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13)
마족답게 사는 법-313화(313/385)
마족답게 사는 법 313화
313 루시퍼 (4)
루시퍼는 신을 믿지 않았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뭇 생명체들이 믿는 것처럼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존재는 아니라 생각할 뿐이었다.
신이라는 작자들의 자애로움, 박애함, 공평함은 결국 가진 자들의 것이 아니던가.
그런 이들보다는 차라리.
당신께서 신인 편이 세상을 위해 훨씬 이로운 것이 아닐까.
“콜록, 윽…….”
루시퍼는 자신의 가슴을 꿰뚫은 창 위로 손을 올렸다. 고통을 참으며 입을 꾹 다물 때쯤, 그것이 더 깊게 파고들었다.
날카롭게 정제된 방대한 신성력이 안을 진탕 휘저었다.
옥좌를 지키는 천사, 메타트론.
미카엘이 천제와 천계의 검이라면 메타트론은 신의 창이다.
신의 창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그가 가진 힘이 대천사는 물론이고 천제를 웃도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다만 루시퍼도 메타트론의 권능을 이렇게 눈앞에서 확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루시퍼.”
분노일까, 실망일까.
메타트론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루시퍼는 창대 위에 올렸던 손을 뻗어 메타트론의 어깨를 잡았다 붉은 핏자국이 그의 어깨에 묻었다.
“제법 볼 만한 얼굴을 하고 계시네요, 메타트론 님.”
“여전히 네 생각을 모르겠구나.”
그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평소 같았으면 알 때까지 보셔도 괜찮다고 능청스럽게 말했겠으나 이번에는 입 벙긋하기도 힘들었다.
루시퍼는 메타트론을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메타트론의 시선은 설산 꼭대기의 얼음장보다도 더 싸늘했다.
메타트론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사죄해라. 그럼 천사의 권능은 잃겠으나, 적어도 네 죄는 내가 짊어지겠다.”
“사죄? 어째서 그래야 합니까?”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손속이 너그러우신 분도, 공사 구분을 못 하는 분도 아닌데 이렇게 검까지 꽂아 두고 자신에게 사죄를 바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나를 베고 영혼을 회수하실 생각이면서 죄를 자신이 짊어지겠다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련인가, 아니면 후회인가.
루시퍼가 비죽하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메타트론은 여전히 깊은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는 그저 당신의 명을 거스르고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치우려 했을 뿐인데요.”
“네 욕망에 대한 면죄부로 나를 이용하지 말아라. 나는 네게 한 번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다.”
“정말 제 욕망일 뿐입니까?”
천계와 천사들이 거슬렸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까?
계율과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몸을 천계에 묶어 둔 신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정말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한심한 천계의 작태에 한숨을 내쉰 적이 정말 없었습니까?
“깊고 깊게 고민해 보았습니다. 당신께서 왜 바라는 바를 끝끝내 이루지 못하고 계속 포기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요.”
나태하고 오만하며 이기적이기만 한 천사들을 보살피며 일평생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신의 권좌에 어울리는 것은 당신인데, 왜 항상 고개를 숙이고만 살아야 하는지.
“천계와 신 때문 아닙니까.”
“루시퍼……!”
저는 당신께서 누군가에게 얽매여 있음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할 뿐인 위선자들에게 당신께서 휘둘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해결법은 간단하죠.”
루시퍼가 미소 지었다.
“천계, 신. 전부 없애면 되잖아.”
당신이 하지 못하면 내가 하겠다고.
옥좌의 수호자라는 자리를 놓지 못하겠다면 내가 그 옥좌에 앉아 당신을 나의 수호자로 만들겠노라고.
당신의 위에 있는 게 그 빌어먹을 신들이 아니라 나라면.
모두 완벽해지겠지.
루시퍼의 눈동자가 깊게 침잠했다.
메타트론은 입을 꾹 다물고 루시퍼의 가슴을 꿰뚫은 자신의 창을 꽉 잡았다.
주변에서 풍기는 천사들의 피 냄새가 지독하도록 괴로웠다.
루시퍼를 단죄하겠다며 결성되었던 추격대가 이렇게 처참한 패배를 맞이할 줄 누가 알았으랴.
그가 몇천 년을 함께한 동족을 상대로 이렇게 잔혹한 손속을 보일 줄 누가 알았으랴.
눈을 감았다가 뜬 메타트론이 아주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아이야, 나는 너를 믿었다.”
“…….”
“네가 내게 보내는 존경을 믿었고 호의를 믿었으며 신뢰를 믿었다. 그런데 너는 결국.”
눈동자에 얕은 파문이 일었다.
“너마저도 결국.”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메타트론의 눈동자는 다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서 이전보다도 더 단단하고 두텁게 쌓아 올린 벽이 느껴졌다.
냉랭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구나.”
촤아악!
대화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루시퍼의 일생도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잔혹하게 목숨을 거두어 간 메타트론은 마치 그의 최후를 확인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매정하도록 등을 돌렸다.
그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메타트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완전한 끝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 * *
“조사를 해 보긴 해봤는데요, 솔직히 클로에에서 특별한 점을 찾을 수는 없었어요.”
책상 위에 책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레이얼은 펼쳐진 책에 얼굴을 푹 묻고 바둥바둥거렸다.
흥미롭고 중요한 조사이기는 하지만 진척이 없으니 조급했다.
클로에를 살피고 돌아온 레이얼과 케루브의 보고를 듣던 루시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위그드라실의 상태를 호전시킬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니 루시어스도 참 많이 아쉬웠다.
