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1)
마족답게 사는 법-31화(31/385)
마족답게 사는 법 31화
031 사막에서 일어나는 일 (6)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
독성을 품은 마기가 짙게 내려앉고 마계의 붉은 달이 두터운 바람에 흔들렸다.
루시어스는 아주 잠시 사막의 정경을 눈에 담았다.
‘상태가 심각해졌군.’
약한 지반과 부족한 수분을 버티지 못한 식물들이 바짝 말라 있었고, 독기를 견디지 못한 마물들이 죽어 썩어 가고 있었다. 무척이나 혹독한 환경이었다.
‘10년 전에, 전하께서 적어도 마족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으라 하셨었는데.’
상태를 보아하니 다음 건기를 버틸 순 있을지 걱정이었다.
다른 마족의 영지에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아 관심을 끊었었는데, 설마 타리크가 기껏 심어두었던 나무를 지하로 가져갔을 줄이야.
이러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회피할 수 없어진다. 명령 불복종이라는 누명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곧 타리크가 깊게 심호흡했다. 후우, 내뱉은 숨결이 옅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기가 사막이라 다행입니다.”
맹독이 있기로 유명한 스콜피온 족답게, 타리크는 독기를 들이마시며 제힘처럼 다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베어 버릴 듯 흉포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이런 곳에서는 본래 힘의 반절도 사용할 수 없을 테니까요.”
“반절로도 충분하니 걱정하지 마라.”
타리크의 말에는 틀린 곳이 없었다.
이런 독기에 버틸 만큼 강한 식물은 많지 않다. 어떤 식물이든 잠시간 소환해 둘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들로는 타리크에게 유효타를 먹일 수 없다.
그렇다고 사막의 식물을 소환할 수도 없었다. 상대는 사막의 패자, 타리크 라하위스가 아닌가. 사막에서 자생하는 식물들이야 뻔히 꿰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마기가 끈적해.’
독기가 넘쳐흐르고 있으니 깊게 호흡하기 힘들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기를 생각보다 많이 소모한다는 말이었다.
자욱한 독 안개가 깔렸다. 기세등등한 표정의 타리크가 곧 모래와 독에 몸을 숨겼다.
여러 기운이 휘몰아치며 그의 존재감을 숨겼다. 루시어스는 최대한 기감을 넓게 유지했다.
‘근접전은 불리하니 어쩔 수 없지…….’
손톱이나 꼬리, 심지어 혈액에도 다량의 독이 함유되어 있으니 충분히 주의할 필요성이 있었다.
손을 뻗자 가느다랗고 긴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자루에는 녹빛 마정석이 담쟁이처럼 얽히듯 박혀 있었다.
“오랜만에 쓰네.”
2차 성장을 했을 때 더미트가 선물해 주었던 창, 아인.
이 녀석을 꺼냈으니 더미트를 생각해서라도 절대 지면 안 되겠지.
곧 더욱 짙어진 안개 속에서, 날카로운 바람과 함께 곧 몸을 숨겼던 타리크의 공격이 쇄도했다.
쐐액!
루시어스가 창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창끝이 안개를 가르자, 자루의 마정석이 몇 번인가 공명했다.
퍼엉!
창로를 따라 폭발이 일어나며 ‘레로’라고 불리는 식물이 소환되었다.
레로는 약간의 움직임만 느껴져도 폭발하며 씨앗을 뿌릴 만큼 예민한 식물이었다. 이렇게 마기가 휘몰아치는 곳에 소환하면.
두두두두! 퍼버버벙!
소환하기 무섭게 폭발해 버리고 만다.
창끝이 대지를 둥글게 그었다. 창을 타고 흘러나간 마기가 모래 속에 파묻힌 레로의 씨앗을 자극한다.
싹이 움트고, 줄기를 뻗은 레로가 다시금 터져 나간다.
“아직 멀었지.”
타리크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한 준비 운동일 뿐이다.
루시어스는 타리크가 모래 밑으로 도망치는 걸 막기 위해 발밑에 잔가지 넝쿨을 소환했다. 이어서 그 사이로 수많은 식물이 자라기 시작했다.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부터 극한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종, 평범한 들풀부터 귀한 약초까지 전부.
사막에서 사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루시어스가 서 있는 곳은 이름 없는 숲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파스스.
울창했던 숲이 찰나의 독기를 이기지 못하고 재가 되었다. 휘날리는 검은 연기를 뚫고 타리크가 등장했다.
까아앙!
