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
마족답게 사는 법-3화(3/385)
마족답게 사는 법 3화
003 루시어스 켄드릭 (3)
달이 기울었다.
밤이 깊어진 와중에도 루시어스의 집무실은 불이 꺼질 줄을 몰랐다.
마왕과의 결투 때문에 밀려 버린 업무를 돌봐야 하는 까닭이었다.
스으윽.
쌓인 피로를 쫓으려 찻잔을 손에 쥐었다.
하멜이 따른 차에서 시트러스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후우우…….”
그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침음했다.
얼마 전 각 아카데미의 학장에게 연락하여 학생과 선생 명단부터 커리큘럼, 행사, 재정 상황 등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각 아카데미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받아 볼 수 있었다.
특별히 체크할 학생이 몇 있긴 했지만, 명령을 수행하는 데에 문제가 될 만한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루시어스가 하멜을 바라보면서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그나저나 큰일이 남았는데…….”
“싫습니다.”
루시어스의 눈길을 눈치챈 하멜이 재빠르게 선수를 쳤다. 빙긋 호선을 그리는 눈가와는 달리 그의 입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저를 아카데미 교사로 넣을 생각 아니었습니까?”
하멜의 건조한 시선에 불만이 가득했다.
“쯧, 이래서 눈치 빠른 놈은.”
그러나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았던 루시어스다. 이미 예상했던 반응에 혀를 찼다.
그의 말대로 루시어스는 하멜을 마수학 교사로 아카데미에 추천할 생각이었다.
마수의 서식지나 먹이부터 시작해 그들의 약점, 생태에 이르기까지. 마수에 대해서라면 마계 전체를 통틀어도 하멜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런 확신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잊으셨습니까. 저는 마수입니다.”
그가 루시어스의 계약 마수였기 때문이다.
과거 하멜은 수많은 마수를 잡아먹으며 생태계를 위협한 전적이 있고, 그 때문에 위험종으로 분류된 적이 있다.
당시 수많은 마족이 계약을 맺겠다며 그를 찾았지만, 도리어 힘겨루기에 패배하고 뼈와 살을 내주었다.
마족들은 그를 천년마수 에피알티스라며 두려워했고, 이를 보다 못한 전대 마왕이 그를 봉인했다.
그리고 몇 년 전.
봉인이 풀렸을 때 루시어스가 그를 굴복시키며 주종계약을 맺은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었다.
“나 몰래 식사라도 했나 보지? 당당한 걸 보니 배가 고프지 않은 모양인데.”
“잠결에 마족 몇 놈을 잡아먹었나 봅니다.”
“하멜.”
심기가 불편한 듯 으르렁거리는 호명에 강한 힘이 담겨 있다. 하멜의 입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다물렸다.
루시어스가 말을 잇는 대신 빈 찻잔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자, 하멜이 다시 빈 찻잔을 시트러스 향으로 가득 채웠다.
“네가 다른 마족들과 어울리길 싫어하는 건 안다.”
담담한 어조에 하멜의 눈동자에 얕은 원망이 서렸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그러냐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내가 떨어진 사이, 네가 폭주하기라도 하면 귀찮아져. 너 또한 그걸 바라진 않겠지.”
“…….”
하멜은 긴 봉인에서 깨어나고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럼에도 폭주하지 않고 이성을 지킬 수 있는 까닭은 루시어스가 자신의 피와 마력으로 그의 허기를 달래 주는 덕분이었다.
그런 만큼 그의 공복을 메우지 못했을 때 따라올 부작용은 예상보다 클 수 있었다. 하멜의 폭주를 막기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곁에 두어야 했다.
그렇다고 아카데미에 버젓이 마수를 들여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답은 하나뿐이다.
“대답은?”
하멜은 자신의 입에 걸린 족쇄가 사라짐을 느끼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루시어스를 따라 아카데미로 끌려가게 된 하멜이었다.
* * *
사이러스 아카데미.
그곳은 만년설의 하얀빛을 고스란히 옮겨다 놓은 아름다운 신전과도 같은 곳이었다.
아카데미 정면에 펼쳐진 거대한 통유리는 얼음처럼 투명했고, 둥근 천장으로 쏟아지는 빛줄기는 폭설 후의 햇살처럼 찬란하다.
천장까지 높게 팔을 뻗고 굳건하게 회랑을 떠받치는 기둥들은 고풍스러움을 뽐내며 특유의 웅장함을 자랑했다.