“단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클로에가 처한 상황은 천계의 위그드라실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나무를 독점하려고 했던 타리크의 욕심과 터무니없는 방법 때문에 한 번 말라비틀어질 뻔했다는 점이 특히.
책장을 넘기던 레녹스가 고개를 저으며 책을 덮고 물었다.
“클로에를 관리하는 방법이 천계의 방법과 다르지는 않았나?”
“그건 오히려 똑같아서 놀랐어.”
타리크는 낙엽을 이용해 클로에가 자라는 토지에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한다.
다른 부족한 부분은 마법적인 처치를 이용해 관리하고 있었다.
천계가 위그드라실을 관리했던 방법과 아주 흡사했다.
하지만 이전에 사용했던 방법이 위그드라실의 성장과 힘의 보존에 효과가 있었으면 일이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을 테니, 사실상 얻은 정보는 없다 봐야 했다.
루시어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차이가 있을 텐데.”
같은 방법을 썼음에도 클로에만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성장하고 있다는 건, 두 나무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나무가 뿌리 내린 땅이 좁아서일지도, 천계와 마계라는 극단적인 상황 탓일지도 몰랐다.
루시어스가 이전에 천계에서 보았던 위그드라실의 모습을 되새기며 케루브에게 물었다.
“위그드라실에 눈에 보이는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지?”
“메타트론 님께서 모습을 감춘 직후부터 상태가 안 좋아지기는 했어. 정확히 언제 사라지셨는지는 우리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유의미하게 차이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당시 천제는 메타트론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다며 전보다 더 자주 그를 찾곤 했으니까.
루시어스가 고민을 거듭하는데 레이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시어스. 혹시 위그드라실과 대화를 시도해 보지는 않았나요? 바로 천제랑 마주쳤어요?”
“응, 그럴 시간도 없었고 일부러 건드리지 않기도 했지. 위그드라실이 내게 응하지 않을 테니까.”
“어째서요?”
“대화를 나눌 만큼의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거든. 지금 위그드라실은 그 거대한 체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영겁의 세월을 산 만큼 자아가 뚜렷할 테고, 그만큼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려면 기력 소모가 상당할 터다.
잘못 건드렸다간 위그드라실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될지도 몰랐다.
위그드라실이 조금만 더 건강했다면 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었겠으나.
“너무 약해졌어.”
“…….”
“너무나 많이.”
안쓰러울 정도로.
루시어스가 고개를 저으며 숨을 내쉬는 순간, 갑작스럽게 시야가 요동치며 가느다란 이명이 고막을 찌르듯 파고들었다.
비틀.
속절없이 몸이 무너졌다.
이명이 떠나지 않고 머릿속에서 웅웅 울렸다.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다문 루시어스가 의자 팔걸이를 꽉 잡았다.
앉아 있던 이들이 전부 당황스러워하며 벌떡 일어나 한달음에 달려왔다.
“루시어스! 괜찮아?”
“왜 그래요?”
레녹스가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
고개를 숙인 루시어스의 뺨을 잡아 시선을 맞추게 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이러는 걸 보면 단순한…….
피로일까?
기분 탓인지 루시어스의 얼굴이 유난히 창백한 것처럼 보였다. 레녹스가 좀처럼 마음을 놓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 조금 현기증이 나서 그래.”
“현기증 외에 다른 증상은? 아니지, 우선 리브레 군단장부터 불러올게. 그게 낫겠다.”
마침 타리크 때문에 저택에 있으니 데려와야겠어.
레녹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루시어스가 괜찮다고 붙잡을 틈도 없이 쌩하니 방을 나갔다.
레이얼은 레녹스와 달리 꽤 차분하게 루시어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은 어때요?”
“괜찮아졌어.”
“……근래에 또 이랬던 적은?”
“없었지. 이런 일이 계속 있었으면 너희에게 숨겼겠어? 숨겨도 금방 들킬걸.”
“그건 그렇네요.”
레이얼이 입술을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케루브가 한참을 우물쭈물거리다가 다가왔다.
손끝이 새하얗게 질린 걸 보고 루시어스가 가볍게 대답했다.
“괜찮아. 무리하고 있는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런 게 아니라, 나는.”
“얼굴에 걱정하는 중이라고 쓰여 있는데, 뭐가 그런 게 아니야?”
“……천사였을 때의 기억이 되돌아오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래.”
케루브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에게 내려진 천계의 명령이 ‘메타트론으로서의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루시어스를 자극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은근히 신성력에 노출시키고 천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
만에 하나 나중에 강제적으로 각성시키려 할 때, 루시어스의 영혼이 부담을 덜 느끼게 하도록.
“으으으, 내가 신나서 너무 많이 떠들었던 것 같아. 지금 이걸 말해 주는 것조차 자극이 될지 모르는데……. 하지만.”
굳이 비밀을 만들고 싶지 않아 하나하나 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자신의 말과 행동 때문에 루시어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지?
케루브가 눈을 질끈 감았다.
루시어스는 그런 케루브를 바라보다가 손을 쭉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케루브.”
“……루시어스.”
“기억을 되찾는다고 해도 나는 그저 나일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천사들 식으로 말하면 이것도…… 그래, 운명이겠지.”
“…….”
“안 그래?”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으나 마음의 불안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케루브가 불안한 시선으로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루시어스가 운명을 입에 담는 모습이 왜인지 너무나도 어색하고 불안하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