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06)
마족답게 사는 법-306화(306/385)
마족답게 사는 법 306화
306 양보할 수 없는 것 (1)
케루브는 정말 한참 울었다.
무엇이 그리 서러웠는지 나중에는 아예 루시어스의 품 안에 안겨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루시어스는 그런 케루브의 등을 가만히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왜 우냐며 다그치지도.
마음에 담아 둔 것이 있다면 어서 말해 보라고 재촉하지도.
울고 싶을 때 편히 울라는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도 않은 채.
그저 조용히.
‘많이 걱정스러웠는데.’
사실 루시어스는 요리 대회를 열면서, 천사들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며 움직이면서도 참 많은 걱정을 했다.
‘내가 이렇게 도와도 괜찮은지.’
내가 마계의 5장로이기 전에 학생으로서 그를 돕는 것이.
자기만족일 뿐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이런 행동이 사실 그에게는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내 오지랖 때문에 괜히 더 힘들어하진 않을지.’
참 걱정을 많이 했다.
아르놀트와 제 관계가 그랬듯, 서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배려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언젠가 갈라서는 순간이 온다면.
케루브도 자신도.
스스로가 생각하는 가장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훌쩍, 훌쩍…….”
전교생이 모인 곳에 우는 케루브를 놔둘 수는 없었던지라 루시어스는 우선 기숙사로 케루브를 데리고 들어왔다. 레녹스와 레이얼도 당연히 뒤를 따라왔다.
하멜도 슬쩍 왔었지만.
“그만 울고 말 좀 해 보십시오. 마족이며 마수며 다 모아놓고 울기만 하시면 어쩝니까.”
라는 발언을 하고, 루시어스의 눈짓을 받은 레녹스와 레이얼에게 붙잡혀 기숙사에서 추방당했다.
레녹스와 레이얼은 케루브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열심히 일만 하고 있었다.
훌쩍.
코 먹는 소리가 들리자 레이얼이 벌떡 일어나더니 빠르게 티슈를 잔뜩 뽑아 손에 쥐여 주었다.
케루브는 그걸로 얼굴도 닦고 열심히 코도 풀었다.
“루시어스 님.”
“그래, 좀 진정했어?”
“네…….”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웅얼웅얼 대답하던 케루브가 눈을 한 번 부비고 루시어스에게서 떨어져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이야, 얼굴이 엉망이네요.”
“좀 심하긴 하군.”
“…….”
루시어스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서 입을 꾹 닫았다. 한참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덕에 다른 천사처럼 보일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래도 그 실없는 말에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케루브가 입술을 삐죽이고 장난스레 투덜거렸다.
“엉망이면 대신 울어 주던가. 그런 것도 아니면서.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하나도 몰랐으면서.”
“알겠어요, 알겠어요.”
“알긴 뭘 알아, 바보들아. 레이얼, 네가 제일 바보야. 애들의 그 어이없는 작전 다 알고 있었지.”
“으음, 그건 모두 루시어스의 계획이었는데요?”
“……치.”
케루브가 루시어스의 눈치를 보았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먼 곳을 응시하던 케루브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는 몇 번 심호흡한 후 루시어스의 앞에 다소곳이 꿇어앉았다.
“루시어스.”
“……케루브?”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정말, ‘나’에게?”
루시어스가 놀라움을 숨기지 않으며 재차 물었다. 케루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어스는 케루브가 아카데미 생활을 하면서도 제게 좀처럼 말을 놓지 않는 걸 보고, 케루브가 자신을 ‘학생’이자 ‘친구’로 보기 힘들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5장로를 찾을 줄 알았다.
케루브가 현재 안고 있는 고민은 한낱 학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일 테니까. 하지만 케루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케루브가 다시 말을 이었다.
“동등한 관계가 되고 싶어요.”
“…….”
“제가 루시어스 님이라고 부르면서 사정을 설명하고, 제발 도와달라고 하면 당연히 루시어스 님은 도와주실 테니까.”
그만큼 상냥한 분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당신께서 돌봐 주어야 하는 아랫사람이 아니라, 동등한 관계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어요.”
내 앞에 있는 마족이 ‘5장로’가 아니어도 상관없으니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내 앞에 있는 존재가.