마계의 네 아카데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경관으로 이름 높은 사이러스의 명성에 걸맞은 광경이었다.
터벅, 터벅.
그 회랑 아래를 두 명의 남자가 가로지르며 발을 옮기고 있었다.
“좋아 보이는구나, 루시어스. 네 생각은 어떠냐?”
더미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목소리만으로도 그의 기분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확실히 이 정도면 나쁘진 않네요.”
루시어스도 맞장구를 치며 주변을 한 차례 더 둘러보았다.
사이러스는 아카데미라기보다는 신전에 가까운 경건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가 과하지 않아 훌륭한 미관을 뽐냈다.
게다가 구석구석 먼지 앉은 곳 없이 손길이 닿아 있으니, 그 순결함이 더더욱 돋보였다.
그렇게 루시어스와 더미트가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회랑을 나아가던 즈음.
음머어어어!
쿵쿵쿵쿵쿵쿵!
맞은편으로부터 울음소리와 함께 분주하게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런 소리에 루시어스와 더미트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복도 반대편으로부터 한 인물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소의 것이고, 머리에는 늠름한 두 자루의 뿔이 솟아 있는 남자.
바로 사이러스의 학장, 글렌이었다.
글렌은 핏기없이 창백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옷깃을 정돈하고는 고개를 깊게 숙여 보였다.
미노타우르스 특유의 순진하고 커다란 눈망울이 일렁였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학장인 글렌입니다. 먼저 맞이해야 했는데 결례를 범하였습니다!”
루시어스는 고개를 숙인 글렌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허리를 굽힌 방향이 자신이 아닌 더미트를 향해 있었다.
더미트를 곁눈질하자 씨익 웃는 것이, 아무래도 의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한 루시어스가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게.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는데 환영해 주니 고맙군. 약속보다는 이르지만 바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순간 글렌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깃들었다.
눈앞의 둘 중 더미트가 더 윗사람이리라 생각했건만, 뜻밖에도 대답이 들려온 것은 새파랗게 젊은 애송이 쪽이 아닌가.
‘대체 뭐지?’
그러나 당황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글렌이 얼굴색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
“아, 알겠습니다.”
루시어스가 그에게 턱짓했다. 대장군을 뒷배로 지고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안내하도록.”
글렌은 그들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자신의 방문을 사전에 단단히 일러두었는지 응접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글렌이 소파를 가리키며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앉으시죠. 곧 다과를 내오겠습니다. 즐겨 드시는 차가 따로 있으십니까?”
“적당히 내주게.”
루시어스가 자연스레 상석에 앉으며 대답하자, 글렌이 눈망울을 좌우로 굴렸다.
그 눈빛이 매 황당한 것이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했다.
루시어스는 어린 마족의 갑작스런 하대가 불만스러울 텐데도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며 말을 아끼는 학장의 태도가 퍽 만족스러웠다.
글렌이 표정을 정리하고 차를 준비했다.
대담의 자리가 갖춰지자 루시어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본론을 꺼냈다.
“갑작스럽게 방문하여 미안하게 됐네. 하지만 이쪽도 사정이 있어서.”
“예? 아닙니다. 마침 방학인지라 한가했습니다. 그런데 방금부터 발언하고 계신 분은 군단장님의 아드님이십니까?”
“아, 이분 말인가?”
예상치도 못했던 더미트의 존칭에 글렌의 의문이 곧 불안으로 바뀌었다.
글렌이 머릿속으로 마계 서열 8위인 더미트가 공석에서 존댓말을 할 만한 마족을 셈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이내 차를 따르던 손이 덜덜 떨렸다.
루시어스는 그의 긴장에도 개의치 않고 수면이 흔들리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소개가 늦었군. 이분은 자네가 예상한 대로 올해 71살이 되어 사이러스로 입학하게 된 나의 아들이자, 현재 5장로직을 맡고 있는 루시어스 켄드릭 님이시네.”
“장로님이시라고요……?”
믿을 수 없는 발언에 말문이 턱 막힌 글렌이 루시어스의 안색을 살폈다.
문제의 소년은 어울리지 않는 상석에서 평화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루시어스가 가볍게 되물었다.
“설명이 더 필요한가?”
“아닙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럼 다행이군. 방금 말했다시피 이번에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었네. 학장에게는 미리 말해 두는 게 낫겠다 싶어 찾아왔지. 근시일 내로 공문이 내려갈 걸세.”
