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11)
마족답게 사는 법-311화(311/385)
마족답게 사는 법 311화
311 루시퍼 (2)
일행은 건과일을 우물우물 먹으며 클로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케루브가 먹을 수 있게 처리해 주었더니 케루브는 벌써 한 봉지를 다 먹고 두 봉지째 먹고 있었다.
루시어스는 입에 건과일을 잔뜩 넣고 행복해하는 케루브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그렇게 맛있어?”
“엄청 맛있어!”
단 것을 유난히 좋아하더니 입에 꼭 맞았나 보다.
“식도락을 즐긴다는 거,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젠 알겠어.”
이게 바로 식도락이지!
케루브가 건과일 하나를 더 입에 넣고 굴리며 웃었다. 하멜은 본인의 미식과는 퍽 맞지 않은 지 옆에서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거나 먹으며 맛있다 하는 저 ‘식도락’과 함께 묶이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이후로도 천천히 걸어 클로에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변에 엄중한 결계가 쳐져 있었다.
타리크가 결계를 풀어 주며 루시어스를 안으로 안내했다.
“어떻습니까. 제법 잘 관리했죠?”
살랑, 살랑.
루시어스의 기운을 느꼈는지 클로에의 나뭇가지가 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흔들렸다. 반가운 객을 맞이하는 것처럼 풀잎이 즐거운 소리를 냈다.
뿌리를 타고 가까이 다가간 루시어스가 기둥을 가볍게 쓸었다. 전에는 안쓰러울 정도로 푸석푸석하게 여위었었는데.
“그러게, 열심히 돌봤군.”
지금은 한눈에 봐도 촉촉하고 튼튼하다. 루시어스가 작게 웃으며 아이를 어르고 달래듯 기둥을 톡톡 두드렸다.
지난날 타리크가 벌인 짓들은 여전히 용서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후에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만큼 노력했으니 한 번쯤은 칭찬해 줄만 했다.
루시어스가 뭘 바라는지 곁으로 다가오며 눈을 반짝이는 타리크를 흘긋 곁눈질했다.
“고생했다. 그간 잘하고 있었구나.”
“……루시어스 님?”
타리크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루시어스가 저렇게 순순히 저를 칭찬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갑작스러워 당혹스러웠다.
“내가 잘못 말하기라도 했나? 뭐 그렇게 어쩔 줄을 몰라 해? 잘했다니까.”
“어…… 음, 어……. 그게.”
“도시는 걱정 없다며 큰소리 떵떵 치면서 돌아다니기에 얼마나 잘해 놨는지 보려고 했더니, 생각보다 더 정비를 잘해 놨어. 이 정도면 그럴 만하지.”
“…….”
“그렇게 큰일이 있었는데도 도시 사람들의 얼굴에 근심이 하나도 없어. 대단한 일이야.”
장난스럽게 건넬 말은 많고 많았는데도 입술이 딱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숨이 턱 막힌 것 같았다.
뒤에서 레이얼이 레녹스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이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거 고장 났는데요?”
“그럴 만하지. 루시어스는 가끔 과할 정도로 꾸밈없이 솔직하게 말하니까.”
“와, 저 또라이는 저런 점까지 그대로네. 진짜 징그럽다.”
“이래서 러드에 오기 싫었는데.”
“삐삣. 삐.”
레녹스를 시작으로 케루브와 하멜, 나비까지 한마디씩 거들었다. 타리크는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들을 들으면서도 그 이상의 행동을 취할 수가 없었다.
몸 관절이 전부 삐걱거렸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 맞아. 빨리 클로에를 봐야지.”
케루브가 정신을 차리고 클로에에 다가가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루시어스는 타리크가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이들이 뭐라고 생각하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클로에 뿌리에 앉아 등을 기댔다.
잠시 눈을 감자 바스락바스락, 클로에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
타리크는 거기서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있는 루시어스를 내려다보았다. 루시어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리며 맴돌았다.
자신에게 고생했다고 말하는 그. 나무에 파묻히듯 기대 눈을 감고 있던 그.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나.
