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10)
마족답게 사는 법-310화(310/385)
마족답게 사는 법 310화
310 루시퍼 (1)
“……님, 타…… 님.”
“…….”
“타리크 님!”
깊게 감겨 있던 눈을 떴다. 타리크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눈동자를 천천히 돌렸다. 집사인 베르틴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졌군.
타리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사막의 모래가 몸에서 스르륵 흘러내렸다. 그가 머리를 가볍게 쓸어올렸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십니까?”
“아니, 괜찮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더라.
맞아, 모래 목욕을 하고 있었지.
왜인지 유난히 몸이 무겁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타리크는 둔하게 상황을 인식하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못 버틸 만한 상태는 아닌데.’
근 몇 년간 몸이 성할 날이 없었음은 타리크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러드를 보호하느라 성치도 않았던 몸으로 진땀을 뺐으니, 후유증이 오래 가리라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하기 위해 틈이 날 때마다 모래 목욕을 했다.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요즘 컨디션은 여느 때보다 더 좋았었다.
타리크는 의아하게도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쉬었다. 모래가 피부를 구르며 후두둑 떨어졌다. 베르틴이 가운을 가져와 어깨 위에 걸쳐 주었다.
“마왕성에서 연락은?”
“왔습니다. 천계에서 타리크 님께서 주군인 5장로님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모습에 감명받았다며, 타리크 님의 방문을 허가하겠다고 전했다 합니다.”
“호오……. 상황이 이쪽 생각보다 훨씬 안 좋나 보군.”
자존심 때문에라도 적어도 10인까지는 허락하며 여유를 부릴 줄 알았더니. 타리크가 피식 웃으며 욕조에서 나와 손을 까딱였다.
베르틴이 트레이에 올려 두고 있던 편지가 그의 손으로 날아왔다.
타리크가 테이블에 앉아 턱을 괴고 그것을 천천히 읽었다. 예전 같으면 마기를 사용해 글자를 하나하나 더듬어봤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 즐거웠다.
“천사를 얼마나 많이 갈아 넣었으면 그 지경이 되었을까.”
루시어스가 케루브에게 들은 사실을 저희들에게 알려 주기 전에도, 타리크는 천계의 상황이 이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야 그런 것이.
자신도 같은 짓을 하지 않았던가.
‘나무를 뽑아서 지하에 처박아 두고, 시름시름 앓으니 마족들을 죽여 먹이로 줬었지.’
그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알아서 제 뼈와 살을 깎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놈들인가. 덕분에 본인들의 병력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고상한 척 으스대는 놈들이 겨우 사절단 몇 명이 천계에 들어오는 것조차 무서워하는 겁쟁이가 되었으니 얼마나 우스운가.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꼴이 되었어. 아주, 아주 마음에 들어.”
타리크가 편지를 접어 두고 잠시 창밖을 응시하며 눈을 가늘게 뜨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르틴은 타리크의 눈동자가 곧 곱게 휘어지는 걸 보며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혹시 그분께서 오셨습니까?”
“오, 어떻게 알았지? 맞아. 루시어스 님께서 러드에 들어오셨다.”
설마 하던 베르틴의 미간이 단번에 찌푸려졌다. 도대체 루시어스가 러드에 들어오는 걸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가 싶었다.
혹시 루시어스가 들어오면 발동되는 결계를 자신 몰래 쳐 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끔찍한 일이다. 베르틴은 루시어스가 어쩌다 이 미치광이의 눈에 들어 이런 험한 꼴을 보는지 그저 안타까워 고개를 저었다.
타리크가 빙글빙글 웃음 지었다.
“너도 슬슬 쓸모가 있게 된 것 같아. 역시 마족은 좀 고난을 겪어야 성장한다니까.”
“예,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동안 러드를 위해 그렇게 뼈를 갈아 넣는 심정으로 일했는데도 이놈은 이제야 쓸 만해졌다고 한다. 대체 양심이 있기는 한 것인가?
베르틴은 어쩌다 자신이 이놈에게 칭칭 묶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끙끙 신음했다.
