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the Life of a Demon RAW novel - Chapter (327)
마족답게 사는 법-327화(327/385)
마족답게 사는 법 327화
327 동아리 (3)
“이 동아리는, 이름 그대로 식물을 연구하기 위한 동아리야.”
동아리 개설이 승인된 후, 루시어스는 동아리 부원이 된 특별반 학생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마계는 광활하지만 메말랐지. 식물이 살지 못해 아무것도 없는 대지가 너무 많아.”
“음, 식물이 클 만한 곳은 마족들이 모여 살고 있기도 하니까.”
“맞아. 마계에 식물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족들의 터전을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
부담임인 레녹스 또한 아이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있었다.
그는 루시어스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감탄했다.
장로로서의 경험 때문일까.
루시어스는 본인이 하는 일을 완벽하게 포장할 줄 알았다.
누가 들어도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 내는 데에 능숙했다.
‘사정을 모르면 정말 저것이 진짜 목표라고 믿겠는데?’
아니면 저것 또한 진짜 목표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루시어스라면 하나의 연구에서 둘 이상의 결과를 얻을 능력이 있으니까.
“다양한 환경에서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확인하는 것이 동아리의 주된 연구가 될 거야. 그리고.”
“그리고 가능하면…….”
에스메리다가 말을 마저 이으려던 루시어스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식물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겠네?”
“맞아, 바로 그거지.”
“흐으음, 무척 흥미로운 연구야.”
에스메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루시어스가 굳이 왜 동아리를 만들었는지 의아했다.
무엇이든 혼자 거뜬히 해낼 능력이 있는 루시어스에게 있어 동아리라는 특수한 집단은 오히려 족쇄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도 봐라.
동아리라는 말에 아이들이 떼로 달려들어서 혼자 조용히 연구하려던 계획이 엎어지지 않았나.
‘하지만 이런 연구라면 아예 동아리로 개설하는 것이 정답이지.’
루시어스의 연구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장기적이었다. 이것을 혼자 하려면 무척이나 많은 자원과 노력,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시간이 문제였다. 연구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려면 아카데미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특히 수업 외 활동 인정 말이다.
그러려면 동아리 활동이라는 명목을 내세우는 것이 좋았다.
‘게다가 루시어스는 지금 특별반이기는 해도 알파 클래스잖아.’
알파 클래스는 졸업 요건도 까다롭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알파 클래스에 걸맞은 지식 수준을 갖추고 그를 입증해야 했다.
만약 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정말 마계의 황폐한 땅을 개간할 식물을 개발한다면?
졸업이 문제가 아니다.
실력이 좋고 똑똑하기까지 한 루시어스를 데려가기 위해 여기저기에서 스카우트가 올 것이다.
게다가 아카데미에서 지원한 연구아 아닌가. 결과나 성과에 이의를 제기할 마족도 없을 터다.
에스메리다가 감탄을 삼켰다.
‘지금껏 누구도 동아리 제도를 이렇게 활용하지 않았을 거야.’
정말 루시어스는 대단하다.
무척 대단하고 무서운 마족이다.
에스메리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맴돌았다. 적으로 돌리면 누구보다 무서울 마족이지만, 루시어스는 명실상부 특별반의 친구였다.
그 사실이 그녀를, 그리고 특별반 학생들을 안심하게 한다.
“루시어스. 그럼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들어 줄래?”
“응, 뭔지 말해 줘.”
“동아리의 첫 연구 장소로, 룬타를 추천하고 싶어.”
* * *
휘이이이이.
설산의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동아리 첫 활동으로 룬타 지방을 찾아오게 된 학생들이 서로 찰싹 붙어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녹였다.
“추, 추추추추워어어어어어!”
“이, 이, 이렇게까지 추울 일이냐. 으으으, 마, 말도 안 돼.”
“키아아안, 살려줘어어어.”
학생들은 특히 몸이 따뜻한 키안과 이리누슈카에게 매달려 있었다.
키안은 원래 체온이 높은 짐승형 마족이고 이리누슈카는 불을 주로 다루는 주술사라 몸이 따뜻했다.
그들은 자신의 팔이며 등에 붙어 얼굴을 부비는 친구들을 보며 동시에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는 그렇게 입어도 춥냐.”