자루로 공격을 막아낸 루시어스의 발아래가 꿈틀거렸다. 잔가지 사이로 작은 마법진 하나가 생기더니, 모래가 날카롭게 솟아올랐다.
강하게 한 번, 위에서 아래로 창을 내리 찌르자 모래가 흩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법진이 재차 발동되더니 두 갈래로 갈라져 따로 움직였다.
양쪽에서의 협공에 더해 위나 아래, 앞이나 뒤에서도 같은 공격이 쏟아졌다.
몸을 덮을 만큼 거대한 활엽을 소환하여 공격을 막았다. 독침을 맞은 잎사귀가 역시 바스러졌다.
타리크가 활엽 때문에 좁아진 시야를 파고들며 맹공을 계속했다. 수많은 마법진이 허공에 겹치며 온갖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인가 본데.’
루시어스가 땅으로 내려섰다. 발이 닿자마자 사막엔 다시금 조화로운 숲이 생겼고, 독기에 물들어갔다.
식물들이 독기에 스러질 때마다 새로운 식물들이 몇 번이고 피어났다.
‘조금 더…….’
“때를 기다리는 것은 당신뿐만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에 거대한 진이 생겼다. 수많은 술식이 마법진 사이에 떠올랐다.
사막의 모래와 바람이 타리크의 의지에 따라 원을 그리듯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거대한 토네이도가 되어 굉음을 울렸다.
쿠구구구!
우지끈.
몰아치는 바람에 나무가 흔들렸다. 약한 지반에 박힌 뿌리가 힘없이 끊어졌다. 루시어스는 바람이 집어삼킨 식물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한눈을 팔 새가 있습니까?”
“이미 끝난 싸움이니까. 네가 졌다, 타리크.”
“루시어스!”
“무례하긴.”
타리크의 주변에 얇은 모래막이 구체처럼 생성되었다.
바람이 긴장을 놓치면 하늘로 빨려들 것처럼 강렬하게 휘몰아쳤다. 웬만한 비행 마족들도 버틸 수 없을 정도의 압력이었다.
루시어스의 몸이 조금씩 바람의 방향에 따라 떠올랐다.
“이미 승패는 정해졌습니다, 루시어스.”
타리크가 가늘게 웃음 지었다.
루시어스는 그 미소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모래는 뿌리를 뻗기엔 연약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턱없이 부족하지. 건기엔 독기가 자욱하고, 독기가 약해지는 우기에는 마물이 들끓어.”
웃음기 없이 차가운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시선 끝에는 검게 으스러진 나무의 잔해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사막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이 있다. 긴 시행착오 끝에 사막에 뿌리를 내리고 버티는 놈들이.”
“……무슨?”
“타리크 경. 이곳에서 얼마만큼의 식물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죽어갔을 것 같지?”
스스스슷, 우드득! 쿠구구구구궁!
바람을 타고 날아간 건 식물뿐만이 아니었다. 식물이 사막에 적응하기 위해 퍼뜨린 수많은 씨앗이 섞여 있었다.
씨앗이 루시어스의 신호에 따라 일제히 발아했다. 바람의 방향을 따라, 가지를 뻗으며 서로를 의지하듯 엮었다.
곧 그것들은 두꺼운 벽이 되었다. 토네이도에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든든하고 거대한 벽이.
바람이 멈추었다.
오른손이 창 아랫부분을 단단하게 휘감았다.
“죽이지 않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너의 죽음은 내가 아니라 전하께서 결정하실 일이니까.”
허공에 떠 있던 루시어스의 몸이 점차 아래로 떨어졌다. 창끝이 아래에 있는 타리크를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쐐애액!
창이 타리크의 모래 막과 함께 몸통을 꿰뚫었다.
* * *
‘설마 독에 당할 줄이야.’
창에 꿰뚫린 복부가 재생도 되지 않은 채 피를 울컥울컥 쏟고 있었다.
상처가 가장 심한 복부를 비롯한 다른 상처들엔 가느다랗고 긴 줄기가 뻗었고, 그 끝에 작고 투명한 방울꽃이 피었다.
타리크가 헛웃음을 흘렸다.
체내에서 강력한 독을 생성하는 스콜피온 족에게 독공을 쓰다니. 그런 발상이 가능한 대범함에 경악을 넘어 경외심까지 들었다.
‘잘 쓰면 약, 더 잘 쓰면 독이라는 거지.’