“예……? 아, 예. 그,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글렌은 묻고 싶은 것이 많은 표정이었으나 더 이상 말꼬리를 덧붙이지 않았다.
오히려 루시어스를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더욱더 정중하게 가다듬었다.
루시어스는 그런 글렌을 내심 높게 평가하며 찻잔을 내려두었다.
“글렌 학장.”
“예.”
“알고 있겠지만 내 정체에 대해서는 절대 함구해야 해.”
“알겠습니다. 입학시험은 어쩌시겠습니까? 특례로 처리할 수도 있고, 시험을 보실 수도 있습니다.”
“일정이 바쁘니 특례로 처리하고 입학생들의 시험 결과는 내게 보내. 그리고 저쪽은 하멜이라고 하는데.”
하멜의 얼굴은 이 상황이 여전히 달갑지 않은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가 마지못해 글렌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마수에 대해 능통하니 교사로 써 주었으면 좋겠군.”
“마침 자리가 있습니다. 신입생 클래스를 가르칠 수 있도록 배치하겠습니다.”
글렌은 예상보다 눈치가 빠르고 말이 잘 통하는 마족이었다.
루시어스가 흡족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 보도록 하지. 수고해 주게.”
“예! 살펴 가십시오!”
그들은 고개를 꾸벅 숙인 글렌을 뒤로하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 * *
“이제 마음 놓고 입학할 수 있겠구나! 루시어스, 친구가 생기면 꼭 데려와야 한다.”
루시어스는 뭔가를 기대하는 듯 눈을 빛내는 더미트의 시선을 슬금슬금 피했다. 그리고는 잘 묶인 리본 타이의 끝을 매만지며 입을 꾹 다물었다.
아무리 자신이라 한들 자신이 없었다.
정말 자신이 아카데미의 학생을 친구로 바라볼 수 있을까. 그러기엔 그들과 자신 사이의 격차가 너무나 심했다.
더미트가 저리 기대하니 초를 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기대하라고 떳떳이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더미트가 즐거움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면 어떻게 지낼 거니?”
그에 대해서는 루시어스 또한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최우선되어야 할 사항은 역시 정체를 들키지 않는 것이지만, 이번 임무 수행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최대한 빨리 졸업할 생각이에요.”
조기 졸업이었다.
예상외의 대답에 더미트가 상당히 놀라워했다.
“난 네가 되도록 신중하게 아카데미를 다닐 줄 알았는데.”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재학 기간이 길어지면 장로들이나 전하께서 엄청 즐거워하실 것 같아서요.”
애초에 날고뛰어 봤자 아카데미 내에서 자신의 신분은 학생이었다.
결정적인 증거라도 잡히지 않는 이상 장로라고 의심할 이는 없었다.
장로가 될 때 입단속을 단단히 시킨 덕분에 신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더미트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구나. 음, 업무에 관한 건 걱정하지 말아라. 내 선에서 최대한 처리할 테니까. 중요한 건 하멜에게 전달시키면 되고.”
“감사합니다, 부탁드릴게요. 그나저나, 다른 것보단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문제인데.”
루시어스는 더미트가 전달했던 마왕의 명령을 되새기며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대체 얼마나 강하고 재능 있는 학생을 데려가야 최강의 마족인 그가 만족할까.
‘마왕군 신병 모집이 곧이기는 하지만…, 혹 장로 추천이라는 명목으로 기용할 생각이신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사실에 루시어스가 홀로 납득했다.
마왕군에 입대하여 전력으로서 즉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의 실력.
그 정도라면 마왕도, 대장군인 더미트도 만족스러워하리라.
골똘히 고민하는 루시어스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더미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친구를 어떻게 사귀면 좋을지 고민하는 듯한 모양새에 괜히 제가 더 가슴이 간질간질 떨렸다.
“아마 네겐 어렵지 않을 거다. 내가 어떻게 너를 돌봐 주었는지 기억하니?”
루시어스가 과거를 회상했다.
마족은 뿌리가 중요하다면서 금단의 땅인 카멜르 숲에서 서바이벌 훈련을 한 적도 있었고, 강하게 커야 한다며 마왕군 훈련에 동참한 적도 있었다.
어린 마족이 버티기에는 조금 버거운 일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력 향상에 도움을 받았다.
“기억나요. 그걸 참고하면 되겠군요.”
그의 대답에 더미트가 뿌듯하게 웃었다.
자신의 제안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당연히 예상하지 않은 조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