‘전에도 분명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심장이 두근두근 울린다.
고동에 맞춰 의식이 점점 가라앉아, 아득한 과거로 향했다.
* * *
“루시퍼 님, 루시퍼 님!”
콰앙!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루시퍼가 눈을 치켜떴다. 표정에 불쾌함이 가득한 그를 마주한 천사, 케루브가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숨을 들이켜며 몸을 굳혔다.
그러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루시퍼는 턱을 괴고 케루브를 응시했다. 이 녀석이 왜 저를 찾아왔는지는 안 물어도 뻔했다.
그 일이 아니면 케루브는 자신을 찾지 않으니까.
“또 메타트론 님을 귀찮게 하려고?”
“귀찮다니, 메타트론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용건도 없이 개새끼처럼 쫄래쫄래 따라다니면 메타트론 님은 안 귀찮을 것 같아? 차라리 말이라도 걸던가.”
“으음, 제가 어떻게 그래요.”
케루브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루시퍼는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케루브를 바라보다가 메타트론의 기운을 찾아 고개를 돌려보았다.
괜히 양심이 찔렸는지 케루브가 안 물어본 것까지 줄줄 늘어놓았다.
“그래도 오늘은 용건이 있어요. 곧 위그드라실의 나뭇잎이 떨어질 때가 되었으니 준비해달라고 상제께서 전해달라 하셨고, 그리고 이번에 들어온 영혼도…….”
“영혼? 아, 성인(聖人)의 영혼이었나.”
“네, 영혼의 승격에 관해서도 물어볼 게 있었거든요. 아무래도 계율에 대해서는 메타트론 님을 따라갈 자가 없잖아요.”
전 그런 쪽은 아무래도 버겁단 말이죠. 케루브가 덧붙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던 그가 말했다.
“아발론에는 안 계시니 바깥 서쪽에 계시겠군. 지금쯤이면 하계를 내려다보고 계시겠지.”
“네? 또요?”
이제는 ‘그걸 대체 어떻게 아세요?’ 하고 말하기도 질렸는지 케루브는 루시퍼의 말을 의심하지도 않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서 투덜투덜 불만을 늘어놓았다.
“하계의 놈들이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바라보시는지. 이번에 데려온 영혼도 그래요. 별것도 아닌데 굳이 맞이하러 가시고.”
“그래서 그의 선택이 불만이라고?”
“저희는 지금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메타트론 님께서 직접 영혼을 승격시키면서까지 데려올 이유는 없잖아요. 그런 애들이 뭘 할 수 있다고.”
애초에 천사가 되지 못한 영혼이 좀 덕을 쌓았다고 천사가 된다니 불쾌하잖아요.
“가르치는 것도 솔직히 짜증…….”
“…….”
루시퍼는 턱을 괸 채 더 말해 보라는 듯 턱을 까딱였다. 케루브는 루시퍼가 유난히 메타트론을 잘 따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왠지 메타트론의 흉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냥 그렇다고요.”
“그래? 그럼 나가.”
“네?”
“시끄러우니까 나가라고.”
그가 손을 한 번 휘저어 케루브를 아발론 밖, 정확히는 중간계의 허공으로 전송해 버렸다.
어디선가 으아아악!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루시퍼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루시퍼가 시선을 가볍게 돌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는데요?”
“…….”
몸을 감추고 있던 메타트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루시퍼가 옅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언제나 냉랭한 표정이었으나 케루브 때문인지 오늘은 특히 차가웠다.
“메타트론 님, 제가 중간계에서 꽃과 풀의 모종을 좀 가져왔습니다. 위그드라실 뿌리 근처에 심어 두고 기다리면 눈이 즐겁겠지요. 기분도 좋아질 겁니다.”
“루시퍼.”
“네, 메타트론 님.”
“굳이 케루브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왜 그렇게 의도했지?”
이럴 땐 참 예리하다니까.