“여러 의미로…… 대단하군…….”
이걸 내치자니 불쌍하고 그냥 두자니 걸리적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룬타에서 가장 높은 산, 룬 네르의 정상이다.
에스메리다의 말로는 그곳에 연구에 쓸 만큼 정순한 룬타 지방의 마기가 모여 있다고 한다.
제대로 환경과 식물에 관한 연구를 하려면 외부 요인을 줄이기 위해 자연에 모인, 아주 정순한 마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았다.
“그건 우리가 더 묻고 싶다.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입고 멀쩡한 거야? 자가 발열이라도 돼?”
“몸은 원래 자가 발열이다. 너희들의 몸도 36도가 넘잖아.”
“헉, 그렇구나!”
“말도 안 돼,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그만큼이나 돼?”
이리누슈카는 어이가 없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훌쩍, 솔직히 키안이랑 이리누슈카는 체질이 체질이니 그렇다 쳐. 그런데 루시어스는 뭐냐?”
루시어스는 험준한 설산을 올려다보다가 저를 언급하는 목소리를 듣고 시선을 돌렸다.
추위 때문에 곧 굴러갈 것처럼 옷을 껴입은 아이들이 보였다.
“선생님도 저렇게 입고 추워하시는데, 넌 어떻게 그렇게 멀쩡해?”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거야? 훌쩍. 혹시 교복에 대단한 마법을 걸어 놓기라도 했어?”
선생님이 추워하고 계신다고?
루시어스가 고개를 돌려보았다.
“나는 춥지 않다. 춥지 않다……. 나는 선생님이니 정신 차려야 해. 정신 차려, 아르놀트. 정신…….”
마찬가지로 추위에 익숙하지 않은 아르놀트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음, 못 버틸 추위는 아닌데.”
“맞다찌.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다찌. 다들 너무 나약하다찌!”
루시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생적으로 적응이 빠른 라타트리아도 평소에 입던 교복 위에 외투 하나를 더 껴입었을 뿐이었다.
“다들 심각한데…….”
이런 추위쯤이야 루시어스에게는 대단할 것도 없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슬쩍, 뒤쪽을 바라보았다.
유독 추위를 타는 쌍둥이가 훌쩍훌쩍 코를 먹고 있었다.
“베, 베른! 나, 좀 졸린 것 같아.”
“안 돼. 자면 죽어, 훌른!”
“커어어억…… 구르르르륵.”
“훌른……! 훌르으으으은!”
눈물 없이는 못 볼 광경이다.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광경을 보며 루시어스가 웃음을 삼켰다.
교복에 기본적인 생활 마법이 걸려 있긴 해도, 추위가 없는 지방에서 자란 둘에게는 부족할 것이다.
결국, 루시어스가 둘에게 보온 마법을 걸어 주었다. 그러자 쌍둥이의 눈이 휘둥그레하게 뜨였다.
“이제 좀 괜찮아?”
“으응, 훨씬 참을 만해.”
“추위가 드세서 마법이 오래가지는 않을 거야. 버티기 힘들면 숙소로 돌아가 있어도 돼.”
“아냐, 같이 연구하고 싶어.”
“맞아, 우리가 그냥 호들갑을 좀 떤 거야. 괜찮아!”
훌쩍!
훌른과 베른이 추위에 빨갛게 변한 코를 매만지더니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루시어스가 그런 둘을 보며 다시 선두로 나섰다.
“음, 다들 계속 따라온다니 그럼 이걸 좋은 기회로 삼아야겠어.”
“……좋은 기회?”
루시어스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환경은 항상 우리를 배려해 주지는 않아. 그러니 어떤 환경에서도 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해.”
“그 말은…….”
“극도의 추위나 더위도 마찬가지지. 언제 이런 환경에서 싸울지 모르는 일이잖아?”
타당성이 없는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마왕군은 일부러 이런 극지대로 훈련을 가고는 하니까.
“추위를 견디는 법은 간단해. 마기를 이용해서, 몸속으로 들어오는 한기를 밀어내는 거지.”