루시어스가 소환한 식물 안에는 스콜피온의 독을 중화시키기는 약초가 하나 섞여 있었다.
자신의 상처에 뿌리내리고, 피를 양분으로 삼아 투명한 꽃을 피운 이 약초의 뿌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쿨럭. 아……, 이러다 죽겠다.”
분명 죽이지는 않겠다고 하신 것 같은데.
조금씩 살 속으로 파고드는 약초의 뿌리가 고통스러웠다. 더 침식하지 않도록 마기로 밀어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분의 성격이라면 집사인 베르틴에게 자신을 데리러 가라고 명령하겠지.
이대로 조금만 버티면 집사에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다는 소리였다.
‘전하의 귀에도 얘기가 들어갈 거고.’
타리크가 푸흐흐, 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서열 두 자리 차이라고, 한순간이나마 승리를 점쳤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강한 거지?’
성년식을 치르지 않은 미성년 마족이 어떻게 이런 힘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3차 성장엔 대체……?
‘괜히 아카데미 제도를 운용하는 게 아닌데.’
마족은 성장할 때마다 육체가 성숙하며 마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특히 세 번째 성장을 견디지 못해 폭주하거나 목숨을 잃는 어린 마족이 많았다.
아카데미를 세워 체계적인 교육을 시작하자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많은 마족이 성장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다.
타리크는 3차 성장 때 자신이 어땠는지 잊을 수가 없었다. 아마 대부분 마족이 모두 그럴 것이다.
‘팔다리가 찢기는 고통도 그것보단 나을 거야.’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 같았지.
눈이 뽑힐 듯이 아프고, 살점이 불타는 듯이 아팠다. 산 채로 몸이 좀먹히는 것 같고, 수천 개의 바늘이 저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 괴로웠다.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미각도, 촉각도 전부.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밀려들어 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을 뽑고 귀를 도려내면 나아질까 고민했다. 하지만 손가락 까딱할 수도 없을 만큼 괴로워 그럴 수도 없었다.
생지옥이었다.
‘내가 그 정도였는데, 루시어스 님은?’
역사상 어떤 마족도 미성년일 때 루시어스처럼 강하지 않았다. 자신 또한 또래 사이에서나 강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죽고 싶어질 정도로 괴로웠다. 왜 3차 성장을 못 넘기고 죽는 마족들이 많은지 단번에 이해했다.
‘……죽을지도.’
만약 지금 여기서 성장을 한 번 더 한다면 어떨까?
고통을 가늠해 보던 타리크가 고개를 저었다.
하아. 한숨을 내뱉자 멀리서 기척이 느껴졌다. 스슥, 스스스슥. 뭔가가 모래 아래를 헤엄쳐 다가오고 있었다.
“베르틴?”
쑤욱.
집사인 베르틴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래 밑에서 얼굴만 빼꼼 내민 그가 주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귀빈께서 혼자 저택에 돌아오시더니, 주인님을 데리러 가라 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건.”
“다른 전언은?”
“…….”
베르틴이 질린 시선으로 타리크를 바라보았다.
이런 꼴이 되어서도 루시어스에 대해 하문하다니, 이 마족은 지금 제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는 있는 걸까?
타리크의 표정은 선물상자를 뜯기 전의 어린아이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차마 그런 그를 나무라지 못한 베르틴이 잠자코 루시어스의 말을 전했다.
“경고는 이것으로 끝이다.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하멜의 먹이로 던져 줄 테니 잘 처신하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놈의 먹이로 던져 주겠다니, 심한 말을 하시네.”
큭큭. 그가 실소하듯 소리 내어 웃었다.
이번에 이겨서 장로 자리를 빼앗으려고 했는데. 일이 꼭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군.
“쿨럭, 쿨럭.”
다시 한번 더 피를 토해낸 타리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을 뻗었다. 루시어스가 소환한 잔가지 뿌리가 손끝에 닿았다.
그리곤 눈을 감은 채, 그가 보여주었던 무위를 되새겨 보았다.
부름에 응하듯, 몇 번이나 풀과 나무가 자라나며 꽃이 피어났다. 휘두르는 창은 머뭇거림 없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렸다.
은빛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선연히 빛나는 금색 눈동자가 자신을 향했다.
아마 당신은 평생 모르겠지.
하늘을 등지고 창을 겨누던 모습이 얼마나 눈부셨는지.
그가 되뇌듯 작게 말했다.
“전 장로가 될 겁니다. 장로가 되어서…….”
당신을 제 기사로 만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