루시퍼가 메타트론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살짝 걸터앉았다. 올려다보던 시선이 비슷하게 맞았다.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중간계에 사는 이들이나 인간들은 아무것도 못 한다는 그 오만한 생각이 싫어서요. 선택받은 것처럼 구는 게 재수 없거든요.”
“…….”
“하지만 그 뿌리 깊은 혐오를 말하면서도 고상한 척 가식 떠는 모습이 재미있어서요. 그것도 제 앞에서 말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자극해 봤답니다.
그는 조금의 꾸밈도 없이 솔직히 메타트론에게 말했다.
메타트론은 그런 루시퍼를 투명한 금색 눈동자로 가만히 응시했다.
루시퍼는 시선을 마주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영혼까지 꿰뚫어 보는 투명한 눈동자를 마주하니 숨이 막혔다.
기묘한 위압감에 가늘게 떨리는 손끝을 그에게 들키지 않고자 책상을 꽉 움켜쥐었다.
‘언제 느껴도 가공할 만한 존재감이군.’
케루브에게는 메타트론에게 말이라도 걸어보라고 말했으나 루시퍼도 알고 있었다.
이 천사를 앞에 두고 말을 걸 만큼 간덩이가 부은 천사는 본인 말고는 없으리라고.
전신으로 느껴지던 위압감과 존재감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루시퍼는 속으로 숨을 다시 조심스럽게 가다듬으며 메타트론을 바라보았다.
메타트론이 얕은 한숨을 쉬었다.
“네 속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다.”
“그럼 알 때까지 보셔도 됩니다.”
능청스러운 대답에 메타트론도 조금 기가 질렸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웃기는 놈 같으니. 너는 겁도 없느냐.”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습니까. 메타트론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새삼스러울 정도입니다.”
“너는 왜…….”
메타트론은 무엇인가를 말하려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다 곧 입을 다물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루시퍼는 메타트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이렇게 냉랭한 듯 보이는 그가 사실은 무척이나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루시퍼는 고개를 돌린 메타트론에게 답했다.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
“저는 당신이 무섭지 않습니다.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요.”
“너는, 처음부터 그랬지.”
“네. 당신께서 저를 구제했을 때부터 그랬지요. 그러고 보니 그때는 케루브가 아직 태어나기 전이었던가요? 벌써 무척 오래된 이야기네요.”
루시퍼가 먼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지천사 케루브라는 천사가 존재하기도 전.
아직 천계와 마계, 중간계가 한 대륙에 묶여 있던 시절. 천사라고 이름 붙일 만한 존재들이 열 손가락을 겨우 채웠던 그 시절.
루시퍼는 그 당시에 메타트론이 처음으로 영혼을 천사로 승격시킨 최초의 존재였다.
“당신이 아니셨으면 저는 향후 몇십, 몇백, 몇천 번의 환생을 진흙탕에서 굴렀겠지요. 고작 인간들의 죄가 하필 제게 쌓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땐 세계가 불안정해 어쩔 수 없었다. 네가 감당할 필요가 없는 죄이니, 그걸 사한 것뿐이야.”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겁니다.”
루시퍼가 다시금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해 보이던 메타트론의 안색이 많이 펴진 것을 보니 덩달아 제 기분도 좋아졌다.
그는 보관함에 넣어 두었던 모종을 꺼내 메타트론에게 살랑살랑 흔들어 보여 주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지요? 중간계에서 꽃과 풀의 모종을 좀 가져왔다고요.”
“루시퍼. 중간계의 식물을 천계에서 키울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밑바닥에서 전전할 운명이었던 저도 이렇게 천사가 되었는데요. 다 방법이 있습니다.”
루시퍼가 눈웃음치며 걸음을 옮겨 방문을 열어주었다.
“자, 어서 가시죠. 오랜만에 중간계의 꽃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메타트론은 루시퍼를 지그시 응시하다가 그를 따라 방에서 나섰다. 루시퍼는 앞에서 길을 안내하듯 걸으며 메타트론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며 대화를 나누었다.
위그드라실 뿌리 층에 도착할 때까지.
그가 심심하지 않도록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