‘메타트론’이 아니라도 좋으니.
“그러니 그냥 내 말 좀 들어줘.”
“…….”
“나……, 힘들어. 많이.”
케루브가 금방이라도 다시 울음을 터뜨릴 듯 말갛게 웃었다.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디.
“하아아.”
한 번 숨을 길게 내쉰 케루브의 시선이 어딘가 먼 곳으로 다시 향했다.
“지금껏 천계를 위한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천계를 위한다는 선택이…… 무조건 옳은 길만은 아니었나 봐.”
케루브는 천천히 고르고 고른 말을 늘어놓았다.
“내 고민에 대해 말하려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
“얼마나 오래?”
“아주 먼 옛날까지. 하늘의 총관인 그분께서 계시던, 그날까지.”
하늘의 총관.
그 단어에 루시어스의 속에서 뭔가가 일렁였다.
* * *
“하…….”
케루브는 루시어스에게 가지치기와 낙엽 계획에 대해 알려 주었다.
또한 위그드라실이 언제부터 약해지기 시작했으며, 천계가 어째서 마계에 손을 뻗었는지까지.
상황을 전달받은 루시어스는 그저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이 정도로 정신 나간 짓을 꾸미고 있을 줄이야.
방으로 들어와 함께 설명을 들은 하멜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길기는 해도 마계는 엄연히 세대교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천사는 아니었다.
“천계가 아무런 이유 없이 마계에 교류를 청할 리 없죠.”
거듭된 환생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천사들이 갑자기 마족을 곱게 볼 리가 없지 않은가.
교류라니.
정말 헛소리나 다름없다.
“하멜, 그만.”
루시어스가 손을 내저었다. 하멜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케루브. 천사들이 정말 이런 계획에 동조했다고?”
“……응.”
“정말 미치겠군.”
루시어스가 머리를 가볍게 헝클며 한숨을 얕게 내쉬었다.
“위그드라실이 회복되면 다시 환생할 수 있으니까.”
영원과 같은 삶을 사는 천사들에게 생사의 무게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본인이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 천계가 큰 이득을 얻는다면, 개의치 않을 이들이었다.
“천계가 무사할 수 있다면.”
어째서인지, 이야기를 듣는 내내 루시어스는 숨이 턱턱 막혔다.
“천제께서 무사하실 수 있다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숨이 막혔다.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나도.”
“……상황도 상황이고, 천제의 건강도 좋지 않으니 그쪽에서 조바심이 난 건 당연했겠어.”
아무리 이켈과 타리크가 천계 안팎으로 부담감을 심어 주었다 해도 천계가 꼬리를 밟힐 만큼 수상한 행동을 한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특히 자신을 만나려 했던 천제의 행동과 의도가 의문스러웠는데.
옆에서 생각을 계속 정리하던 레이얼이 케루브를 향해 물었다.
“총관 메타트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거죠?”
“……응, 알고 있어.”
“말해 주실 순 없나요?”
케루브가 고개를 저었다.
메타트론의 영혼을 가진 마족이 누구인지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잘못하면 과하게, 그의 영혼과 정체성을 건드리게 될 것 같아서.
“괜찮아.”
케루브가 입을 꾹 다무는데 루시어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말해도 돼.”
“…….”
깊은 정적이 흘렀다.
타리크는 대현자가 루시퍼의 환생체라고 했으니 제외되고, 마리엘라였다면 천계가 절대 그녀의 병을 고쳐 주지 않았을 테니 마찬가지로 제외된다.
그렇게 후보를 하나씩 제하며 천계가 보여 준 행적과 케루브가 알려준 목적을 조합해 보면.
답은 명확하게 나온다.
하멜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루시어스 님이겠죠.”
“으아아아…….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치고 들어오지 말아 주세요!”
케루브의 안색이 굳는 걸 보고 레이얼 허겁지겁 덧붙였다.
그가 혀를 쯧 찼다.
“그럴 줄 알았지.”
턱을 괸 채, 불만스러움을 숨기지 않고 하멜이 계속해서 투덜거렸다.