기분이 좋아진 타리크는 뻔히 보이는 베르틴의 속내를 무시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의 시야에 드넓은 하늘 밑의 러드가 들어왔다.
‘하늘 아래 바람은, 참 시원하군.’
그가 미소 지었다.
* * *
방학이 되고 간단한 몇 가지 사항을 처리한 후, 루시어스는 케루브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대로 바로 러드에 왔다.
“삐이잇!”
불의 기운이 강한 구역이기 때문인지 나비가 도착하자마자 기분이 좋은 듯 울었다.
루시어스의 품속에서 폴짝 뛰어나가 신난 듯 주변을 뛰어다니는 나비를 보며 말했다.
“너무 멀리 가면 안 된다.”
“뺘!”
호기심에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던 나비가 바로 루시어스의 곁으로 돌아오며 앞발 한쪽을 번쩍 들었다. 루시어스가 옅게 웃고는 러드를 돌아보았다.
러드는 참 많이 변해 있었다.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군요. 전에 느껴지던 꿉꿉한 독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클로에 때문일 거야.”
케루브가 멀리 보이는 클로에를 가리키며 말했다.
루시어스가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클로에는 러드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지반을 떠받치는 단단한 뿌리와 하늘을 향한 튼튼한 가지.
그리고 선명한 빛깔의 나뭇잎.
뿌리를 타고 흘러나오는 깨끗한 물이 계곡처럼 러드의 길을 따라 흘렀다.
물의 도시라 해도 믿을 만한 광경이었다.
“정말, 사막 속의 오아시스네요.”
레이얼이 작게 감탄했다.
지진이 난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도시는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클로에가 도시를 통째로 사막 위로 끌어올렸지만, 도시를 휩쓴 지진의 여파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의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몇 달 사이에 러드는 동화책 속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완벽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노력했다는 단순한 말로는 차마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지진의 여파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이 정말 타리크가 다스리는 도시가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루시어스가 피식 웃었다.
“그 녀석에겐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니 어렵진 않았겠지.”
“맞다, 그랬었죠.”
레이얼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리크는 무려 이전 대 사막의 지배자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경제 체계를 몇 년 만에 활성화하고 생활 수준을 확 끌어올린 전적이 있는 놈이었다.
지배자에게 불신만이 남아 있었을 당시에도 그만한 저력을 뽐냈는데, 현재 사막의 마족들은 타리크를 존경하며 따르니 일이 훨씬 쉬웠을 터다.
물론, 상대적으로 말이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도시를 복구시키는 일이 마냥 쉬웠을 리가 없다.
“클로에도 열심히 보살핀 모양이고.”
멀리서도 느껴지는 청량한 기운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저렇게 건강한 모습을 보니 참 기분이 좋았다.
“신경을 많이 썼어.”
“물론이죠. 누가 주신 나무인데요.”
은근슬쩍,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울 것도 없어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타리크가 눈웃음지으며 루시어스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인사하고 아쉽다는 듯 투덜거렸다.
“미리 연락해 주셨으면 준비해서 맞이했을 텐데요.”
“잠깐 클로에를 보러 온 것뿐이야. 사적으로 온 거니 굳이 연락을 넣을 필요는 없지. 번거롭기만 하잖나.”
“그래도 도시가 많이 바뀌었으니 안내역이 있는 쪽이 편하실 테니까요. 게다가 아무 곳에서나 머무실 수도 없고.”
“그리고 또 수작을 부리려고.”
“그게 언제 적 이야기입니까.”
루시어스가 콧방귀를 뀌며 클로에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타리크와 레녹스가 뒤를 바짝 쫓아갔다.
레이얼과 하멜, 케루브가 뒤에서 수군거렸다.
“그런데 루시어스가 온 건 어떻게 알고 온 걸까요? 감시라도 붙여놓은 건가?”
“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죠. 처음엔 무슨 짓이라도 했나 싶어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데, 아무것도 안 나오더군요. 그냥 원래 그런 겁니다.”