“저기, 루시어스? 그걸 우리가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
“마기를 효율적으로 제어하면 제어할수록, 아주 적은 마기로 추위를 이겨 낼 수 있어.”
그리 어렵지 않아.
처음에는 힘들 수 있겠지.
하지만 하다 보면 다 돼.
루시어스가 옅게 미소 지었다. 그 웃음에 힘겹게 산을 오르던 아이들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큰일 났다.
저 웃음은……!
‘당장 자수해. 누가 춥다고 했어!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설마 아니겠지? 에이, 아무리 루시어스라 해도 여기서……!’
아이들이 입을 꾹 닫고 간절하게 루시어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루시어스는 그런 친구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복 위에 외투 하나까지만 허락해 줄게. 그 외에는 전부.”
아이들이 울상이 되었다.
“벗어.”
* * *
딱딱딱딱딱.
여기저기서 이빨이 부딪혔다. 케루브는 루시어스와 함께 걸으면서 가끔 뒤를 흘긋 돌아보았다.
외투 하나만 입고 달달 떨면서도 꿋꿋히 따라오는 이들을 보니 참.
참, 만감이 교차했다.
‘그냥 돌아가 있어도 될 텐데.’
고집은 대단한 녀석들이라니까.
“루시어스, 정말 괜찮을까?”
“응? 아, 애들이라면 괜찮아. 다들 엄살 피우는 거야.”
루시어스가 아이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안쓰럽고 가련하게 훌쩍거리고 있어도 속은 달랐다.
다들 착실하게 자신이 말했던 대로 마기를 운용하며 한기를 몸 밖으로 열심히 밀어내고 있었다.
‘할 수 있으면서, 다들 못하는 척한다니까.’
애초에 지난 2년 반 동안 간간이 제 훈련을 받았던 이들이 아닌가.
이 정도 추위에 나가떨어지게 키운 기억은 없다.
음. 나가떨어질 정도면…….
오히려 좋은 기회다. 동아리 부원이 되며 걱정이 많았으니, 적어도 어느 상황에서든 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게 키워줘야지.
“극한의 상황일수록 훈련 효율이 높아지는 법이니까.”
“맞는 말이긴 한데, 혹독하네.”
케루브가 고개를 저었다.
나란히 걷던 레녹스가 한층 가까워진 설산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룬타를 덮은 한기가 마치 봉우리에서 시작하는 듯, 하얀 기운이 일렁이며 넘치고 있었다.
루시어스의 훈련 아닌 훈련 때문에 금세 추위에 적응한 아르놀트가 봉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가 룬 네르 정상이군.”
“그런 것 같네요.”
레녹스가 눈가를 가늘게 접었다.
“어렸을 때 룬타에 길게 살았었죠. 그래서 룬 네르에 대해서도 소문을 들었어요.”
룬타의 가장 높은 산, 룬 네르에는 마기로 이루어진 호수가 있다.
호수에 몸을 담그면 어떤 마법에도, 어떤 공격에도 상처가 생기지 않는 완벽한 육체를 가지게 된다.
룬타에서 유명한 전설이었다.
“그거라면 나도 들은 적 있다. 실제로 10대 전 마왕 전하께서 룬타 출신이어서 더 화제가 됐었지?”
“맞아요. 지금은 미신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죠. 평범한 호수라는 걸 모두 아니까요.”
미련하게도. 그렇게 쉽게 힘을 얻을 만큼 녹록한 세계가 아닌 것을 알고 있으면서.
“마냥 평범하기만 하진 않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루시어스가 말했다. 루시어스의 시선이 룬 네르 정상에서 넘치는 하얀 마기에 못 박혀 있었다.
“저곳의 정순한 마기를 조금이라도 흡수할 수 있다면 정말 완벽한 육체를 가지게 될 테니까.”
흡수할 수 있다면, 말이야.
과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지. 잘못하다가는 탈만 날 거야.
루시어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뒤를 따라오는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얘들아, 다 도착했어!”
“헉! 진짜……?”
“아직 엄청 먼 것 같은데?”
휘둥그레하게 눈을 뜬 아이들에게 루시어스가 답해주었다.
“이곳이 룬 네르 정상으로 통하는 입구야.”
그들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거대할 뿐인 바위가 있었다.