“손해 보는 계약 같긴 했어. 마계에서 가장 강한 마왕도 이렇게 맛있는 냄새는 안 풍기는데, 고작 70살도 안 된 꼬맹이가…….”
하멜이 루시어스를 흘깃거렸다.
뭔가 비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하멜이 굳이 계약 조건으로 육체와 영혼을 제시한 것 또한, 어떤 본능에 의해서였다.
먹이를 쫓는 본능.
영혼을 제가 얻지 못하면 누군가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계약할 때, 이미 눈치챈 건가?”
“아뇨, 제가 마신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다만.”
“다만?”
“마족답지 않다곤 생각했죠.”
당신만큼 마족답지 않은 마족은 처음 보았으니까.
“당신은 너무 완벽했습니다.”
“…….”
“유능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너무 성숙했다는 겁니다.”
겨우 70년밖에 살지 못한 어린 마족답지 않게 성숙했다.
놀고 싶을 나이인데도 놀려고 하지 않고, 섭섭해야 할 일에 섭섭해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닥쳐도 울고 웃지 않는다.
세상의 풍파에 닳고 닳은 어르신처럼 세상에 초연할 뿐.
루시어스가 탄식했다.
“그래, 그랬구나.”
“으응.”
케루브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으며 손끝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그래서 그 녀석……, 가브리엘에게 많이도 놀아난 거군.”
그들은 마리엘라의 병을 고쳐 주는 조건으로 자신이 내민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카데미로 천사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가브리엘은 천계에 필요한 수단을 자연스럽게 거머쥐었다.
그렇기에 마계에서 천계의 의도를 알아채는 것이 늦어졌다.
그것이 아니었으면 조금 더 빨리 눈치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결국, 모든 것이 과거의 내가 뿌린 씨앗이라 해도.
‘좀처럼 실감이 안 나.’
자신을 루시퍼의 환생체라고 말했던 타리크도 비슷한 심정이었을까?
이름 없는 병을 앓지도 않은 자신이 갑자기 천계에 중요한, 천사의 영혼을 가졌다는 말을 정말 쉽게 와닿지 않았다.
시선이 가라앉았다.
‘아니면 이것 또한.’
메타트론의 의도였을까.
왠지 그가 노렸던 대로 흘러가는 것 같아 썩 기분이 좋진 않다. 루시어스의 미간이 슬쩍 좁아졌다.
“저기, 뭔가 기억나……요?”
미간을 찌푸리고 한창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루시어스에게 케루브가 무척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시어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아무것도.”
“그래? 다행이다.”
루시어스의 예상과는 달리 케루브는 오히려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개를 기울이자 케루브가 머쓱하니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나는 루시어스가 메타트론 님일 적의 기억을 찾지 않았으면 좋겠어.”
“……천계에는 기억을 찾은 내가 필요한 거 아니었어?”
“맞아, 하지만 메타트론 님의 기억은 너무나도 방대할 거거든.”
고작 70년밖에 살지 못한 루시어스 켄드릭의 인격이 과연 메타트론의 기억을 만나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영혼에 새겨진 방대한 기억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면, ‘루시어스’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면 케루브는 차라리 루시어스가 기억을 되찾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메타트론 님도, 루시어스도 좋아. 그러니 ‘너’는, 마족 루시어스로 남아 주었으면 좋겠어.”
“……제법 기특한 소릴 하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레녹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케루브는 레녹스와 시선을 맞추며 눈을 끔뻑거리다가 씨익 웃었다.
“제법 믿을만하지?”
“적어도 이번만큼은, 믿을 만해.”
레녹스가 얼핏 웃으며 말했다. 케루브가 콧잔등을 쓱 닦았다.
루시어스가 옅은 미소를 띠었다.
“케루브. 이야기는 잘 들었어. 그래서 너는, 내가 천계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아니, 내가 벌인 일이고 우리 일이니까 대책을 먼저 세워 볼게. 분명 다른 방법이 더 있을 거야.”
케루브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그토록 자애로운 메타트론님께서 무책임하게 천계를 버렸을 리 없었다. 분명 자신이 찾지 못한 방법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방도가 없으면, ‘5장로님’께 부탁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케루브는 쑥스럽게 웃었다.
아주 후련한 얼굴로, 쑥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