약의 천사, 총관 메타트론이야말로 우리가 아는 메타트론이니까.
“그러니 상제님, 저는…….”
“그 또한 가브리엘에게 들었어.”
힘겹게 말을 이으려는데 천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가볍게 턱을 괸 채 눈을 내리깔았다.
“그를 ‘설득’해 우리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생각하지.”
“그 말씀은?”
“목표는 하나일 수 있어. 다만 수단과 방법 또한 똑같이 하나일 수는 없는 법이야.”
어떻게든 원하는 바를 손에 넣기만 한다면 되는 것이 아니겠나.
천제가 옅게 웃으며 케루브를 바라보았다. 케루브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제가 제 의견에 동조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상제님, 이 일은 제게 맡겨 주실 수 있으신 건가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케루브는 루시어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솔직히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더는 그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한 기억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루시어스는 메타트론이 그랬던 것처럼, 가끔 쌀쌀맞더라도 무척 부드럽고 온화했다.
함께 있으면 걱정이 없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잠이 잘 오는, 햇살 같은 따스한 기운이 솔솔 풍긴다.
마족이어도 변함없이.
총관 메타트론이 아닐지라도, 본질은 여전히 그분 자체다.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루시어스는.’
메타트론일 때보다 더 잘 웃는다.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됐어.
“바란다면 이 일은 네게 맡기마. 그를 ‘설득’하는 건 네 몫이야.”
“상제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괜히 천제 앞에서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찡한 코끝을 느끼면서도 꾹 참았다.
상제는 턱을 괴고 손끝으로 자신의 뺨을 톡톡 치다가 말을 이었다.
“혹시 힘들면 말하도록.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려던 케루브는 곧 이어지는 천제의 말에 입을 꾹 닫았다.
“가지치기를 좀 더 하면.”
“…….”
“위그드라실을 더 버티게 할 수 있을 테니, 힘껏 시도해 보도록.”
위그드라실이 약해진 이후, 천계에서는 때때로 ‘낙엽’을 만들어 위그드라실의 양분으로 썼다.
지금껏 위그드라실이 버틸 수 있던 이유가 바로 ‘낙엽’에 있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그의 영혼이 천계에 들어오며 위그드라실이 기운을 좀 차렸지.”
케루브가 숨을 들이켰다.
“그래서 가지를 치고 낙엽을 썼지. 시간을 벌 기회였으니까.”
“……그래서, 갑자기 세라프가.”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낙엽에 세라프가 포함되었었지.”
낙엽.
위그드라실을 버티게 하는 양분.
위그드라실은 백여 년에 한 번씩 넘치는 신성력을 갈무리하기 위해 마른 나뭇잎을 떨어트렸다.
천사들은 그 시기가 되면 가지치기를 하고 낙엽을 비료로 만들어 뿌리에 덮어 주고는 했다.
하지만 메타트론이 사라진 후, 언젠가부터 위그드라실은 낙엽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넘칠 신성력조차 없어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마침 네가 천계에 왔으니, 미리 말해 놓을 것을 그랬구나.”
“자, 잠깐만요. 상제님.”
“아쉽게 되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일이 끝나면 자연히, 다시 만날 수 있게 될 테니까.”
어쩌다 나뭇잎이 톡 떨어지면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졌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관리해도 위그드라실이 계속해서 약해지자.
천계에서는 낙엽을 만들었다.
위그드라실의 잎이자 열매. 신성력의 정수나 다름이 없는.
“그것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그래, 네가 기억하기론?”
“계획에서는 아직 그녀의 차례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천사를 이용해서.
천계는 천사들의 피와 살, 영혼을 이용해 거름을 만들어 위그드라실의 연명에 썼다.
영혼까지 거름의 재료로 써 뿌리에 뿌렸으니, 위그드라실이 회복되기 전엔 환생할 수 없겠지만.
모든 천사가 그 계획에 동의했다.
세계수가 회복되면 다시 환생할 테니까. 제 몸을 바쳐 시간을 벌지 않으면 천계가 무너지니까.
그렇게 되면, 미래는 없으니까.
“세라프가 전투력이 낮기는 하지만, 치천사라 천계 내에서 맡은 일이 참 많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거기에 마지막 환생에서 몸이 많이 상해, 계획에는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으니.”
“네, 그래서 다른 업무들을.”
“너나 다른 대천사와 비하면 중요도가 한참이나 떨어지더구나.”
“중요도가, 떨어……져요?”
“그래, 그래서 조금 순서를 당겼지. 물론 세라프도 동의했단다.”
쥐고 있던 손의 힘이 탁 풀렸다.
케루브는 지금 자신이 듣고 있는 이 말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주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왜 그러니, 케루브? 이건 모두.”
“…….”
“네 계획이었잖니.”
부드러운 말투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동시에 심장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찔한 현기증이 시야를 덮쳤다.
케루브는 왼손으로 탁자를 짚고, 다른 손으로는 빙글빙글 도는 것 같은 머리를 지탱했다.
“낙엽 계획도, 마계와의 교류도.”
그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린다.
“너의 고육지책을 기반으로, 가브리엘이 세운 계획이잖니.”
“상제님. 저는, 저는요…….”
“그러니 다른 누구도 아닌 네 바람이라면 들어줄 수 있단다, 케루브. 지금껏 천계가 이만큼 버틴 것에는 네 공이 커.”
결국, 케루브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눈을 감았다.
손으로 귀를 막고 싶었으나 상제의 앞이라 그런 무례한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러니 시간이 필요하면 말해.”
케루브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잊고 있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걸릴수록.
이 고육지책이 나와 천계의 목을 서서히 조여 올 것이란 사실을.
꾹 감은 눈꺼풀 사이로 두려움이 한 방울씩 뚝, 뚝 떨어졌다.
천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케루브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네가 바란다면. 천계의 천사들을 모두 위그드라실의 양분으로 바쳐서라도 시간을 벌어 줄 테니.”
내가 늦을수록.
희생이 추가될 뿐.
“잘 생각하고, 선택하렴.”
두 어깨를 짓누르던 손길이 물러났다. 짊어진 무게를 잊지 말라는 듯 푸른 손자국이 남았다.
케루브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천제를 돌아보며 미소 짓는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져 있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뺨에 눈물길이 생겼다.
케루브는 전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해요, 루시어스 님.’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제가 이런 놈이라,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