“맞아. 저 새끼……, 저 녀석, 아니, 저 배신자 놈? 아씨, 뭐라고 불러야 해?”
케루브가 머리를 마구 헝클며 타리크의 호칭을 고민하다가 좋은 별명이 생각나 다시 말했다.
“저 또라이는 천사일 때도 그랬어.”
“네? 진짜요?”
“그렇다니까. 그때부터 메타트론 님을 졸졸 따라다녔어. 오죽했으면 천사들이 또라이를 메타트론 님 길잡이로 썼을까.”
“와…….”
“메타트론 님을 찾을 일이 있으면, 메타트론 님이 아니라 또라이를 찾아가는 게 빨랐을 정도야.”
레이얼은 정말 대단한 집념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케루브도 공감하는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에 와서 루시어스 옆에 있는 타리크를 보고 속으로 얼마나 놀랐던지. 진짜 그 집요함과 교활함은 변하질 않았다.
자력으로 본인이 루시퍼라는 걸 알아냈다는 것도 황당하기 그지없고.
역시 당시 천계에서도 또라이라고 불렸던 천사다웠다. 케루브가 혀를 내둘렀다.
‘흐음, 상당히 재미있네.’
루시어스는 옆에서 종알거리는 타리크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렸다.
그러면서 뒤의 셋이 수군거리며 나누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케루브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전생이라.’
솔직히 전생의 일을 알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보통은 본인이 어떤 영혼을 지니고 태어났는지, 전생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이 있다고 해서 알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걸음을 옮기던 루시어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열심히 타리크를 욕하며 걸어오던 셋이 멈칫,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루시퍼는 왜 ‘배신자’가 된 거지?”
“어…….”
“마계의 기록에 따르면 루시퍼는 신의 권위에 도전하며 신을 욕보여, 그 대가로 천계에서 추방당한 벌을 받았다고 하던데.”
루시퍼가 천신만 욕보였다면 마계에서는 오히려 영웅 취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신뿐만 아니라 마신도 욕보였다는 기록이 있어 어딜 가든 그를 욕하지 않는 마족이 없었다. 바하무트가 타리크에게 보였던 적대감도 그 기록 때문일 터다.
“그, 그게요…….”
케루브가 타리크의 눈치를 흘금 보았다. 루시어스를 마냥 바라보던 타리크가 시선을 느끼고 케루브는 싸늘한 눈으로 훑었다.
입을 딱 다문 케루브가 시선을 피했다.
케루브가 곤란해하는 것 같자, 루시어스가 옅게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꼭 대답해 주지 않아도 돼. 그냥 갑자기 궁금해졌을 뿐이니까.”
케루브의 반응을 보면 타리크는 전생의 루시퍼와 상당히 닮은 부분이 많은 것 같았다.
즉, 조금 수상하고 의뭉스럽게 행동해도 사리 판단이 빨라 본인이 손해 보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소리였다.
그런 천사가 두 신 모두에게 반기를 드는 멍청한 짓을 그냥 벌였을 것 같지는 않은데.
“지나간 일이 뭐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저는 루시어스 님께서 제 전생보다는 제게 좀 더 신경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루시어스, 그보다 저쪽에 있는 건과일이 맛있어 보이는데 조금 사서 먹어 보는 게 어떤가? 이왕 여기까지 왔잖나.”
레녹스가 타리크의 헛소리를 재빠르게 차단하며 루시어스에게 상점을 가리켰다.
루시어스는 건과일을 파는 상점으로 가 상품을 둘러보았다.
“건과일이라. 이건 과일과 다른 맛이 있지. 조금 먹을까?”
“헉, 저도요! 저도!”
“나도 먹을 수 있나?”
레이얼이 옆에서 깡충거렸다.
케루브도 흥미로운지 옆에서 침을 꼴깍 삼키고 있었다.
“주인장, 건과일 세 봉지만.”
건과일 상점으로 우르르 몰려간 일행을 보며 타리크는.
“쳇.”
뒤에서 혀를 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